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06-01)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신 하나님
고린도후서 6장 1절- 7장 1절
은혜는 성도의 존재 기반이며, 이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살게 하는 원동력이 있습니다. 바울은 은혜가 헛되지 않게, 은혜의 직책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전합니다. 대가를 치러야 할 일이지만, 대가를 치를 만한 일이었다고...
- 5:20-21과 연결해 화목 사역자로서 독자를 권면합니다. 이전 설명의 요약과 적용입니다. 네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첫째, 1-2절은 독자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둘째, 3-10절은 바울의 사역 변호를 다시 언급합니다. 앞부분 내용의 재진술입니다. 셋째, 11-13절에서 사역 변호에 근거해 자신을 영접하라고 독자에게 요청합니다. 넷째 14-7:1에서 믿지 않는 자와 함께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해야 할 구체적 적용의 하나다.
권면 2: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지 말라(1-2)
우리가 주의 일꾼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은 목사 안수증이나 어떤 학위가 아닙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자신의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이라 말한 바 있습니다(살전 2:19). 이처럼 우리가 전한 복음을 듣고 거듭난 영혼들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친필로 만들어 주신 자격증이요 추천서입니다.
1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바라(1-2)
앞부분인 고린도후서 5:20-21에 이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화목 사역자로서 두 번째 권면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복음을 믿고 구원을 얻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의 복음 증거로 현재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무위로 만들지 말라는 말입니다. 역시 거짓 사도들의 영향을 염두에 둔 듯합니다.
곧이어 이사야 49:8 인용과 그에 대한 설명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부연합니다(2). 진지하게 권면하고 ‘지금’이라는 때를 강조한 것을 보면, ‘그 때’ 있을 주의 엄위한 심판을 구체적으로 언급해서 독자에게 경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참조. 5:10).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자비를 부각하며 반응을 요구합니다. 일부 불순종하는 자들과 거짓 사도들의 영향을 경고하고 있지만, 바울에게 돌아온 교회에 대해 감사하고 그들을 향한 온유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사역 변호(3-10)
속담에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는 말이 있습니다. 믿을만한 사람에게 배신당한 것을 말합입니다. 사람은 믿는 대상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이라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고린도 교회를 개척했고 성장시켰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울은 불신한 것입니다.
3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4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6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8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3-10)
새 언약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과의 화해를 거부하고,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함께 메는 것은 은혜를 ‘헛되게’ 하는 일입니다. 은혜로 자녀 삼으신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하찮게 여기는 일입니다.
(1) 바울의 사역 변호(3-4a)
바울의 사역 변호가 다시 이어집니다. 이전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으로 독자의 반응을 유도합니다. 자신의 사역이 비난받지 않게 하기 위해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을 아무에게도 준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3). 여기에는 장사꾼처럼 복음을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은 진리의 차원(1:17)과 무보수로 고린도 교회를 섬긴 사역자로서의 삶의 차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11:8-9). 바울은 모든 일에 대해 하나님의 사역자들처럼 자신을 추천한다고 합니다(4a).
앞에서 자신의 사역 변호를 자천이 아니라고 말한 것(5:12)과 비교하면 일관성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사역 변호는 철저히 거짓 사도들 영향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들처럼 인간적 조건들로 자신을 과시하지 않겠다는 말이며, 참 사역자의 특징이 무엇인지 고린도 성도들에게 바르게 인식시키려는 의도로 이해해야 합니다.
(2) 구체적 예들(4b-10)
4a절에서 말한 ‘모든 일’의 구체적 내용을 소개합니다. 먼저 언급하는 것은 사역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입니다(4b-5).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입니다. 편지 첫 부분(1:3-11)과 4:7-9에서 말한 내용과 잇닿아 있습니다(참조. 고전 4:9-13). 이 상황 속에서 바울이 취한 태도는 정결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좌우에 의의 무기를 통해서 사역했고 영광과 욕됨이나 악한 폄훼와 선한 칭찬을 함께 받으며 사역했습니다(6-8a).
그럼에도 세상에서는 속이는 자와 이름 없는 자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또한 죽은 자들, 징계 받는 자들, 근심하는 자들,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는 다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참된 자고 그분이 인정하는 자입니다. 그분 앞에서 살아있는 자고, 죽임 당하지 않으며, 항상 기뻐하고 많은 사람을 진리로 부요케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입니다. 세상과 하나님의 관점을 대조함으로 누구에게 충성하는지를 핵심으로 한 표현입니다.
이런 바울의 삶은 세 가지 이유 때문에 가능합니다. 첫째, 하나님/예수의 사랑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의 소명과 독자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셋째, 미래 부활의 소망과 하나님께 받을 칭찬과 인정입니다. 이 땅에서 자기에게만 집중하는 거짓 사도들과 대조됩니다(참조. 10-13장).
