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03-01)
그리스도의 진실한 추천서
고린도후서 3장 1-11절
일반적으로 비밀에 부치지 않고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편지를 ‘공개편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보낸 ‘공개편지’입니다. 정성이 가득한 편지는 겉포장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용입니다. 내용이 거짓되거나 과장되어 있으면 언젠간 진짜 모습이 들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신실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기록된 성도이길 바랍니다.
- 사도 바울의 사도성에 대해 음해하는 사람들이 고린도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사도로서 추천서를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야말로 참 사도임을 증명하는 추천서이었습니다. 참된 섬김의 표지는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추천서(1-3)
살아가다보면 누군가의 추천장을 써주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추천장(推薦狀)’이란 지명도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믿을 만한 사람으로 직장이나 학교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추천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고린도 교회에서는 바울에게 추천서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1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1-3)
2:14-17에 이어 바울의 사역 변호가 계속됩니다. 앞부분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내용이었다면, 여기부터는 고린도 교회 성도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이제 추천서 문제로 시작합니다.
초대교회에는 유랑 사역자들이 많았습니다. 교회에서는 처음에는 아무 사역자나 받아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잘못된 거짓 사역자들이 들어와서 점점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문제가 발생하자 거짓 교사를 방지하기 위해서 파송하는 교회에서 파송하는 사람에게 추천장을 주었습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이 추천장을 보고서 그 사역자를 인정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인정받기 위해 다른 사람이나 교회의 추천서로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경쟁과 인간적 조건을 중시했던 고린도 분위기와 잘 맞았고 교회에도 통했던 모양입니다(10:7).
반면, 바울은 그런 추천서가 없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비록 사도 바울이 개척한 교회이기 때문에, 신분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은 추천서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바울은 대응해야 했습니다. 수사적 질문들로 시작합니다. 그는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어떤 이들처럼 독자에게 추천서를 보내거나 받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1)? 수년 전에 교회를 개척한 장본인에게 추천서 요구는 어불성설입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다른 형태의 추천서가 있습니다. 바로 독자들입니다. 바울은 독자들을 자신을 소개하는 편지로 묘사합니다(2; 참조. 고전 9:2). 성도는 바울과 동역자들 마음에 각인된 존재들이며 사랑으로 표현된 사역의 결과입니다. 그들의 사역자가 누구인지를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통로입니다. 이뿐 아니라, 독자들은 메시아를 드러내는 편지입니다(3). 가장 확실한 추천서는 고린도 교회 안에 있던 성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 동안 바울이 전하는 복음으로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바울의 진실한 사도됨을 증명하는 ‘추천장’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섬김으로 메시아로 인한 구원 과정에 참여하고 있고, 구원의 보증인 하나님의영(1:20-21)을 경험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먹과 돌판으로 상징되는 옛 언약이 아니라 성령으로 상징되는 새 언약 백성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산 증인입니다.
새로운 언약 사역자(4-18)
선물은 누구나 좋아합니다. 그러나 화려하게 포장된 것보다 진실적인 내용이 중요합니다. 세상에서는 성공하려면 자신을 잘 포장하고 멋있게 나타내는 기술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잠시 성공한다고 할지라도 내적으로 실력이 없으면 결국 실체가 들어나고 결국에는 무너집니다.
4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6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12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4-18)
사도 바울은 복음을 새 언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섬기는 새 언약의 사역자입니다. 사람의 추천장이나 거짓 교사들처럼 율법이나 문자에 의존한 사역과는 다릅니다. 성령은 살지지만, 문자(율법)는 사람을 정죄함으로 죽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의 사도로서 자격은 율법을 통해 사람에 의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1) 새 언약 사역의 자격(4-6)
추천서가 왜 필요 없는지를 부연합니다. 사역 자체에 대한 확실성과 자신감 때문입니다(4). 자신감의 시작은 사역의 신적 기원 때문입니다(5). 바울 스스로 시작한 사역이 아니기에 인간적 조건이나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 휘둘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자신에게 사역을 맡기고 이루어 가실 하나님 앞에서 충실하면 됩니다. 진정한 평가와 만족은 그분에게서만 나옵니다. 사역의 기원과 평가에 대한 이 확신 때문에 그는 거짓 사도들의 비난에도 당당함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영향을 받는 교회에게는 사역 변호를 안 할 수 없었습니다. 사역에 대한 바울의 확신과 자신감의 또 다른 근거는 그가 예수님께서 가져온 새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6). 바울은 성령을 새 언약의 대표적 특징으로 묘사합니다. 옛 언약에서는 문자로 쓰인 조문이 언약 관계를 규정하고 유지하는 통로였다면, 새 언약에서는 신자 안에 거하는 성령이 관계를 증거하고 규정하며 미래 온전함을 보증합니다. 새 언약과 성령과의 연결은 구약에서 약속된 것이며, 예수를 통해 실현되어 독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실제입니다.
