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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08-01)


마게도냐 교회의 모범된 연보

고린도후서 8장 1-15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장 큰 특징은 나눔입니다. 지체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자신이 그 나눔에 의해 살고 있다고 믿기에 가능합니다. 바울은 오늘 고린도 교회에 모범이 되는 교회와 또 친히 모범이 되어주신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 바울의 사역 변호 주제를 마치고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에 대해 다룹니다. 9:15까지 이어지며, 이 부분은 첫 부분입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1-6절에서 연보와 관련해 마게도냐 교회들의 상황을 소개하고 고린도교회에 디도를 보낸다고 말합니다. 둘째, 7-15절은 연보에 대해 고린도 교회의 참여를 독려합니다. 메시아의 은혜에 근거해 섬기는 일에 동참하기를 권하며, 섬김의 방법과 함께 섬김의 의미도 설명합니다.

 

예루살렘을 위한 연보와 디도 파송(1-6)

하나님께 드리는 연보(헌금)는 전적으로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즉 그들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과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시기까지 죄인들을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낌없이 드리는 것입니다. 마게도냐의 모범적인 연보는 고린도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귀한 교훈을 줍니다.

 

1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6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1-6)

 

지금까지 바울은 자신과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사이에 야기된 오해를 풀기 위해, 자신의 사도로서의 직분과 사역 자세에 대해 변호하며 그에 근거해 관용과 화해를 호소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바울은 8-9장에서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기근과 핍박으로 말미암아 시달린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구제에 동참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1) 마게도냐 교회들의 섬김(1-5)

 

바울은 이제 연보의 주제로 전환합니다. 연보와 관련한 마게도냐 교회의 상황으로 운을 뗍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혜를 독자에게 알려준다고 합니다. 많은 환난을 통한 검증 과정 속에서도 그들은 기쁨이 풍성하였고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관대함을 더 풍성하게 했습니다(2).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은혜의 본질은 축적이 아닌 나눔입니다. 자기에게 긍정적 상황과 결과가 임하는 것만을 은혜로 생각하는 일반 통념과 반대입니다. 둘째, 교회들의 상황이 녹록치 않습니다. 많은 환난과 극심한 가난이 있었습니다. 다른 교회를 신경 쓸 마음과 물질적 여유가 없을 수 있는 환경입니다. 셋째, 교회들의 태도가 귀합니다. 많은 환난에도 넘치는 기쁨이 있고 극심한 가난이 성도를 향한 관대함을 더 넓게 했습니다.

3-6절을 통해 마게도냐 교회의 모습을 부연합니다. ‘내가 증언한다’ 표현을 통해 그들 모습의 참됨을 강조하며 몇 가지 특징을 더 소개합니다. 첫째, 기쁨에 근거한 자발적 참여입니다. 강요나 억지가 아닙니다. 그들이 먼저 자원함으로(아우타이레토이) 동참하게 해달라고 많이 요청했습니다(3-4). 물론 바울도 원하기는 했지만, 바울은 그들이먼저 했다고 말합니다(5). 둘째, 동참의 의미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돈을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를 위한 섬김의 교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4). 바울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며, 근본적으로 주님께 자신을 드리는 헌신입니다(5). 셋째, 정성스럽게 참여합니다. 가난한 상황이었지만 능력에 따라, 아니 능력 이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3). 이런 특징을 가진 마게도냐 교회들의 헌신은 연보와 관련해 좋은 자극제가 된 듯합니다.

 

(2) 연보를 위해 다도를 보냄(6)

 

바울이 디도를 통해 고린도 교회에 연보의 일 시작한 것을 완성하도록 권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성도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연보 참여 독려(7-15)

우리의 나눔은 자신의 것으로 나눈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나눈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구제 연보는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제하고도 생색내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누라는 마음을 주셨을 때는 우리 쓸 것은 공급하시겠다는 약속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일용한 양식으로 공급해 주셨듯이, 오늘도 나눔을 실천하는 성도들의 삶에도 분명히 채우실 것입니다.

 

7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8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9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10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11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12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13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14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15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7-15)

 

바울은 환난과 극한 가난 중에도 풍성한 구제 연보를 한 마게도냐 지방 교회들의 모범을 제시함으로 고린도 교회로 하여금 동참하도록 권했습니다. 본문에서는 그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구제 연보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1) 교회의 동참 권면(7)

 

마게도냐 교회들 상황과 연결해 고린도 교회에게 동참을 권면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물질적으로 동참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제시하는 마게도냐 교회들과 고린도 교회와의 연결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받는 것만 아니라, 나눔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은혜가 고린도교회에도 넘치기를 바랍니다. 사실 독자들은 여러 면에서 풍성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믿음의 말과 지식과 간절한 열망과 바울로 인한 독자들의 사랑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이미 두 번째 편지에서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한 내용이었고(고전 1:4-7), 세 번째 편지를 통해 바울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을 전제로 합니다. 환난과 가난 속에 있는 마게도냐 교회들과 상황이 다릅니다. 그들에 비해 나눔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요건이 더 많고 준비도 되어 있기에 이제는 적극적으로 그 은혜에 참여하라는 말입니다.

