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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02-01)


바울의 전도하는 방법

고린도전서 2장 1-16절


노래를 부르지 못한 사람을 음치(音癡)라고 합니다. 대부분 음치들은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어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수준에 맞는 좋은 음악을 많이 들려주고, 점점 음악에 대해서 리듬 박자 음정이 무엇인지 깊숙이 가르쳐 갈 때, 음악을 이해하며 섭렵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복음이 아니라 이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 바울은 1:17에서 자신의 복음 전도 내용과 방법을 언급했습니다. 1:18-31에서 내용 차원을 다루었다면, 2:1-5은 방법에 대한 것을 설명합니다. ‘나’라고 세상 지혜에 대해 비판하고 바울이 어떻게 복음을 증거 했는지를 기술합니다. 2:6-16은 ‘우리’라는 복수를 통해 성령으로 인한 참 지혜가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이후 3:1부터 소위 영적이라고 믿지만,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독자를 향한 권면의 근거가 나옵니다.

 

바울의 과거 전도(1-5)

세상에 가장 좋은 소식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세상에게 불편하고 거북합니다. 세상으로 가득 채워진 사람 속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십자가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사용하지 않고 눌변가라는 혹평을 받더라도 오직 십자가를 전합니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들어야 할 말을 전했고, 자신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말을 전했습니다.

 

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1-5)

 

바울은 인간의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눌변가라는 혹평을 받더라도 십자가만 전합니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들어야 할 말을 전했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말을 했습니다. 세상으로 가득 채워진 사람 속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바울은 과거에 고린도에서 행한 자신의 전도를 설명합니다. 바울은 이 방법을 두 단계로 설명합니다.

 

(1) 고린도로 나아감(1-2)

 

바울은 고린도로 나아갔습니다. 1:17과 연결해 바울의 복음 전파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말합니다. 그는 세상 방식을 따라 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1)

바울은 두 차원에서 설명합니다. 첫째는 말과 지혜의 거창함입니다. 당시 어떤 웅변가나 선생이 어느 도시에 가면 자리 잡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보이려고 여러 사람과 논쟁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통해 자리 잡기 위해서입니다. 이 과정에서 말과 지혜의 거창함은 중요한 무기였습니다. 고린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였기에 고린도에 처음 온 바울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면 당연히 세상 무기를 사용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2). 십자가의 예수님을 세상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구원 과정의 열쇠이자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이 기대하는 말과 지혜의 거창함이 아닌 복음의 내용을 정확히 전하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2) 고린도에 거주함(3-5)

 

바울은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3)라고 고린도에 거주했습니다. 그가 고린도에서 한 일들이 무엇입니다. 그것은 바로 ‘전도’(4)였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하는 모습을 세 가지로 ‘(그는) …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3)로 묘사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하는 동안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무능한 상태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에게 나타날 수 있는 3중의 무능함입니다. 즉, 바울은 복음의 능력에 있어 사람에게서 나올 것이 전혀 없음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전도를 ‘말과 전도’로 설명합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4) ‘말’은 전도하는 언어의 틀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말을 전도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전도’는 전도하는 언어의 내용을 가리킵니다. 바울의 전한 내용은 ‘복음’이었습니다.

 

세상과 구별되는 바울의 전도 방법의 두 번째 차원은 외적 인상과 능력에 대한 것입니다. 새로운 학파가 자리 잡으려면 외적으로 좋은 인상을 주어야 했습니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나 사람들을 휘어잡는 설득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약하고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습니다. 좋은 인상을 주기에는 부족한 덕목입니다. 바울은 애써 외적인 것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결과가 사람의 어떠함이 아니라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결정되기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바울의 전도 방법은 세상 방식과 달랐습니다. 외적 화려함이나 거창함을 통해 사람을 얻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 구원의 비밀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만을 가감 없이 전했고, 그분의 일하심만을 추구하며 전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복음 안에 있는 진짜 지혜와 능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짜를 갖고 있기에 사람의 환심을 얻기 위해 애써 어색한 치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복음 전도 이후 믿음의 삶의 초점이 사람에게 맞취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5) 이런 태도는 여전히 화려한 말의 지혜로 경쟁하는 고린도 교회가 들어야 했지만, 현대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성령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지혜(6-16)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급조된 임기웅변의 이론이나 지혜가 아닙니다. 만세 전부터 정하신 것을 ‘때가 차매’ 이루신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 세상의 없어진 어리석은 지혜를 이용하여 오히려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 예비하신 모든 것이 성취되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6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6-16)

