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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15-02)

 

 

조롱과 고난 속에 십자가 지신 예수님

마가복음 15장 16-32절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기독교 신앙을 삶 속에서 훈련하는 방법이 다양할 것입니다. 그런데 시각적으로 훈련으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오래된 방법이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범그리스도교 종파 중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주 구체적으로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 선교를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까지 올라가신 장면들마다 성경을 통해 묵상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십자가형에 처해지고 군인들은 그를 조롱합니다. 골고다로 예수님을 이끌고 가던 로마 군인들은 구레네 시몬을 붙들어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합니다. 골고다에 이르러 군인들은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님께서는 거부하십니다. 처형장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가 걸립니다. 조롱하려고 건 죄패가 역설적으로 예수님의 진정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조롱당하신 예수님(16-20)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께 그 책임을 돌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나님을 상대하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 반응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따라서 완전하게 그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욕과 굴욕 당하셨습니다.

 

16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16-20)

 

유대인으로 구성된 성전 군대와 달리, 이 군사들을 아마도 팔레스타인 근방에서 모집된 이방인 군사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군사들에게 끌려간 것은 ‘브라이도리온’이라는 총독 뜰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곳에 군사들이 다 모아 있었습니다.

그 군사들은 예수님께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웠습니다. 이 자색 옷은 군인들이 입던 낡은 겉옷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시관은 로마의 문화에서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이나 운동경기에서 우승한 선수의 머리에 씌웠던 관을 가시가 있는 나뭇가지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했던 것은 왕의 복장을 흉내 내서 예수님을 조롱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자색 옷은 아무나 입을 수 있는 색깔의 옷이 아니라 왕이 입는 옷이었고, 가시 면류관은 왕의 금관을 흉내 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조롱하고 희롱한 것은 빌라도의 심문 자리에서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는 군사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는 문구를 통해서 지지를 받습니다. 군사들은 예수님께 ‘유대인의 왕께 충성’이라고 조롱하듯 경례하였습니다(18). 이것은 그들이 라틴어로 로마 황제에게 하던 경례를 흉낸 것입니다. 이 장면은 전체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의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흉내 내어 모욕을 주는 장면입니다. 이들이 왕을 대하듯 행한 행위들은 조롱의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 군사들은 반복적으로 계속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치고 침을 뱉으며 꿇어 절했습니다(19). 이것은 마가복음 10:33-34에서 예수님의 세 번째 고난 예언을 상기시키며 이사야의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군사들의 놀림은 그들이 예수님에게 꿇어 절하는 모습을 계속됩니다. 20절에 군사들이 자색 옷을 벗기고 다시 예수님의 옷을 입힙니다. 고대 문헌에서는 원래 십자가형을 받는 죄수들은 완전히 벗긴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에는 옷을 십자가형이 집행되기 바로 직전에 벗기게 됩니다.

 

이러한 군인들의 모욕과 희롱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아무 항거나 저항을 하지 않으셨는데, 이것은 이사야 50:6의 예언(‘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에 대한 성취일 것입니다. 군인들은 희롱을 다한 후 그에게서 왕을 상징하는 자색 못을 벗기고, 도로 그가 입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한 준비를 시작합니다.

 

 골고다로 가시는 예수님(21-28)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정신으로 자신의 몫을 담당하시는 철저한 순종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우리의 죄악을 위해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철저한 순종을 통해 우리는 면죄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온전한 모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두를 위해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주님의 헌신적인 사랑을 깊이 되새겨야 합니다.

 

21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24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25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8(없음)(21-28)

 

본문은 예수님께서 골고다로 올라가시는 장면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내용입니다.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향하시던 예수님의 행렬에 의외의 인물이 동참합니다. 그 자리에 자제는 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십자가의 길에는 또 다른 일꾼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1) 골고다로 올라가신 예수님(21-23)

 

당시 십자가형에 처해진 죄수들은 처형장까지 자신이 처형당할 나무를 직접 지고 가야 했습니다. 그것은 보통 평행으로 못 박힐 나무였으며, 형장에서 수직으로 세워질 나무에 맞추어져서 십자가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9:17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은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님께서 약해진 몸 때문에 잘 지고가지 못하자, 군사들이 구레네 시몬에게 억지로 지웠습니다. 구레네는 북아프리카 연안 도시로 상당히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음으로, 시몬은 유대인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아들들인 알렉산더와 루포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서(21), 그들은 마가복음에 처음 들었던 청중들에 잘 알려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심한 채찍질을 당한 예수님께서는 이 십자가를 지고 가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실제로 채찍에는 동물의 뼈나 쇠붙이가 붙어 있어서 한 번의 채찍질만으로도 살점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십자가를 대신 짊어질 사람을 찾았습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은 피지배국의 사람들에게 강제로 짐을 지울 수 있는 ‘강제노역’의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마태복음 5:41).

이때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시몬이 이 일을 위해서 지명됩니다. 아마 구레네인 시몬은 유월절 명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순례하러 올라왔을 것입니다. 그는 지나가다가 붙들렸고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처형장까지 같이 가게 됩니다. 여기서 마가는 시몬을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로 소개하는데, 만일 시 는 것은 몬의 두 아들들이 초대교회에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면 구태여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로마서 16:13에는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라는 언급이 있습니다. 만일 로마서의 그 루포가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이 루포라면, 시몬은 우연하게 십자가 길에 동참하였지만, 그와 그를 비롯한 두 아들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로마 군사들은 예수님을 끌고 ‘골고다’에 도착합니다. 골고다는 예루살렘 바로 바깥에 위치하였는데, 넓은 공간과 예루살렘으로부터 멀지 않은 거리는 공개 처형 방식인 십자가형을 집행하기에 적절한 장소가 되게 하였을 것입니다. 로마 위정자들은 사형수를 사람들이 잘 보이는 큰 길가에서 집행하길 원했습니다. 십자가형은 로마에 대해 반란을 꾀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와 처벌의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와는 다르게 십자가형 자체는 간단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십자가형은 당시에 공포의 사형 방법이었습니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는 ‘십자가형이 가장 잔인하고 악독한 형벌이다.’라고 협오했고, 유세프스는 ‘그 죽음을 가장 비참한 죽음’이라고 평했습니다.