 

(2) 부연설명1: 연보의 모본은 예수다(8-9)

 

왜 동참해야 하는지를 부연합니다. 바울은 먼저 자신의 권면이 강압적 명령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사도로서 믿음을 주관하는 대신, 독자들의 자발성과 책임 있는 결정을 위해 제안한다는 말입니다(참조. 1:24).

바울이 권면하는 첫째 이유는 연보가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통해 고린도 성도들이 사랑을 진실하게 표현하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8). ‘다른 이들의 간절함’이란 마게도냐 교회들의 열망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상황을 언급한 것은 고린도 교회와 경쟁시켜 동참을 이끌어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어려운 환경에 있는 마게도냐 교회의 헌신이 고린도 교회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어 멈추어 있는 연보 사역, 곧 성도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10)을 이제 다시 진행하라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마게도냐 교회들의 헌신은 1년 전 고린도 교회의 열심에 기인하였습니다(9:2).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고린도 교회가 마게도냐 교회들에게서 자극 받아야 했습니다. 한편, 독자들이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 근본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입니다(9). 그분은 온 땅의 주인이요 부요한 자이지만, 독자인 ‘너희’를 위해 이 땅에 가난한 자로 오셨습니다. 능력과 정체성 대신 부와 가난을 대조하여 예수의 사역을 표현합니다. 여러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1)처럼 예수님의 은혜도 움켜쥠이 아닌 나눔임을 드러내고, 그 수혜자가 독자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마게도냐 교회들은 그 예수를 따르고 있으며 독자 역시 예수의 은혜에 반응해야 한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더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그들도 예수처럼 가난하게 되라는 것입니다.

 

(3) 부연설명2: 계획대로 이행하라(10-12)

 

동참을 권면하는 또 다른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미 고린도 교회가 계획한 것이니 이행하라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도 명령이란 단어 대신 의견을 뜻하는 ‘그노메’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8절처럼 독자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기 위함입니다. 더 나아가 ‘이것이 독자에게 유익하다’는 말을 첨가하여 그들의 연보가 손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하는 것임을 부연합니다(10). 바울에 의하면 독자들은 이 편지 쓰기 1년 전에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 행하기를 원했었습니다(참조. 9:2). 하지만 바울과의 갈등으로 진척되지 못했는데, 이제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그들이 원하고 행하던 것을 끝까지 수행하라고 권한 것입니다(11). 하지만 참여 과정에 원칙이 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에 따라, 즉 형편에 따라 능력껏 해야 합니다(12).

 

(4) 부연설명3 : 연보의 목적은 균등하게 함이다(13-16)

 

바울은 계속적으로 연보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다른 사람을 평안하게 하고 고린도 성도에게는 환난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나눔을 통해 균등하게 하려는 것입니다(13). 독자들의 여유분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부족함을 채우고, 또 상황이 바뀌어서 독자들이 어렵고 다른 교회들 형편이 괜찮아지면 독자들이 도움 받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14).

바울은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았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았던 만나에 대한 출애굽기 16:18을 인용해 그 원리를 부연합니다(15). 몇 가지 생각 거리가 있습니다. 첫째, 소유의 불균형은 불가피합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있다는 말씀(요 12:8)처럼 죄로 망가진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둘째, 만나의 의미입니다. 세상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주의 재림으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 전의 모든 방법은 한시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회복을 맛보는 방법은 여럿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만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부와 가난의 문제를 경험했지만, 광야에서는 달랐습니다. 세상 관점에서 부유하지는 않았어도 부와 가난의 문제로 고통을 겪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필요한 만큼 만나를 먹었습니다. 축적을 통한 빈부 차이도 없었고 소유를 통한 높낮이도 없었습니다. 한시적이기는 했지만, 소유의 불균형 문제를 완전히 잊게 하였습니다. 셋째, 성도의 나눔은 망가진 세상 구조에 대한 훌륭한 대안입니다. 자기에만 집중하는 죄의 삶과 구별되며, 독식과 움켜쥠의 세상 문화에 대한 저항입니다. 망가진 세상을 완전히 치유할 수는 없지만, 만나를 통한 하나님의 일하심처럼 사람을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는 귀한 표현 중 하나입니다. 넷째, 교회가 헌신하는 모습입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여유가 있어 나눈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을 표현했기에 더 귀합니다. 고린도 교회도 쉬운 상황은 아닙니다. 심한 기근의 여파에서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연보에 참여하는 것은 더욱 귀한 것이고 은혜를 나누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나눔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나눔에 근거합니다. 나눌 마음과 함께 나눌 것을 함께 주시는 하나님의 공급하심 때문에 가능합니다. 아무도 그 나눔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고, 자기 영광의 근거로 삼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통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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