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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01-02)

 


자신과 사역을 변호하는 바울

고린도후서 1장 12-22절


 

퍼즐은 서로 모양이 다른 100조각이나 100조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퍼즐이 서로 다른 모양이 있지만, 그것들이 서로 하나하나 맞추어서 완성된 그림이 되어질 때, 참 즐거움이 있습니다. 다양한 성도들이 하나하나 맞춰져서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기쁨이 클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신실하게 퍼즐을 맞추어가는 고린도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환난과 위로가 담긴 송영으로 독자와의 연결을 꾀한 바울은 이제 교회에게 자신과 사역에 대해 변호합니다. 7:16까지 이어지는 본문의 첫 시작인데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12-14절은 독자를 향한 바울의 태도를 변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행했다고 합니다. 둘째, 15-22절은 이전 방문 계획을 변경한 것에 대해 변호합니다. 경솔한 계획이나 개인적 변덕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전한 복음 역시 일관성과 신뢰성이 있음을 변호합니다.

 

교회에 대한 바울의 태도 변호(12-14)

사람들을 대할 때는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대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신실함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마땅히 해야 하는 대로 했다는 고백입니다. 남들과 비교하지도 않고 없는 것을 과정하지도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양심껏 말할 수 있다면 그는 참 사역자일 것입니다.

 

12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13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14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12-14)

 

앞 단락에서 환난 때마다 위로를 주심으로 능히 고난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한 바울은 이제 본문에서는 고린도 성도들 사이에 있었던 그에 대한 부당한 비난을 일축시키고 그의 사도로서의 직분과 사역 자세에 대한 정당성을 증거하기 위해 자기의 건실성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1) 교회를 향한 바울의 태도 변호(12)

 

‘우리’의 자랑을 소개하여 본격적으로 편지 몸말의 문을 엽니다. ‘자랑’은 거짓 교사들이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교회에 떠벌인 것을 배경으로 바울이 그들의 자랑을 부끄럽게 하고 자신이 참 사도임을 드러내는 방법입니다. 편지 전체에서 바울의 자랑은 주로 사역과 독자들을 향한 태도를 내용으로 합니다.

12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조와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조와 관련해, 바울은 ‘우리의 자랑은 이것이다. 즉…’ 형태로 전달합니다. 자랑을 먼저 언급하고 내용을 나중에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자랑’을 힘주어 소개하려는 의도을 나타냅니다. 이런 의도는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라는 추가 표현에서도 확인됩니다. 사도의 양심을 걸고 독자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참 자랑이라는 말입니다. 자랑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초점이 있습니다. 첫째, 세상 방식으로 살거나 사역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했다는 표현에 하나님의 은혜와 육체의 지혜의 대조를 첨가한 것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둘째, 독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입니다. ‘특별히 너희에 대해서’라는 표현을 추가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거짓 사도들의 인간적 자랑 또는 자신에 대한 그들의 비난에 대해 참 자랑을 소개함으로써 자기의 사역을 변호합니다. 화려한 인간적 조건으로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실함과 거룩함으로 독자들을 향해 사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그가 제시한 참 사역자를 분별하는 기준입니다.

 

(2) 이전 편지 내용에 대한 변호(13-14)

 

자랑을 통한 자기변호를 구체적으로 기술합니다. 첫 내용은 고린도 방문 계획을 변경한 것에 대해서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고린도 방문에 대해 썼지만(고전 16:5-9)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에 대해 마음을 열지 않은 일부 교인들과 거짓 사도들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방문 계획을 이행하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오해를 낳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이전 편지의 진실성에 대한 의심입니다. 계획 언급이 경솔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바울 인격에 대한 회의입니다. 계획에 문제가 없다 해도 이행하지 않은 것은 신실하지 않다는 방증일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이든 바울의 사도권과 사역의 진정성에 흠집을 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도권에 대한 도전은 그의 사역 결과인 교회의 정체성과 미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즉, 신실하지 않은 자가 사도일 수 있으며, 자격 없는 자가 세운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일 수 있는가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오해소지들에 대해 바울은 이전 편지 내용의 진실성을 변호하기 시작합니다. 독자들이 이전 편지를 읽고 이해한 내용 외에 다른 것을 쓴 적이 없다고 합니다(13). 또한 그들이 온전히 알게 되기를 바라는 내용도 첨언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는 그날에 독자는 바울의 자랑이 되고 바울은 독자의 자랑이 되기를 원합니다(14). 지금은 부분적으로만 알기에 오해도 있지만, 교회를 향한 바울의 의도와 사랑이 온전히 드러나서 그들이 바울을 자랑하게 되고, 바울 역시 그들을 자랑하게 되기를 소망한다는 말입니다.

 

방문 계획 변경과 복음 전파의 신뢰성 변호(15-22)

모든 성도들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약속한 바를 지켜야 합니다.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가능한 한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전도하는 사람들의 인격에 따라 그 복음에 대한 신빙성이 듣는 사람들에게 좌우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든지 능력이 있거나 부족할지라도 사용하십니다.

