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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05-02)

 


하나님과 화목을 위한 메시아처럼

고린도후서 5장 11-21절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의 관계’ 때문에 이 바뀐 사람입니다. 바울의 생애를 바꾼 것도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다시 살아났고 이제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리스도와 성도들을 위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 사역에 수반된 고난과 부활 소망 설명(4:7-5:10)을 마치고, 사역 자체에 대한 변호를 이어갑니다.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직분에 대한 변호입니다. 내용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1-15절에서는 바울의 사역 동기가 메시아의 사랑에 근거해 독자들을 사랑하는 것임을 역설합니다. 16-21절은 메시아를 통한 하나님의 화목 사역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그것에 근거해 독자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할 것을 권한다.

 

고린도 성도를 향한 바울의 사역 동기 변호(11-15)

하나님께서는 완벽하시고 모든 사람의 모든 행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앞에서의 모든 행실을 바르게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 때문에 매사를 바르게 행할 때는 그로 인해 염려하거나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당부하기를 자기를 스스로 자기자랑을 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11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12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11-15)

 

바울은 자신이 심판대 앞에 설 사람임을 기억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마음이 성도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그는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간적인 자랑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짓 사도들이 즌 기회입니다. 하지만 이 자랑 또한 성도들을 위한 것입니다. 바울이 미쳤다는 비난이 사실일지라도 그것 또한 성도들을 위한 미침입니다.

 

(1) 독자를 향한 바울 사역의 진정성 변호(11-13)

 

다시 바울의 사역 변호가 진행됩니다. ‘주의 두려우심을 알기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11). 10절에 언급한 마지막 심판을 전제한 것입니다. 이 표현으로 시작한 것은 바울의 사역을 독자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입니다.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평가자 하나님 앞에서 알려지고 인정받은 사역자이기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 양심에도 알려져 인정을 받고 싶었습니다(11). 복음으로 교회를 세웠으니 독자들에게 인정받거나 자천할 필요가 없었습니다(3:1). 그런데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거짓 사도들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사역 내용의 진정성이나 방법의 적절성은 중요치 않습니다. 인간적 조건들로 환심을 사면 그만입니다(12). 그들이 교회를 흔들고 자신을 폄하하기에(13: 미쳤다) 바울은 응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2절에서 사역 변호가 계속됩니다. 자기를 비롯한 동역자들의 진정성을 변호하면서도 거짓 사도들처럼 자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대신 독자들에게 ‘우리’를 자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거짓 사도들에게 응답할 거리를 갖게 한다고 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거짓 사도들에 대해 바울을 인정할 거리를 주는 것도 사실이고, 독자 스스로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사실입니다. 바울이 자천하고 있지 않다는 말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이미 새 언약 사역 내용(3장)과 사역 과정의 어려움에 대한 응답(4장)을 통해 자신이 참 사역자임을 증명해왔기 때문입니다. 자천입니다(4:2).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거짓 사도들과의 차별성을 만들기 위함인 듯합니다. 바울과 거짓 사도들 모두 사역을 하고 자천하지만, 바울의 목적은 다릅니다. 바울은 그들이 폄하하듯 미쳤든지 그렇지 않든지 오직 두 가지 목적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독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13). 참 사역자와 거짓 사역자를 가르는 중요한 구분점 중 하나입니다.

 

(2) 바울 사역의 근간인 메시아의 사랑(14-15)

 

왜 하나님과 독자들을 위해 사역하는지를 추가로 설명합니다. 메시아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바울을 강권하였습니다. ‘강권하다’(쉰에코)는 통제력을 행사한다는 말입니다. 그 만큼 메시아의 사랑이 강렬하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생각과 판단을 배제한 채 감정에만 치우치거나 비인격적 굴종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철저한 논리적 사고가 수반된 결과입니다. 판단과 결정을 의미하는 ‘크리노’ 동사의 분사 형태를 사용해 추가 설명하기 때문입니다(14).

바울의 생각과 판단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메시아 사역의 의미입니다(14).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해 죽었기에 모든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사야 53장처럼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방법으로 대신 죽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으로 그와 연합한 자는 예수 안에서 이미 하나님의 심판으로 함께 죽었고(롬 6:3), 어둠의 영역에 대해 죽었습니다(롬 5:6). 메시아와 연합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나고 세상의 통치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새 생명 얻은 자가 됩니다. 여기에는 바울과 독자도 포함됩니다. 둘째, 메시아 사역의 결과와 신자 삶과의 연결입니다(15).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었기에 그와 연합해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생명을 얻은 자들은 자기 대신 죽고 부활한 주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죄의 모습을 포기하고 삶의 우선순위를 바꿉니다. 죄의 핵심은 창조주 대신 자신을 왕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주님을 우선시하는 것은 죄와 반대로 사는 것이고, 피조물로서 자기를 사랑하신 분에 대한 합당한 반응입니다. 이런 면에서 바울이 독자들에게 하는 모든 사역과 행동은 메시아의 사랑으로 인한 구원과 그에 합당한 삶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여러 가치들을 분별하고 중요한 것에 집중한 결과입니다.

