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07-01)
자기 변호를 하는 사도 바울
고린도후서 7장 2-16절
잔뿌리만으로 버티기에는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뿌리를 깊이 내린다는 건 척박한 땅에서는 힘겨운 일입니다. 하나님과 성도들, 지도자와 성도들 간의 신뢰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열지 않고는(2), 마음을 드리지 않고는(7) 회복할 수 없는 것이 신뢰의 관계입니다.
- 앞부분에 이어 새 언약 사역자로서의 권면을 이어갑니다(2-4). 바울은 자신을 마음으로 영접하라고 합니다. 이후 5절에서 마게도냐 상황을 언급하여 주제를 전환하며, 그것이 16절까지 이어집니다. 이는 2:12-13에서 제시한 바울의 여행 상황과 관련한 설명입니다. 디도를 통해 교회의 회개 소식을 듣고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그간의 소회를 밝힙니다. 특별히 두 번째 고린도 방문 이후 쓴 눈물의 편지(세 번째 편지)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과 좋은 결과에 감사합니다.
권면 5: 마음으로 바울을 영접하라(2-4)
우리 모두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인생의 고난과 위기 가운데 있는 사람들, 물론 위로가 필요합니다. 일상의 사소한 문제로 지쳐있는 사람들, 그들도 위로가 필요합니다. 남들을 위로하고 돌보고 섬기는 이들, 그들도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목회자들도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서로 위로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2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3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4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2-4)
바울과 동역자들(‘우리’)을 마음으로 영접하라고 합니다. 거짓 사도들의 영향을 벗고 바울에게 마음을 주라는 말입니다. 네 번째 권면(6:14-17)이 독자와 거짓 사도들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면, 이 부분은 바울과 독자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세 번째 권면(6:11-13) 내용을 반복하고 있으며, 그간 제시했던 사역 변호의 최종 목적을 보여줍니다. 이 명령의 근거는 독자를 향한 바울의 태도와 행함입니다.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았고 해롭게 하거나 속여 빼앗은 일이 없기에 바울을 영접하라는 것입니다(2). 거짓 사도들이 교회에서 행한 모습(11:20)과 바울에 대한 비방(12:16)을 염두에 둔 내용인 듯합니다. 그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교회를 이용했지만, 바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2:17).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이 말이 독자들에게 오해를 부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교회에게 아무 해를 가하지 않았음에도 독자들이 영접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는 것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독자를 정죄하려고 한 말은 아니라고 첨언합니다(3). 오히려 너무 사랑해서 함께하고 픈 의도로 말했다고 합니다. 이어서 네 가지 확신을 소개함으로 2:14부터 제기한 모든 사역 변호와 권면을 마무리 짓습니다(4). 첫 두 가지는 독자에 대한 것입니다. 그들을 향한 담대함이 많고 자랑도 많습니다. 담대함(파레시아 tappnoia)은 용기나 확신을 뜻합니다. 6:11처럼 독자에 대한 확신 때문에 바울의 입과 마음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자랑은 독자에 대한 신뢰와 칭찬을 의미합니다. 이런 확신 때문에 교회의 문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여전히 독자를 사랑하며, 거짓 사도 문제에 대해 독자들이 바르게 처신할 것을 믿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두 가지는 바울 자신에 대한 것입니다. 위로가 충만하고 모든 환난에도 기쁨이 넘칩니다. 이는 참사역자의 자세를 놓치지 않겠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거짓 사도 문제와 관련해 독자들이 어찌 해야 하는지를 넌지시 전달하고 있고 동시에 바울 편에서 새 언약 사역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교회의 회개 소식에 대한 감사와 소회(5-16)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적당히 얼버무리는 것은 성경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사랑의 바탕 위에서 성경을 통해 서로를 돌아보고 서로 회개하고 서로 위로하는 것이 진정한 관계의 회복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심각하게 근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회개를 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5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6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8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9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12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13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 14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15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16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5-16)
그런 바울에게 고통과 근심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디도 편에 편지를 보낸 일을 통해, 그리고 디도가 가지고 돌아온 소식을 통해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바울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통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1) 디도를 만나기 전 근심과 만난 후의 기쁨(5-7)