 

15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17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18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1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15-22)

 

자신의 모든 사역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에 근거한 것임을 변호한 바울은 이제 본문에서부터 2:13까지에서는 고린도 성도들이 그를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 불성실한 사람이라고 비난하게 된 이유로 작용한 고린도 교회에 대한 수차의 방문 계획변경과 관련하여 해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대한 방문 계획을 변경시킨 것은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1) 바울의 고린도 교회 방문 계획 변경에 대한 변호(15-17)

 

이전 편지 속 방문 계획의 진실성에 대해 계속 변호합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기대하고 그들에게 은혜를 얻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는 교회가 바울의 권면을 거절하기 이전에 쓴 것이기에, 바울은 교회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방문 계획을 소개했을 것입니다. 그의 계획은 에베소 → 고린도 → 마게도냐 → 고린도 → 유대로 가는 것이었습니다(15-16)

16절). 예루살렘을 위한 연보와 관련한 여행입니다(고전 16:1-4). 하지만 이 계획은 이행되지 못했습니다. 여기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이 계획이 고린도전서 16:59에서 밝힌 내용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거기서는 에베소에서 배를 타고 마게도냐 → 고린도 →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주후 53년 여름이나 가을에 에베소를 출발해 고린도에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는 계획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방문 계획과 관련해 두 번의 변경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첫째는 이전 편지와 다르게 마게도냐를 거치지 않고 고린도에 직행하는 것으로 바꾼 것이고, 둘째는 그마저 이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계획 변경 자체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방문과 관련한 전체 과정의 방향을 바꾼 계기가 된 것은 교회가 고린도전서의 권면을 거절한 사건입니다. 고린도에 갔던 디모데가 아픈 마음으로 바울에게로 돌아와 교회 상황을 전했고, 이에 바울은 예상에 없던 방문, 곧 고통스러운 두 번째 방문을 합니다. 그 방문은 성공적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때 바울은 15-16절 계획처럼 다시 고린도에 방문해 상황을 종결짓겠다고 말한 듯합니다. 그러나 이 계획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아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황 설명은 1:23-2:4에서 제시됩니다. 이 부분에서는 자신의 방문 계획 수립 과정에 문제가 없었음을 먼저 설명합니다(17). 특별히 계획 과정의 무책임성에 대해 변호합니다. 두 가지 수사적 질문으로 진행합니다. 계획을 세울 때 경솔하게 혹은 무책임하게 했겠습니까? 또 육체를 따라 계획해서 ‘예’와 ‘아니오’를 동시에 하는, 한 입으로 두 말을 했겠습니까? 모두 독자 스스로 ‘아니다’라고 대답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계획 과정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2) 바울이 전한 복음의 일관성과 신뢰성에 대한 변호(18-22)

 

방문 계획을 왜 이행하지 않았는가를(23f) 설명해야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바울은 자신의 사역과 복음 증거 내용의 일관성을 변호합니다(18-22). 앞서 언급한 대로 바울의 계획 변경은 신실성이 없다는 증거라고 폄하하고, 그것을 통해 그의 사도권과 복음 증거 사역의 신뢰성까지 공격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입니다.

바울은 삼위 하나님께 근거하여 자신의 증거사역의 신뢰성을 설명합니다. 첫째, 성부 하나님의 신실함입니다(18,20-22). 그분은 증거 과정과 관련한 구원의 모든 과정을 계획하고 이루시는 분입니다. 오래전에 메시아를 통한 구원을 약속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그 약속을 성취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또한 그 메시아를 증거하는 자들(‘우리’)을 부르시고 사역을 맡길 뿐 아니라, 그 증거 사역을 통해 구원의 실제를 경험케 하시는 분입니다. 성령을 보내 구원 과정에 참여하고 있음을 확증시키고, 결과적으로 하나님 자신에게 영광 돌리게 하십니다. 둘째, 예수님의 신실함입니다(19-20).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아입니다. 그에게는 ‘예’와 ‘아니오’가 공존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만 있는 신실한 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전파로 그를 믿으면 구원 과정에 참여하게 되어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셋째, 성령의 기름부음입니다(21-22). ‘우리’의 증거 사역 결과로 구원 과정에 참여하면, 그 증거이자 미래 과정의 보증인 성령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이미 독자들은 누구보다도 성령의 경험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이런 설명에 의하면 바울의 사역은 삼위 하나님이 행하시는 커다란 구원 과정 속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분들에 의해 시작하고 그분들을 통해 수행하고 그 결과를 그분들이 보증합니다. 사역의 신뢰성에 대해 이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바울의 이런 변호는 교회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고린도 교회와 관련해 누가 참 사도인지를 분별하는 시금석입니다. 구원 과정의 전체 그림을 갖고 삼위 하나님으로 인한 구원의 실제를 경험케 하는 통로가 진짜 사도입니다. 이후 바울의 새 언약 사역 설명과 거짓 사도 비판을 이해하는 열쇠 중 하나입니다. 둘째, 후대 교회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 과정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고 진리를 전하는 자가 참 사역자입니다. 단순히 사람을 위로하거나 교회를 경영하는 능력은 본질이 아닙니다. 진리 전달이 중요합니다.


진실에 응답하는 것, 진실을 말하는 것도 때로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진실을 일관되게 실천하고 실현하는 것은 더 큰 결단과 지속적인 헌신이 필요합니다. 신앙은 입술의 고백을 삶으로 풀어내는 과정입니다. 복음의 진리에 마음 다해 아멘으로 화답하고, 아멘을 살고, 아멘의 사람이 되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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