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11-02)
고난을 자랑스럽게 자랑한 바울
고린도후서 11장 16-33절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의 자랑을 하는 바보가 되어보려니 이해해 달라고 합니다. 거짓 사도들처럼 자랑의 시늉을 내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못합니다. 곧장 자랑거리도 아닌 것을 자랑합니다. 이제 세상 보기에도 어리석은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는 우리의 자랑거리는 왜 진정한 자랑이 됩니까?
- 거짓 사도들과 대조되는 바울의 자랑거리를 소개하며 12:13까지 이어집니다. 본문 내용은 크게 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6-21절에서는 비록 어리석은 것이지만 자기자랑을 하겠다고 합니다. 거짓 사도들의 자랑을 독자가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2-33절에서는 바울의 자랑거리를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거짓 사도들에 비해 더 많이 수고한 것을 말하지만, 복음과 교회를 위해 받은 고난과 염려가 핵심입니다. 수치스럽게 박해를 피한 내용도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랑(16-21)
우리의 자랑은 주님 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어리석인 일인 줄 알면서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자랑은 주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자랑했습니다. 성도들을 향해 노심초사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마음이며 목자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16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17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18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19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20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21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16-21)
은혜 받은 사람은 자랑할 수 없다고 강조했던(고전 1:26-31) 바울이 자랑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일인 줄 알면서도 자랑하는 것은 자신을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복음을 들은 고린도 성도들이 흔들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이 자랑하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1) 육체에 따라 하는 자랑(16-18)
자랑에 대한 11:1-4 내용 중 바울 편에서의 이유를 제외한 두 가지를 재차 언급합니다. 그중 하나는 어리석은 자랑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자기를 어리석은 자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고는 혹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자신을 어리석은 자로 여기라고 합니다(16). 이상한 표현입니다. 몇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첫째, 사역자의 자기 자랑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바울이든 거짓 사도들이든, 그 내용이 인간적으로 놀랍고 화려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늘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자랑은 주님이 아닌(17) 육신을 따라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18). 둘째, 어리석은 자랑을 하겠다고 합니다. 자랑한다고 해서 마치 이 일이 어리석은 줄 모르고 하는 것처럼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16a). 그런 줄 알면서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리석은 것이기에 하려는 것입니다. 거짓 사도들처럼 어리석은 자가 되어 그들 방식으로 누가 진짜 사역자인지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마음껏 자랑할 수 있도록 자기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라고 말합니다(16b).
(2) 어리석은 자랑의 이유(18-20)
11:1-4 내용과 관련해 재차 설명하는 두 번째는 거짓 사도들을 잘 용납하고 있는 독자의 상태입니다. 바울이 다른 이들처럼 육신을 따라 자랑하려는 핵심 이유입니다(18). 이 부분은 11:4과 초점이 다릅니다.
앞부분이 예수와 복음과 성령이라는 진리 차원에 대해서라면, 이 부분은 독자에 대한 기짓 사도들의 태도에 집중합니다. 다섯 개 조건절로 묘사합니다. 거짓 사도들이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속임수로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독자 얼굴을 때려도 용납합니다(20).
바울의 태도와 많이 다릅니다. 바울은 독자 위에 군림하거나 그들의 믿음을 주관하지 않았고(1:26), 오히려 종처럼 섬겼습니다(4:5). 복음을 이익을 위한 통로로 사용하지 않았고(2:17), 빼앗는 대신 무보수로 사역했습니다(11:7-9). 고린도 성도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두 번째 방문 이후 여행 계획을 변경해서라도 상처주지 않으려 했습니다(1:23). 또한 세 번째 편지를 쓸 때도 혹시 독자의 마음이 아플까 봐 많은 걱정과 눈물로 썼습니다(2:4). 모두 그들을 위해서 한 것입니다. 그런데 독자들은 누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지혜 있고 신령한 사람이라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참 사역자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19).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관점 대신 인간적 조건을 앞세운 경쟁과 성취를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거짓 사도들처럼 독자를 대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부끄럽게도 그들이 비웃은 것처럼 자신은 너무 연약해서 독자들을 착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21). 자신에 대한 그들의 조롱으로 그들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대신 바울은 어리석은 자랑에 대해서는 담대히 하겠다고 합니다.
바울의 자랑거리(22-33)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십니다. 수많은 위험과 억울한 오해와 온갖 역경 속에서도 바울의 생명을 지켜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약한 성도들을 사용하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교회를 든든히 세우셨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처한 상황과 형편, 자신이 가진 자원과 능력이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를 지키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힘을 내시길 바랍니다.
22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23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30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32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33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22-33)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주의 나라를 위해 일함 헌신적인 열심과 그 과정에서 있었던 고난을 열거합니다. 좋은 소식은 전하는 것이 악의 세력들에게는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가두기도 하고, 때리며 위협하기 하고, 심지어는 죽여서 제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1) 바울의 자랑거리 1: 유대교 유산에 대해(22)
자랑의 구체적 내용이 시작됩니다. 질문 형식으로 거짓 사도들의 자랑을 하나씩 반박하며 자기자랑을 소개합니다. 첫 영역은 유대교 유산에 대해서입니다. 그들은 유대인으로서의 자랑을 비유대인 독자들에게 늘어놓은 듯합니다. 히브리인이요 이스라엘 사람이자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그들의 자랑에 대해 바울도 그렇다고 말합니다.