 

군사들은 예수님께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습니다. 마태는 ‘쓸개 탄 포도주’라고 기록합니다(마태복음 27:34). 그것은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죄수들에게 그 고통을 감소시키기 위해 준 일종의 마취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온전한 정신으로 십자가를 지시려고 포도주를 받지 않으십니다. 또한 예수님의 거절은 유월절 만찬에서 본인이 하신 말씀과도 연관되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포도주를 제자들과 함께 나누시면서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실 때까지 다시 마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24-28)

 

예수님께서는 죽임을 당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 군사들은 예수님의 옷을 나누기 위해서 제비를 뽑아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19:23-24을 보면, 그들은 예수님의 겉옷과 속옷을 다 취하였습니다. 요한은 겉옷과 속옷을 빼앗기신 것이 구약성경에 이미 예언된 것의 성취임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마가의 본문에는 요한과 같은 분명한 성취에 대한 언급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이야기 직후에 옷을 제비뽑았다고 언급하는 것은 분명 시편 22:16, 18에 대한 성취를 말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는 성취입니다. 로마인들은 죄수를 완전히 발가벗겨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예수님께서는 같은 방법으로 못 박힌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공관복음서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시간을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마가복음 저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각을 제시합니다. ‘제삼시’는 아침 9시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법정으로 끌려간 것이 이른 아침이었습니다(마태복음 27:1; 마가복음 15:1; 요한복음 18:28). 요한복음 19:14은 예수님께서 빌라도 법정에 서신 시각이 ‘제육시’라고 기록함으로써 공관복음서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마가는 오전 9시에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보도하는데, 요한은 정오에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요한복음이 로마 시간을 따르는 것으로 이해하면 조화롭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제육시는 오전 6시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야간에 유대인들의 공회에서 불법 심문을 받으셨고, 새벽에 로마 총독의 법정에서 빌라도에 의해 재판을 받으셨으며, 즉각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골고다로 끌려가 아침 9시경에 십자가에 처형되셨습니다.

 

그 십자가 위에 있는 죄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십자가형에 처해진 죄수들은 자신의 죄목을 자신의 목에 메고 가서 처형당했는데, 예수님의 경우 그 죄패가 십자가 위에 전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편에는 강도 사람이 함께 처형되었습니다. 하나는 그의 오른편에, 글 하나는 그의 왼편에 못 박혔다는 마가의 서술은 10:37에서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청탁이 생각나게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영광 받으실 때에 자신들이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세배대의 아들들은 자신들이 예수님과 함께 잔을 마실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자신들이 실제로 무엇을 구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하겠다고 한 그들은 온데 간데 없고, 예수님의 곁에는 두 강도만 있을 뿐입니다.

 

조롱하는 사람들(29-32)

예수님의 모든 마지막 시간은 인간이 철저하게 하나님을 배반하고 무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세상과 제국의 권력 앞에서 신앙이 허무하게 지워지는 순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모든 뜻이 이뤄지고 하나님의 약속이 낱낱이 성취되고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메시아를 상대했지만, 하나님께서도 남김없이 자기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가 가장 수치를 당하는 순간에 가장 영광스런 하나님으로 입증되셨습니다.

 

29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29-32)

 

대제사장과 공회원들, 빌라도와 로마 군사들뿐만 아니라, 이제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욕을 퍼붓습니다. ‘아하’라는 감탄사는 조롱하는 의미로 시편 15:21, 40:15, 70:3에도 등장합니다. 머리를 흔드는 행위도 경멸하는 몸짓으로 구약에서 열왕기하 19:21, 욥기 16:4; 시편 22:7, 109:25, 이사야 37:22, 예레미야 18:16 등에서 여러 번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완전히 패배하여 그가 선포했던 하나님 나라에 실현이 실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욕하며 퍼붓는 말 속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에 대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사실 유대신학에서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신적인 대리인으로서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심판을 대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1:23에 따르면 나무에 달려 죽는 십자가형은 하나님께 저주를 당한 자의 죽음이 됩니다. 하나님께 저주받은 메시아라는 것은 유대신학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이유도 이 유대신학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예수님을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고 나서는 새로운 해석이 더해지고 있습니다(갈라디아서 3:13).

 

마가복음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욕했을 때, 모욕이라는 이 단어를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향해 했던 말들은 그냥 모욕이 아닌신성모독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모욕하고 조롱합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다시 짓겠다고 하신 말씀은 파언(破言)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성전 제사 제도가 폐지되고, 부활하심으로 새로운 성전이 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조롱하며 언급하는 ‘구원’이 예수님의 약함과 고난 속에 이루어진 것도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남은 구원하였으나’라고 조롱할 때, 예수님께서는 여러 사람들을 취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곳에서 의미는 단순한 개인적인 구원을 넘어서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조롱하는 말 속에서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31b-32a)라고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의 장본인들인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조롱에 합류합니다.

 

32절에서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힌 두 강도도 예수님을 욕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지도자들, 로마의 권력자들, 군사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에 이어서, 지금 상황에서 같이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두 강도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모욕을 당하는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어야할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간 것입니다.


 십자가로 향하는 길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는 물론이고 한 인간으로서 감당하기에도 조롱과 멸시, 버림당함은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질고를 겪으셔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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