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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15-03)


죽음의 자리에서도 충성하는 제자

마가복음 15장 33-47절


 

사람들이 일하면서 요란하게 일하지만 실속없는 사람도 있고, 전혀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일하지만 정작 중요한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입으로만 일하는 사람도 있고, 말없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큰소리는 혼자 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도망가버리지만, 보통 때는 있는 둥 없는 둥 하는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서 중요한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일꾼입니까?

 

  • 예수님께서 제육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고 제구시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 외치신 후 숨을 거두었습니다.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집니다. 이를 본 백부장은 그분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셨다고 고백합니다. 안식일 전날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 시신을 요구해 무덤에 둡니다.

 

운명하신 예수님(33-38)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지만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죄악을 대신 지신 대속제물로서 절규하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크게 외칠 수 있습니다. 어둠은 죄악 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33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33-38)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6시부터 9시까지 세 시간 동안 온 땅에 어두움이 임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해가 가장 강렬한 시간에 온 땅에 어둠이 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신 세 시간 동안 임한 캄캄한 어두움은 구약 아모서 8:9-10의 예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종말론적인 심판을 상징합니다. 즉 하나님 아들의 죽음을 애통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오후 3시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소리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고통 속에서의 부르짖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부르실 때 늘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34절에서 그는 ‘나의 아버지’라고 하지 않으시고 ‘나의 하나님’이라 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지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들을 대신해서 대속물로 죽으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택한 백성들을 구속하기 위해 그들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형벌을 받고 버림을 당하는 대속물이 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외침은 시편 22:1을 반향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편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를 외치시고 돌아가십니다. 본문에서 시편 22:1를 기록한 것은 예수님께서 시편 22편 전체를 다 말씀하셨다고 보아야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성경 인용 관습이었고, 마가가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시편 22편의 예언들이 완수된 것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시편 22편을 마지막으로 말씀하시고 돌아가신 것은, 그가 자신의 죽음을 종말에 하나님의 구권 계획에 성취로 이해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5절에서는 사람들의 반응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엘리야를 부르신 것으로 잘못 이해하였습니다. 말라기 4:5에 의하면,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는 말씀에 의하면, 엘리야 선지자가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돌아온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종말론적 기대 속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지금 엘리야를 부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엘리야가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다시 와서 도와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엘리야를 부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신포도주를 제공했습니다. 이 신포도주는 그레코로만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갈증 해소를 위해서 마시던 음료였습니다. 이 사람의 행위는 그다지 선한 의도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이 음료를 제공하고 나서 엘리야가 예수님을 내려주는지 지켜보자고 제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때에 예루살렘 성전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둘로 찢어졌습니다(38). 휘장이 둘로 찢어진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아마도 이때 찢어진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하늘이 갈라진 것처럼 성전 취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갈라진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래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의 기구를 나르지 말라고 하셨고(11:16),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을 통해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암시하셨습니다(11:12-14, 20-23). 또한 13장에 등장하는 종말론적 담화를 통해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분명하게 예고하셨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 성전의 휘장이 갈라졌다는 것은 성전 기능이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었음을 신학적으로 상징적으로 말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믿음의 사람들(39-41)

교회는 십자가의 의미를 확실히 아는 자들로 이뤄집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눈으로 밝히 보는 자들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우리 자신을, 세상과 모든 일을 십자가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보는 자 진리를 깨닫는 것은 하나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39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40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1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39-41)

 

