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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5-01)


총독 빌라도 앞에 선 예수님

마가복음 15장 1-15절


 

우유부단한 사람은 어떤 결정에서 우왕좌왕합니다. 이런 사람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또 자기 입장이 명백하지 못하면 꼭 일을 그르치게 만듭니다. 사물에 대한 가치 판단력이 역량이 되지 않고 부족합니다. 가치관이 분명하고 판단력이 건강하고 그리고 자기의 올바른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 어려움이 있어도 해쳐나가면서 계속해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우유부단하고 우왕좌와하는 빌라도를 볼 수 있습니다.

 

  • 이른 새벽, 심의를 마친 대제사장들과 공의회 의원들은 공식적인 공의회를 열고 산헤드린의 지도자들은 사형 판결을 얻어내기 위하여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줍니다. 예수님의 신병을 인도받자 빌라도는 간단한 심문을 합니다. 예수님에게서 사형에 처할 만한 신빙성 있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빌라도는 유월절 특별 사면이라는 관례를 이용해 놓아주려 하지만 실패합니다.

 

빌라도에게 넘겨지신 예수님(1-5)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이면 하는 일이 고작 죄짓는 일밖에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이나 모임에든지 그 안에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사람의 말에 솔깃하여 악하고 음란한 세상을 따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말이 아닌 주님의 말씀이 들리는 환경, 참된 예배를 드리는 구조 속에 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배부르고 등 따신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될 뿐입니다.

 

1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2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4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1-5)

 

이른 새벽에 대제사장들은 다른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들과 함께 심의를 마치고 공식적인 공의회를 엽니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밤에 모였던 모임이 불법적인 성격이었음을 다시 한 번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증거를 확보하기 전에 이미 예수님을 죽이려는 의도로 모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나마 공식적인 절차를 밟기 위해 이른 새벽에 정식 공의회를 소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산헤드린 공의회는 죄인을 사형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공식적인 판결을 이끌어내는 데는 로마의 결정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예수님을 로마 법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산헤드린에서 종교적 판결을 받은 죄수는 로마 정부에 넘겨져 사형 선고를 받고 형이 집행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산헤드린의 지도자들은 사형 판결을 얻어내기 위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빌라도는 주후 26년에서 36년까지 유대를 통치하였던 총독입니다. 예수께서 전한 고난에 대한 예언,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라는 예언이 성취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병을 인도받은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한 심문을 시도합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 질문은 산헤드린의 심문 자리에서 대제사장이 던진 질문과 연결선상에 있습니다.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다만 대제사장에게서는 종교적 성향을 띠고 있었던 칭호가 빌라도의 심문에서는 정치적 성향의 질문으로 변경됩니다. 사실 종교적인 차원의 문제는 빌라도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로마는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차원의 문제는 유대인들의 자치권 아래 두었기 때문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처벌하기 위해 종교 문제를 정치 문제로 교묘하게 변경합니다. 예수님 당시 빈번한 메시아의 출현은 로마 정부와 이스라엘을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총독은 지금 그 같은 메시아로 자처하고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실제로 1세기에 메시아를 자처한 사람들이 수십 병에 달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네 말이 옳도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질문에 교묘하게 대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틀림없이 유대인들의 왕이 맞습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의도한 정치적인 왕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애매한 답변으로 상황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고 판단한 대제사장들이 다양한 주장으로 예수님을 고발하기 시작합니다.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이 제기하는 혐의점들을 옆에서 듣고 있다가 왜 예수님께 즉시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지 의아해합니다. 그는 종교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은 죄목으로 고발하고 있는지 예수님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고발에 대해 전혀 대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에 빌라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당한 고발에 변호하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에서 빌라도는 어느 정도의 연민을 느꼈던 듯하며, 예수님을 구하려는 소극적인 시도를 하게 됩니다(마가복음 15:9-14; 마가복음 27:23-24; 누가복음 23:4).

 

십자가형을 요구하는 무리들(6-15)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택에 있어서 합리적으로 행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현명한 선택은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면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따르느냐에 들어납니다.