바울이 마게도냐에 도착한 이후의 상황으로 주제가 전환됩니다. 시점도 현재 독자의 상황에서 과거 세 번째 편지 결과를 알기 이전으로 거슬러 갑니다. 2:12-13 내용과 연결됩니다. 얼핏 보기에 상당히 뜬금없는 전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원문의 ‘왜냐하면’(가르)이란 접속사는 이 부분 설명의 의도를 짐작케 합니다. 4절에서 언급한 독자에 대한 확신의 이유와 근거를 소개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이 세 번째 편지를 통해 바울과의 갈등을 끝내고 회개하고 돌아왔기에, 거짓 사도 문제에서도 바울 편에 설 것을 기대할 수 있음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과거 독자들이 보여준 회개의 모습은 이후 8-9장에서 언급할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에 대해서도 바울의 말에 순종할 것을 기대하게 하는 근거가 됩니다. 이런 면에서 5-16절은 바울의 사역 변호와 연보에 대한 주제를 함께 붙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를 거쳐 마게도냐에 왔을 때 바울 일행의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내적으로 육체가 편치 않았고, 외적으로 환난을 당했습니다. 1:3-11에서 언급한 어려움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위로의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디도가 고린도에서 좋은 소식을 갖고 돌아온 것입니다. 교회가 회개하고 바울에게로 돌아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상황은 교회 문제를 염려하며 갔던 디도에게 위로를 주었고, 그 이야기를 듣는 바울에게도 가뭄에 단비였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가 자신의 잘못을 애통하고 바울을 사랑할 뿐 아니라 그를 위한 열심이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2) 바울 기쁨의 이유(8-12)
바울의 기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의 기쁨은 디도 편에 보낸 눈물의 편지 또는 혹독한 편지라고 부르는 세 번째 편지에 대한 교회의 반응 때문입니다. 사실 바울 자신도 이 편지를 어려운 마음 가운데 썼습니다. 2:4에 의하면 많은 눌림과 걱정으로 눈물과 기도로 썼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이 돌아오기를 기대하면서도 너무 심한 책망에 그들이 근심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같이 있습니다. 괜히 쓴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도 있었습니다(8). 다행히 상황이 해결되었고 바울의 걱정은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호된 질책을 받고 그들이 근심했지만, 오히려 그 근심이 그들을 하나님께 대한 회개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근심을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으로 여겼습니다(9).
10-11절에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부연합니다. 세상이 주는 근심은 하나님과 상관없기에 사망의 결과를 낳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을 위한, 후회 없는 회개를 낳습니다(10). 근심에 대한 원리입니다.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한 근심인지에 따라 이해가 달라질 수 있고, 결과가 근심의 성격을 보여준다는 말입니다. 고린도 성도의 경우는 결과가 긍정적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에 의한 근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볼수 있다. 근심으로 인한 변화가 11절에 언급된다. 그들은 주님에 대해 더 간절해졌습니다. 그 간절함은 자신을 더 깨끗하게 하려는 마음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바울과의 관계 회복을 향한 열망으로 묘사됩니다. 모두 하나님과 바울을 이전과 다르게 대하려는 모습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의 근심 속에는 하나님 앞에서의 죄책감과 바울에 대한 미안함, 어리석게 행한 것에 대한 자책감 등이 어우러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보면서 바울이 염려한 것이 있었던 듯합니다. 문제를 일으킨 자에 대한 독자들의 태도입니다. 독자들은 그에 대해 분 내기도 하고 벌주기도 했습니다(11; 참조. 2:6). 그러나 그것을 너무 심하게 하면 교회가 분열되는 또 다른 계기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의 변화를 기뻐한다는 말이 문제를 일으킨 자에 대한 또 다른 책망으로 비칠까 조심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쓴 것은 오직 자기에 대한 독자들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뀐 것을 기뻐하기 때문이라고 첨언합니다(12). 교회를 사랑하고 또 다른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고 고심하는 참 사역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참조, 2:5-11).
(3) 디도의 기쁨과 교회를 향한 바울의 신뢰(13-16)
고린도 성도의 회개를 기뻐하는 바울의 표현이 이어집니다. 8-12절은 주로 고린도 성도의 변화와 그에 대한 바울의 기쁨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부분은 디도와 관련해 설명합니다. 고린도 성도의 변화는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바울에게 하나님이 주신 위로였습니다.
그런데 이 위로는 디도의 기쁨으로 배가 되었습니다. 그가 독자 모두에게서 마음의 쉼을 얻었기 때문입니다(13). 비록 두 번째 편지(고린도전서)와 관련해 디모데가 겪은 일과 두 번째 방문에서 받은 상처가 있었지만, 바울은 여전히 독자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고 있습니다. 디도를 보낼 때 그에게 고린도 교인들을 자랑했다는 말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14). 그러면서도 마음에 불안과 염려도 있었던 듯합니다. 디도의 방문이 긍정적이었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독자들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디도를 잘 영접했고 바울의 말에 순종하여 돌아섰습니다. 디도는 그 일로 독자들을 더 신뢰하게 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바울에게 이중의 안도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디도를 통해 문제가 회복되었으며 디도에게 자랑한 독자들에 대한 신뢰가 틀리지 않았음이 확인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것에 독자를 신뢰하게 된 것 때문에 더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16). 이 신뢰에는 과거의 갈등 상황뿐 아니라 교회의 현 문제 상황, 곧 바울을 거절하는 소수와 거짓 사도들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옳은 선택을 기대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또한 8장부터 시작할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기대하게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문제 많은 교회를 향한 바울의 신뢰를 보시기 바립니다. 그들의 현재보다는 하나님께서는 빚어가실 내일을 보았기에,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보았기에 가능한 신뢰였을 것입니다. 모든 관심이 온통 ‘나’인 세상에서, 이런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 성도입니까? 신뢰와 사랑과 격려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교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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