마가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직후에 처형장 주변의 모습을 스케치해줍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람은 백부장입니다. 예수님을 처형하는 현장에서 모든 일을 집행하며 예수님을 자세히 주목할 기회를 얻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에 처해진 경위를 들었고, 십자가상에서 대략 6시간 달려 있던 예수님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다른 죄수들과 다른 그의 언어와 행위를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처형 장면을 지켜본 백부장은 그가 운명하시는 것을 보고는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사실 때우 놀라운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사람은 마가복음을 통틀어 오직 그가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규정하고 시작합니다(1:1). 그의 수세 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1:11). 변화산에서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9:7).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사람은 그의 제자들도 아니고 유대인들도 아니고 백부장이었습니다. 이것은 마가가 보여주는 아이러니입니다. 백부장의 놀라운 고백을 들려준 마가는 또 하나의 놀라운 이야기를 보도합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에 있는 뜻밖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여자들이었습니다. 본문에 이름이 언급된 세 명의 여자들 외에도 많은 여자들이 멀리서 예수님의 처형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쳐버렸습니다(14:50). 마가가 보도하는 십자가 현장에는 제자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갈릴리로부터 출발해서 십자가의 길을 따라왔던 제자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예수님과 함께하는데 실패하고 있는데, 이 여자들은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이제 그 길의 시작부터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 길을 줄곧 함께해왔고 가장 위험한 십자가의 처형장에도 서 있는 여자들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마가는 직접적으로 묻고 있지는 않지만, 독자들에게 이렇게 암시적으로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가 진짜 예수의 제자들입니까?’

 

매장되시는 예수님(42-47)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음이나 부활, 승천과 재림에 대해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그분의 모든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나라, 그 나라의 안식을 고대하고 기다리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감사하며 그분의 죽음을 본받으려 합니다. 자기의 명예와 신분과 부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42이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4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45백부장에게 알아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46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47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42-47)

 

십자가형은 공개 처형의 방식으로 백성들을 향한 교육적/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십자가형으로 죽은 사형수의 시체는 통상 나무에 달아놓거나 버려져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신명기 21:22-23의 밤새도록 시체를 나무에 달아두지 말라는 말씀에 따라서 십자가 사형수들도 매장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경우 안식일 전날 처형되었기 때문에 그의 시체를 매장하기 위해서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그런데 아리마대 출신의 요셉이 등장하여 ‘당돌히’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에 대한 마가의 묘사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던 사람이라는 언급입니다. 그는 아마도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나라(통치)의 일면을 본 것 같습니다. 기득권에 속한 사람들이 대부분 예수님을 적대시하고 그를 죽이는 데 동조하던 상황에서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재자로서 선택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예수께서 신명기 21:23의 율법이 정한 저주받은 자의 죽음을 당했는데도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그의 시체를 요구하는 행위는 놀라움을 줍니다. 십자가에 달린 죄수들은 통상 하루를 넘겨서 생존하는 것이 대다수였습니다. 그래서 너무 오랫동안 죄수가 생존하는 것을 막고 빨리 처형을 끝내기 위해서 종종 죄수들의 다리를 꺾곤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경우 대략 여섯 시간 정도를 십자가 위에 있었는데, 다른 죄수들에 비해서 상당히 일찍 운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자신의 이전 경험에 비추어 예수께서 벌써 운명하셨을 리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처형을 감독했던 백부장에게 예수께서 죽었는지를 알아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 빌라도는 아리마대 출신의 요셉에게 시체를 내줍니다. 마가는 이제 예수님께서 매장되는 과정을 서술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 안식일 전날 예비일이었고, 숨을 거둔 시점이 대략 오후 3시 정도 되었기 때문에, 요셉이 처형 현장에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준비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로부터 시신의 수습 허가를 받은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 형틀에서 내려서 잘 수습한 후에 세마포로 짰습니다. 그러고는 바위 속에 판 자기의 새 무덤에 장사합니다. 로마 시대에 개발된 채석장들은 후에 종종 무덤으로 전용되었습니다. 돌을 캐기 위해서 바위를 파곤 했는데, 그 관 곳들이 후에 무덤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돌 침상 위에 눕혀진 것으로 보이고, 무덤의 입구는 돌을 굴려서 밀봉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의 시체가 눕혀진 곳을 확인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막달라 마리아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그들이 무덤을 확인한 것은 예수님의 시신이 적절하게 수습되기에 시간이 너무 촉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내고 안식일 다음날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와서 몸에 향품을 바르려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면과 그의 시체를 수습하는 장면에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죄로 막혔던 하나님과 저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시키고자 친히 몸을 찢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언제든 복음으로 사탄의 정죄와 참소를 물리치고, 주님이 열어 주신 길을 따라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예배하며 헌신하는 제자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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