 

6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더니 7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11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6-15)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아무 잘못도 없이 무고함으로 끌려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님을 넘겨준 줄 안 것입니다. 그래서 유월절 명절에 죄수 하나를 풀오 주는 전례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풀어주려 합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원했던 뜻대로 진행하지 않습니다.

 

(1) 명절에 이루어진 특별 사면(6-7)

 

유월절 명절에 로마제국은 피지배국인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일종의 특별 사면을 시행하였습니다. 특별 사면은 고대든지 현재든지 정치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특별 사면이 행해지는 방식에 있습니다. 총독이 아니라 백성들이 선택하는 죄수를 석방시켜주는 제도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서 사형에 처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한 빌라도는 유월절 사면이라는 관례를 이용해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시도합니다. 사실 빌라도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신념들과 연관되었을 뿐 로마제국에 직접적인 위해가 되는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말고도 석방 대상자로 바라바가 소개됩니다. 그는 민중 선동가였고 민란 중에 사람을 죽인 죄로 체포되었는데, 로마에 대항하여 혁명을 일으킨 민족주의자, 열심당의 일원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체포되어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명절에 행해지던 관례에 예기치 않은 복병이 등장합니다. 무리의 등장입니다. 많은 무리가 재판정에 몰려듭니다. 그들은 관례대로 죄수 한 명을 석방시켜 달라고 요청합니다. 바라바가 민족주의적 선동가였기에 그는 적지 않은 유대인들로부터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을 것입니다.

11절에 등장하는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선동한 것으로 볼 때, 이 시점까지도 무리는 어느 쪽을 선택할지 분명하게 확정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에 명절 기간 동안 올라와 있던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고, 그중에 적지 않은 수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열광적으로 호응한 것을 생각하면, 예수님에 대해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이곳에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 특별한 혐의점을 찾지 못한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자신에게 넘겨준 이유가 시기 때문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이러한 느낌을 심문 자리에서 느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놓아주기를 원하느냐고 무리에게 질문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해서 소극적 호의를 느꼈고, 이 같은 애매한 상황을 무리의 판결로 해결하려고 시도합니다. 이러한 미묘한 순간에 대제사장들은 무리를 충동하여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청원하게 합니다.

 

(2) 넘겨지신 예수님(8-15)

 

빌라도는 이러한 상황을 기대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묘한 상황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 부르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다시 묻습니다.

그러나 군중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칩니다. 마가복음에서 처음으로 십자가형이 언급되고 있고, 예수님의 구체적인 처형 방법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청중 가운데는 예수님에 대해서 호의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기에 이런 반응은 상당히 놀랍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무기력한 모습으로 산헤드린과 빌라도 앞에서 심문당하는 모습에 실망한 듯합니다. 갈릴리를 비롯한 유대 지역에서 보여주었던 예수님의 능력 있는 모습과 지금 예수님의 모습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제사장들에 의해서 선동되는 군중 심리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여하간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이에 빌라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힐 만한 어떤 심각한 악한 죄를 범했느냐고 다시 묻습니다. 이러한 마가의 기술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로마법에 따라 죄를 합법적으로 규정하지 못한 채 행해진 것임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군중심리에 선동된 무리는 더 소리 높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함칩니다. 빌라도의 소극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리의 목소리가 힘을 얻습니다. 그는 무리의 요구에 이끌려 정의보다는 정치적 판단을 내립니다. 무고하게 넘겨진 유대인 청년 한 명을 살리기보다는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을 만족시키는 편이 낫다고 정치적으로 판단합니다. 마가는 이 단락에서 예수님께서는 혐의점 없이 무고하게 처형이 결정되었다는 사실과 이것이 종교지도자들의 모의에 의한 것임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15장은 온통 불의한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의 음성들을 수 없고, 불법 재판은 우리의 마음마저 옥죌 정도로 조소와 시기, 거짓 고소와 모함으로 일사천리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재림하실 때 예수님을 모략한 이들이 심판대에 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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