빌립보서 3:4-6에서 말한 교회를 어지럽힐 수 있는 유대교 대적자들과의 비교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 둘은 두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첫째, 빌립보서와 달리 유대교에 있을 때의 더 나은 모습, 곧 베냐민 지파이고 탁월한 바리새인이었음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둘째, 빌립보서에서는 유대교 유산에 대해 바울이 훨씬 낫다는 말을 하지만, 여기서는 단지 ‘나도 그렇다’고 말할 뿐입니다. 이 차이는 거짓 사도들의 강조점을 추론하게 합니다. 그들은 유대인임을 자랑했지만, 빌립보서의 경우와 달리 유대교 유산 자체에 집중하지 않은 듯합니다. 핵심은 유대인으로서 메시아의 일꾼, 곧 사도 사역에 대한 자랑입니다. 바울이 더 긴 지면을 할애해 비판한 것(23-30)과 그들과의 비교우위를 표현한 것(23)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바울의 자랑거리 2: 메시아 일꾼으로서의 사역(23-29)
거짓 사도들의 자랑의 두 번째 영역에 대한 반박입니다. 메시아의 일꾼에 대해서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스스로를 메시아의 사역자라고 칭하는 것에 황당해 합니다. 심지어 자기가 그들의 표현을 인용한 것을 정신 나간 말을 하는 것으로 묘사합니다(23). 그들은 절대로 그런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반박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은 그들에 비해 훨씬 뛰어난 사역자이며 더 열심히 일했다고 말하고 자기 자랑을 길게 나열합니다. 그들보다 감옥에 더 많이 갇혔고 매도 더 많이 맞았고 죽을 뻔한 일도 더 많았습니다(23). 구체적으로 유대인에게 서른아홉 대의 매를 다섯 번 맞고, 태장을 세 번 맞고, 한 번 돌로 맞아죽을 뻔했고, 세 번 파선했고, 하루 밤낮을 바다 위에서 떠다녔습니다(24-25). 사역 과정에서 많은 위험들이 있었고(26), 수고하고 애쓰면서 많이 자지 못했고 목마름과 추위와 굶주림을 겼었던 적이 많았습니다(27).
그런데 자랑하는 내용이 이상합니다. 무용담처럼 고생한 것뿐입니다. 거짓 사도들의 자랑이 이런 식이었을지 모릅니다. 나름 겪었던 어려움을 부풀려 자기들이 얼마나 수고했는지 자랑했을지 모릅니다. 바울은 그들보다 더 많이 수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자랑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주의 도우심에 대한 내용과 사역의 성공담입니다. 거짓 사도들은 이런 것들에 집중해 자기자랑을 끌고 갔을 것입니다. 주의 도우심을 통해 은혜 받을 자격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고, 성공담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과 달랐습니다. 주의 도우심을 언급하지 않았고, 설사 그것을 말해도 하나님께 초점 두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1:9; 12;1-5). 자기가 사역한 교회가 문제없이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28-29). 약함과 어려움이 있고 실족함도 있다고 합니다. 사역을 잘못해서 교회에 문제가 많은 듯 들릴 수 있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교회를 위해 많이 염려하고 있음을 자랑합니다. 바울은 긍정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방식의 질문들로 교회를 향한 자기 마음을 증거합니다(30). 이미 독자들도 바울의 마음을 알고 있음을 인정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교회를 이익 수단으로 여기는 자들(20)과 완전히 다릅니다.
(3) 바울의 자랑거리 3: 수치스러운 탈출(30-33)
어리석고 이상한 자랑이 계속됩니다. 거짓 사도들과 같은 장점과 성공 사례 대신 수치스러운 실패담이 이어집니다. 첫 사례는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사람을 피해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내려가 도망친 사건입니다. 주후 37/38(혹은 33/34)년의 일입니다. 이 사건도 뒤집어 보면 바울의 사역에 대한 긍정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레다 왕이 다스리던 아라비아(나바티안 왕국)에서의 3년 사역이 성공적이어서 왕이 직접 다메섹까지 사람을 보내 바울을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내용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막힌 도우심이라고 표현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실패자처럼 수치스럽게 도망친 것만 이야기합니다. 오직 약한 것을 자랑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초점 맞추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자랑은 마치 취업문을 계속 두드렸지만 여전히 원서를 내야 하는 취업준비생의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과정은 하나님 앞에서 성실했지만 결과가 없기에 간증의 자격조차 없는 자로 취급받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그랬는데, 요즘 교회는 실패를 말하는 바울을 좋아할까 아니면 믿음의 성공을 말하는 거짓 사도를 좋아하겠습니까?
우리에게도 수고의 목록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것은 아주 아름다운 일이고 모두가 동참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랑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 수고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꼐서는 신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처럼 우리의 약함을 자랑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아니라 그 충성된 수고를 가능케 하신 하나님만이, 그분의 능력과 자비와 오래 참으심만이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 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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