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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10-01)


거짓 사도들에게 대한 경고

고린도후서 10장 1-18절


 

그리스도인은 늘 웃고 양보하고 이해하고 화낼 줄도 모르고 그래서 늘 손해 보는 사람의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속지 말라. 그 반대 이미지도 천지입니다.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분노하고 대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합니까?

 

  • 연보에 대한 설명 이후 10장부터 주제와 분위기가 바뀝니다. 바울을 대적하는 거짓 사도들과 그들 영향에 흔들리는 교회 문제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시작 부분입니다. 내용은 크게 둘로 구분됩니다. 첫째, 1-11절은 바울을 폄하하는 거짓 사도들에게 경고하고 그들을 따르지 말라고 독자들에게 권합니다. 둘째, 12-18절은 거짓 사도들과 바울을 비교하여 누가 참된 사도인지를 설명합니다.

 

연보 참여를 독려(1-11)

좋은 리더는 굳은 확신을 가지면서도 온유함으로 성도를 권면합니다. 고린도 교회 일부 거짓 사도들은 바울을 평가하기를,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온갖 뒷말을 하면서도 직접 대면하여서는 어떤 말도 못하는 비겁한 사람이라고 치부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을 헐뜯는 사람들은 매섭게 대할 것이지만, 사랑하는 성도들에게까지 그렇게 하지 않도록 돌이키라고 경고합니다.

 

1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2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3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4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7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8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9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 같이 생각하지 않게 함이라 10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11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것과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일이 같은 것임을 알지라(1-11)

 

고린도 교회를 설립한 후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동안, 고린도 교회에는 여러 당파로 갈려져 분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바울의 사도권을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배후에는 거짓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남아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서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독자를 향한 바울의 엄중한 권면(1-2)

 

바울은 주제와 논조를 바꾸어 말을 이어갑니다. 사역 변호와 연보는 부드럽게 기술했지만, 이 부분부터는 다소 거친 논조로 비판과 책망을 사용합니다. 교회가 거짓 사도들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1-2절은 시작 부분입니다. 상황의 심각성과 바울의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상황에 대해서는 바울과 고린도 성도와 거짓 사도들 세 그룹이 언급됩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과 떨어져 있습니다. 거짓 사도들은 고린도 성도와 함께 있고 바울 일행을 육체를 따라 행하는 자들이라고 폄하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거짓 사도들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바울의 경고는 독자와 대면하면 무력하지만 떨어져 있을 때는 담대하다는 평가를 중심으로 진행합니다. 거짓 사도들이 바울을 조롱하는 표현인 듯합니다(10). 바울은 ‘대면 무력함/떨어져 있음 담대함’이라는 그들 표현을 역으로 사용합니다. 떨어져 있는 지금은 담대함 대신 메시아의 온유와 관용으로 권하지만(1), 장차 교회를 방문해 대면할 때는 무력함 대신 거짓 사도들에게 담대히 대하듯 독자를 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권면하다’와 ‘간구하다’ 동사를 사용하지만, 그 내용은 명령 이상의 경고입니다. 계속 거짓 사도들의 영향을 따르면 바울에 대한 그들의 평가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몸소 알려주겠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2) 바울이 싸우는 방법(3-6)

 

어떤 관점으로 상황을 보고 어떻게 대할지를 설명합니다. 거짓 사도들 문제는 단순히 사람과의 다툼이 아닙니다. 이 세상 신(4:4)이 통치하는 어둠의 영역과의 전쟁입니다(3-4a; 참조. 6:14-7:1). 그렇기에 육신의 몸을 갖고 있지만 세상 방법으로 싸우지 않습니다(3). 인간적 논리나 힘 같은 것으로는 승산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의 군사로서 그분의 능력을 무기 삼아 전투에 임해야 합니다. 어둠의 영역에 속한 견고한 진들을 파괴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4b-6절은 그 능력이 실제로 어떻게 일하는지를 설명하고 고린도 성도의 상황과 연결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분의 지식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들을 무너뜨리고, 마치 전쟁 포로를 사로잡아 왕이나 총사령관에게 무릎 꿇리듯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메시아에게 복종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그 능력은 거짓 사도들의 모든 헛된 생각과 이론을 완전히 깨고 승리할 것이며 그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독자들이 거짓 사도들의 영향력에서 돌아오면 거짓 사도들만 심판 받고, 그러지 않으면 그들과 함께 심판 받을 것입니다. 상당히 심각한 경고입니다. 바울의 이런 말은 교회의 현 상황에 대해 세 가지를 전달합니다. 첫째, 자신의 경고는 개인적 감정이나 다툼의 문제가 아니라 어둠의 영역과의 전쟁 수행임을 알립니다. 둘째, 그 전쟁의 핵심은 사고와 생각과 관련한 진리 차원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렇기에 독자의 순종은 단순히 거짓 사도들 혹은 바울이란 사람을 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와 비진리 가운데 어느 쪽에 설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셋째, 그들에게 붙어 함께 멸망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3) 거짓 사도들 문제에 대한 독자들의 바른 판단 촉구(7-11)

 

본격적으로 사도권을 자랑(변호)하기에 앞서 독자들의 바른 판단을 주문합니다. 눈에 보이는 분명한 증거들로 판단하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자기가 메시아에게 속한 줄로 확신한다면, ‘우리’도 그렇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기를 바랍니다(7). 거짓 사도들의 자랑에 대한 응답으로 12절부터 제시할 바울의 자랑과 관련 있습니다. 그들은 추천서를 포함한 여러 인간적 조건을 자랑하여 참 사도라고 주장하고 바울의 권위를 폄하합니다. 문제는 독자들이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독자들에게 바르게 판단하라고 명령합니다. 더 나아가 그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 자기에게 주신 권세, 곧 교회를 세우는 사도의 권세를 과하게 자랑할 것이라고 말합니다(8). 그리고 자신의 자랑을 그저 편지로 위협하는 정도의 것으로 치부하지 말라고 덧붙입니다. 편지는 강하지만 막상 만나면 약하고 말도 형편없다는 거짓 사도들의 비방 때문입니다(10). 바울은 경고합니다. 떨어져 편지 쓰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행하는 사람은 동일인입니다! 똑같이 강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거짓 사도들과 독자 모두가 들어야 합니다. 바울의 자랑은 상황을 심각한 것으로 보는 바울의 1차적 처방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해결이 안 되면 대면해서 해결하게 될 것입니다.