 

메시아를 통한 하나님의 화목 사역과 바울의 사역(16-21)

예수를 믿지 아니한 사람은 다시 살아날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에 자기의 인생을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우리의 죗값으로 자신 대신 주님께서 죽으셨음으로 이제부터는 나는 없는 것으로 하고 내 대신 죽으신 분을 위해 나머지 생애를 살아야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느냐는 말인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우리가 사나 죽으나, 먹으나 굶으나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사는 길임을 분명하게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16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16-21)

 

하나님의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한 화목의 사역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신 사건입니다. 우리를 화목의 사신으로 부르신 시간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먼저 다른 지체들과 화목하게 하고, 세상이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부르신 사건합니다. 평화를 심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처럼 평화를 심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입니다.

 

(1) 메시아를 통한 하나님의 화목 사역과 바울의 소명(16-19)

 

메시아의 사랑이 강권하는 것에 따라 주를 위해 살아가는 순종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그 한 모습은 이제부터 사람들을 육신을 따라 알지 않는 것입니다(16). 세상 대신 하나님 나라에 속한 관점으로 사람들을 대하겠다는 말입니다. 어둠의 영역에 대해 주와 함께 죽고 빛의 영역에서 다시 살게 되어 관점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도 이전에는 세상 관점으로 알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 새로운 관점은 누구든지 메시아 안, 곧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와 새 언약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실제로 그 안에 있는 자들을 이전과 다른 소속과 정체성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는 것입니다(17).

이 관점으로 사역하고 독자를 대하겠다는 말입니다. 한편, 메시아의 사랑의 강권에 순종하는 또 다른 모습은 바울에게 주신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이에 순종하는 모습은 20절에서 설명합니다. 그 전에 바울은 그 직분이 무엇인지 먼저 소개합니다(18-19).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그 사역과 관련한 모든 것의 기원은 하나님입니다(18). ‘모든 것들’과 기원을 의미하는 전치사(에크)와 하나님과의 연결을 통해 보여줍니다. 사역과 관련해 14-15절은 메시아 중심의 설명인 반면, 이 부분은 하나님 중심의 설명입니다. 둘째, 바울의 사역은 메시아를 통한 하나님의 화목 사역의 일부입니다. 화목 사역은 18절에서 소개되고 19절에서 부연됩니다. 두 설명을 정리하면 일련의 과정이 보입니다. (1) 시작은 하나님이 메시아를 통해 세상과 화목한 것입니다(19). 이 과정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21절 표현처럼 하나님이 죄를 알지 못하는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 저주와 심판을 받아 죽게 하셨습니다. 죄 용서의 문을 열었고, 하나님과 원수가 된 모든 사람들이 화평을 누릴 수 있는 길을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구원의 문과 길이 확실하다는 증거입니다. (2) 사람들에게 화목의 길을 전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구원의 길이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고 심판하지 않는 방법입니다(19). 사람들을 살리려는 하나님 마음의 표현입니다. (3) 하나님이 메시아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화목의 과정을 경험케 하신 것입니다(18). 21절 표현처럼 죄인인 ‘우리’가 메시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4) 화목의 말씀을 ‘우리’ 안에 두어 사역하게 하셨습니다(18). 예수님으로 인한 구원을 소개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연결되는 방법을 죄인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이런 설명에 의하면 바울의 사역은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자부심을 주고 독자들에게는 권위의 진정성을 주는 내용입니다.

 

(2) 권면 1: 하나님과 화목하라(20-21)

 

18-19절의 화목 사역과 연결해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편지의 첫 명령입니다. 얼핏 보기에 이 명령은 이미 하나님 백성이 된 독자에게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상당히 적절한 말입니다. 죄 사함과 하나님과의 관계 연결 과정, 곧 칭의는 일회성 차원이 있지만, 그 관계를 실제로 누리는 화목은 지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놓치지 말라는 명령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명령은 가볍지 않습니다. 명령 앞뒤로 진지한 내용이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 명령은 (1) 메시아를 대신해 화목의 사신이 되어 (2) 마치 하나님이 권면하시는 것처럼 (3) 메시아를 대신해 간청한다고 말합니다(20).

하나님/예수의 직접 명령 같은 엄숙한 무게감을 전달합니다. 이뿐 아니라 명령 뒤에 ‘우리’가 예수로 인해 얻은 구원을 첨가합니다(21). 화목 사역을 설명한 18-19절과 연결된 것으로, ‘우리’가 구원을 통해 화목 과정을 경험하고 그에 대한 사역자로 부름 받은 자임을 부연합니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거짓 사도에 휘둘리지 말고 바울의 권위를 인정하며 그 명령을 따라 하나님 앞에 충실히 살기를 결정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피조물’(5:17)이지만 이제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주인도 바뀌고, 삶의 방향도 이유도 동력도 목적도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가져온 놀라운 역사요, 창조다. 주님을 만난 이후 내게서 변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 사랑을, 그 화해를, 그 변화를 전하고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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