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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01-03)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인 성도들

고린도후서 1장 23절 – 2장 17절


타락(추락)은 자기 자리를 떠나고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경계해야 할 것은 ‘자기 확장’입니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고 옛 자아들이 활보할 때 교회는 세상에 향기가 아닌 악취만 풍기는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 여러 내용을 짧게 전달합니다. 첫째, 1:12-22과 연결해 방문 계획 변경과 눈물의 편지를 쓴 이유를 설명합니다(1:23-2:4). 둘째, 여전히 바울에 대해 의구심 품은 자들을 용서하라고 요청합니다(5-11). 셋째, 디도를 통해 교회의 회기 소식을 듣기 전에 바울이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갔을 때 상황을 다룹니다(12-13). 넷째, 사역에 대해 변호하기 사적합니다(14-17). 앞부분 주제와 구분됩니다. 일차적으로 4:6까지 이어지지만, 길게는 7:4을 거쳐 7:16까지 진행됩니다.

 

방문 계획을 변경한 이유(23-24)

복음 사역자는 사역 철학이 필요합니다. 평신도 사역자에게도 사역 정신이 필요합니다. 이 철학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성품에서 비롯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과 용서의 원리입니다. 바울의 사역 원리가 용해되어 잘 나타나는 본문에서 우리는 건강한 사역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23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24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2:1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2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3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4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1:23-2:4)

 

사도가 방문 계획을 변경하고 대신 눈물의 편지를 써서 호소한 것은 독자를 아끼는 마음의 발로였습니다. 억지로 그들을 바꾸지 않고 그들의 기쁨을 돕는 자가 되고 싶었으며, 격한 마음으로 방문하였다가 영적인 자녀들인 그들에게 상처만 줄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과하다 싶을 만큼 혹독하게 편지를 썼지만 그 안에는 그들을 향한 사랑과 눈물을 담았다고 합니다.

 

(1) 방문 계획을 변경한 이유(23-24)

 

12-22절과 연결해 방문 계획 변경에 대한 구체적 이유를 제시합니다. 2:4까지 이어집니다. 핵심 이유는 하나입니다. 독자들을 아꼈기 때문입니다(23b). 24절부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계획 변경의 이유를 설명할 때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우고, 심지어 자기 목숨을 걸고 말한다는 표현입니다(23a). 자기 말이 진실임을 강조하는 아주 엄숙하고 진지한 표현입니다. 동시에 매우 슬픈 표현입니다. 그렇게까지 자신이 세운 교회에게 자신이 거짓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니 말입니다. 바울이 인식하는 교회 상황, 즉 여전히 그를 거절하고 있는 일단의 사람들과 특히 거짓 사도로 인한 상황이 아주 심각함을 짐작케 합니다.

독자를 아껴 방문하지 않은 이유가 24절부터 설명됩니다. 첫 이유는 그들의 믿음을 주관하는 자가 아니라, 그들이 기쁨을 만들어 가는 데 함께하는 자가 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고민을 엿볼 수 있습니다. 교회의 불순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번째 방문을 했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계속 바울을 거절하자 바울은 맘이 상해서 에베소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가서 호되게 책망할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고린도에 먼저 갈 것을 언급한 16절 계획은 그런 마음과 관련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가지 않기로 합니다. 교회가 회개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듯 일방적으로 끌고 가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바울에게 불순종하고 있지만, 여전히 믿음 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그들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여 기쁨을 회복하게 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한 것입니다.

 

(2) 방문 대신 눈물의 편지를 쓴 이유(2:1-4)

 

독자를 아껴 방문하지 않은 것에 대한 또 다른 설명입니다. 24절처럼 바울의 고심과 독자를 향한 배려가 담겨 있습니다. 그의 고심은 ‘스스로 결심했다’는 표현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1절). 많은 갈등과 기도와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또 다시 고통과 슬픔으로 고린도를 방문하지 않겠다고 작정했습니다. 그들을 미워하거나 원망해서가 아닙니다. 바울에게 상처를 주고 불순종하고 있지만, 그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 백성이 된 영적 자녀들입니다. 다시 방문해서 그들과 언쟁하고 서로 상처 받아 기쁨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문제는 처리해야 했습니다. 이런 갈등 상황에서 바울이 선택한 것은 방문 대신 편지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4). 세 번째 편지는 많은 눈물로 썼습니다. 진리로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과하다 싶을 만큼 책망했습니다(7:8). 바울도 편지를 쓰면서 교회가 힘들어 하지 않을까 걱정하였고 혹시 계속 거절하면 어쩌나 염려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많은 생각과 기도로 썼습니다. 바울은 그 선택을 독자를 향한 넘치는 사랑으로 묘사합니다. 이것이 방문 계획을 바꾼 이유입니다.

 

의구심 품은 자들을 용서하라(2:5-11)

회개한 성도는 용서하고 위로해야 합니다(마 6:12,14-15). 또한 자신이 잘못했을 경우에는 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회개는 사람 앞에서 하는 회개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 하는 회개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 중에 자신에게 대해 의심을 품는 자들을 해야 논하고 있습니다.