 

자랑과 관련한 바울과 거짓 사도들과의 대조(12-18)

사람의 평가를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오직 그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인가?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잘못된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해서 오해를 낳고 있지는 않습니까! 일부 거짓 사도들은 바울의 권위를 떨어뜨리기 위해 신비적인 체험, 혈통적 우월, 세상 학문을 자랑하며 바울을 비하했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바울은 자기 자랑만 일삼는 사람들과 대조하여 권고합니다.

 

12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13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4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5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자랄수록 우리의 규범을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라노라 16이는 남의 규범으로 이루어 놓은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역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17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18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12-18)

 

바울은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옳다 하는 자들과 같은 부류에 들거나 견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성도는 자신을 판단하는 궁극적인 기준과 판단하시는 분이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1) 거짓 사도들의 자랑(12)

 

거짓 사도들의 자랑에 대한 바울의 응답이 시작됩니다. 거짓 사도들은 바울을 업신여기면서 자신들은 바울보다 더 위대한 자라고 스스로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칭찬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자기 자랑에 불과할 뿐입니다.

바울은 ‘우리는 감히 그들과 비교할 수 없다’고, 그들과 동급으로 놓거나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얼핏 보면 자신을 수준 낮은 자로 묘사한 듯하지만, 이는 그들의 오만함과 뻔뻔함을 극적으로 들어내는 반어적 표현입니다. 그들과 격이 다르다는 것을 비웃듯 강조합니다. 그들은 자기 기준으로 자기를 재고 자기와 비교하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12).

 

(2) 바울의 자랑(13-16)

 

바울은 자신의 한도 이상으로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영역의 범위를 따라 자랑한다고 합니다(13).

바울이 거짓 사도들과 대조하는 것 같은데, 대조점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몇 가지 설명이 필요합니다. 첫째, ‘카논’의 이해입니다. 원문은 바울이 ‘카논’의 범위를 따라 자랑한다고 표현합니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규범이나 기준의 의미를 갖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최근에 발견된 문헌 용법에 의하면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본문은 후자의 의미입니다. 즉, 바울은 하나님께서 나눠주신 영향력 범위에 따라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개역개정이 15절과 16절에서 카논을 ‘규범’이라고 번역한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새번역이나 공동번역처럼 활동 범위 또는 지역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재거나 측량하는 것과 관련한 용어 사용입니다. 시편 16:6에서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 준 구역을 기업으로 말한 것처럼, 이런 측량의 모습은 영향력의 범위와 하나님과의 관련성을 전달합니다. 거짓 사도들은 스스로를 기준 삼아 헤아리지만, 바울은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범위로 합니다. 기준점과 적용이 다릅니다. 이 두 요소를 종합하면 거짓 사도들의 문제는 단순히 스스로를 높이는 교만이나 걸게 없는 자랑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자랑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분량 안에서만 자랑하지만, 거짓 사도들의 자기 자랑은 한계를 모르는 과도한 자기 자랑이라고 비판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영향력 범위에 자기 기준으로 들어와 영향력을 미치고, 그것으로 스스로를 자랑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범위 중 하나가 독자들, 즉 고린도 교회입니다(13). 그렇기에 그들은 바울이 세우고 수고한 교회에 하나님의 부르심이나 복음과 상관없는 다른 영향력을 끼치고, 마치 훌륭한 일을 한 양 스스로를 자랑하고 있습니다(15-16). 숟가락 얹기를 넘어 도둑질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 함부로 범위를 넘어 독자에게 간 것이 아닙니다. 새 언약 사역자로서 복음을 가지고 갔습니다. 또한 당시 고린도 성도들은 다른 사역자의 영향권 안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고린도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자랑은 다른 교인을 빼앗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복음으로 세운 고린도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계속 성장하고 거짓 사도들 대신 바울의 영향력이 그들 안에서 더 커지게 하려는 소망의 표현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다른 이들이 사역한 곳에 가서 자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으로 가서 복음 사역이 확장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이런 대조는 참 사역자 바울의 몇 가지 사역 원리를 보여줍니다. 첫째, 하나님의 부르심과 소명을 따라 사역합니다. 둘째, 복음과 바른 진리를 증거하고 사람들을 이익의 통로로 여기지 않습니다. 셋째, 교인 뺏기는 없습니다.

 

(3) 하나님 앞에서의 참 자랑(17-18)

 

바울은 마지막으로 앞 내용을 짧게 부연 설명합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해야 하고, 그분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진짜입니다. ‘주 안에서’는 ‘주께서 정해주신 한계 안에서’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자랑은 자신의 업적이나 위대함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신 사역을 잘 감당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께서 우리를 칭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거짓 사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정통성도 없고 그분이 인정하는 결과도 없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잘 분별해야 합니다. 거짓 사도들 같은 엉터리 사역자도 문제지만, 분별력 없는 무지한 성도들도 문제입니다.


바울은 본질을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달리 행동하면서도 일관성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상대가 눈에 보이는 대적자들이나 반대하는 성도들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근본적으로 영적인 싸움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상대할 수 있는 싸움이며, 주 안에서 이긴 싸움임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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