(2) 새 언약 사역의 영광스러움(7-11)
문자와 성령으로 대표되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의 대조를 사역의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역시 거짓 사도들과의 대조를 반영하는 듯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새 언약 사역과의 관련성이 적은, 유대교에 충실한 기독교인들인 듯합니다. 옛 언약 사역은 돌판에 새긴 문자(예, 십계명)에 근거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촉구합니다. 하나님의 관계 유지 방법과 그분의 뜻을 어길 때 받을 심판이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 사역에도 영광스러움이 있습니다.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보고 내려와 백성에게 말씀을 전할 때 그의 얼굴에 영광이 스며들어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출 34:29-35).
그러나 새 언약 사역은 더 영광스럽습니다. ‘만일 옛 언약 사역이 라면, 새 언약 사역은 훨씬 더~’라는 세 개의 비교 조건문을 통해 이유를 제시합니다. 첫째, 새 언약 사역은 성령의 사역입니다(7-8). 옛 언약 사역은 돌판 문자를 통한 것입니다. 기원이 하나님이란 면에서는 같지만, 일의 진행 과정에 하나님의 영이 직접 참여한다는 점에서 새언약 사역이 훨씬 더 영광스럽습니다. 둘째, 새 언약 사역은 생명의 사역입니다(9-10). 옛 언약 사역은 문자조항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 대한 경고가 있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게 하지 못합니다.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옛 언약 사역은 죽음의 사역입니다. 새 언약 사역은 다릅니다. 예수님으로 인한 죄 용서와 그로 인해 하나님과 새롭게 맺어진 화목의 관계를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영광스러웠다면, 생명의 사역은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습니까! 셋째, 영광의 지속성이 다릅니다(11). ‘없어짐’과 ‘거함’의 대조로 설명합니다. 모세 얼굴에 있던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없어집니다. 옛 언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반응 조건을 핵심으로 하기에 인간의 죄 문제가 온전히 해결되지 않는 한 그 관계 유지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언약 관계를 맺고도 하나님을 거절한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새 언약은 다릅니다. 비록 관계 유지를 위해 인간이 애써야 하는 면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새언약 관계는 예수로 인한 죄 사함 이후 얻은 것이고, 그 관계 유지와 보증을 위해 성령이 사람 안에 거하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거절하지 않는 한 새 언약 관계는 유지됩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는 새 언약 사역은 옛 언약 사역보다 훨씬 귀하고 영광스럽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역을 위해 부름 받고 섬기고 있습니다.
(3) 새 언약 사역의 내용과 그 결과(12-18)
앞서 언급한 옛 언약 사역과의 대조를 바탕으로 더 강한 확신으로 자신의 사역을 변호합니다. 바울의 확신과 담대함은 모세의 사역과 비교하는 13절에 나타납니다. 모세는 자기 얼굴에 있는 하나님 영광의 반영을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너울로 가렸습니다(출 34:22-35).어차피 사라질 것이지만, 그 끝을 사람들이 주목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사역은 사람들의 눈을 가린 너울을 걷어내는 길을 전해줍니다. 모세의 사역과 반대일 뿐 아니라 더 뛰어난 사역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볼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유대인임을 감안한다면 모세와의 비교는 놀랍도록 담대한 표현입니다. 개인적 탁월함에 근거한 자만심 표현이 아닙니다. 새 언약과 관련한 비교할 수 없는 요소들에 근거한 확신입니다. 첫째 요소는 예수와 모세의 차입니다(14). 모세는 옛 언약 중재자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자이지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영광의 본체이십니다(4:6). 감히 둘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그 예수를 전하는 자입니다. 둘째 요소는 예수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이 행하신 새 언약의 성취입니다(15-16). 유대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 얼굴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마치 모세가 얼굴에 너울을 쓴 것처럼 마음에 하나님을 볼 수 없게 하는 가림막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구약성경을 읽고 가르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안에서만 그 가림막이 없어지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연결이 가능합니다. 셋째 요소는 성령입니다(17-18). 가림막을 제거하고 새 언약 관계를 맺는 과정에 성령이 일하십니다. 죄로 인한 심판에서의 자유와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에서의 회복을 경험케 합니다. 넷째 요소는 새 언약 안에 있는 영광스런 미래입니다(18). 신자들은 부활을 통해 영광스런 주의 형상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모세가 가린 것을 완전히 걷어내고, 그분과 얼굴과 얼굴로 교제하며 영원히 사랑을 나눌 것입니다. 성령은 그 보증이며, 실제로 그 변화를 행하실 분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런 요소들을 가진 새 언약 구원을 전하는 사역자입니다. 충분히 담대할 만하고 추천서가 필요 없을 만큼 확신과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부심이 바울에게만 해당하는 않습니다. 새 언약 관계 안에 있는 모든 자가 가질 감사와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편지들입니다. 복음으로 당신을 살려주셨고 삶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변화된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볼 때마다 그리스도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행하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들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편지로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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