권면 3 : 바울에게 마음을 열라(11-13)
복음은 우리 죄를 사하고 의롭게 하며,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그렇기에 새 언약의 복은 옛 언약인 율법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이는 성령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신 것이고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복음의 약속을 전하는 직분은 세상에 있는 어떤 직분보다 소중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11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12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13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11-13)
사역 변호의 목적을 소개합니다. 독자들이 바울을 더 받아들이기를 바라서입니다. 몇 가지 특징을 통해 전달합니다. 첫째, ‘고린도인들이여’라는 호격입니다. 여기서만 사용합니다. 독자의 집중을 유도합니다. 둘째, ‘우리’에서 ‘너희’로 연결되는 구조입니다. ‘우리’의 입과 마음이 독자인 ‘너희’를 향해 열려 있기에 고린도 성도도 바울에게 마음을 더 넓게 하라고 합니다. 사실, 교회의 문제는 바울 때문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를 통한 갈등이나 지금 교회에 존재하는 문제도 독자들이 바울에게 마음을 활짝 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2). 셋째, 독자를 복음으로 낳은 ‘자녀’ (참조. 고전 4:15)로 부릅니다. 그들과의 관계를 상기시켜 마음을 더 열어줄 것을 호소하는 표현입니다.
권면 4: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하지 말라(14-7:1)
결국 실패로 끝났으며 현재 정죄와 심판의 일을 하는 옛 언약(율법)의 사역을 감당하던 모세도 그 얼굴에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니 생명을 주며 성령께서 직접 효과를 창출해 내시는 새 언약의 사역을 감당하는 우리에게는 그 영광이 얼마나 찬란하겠습니까? 세상의 직업이나 업적이 진정한 영광이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사역을 하는 것이 최고의 자부심입니다.
14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7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7:1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14-7:1)
질그릇 속 보배처럼 성도의 삶은 세상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역설의 신비를 품고 살아갑니다. ‘존경과 비방, 영광과 욕됨’, 이런 역설적인 삶은 은혜가 머무는 조건이자, 은혜가 머물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5:14)이 바꾼 것은 삶의 목적만이 아닙니다.
(1)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14a)
주제가 사역 변호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로 전환됩니다.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메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내용 이해에 몇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첫째, 본문의 문맥적 연결입니다. 이 부분 주제는 믿지 않는 자와의 관계성인데, 앞뒤 문맥은 바울의 사역 변호입니다. 주제적 불연속성이 있어 보이기에 바울의 다른 편지를 삽입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이 현 문맥을 떠나 다른 곳에 기록된 사본이 없습니다, 믿지 않는 자의 정체입니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예수를 믿지 않는 자를 의미합니다. 세상에 있는 불신자를 의미할 수 있지만, 문맥을 고려하면 거짓 사도들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다른 예수를 전파하고 ‘다른’ 영과 복음을 전파하는 자로 묘사하고(11:4), 사탄의 일꾼이라고까지 말합니다(11:15). 진리와 상관없고, 세상 방식으로 일하는 자들이기에 믿지 않는 자라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셋째, 다른 멍에를 멘다는 말입니다. 멍에를 메는 것은 교제나 함께함을 상징합니다. 많은 경우 함께 일한다는 뜻으로 보고 불신자와 동업하지 말라는 식으로 적용합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두 요소를 고려하면 굳이 일과 연결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교제와 영향력의 차원에서 거짓 사도들과의 관계성을 끊으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부연 설명(14b-18)
불신자 같은 거짓 사도들과 왜 관계를 끊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다섯 가지 수사적 질문으로 시작합니다(14b-16). (1) 의와 불법, (2) 빛과 어둠, (3) 메시아와 벨리알, (4)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5)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떻게 일치하고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 하나님 나라와 반역의 통치 영역 간의 대조입니다. 이 둘이 양립할 수 없는 핵심 이유는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16b; 고전 3:16). 새 언약 약속(겔 36:27-28)의 성취, 곧 예수를 통해 하나님 나라로 옮겨와 그분과 새로운 언약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구약을 인용하여 독자의 상태와 명령의 근거에 대해 부연 설명합니다. 독자 상태에 대한 것은 모두 새 언약을 담고 있는 본문들입니다(16, 17b-18). 하나님께서 백성 중에 함께하시고 ‘하나님 백성’ 관계(32:38; 겔 37:27)를 만들고, 그들을 영접해(20:34, 41) 아버지-자녀 관계(호 1:10)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그 약속의 성취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의무에 대해서는 이사야 52:11을 통해 언약 백성이 부정한 것에서 떠날 것을 말합니다(17a). 새 언약이 성취되었기에 의무와 관련한 말씀도 따라야 함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3) 결론적 권면(7:1)
그 의무는 7:1에서 결론 내용으로 제시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고 합니다. 신자의 거룩한 삶이라는 넓은 범위의적용이 가능하지만, 본문의 초점은 참 사역자와 거짓사역자를 분별해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편지들입니다. 주변사람들에게 편지로서 그리스도를 소개시켜주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의 변화된 모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알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당신을 살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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