 

5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7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9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10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2:5-11)

 

시점과 상황이 전환됩니다. 4절까지 방문 계획과 세 번째 편지를 보낸 배경을 다루었다면, 이 부분은 그 이후 교회의 회개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감사하게도 교회 대부분은 디도 편에 보낸 ‘눈물의 편지’를 통해 바울에게로 돌아왔지만, 소수가 여전히 불순종을 고집했습니다. 이들에 대한 처리도 중요했습니다. 기존 갈등을 완전히 해결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교회 분열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반대자와 관련한 정황 기술로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 아마도 교회 지도자 중 한 사람이 계속 불순종해서 바울을 지속적으로 근심하게 한 듯합니다. 바울은 이 상황을 어느 정도 교회를 근심하게 한 것으로 묘사합니다. 반대자 문제가 바울만의 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상황 해결도 바울과 교회 모두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교회가 회개하여 그 사람의 영향력이 작아졌습니다. 그의 태도는 벌을 받듯 교회에 의해 비난과 제지를 당한 듯합니다(6).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반대자와 교회의 처신 여부에 따라 이후 양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바울의 권면은 단순합니다. 용서하고 위로해서 사랑을 나타내라고 합니다(7-10).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첫째, 반대자를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그가 너무 근심할까 염려합니다. 그래서 이전 문제에 대해 교회가 회개하고 순종하기로 결정한 것처럼, 반대자를 사랑하라는 권면에도 순종하라고 합니다. 교회가 용서하면 바울도 용서하고, 그 용서를 메시아 앞에서 한 것으로 인정하겠다고 합니다. 둘째, 사탄의 계획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교회 분열을 염두에 둔 듯합니다. 진리로 거짓을 솎아내는 것은 분명한 진영 구분을 수반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끝나 거짓을 제거하면, 분별 과정에서 나뉘었던 아픔을 사랑으로 보듬어야 합니다. 방치하면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사탄의 놀음에 교회가 분열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반대자에게 교회가 사랑을 보이라고 권한 것입니다.

 

드로아를 거쳐 마게도냐에 갔을 때의 상황(2:12-13)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그런 사실을 교정할 때, 당사자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교정하도록 경고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동기로 하신 것입니다. 계획을 세우고 변경하는 일에 매우 신중한 것은 넘치는 사랑 때문이었고 어떻게 하여야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였습니다.

 

12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12-13)

 

다시 시점 변화가 일어납니다. 5-11절보다 앞선 시점으로 디도 편으로 ‘눈물의 편지’를 보낸 4절 이후 상황입니다. 폭동 때문에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로 갔습니다. 복음 증거의 좋은 기회가 있었지만, 고린도 교회 문제 때문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바울은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이후 상황은 7:5-16에서 다시 진행됩니다.

 

바울의 사역 변호: 고난이 수반된 순전한 말씀 증거 사역(2:14-17)

하나님 일군의 인식과 사역에서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야 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고 실천하여서 하나님을 명확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분명히 의식하며 철저히 종으로서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고 명확히 드러내고 전한 말씀대로 삶을 통해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14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14-17)

 

바울이 보낸 ‘눈물의 편지’를 받고 고린도 교회가 회개하고 돌이켰지만, 여전히 바울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을 나타내라고 당부합니다. 그들이 공동체에서 받은 벌로 충분하며, 사탄에게 이용당하여 공동체의 분열로 이어지거나 아예 그들이 공동체에서 떠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도 지혜롭지 못한 방식 때문에 악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1) 고난이 수반된 사역(2:14-16)

 

자신의 사역 변호로 주제를 전환합니다. 여전히 불순종하는 자들을 설득하고, 이후 언급할 거짓 사도 문제와 관련해 자기변호의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역과 관련해 하나님이 행하신 두 가지에 대해 감사하면서 시작합니다(14). 첫째, ‘우리’를 사로잡아 사역자로 살게 하셨습니다. 사역의 기원과 특징을 말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듯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거절하던 죄인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사역자로 부르셨습니다. 또한 포로가 전리품으로 끌려가듯 그 사역에는 세상에서의 수치와 환난도 있습니다(고전 4:9). 둘째, 각처에서 메시아를 아는 향기를 나타내게 하셨습니다. 메시아를 전하고(1:19; 4:5) 예수를 따르는 삶의 방식으로 살기에 그분의 향기가 난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메시아를 아는 향기에 대해 부연합니다(15-16).

 

(2) 순전한 말씀 증거 사역(2:17)

 

바울은 자신의 증거와 삶을 하나님 앞에서 나는 향기로 표현합니다. 메시아를 담고 있고 그분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는 그 사역이 귀한 향기로 인식됩니다. 모든 사람이 메시아에 대한 증거를 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를 따르는 삶 역시 세상이 환호할 만큼 화려한 것도 아닙니다(6:4-10). 이런 면에서 메시아를 아는 향기는 세상 관점에서는 코를 막고 기피해야 하는 사망의 썩은 냄새일 수 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냄새와 연결해 자기 사역의 특징을 대조의 방법으로 제시합니다(17). 어떤 이들, 곧 거짓 사도들은 마치 장사치처럼 자신의 인간적 조건들을 떠벌이고, 이를 바탕으로 사역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두 가지 면에서 다르다고 말합니다. 첫째, 말씀을 하나님께 받은 것처럼 여겼습니다. 자기 것인 양 자랑하거나 이익의 도구로 삼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둘째, 하나님/예수 앞에서 전하는 것처럼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사람에게 전했지만, 환심이나 인기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분 앞에서 하듯 조심히 정성스럽게 전했습니다. 이것은 참 사역자를 분별하는 중요한 조건이며, 사역자도 교회도 들어야 하는 원리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것을 중요시 여겼다면 세상에서 지탄받는 것이 덜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인생은 가져야 할 것보다 ‘지켜야’ 할 것이 더 많습니다. 자기 ‘자리’, ‘사명’, ‘형제’를 지켜야 합니다. 자신을 살게 한 ‘복음’ 또한 지켜야 합니다. 지켜내기 위해서는 복음에, 믿음에 다른 것을 섞지 않는 ‘순전함’(2:17)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향기로, 향기 나는 교회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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