 

복음 선포자는 '십자가의 지혜를 믿으라라고 외쳐야 합니다. 십자가 구원 계획은 급조된 임기웅변의 지혜가 아닙니다. 만세 전부터 정하신 것을 ‘때가 차매’ 이루신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 세상의 어리석은 지혜를 이용하여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 예비하신 모든 것이 성취되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1) 우리는 참 지혜를 전함(6-7)

 

바울이 세상 방식을 따르지 않았지만, 지혜를 전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온전한 자들, 곧 성령을 받은 성도들 안에서 참 지혜에 대해 말합니다. 1장에서 언급한 복음 안에서 있는 예수 십자가로 인한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먼저 참 지혜의 성격을 대조를 통해 제시합니다. 세상 것이나 세상 통치자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바울은 몇 가지 추가 표현으로 참지혜의 성경을 구체화합니다. 첫째, ‘비밀로 감춰진’이란 표현입니다.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세상 지혜로 절대로 알 수 없고 오직 선포를 통해 알 수 있으며(1:21), 시간적으로 오랫동안 감춰졌던 것이 지금 복음 증거로 드러났음을 의미합니다. 둘째, 시간의 영속성과 관련된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서는 ‘멸망’이란 표현을 쓰고 하나님 지혜는 영세 전에 미리 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유한성과 하나님 계획의 무한성의 대조입니다. 무엇이 더 가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셋째, ‘너희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대상에 독자들이 있으며, 거룩하고 온전케 해서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독자들로서는 감사한 일입니다.

 

(2) 하나님의 지혜를 얻는 방법(8-13)

 

참 지혜에 대한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갑니다.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입니다. 역시 세상과의 대조로 설명합니다. 세상 그 누구도 참 지혜를 알 수 없었습니다. ‘이 지혜는 세상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다면 이 세상 통치자들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8). 그들 보기에 십자가는 어리석고 혐오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도인 ‘우리’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10). 바울은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를 성령으로 소개합니다. 구약에서 성령은 창조의 영이자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임한 영입니다. 새 언약 약속 역시 성령과 연결되어 있습니다(에스겔 36:27). 성도 되는 과정과 이후의 삶도 성령과 관련 있습니다(12:13). 하지만, 바울은 왜 성령이어야 하는지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제시합니다(11-13).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속에 있는 영 외에는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생각과 지혜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 이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성령이 보이고 가르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닌 하나님의 영을 받았습니다(12). 성령이 계시한 복음(10)을 믿어 하나님의 구원을 알고 받았으며 성령의 임재 또한 경험했습니다. 바울은 그 목적 중 하나를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은혜들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미 독자는 성령의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1:4-7).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인식은 적습니다(12-14장). 그렇기에 그들은 성령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지만, 성령이 아닌 세상의 생각을 갖고 있는 어린아이들입니다. 한편, 성령으로 인한 결과 중 하나가 13절에서 서술됩니다. 바울(‘우리’)이 사람의 지혜의 말이 아니라 성령의 가르침으로 가르친다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것은 성령을 통해 분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 독자들의 모습과 다릅니다. 그들은 영적인 일을 세상 지혜와 경쟁의 모습으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3) 자연적 사람과 영적 사람의 대조(14-16)

 

8-13절과 연계하여 왜 세상이 성령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가에 대해 다룹니다.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성령을 통한 일들이 어리석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미 1장에서 설명한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실제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방법을 알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약간 이상한 말이지만, 성령의 가르침과 행함은 성령을 통해 계시된 것이기에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분별됩니다. 그렇기에 성령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자들이 참 지혜를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에 반해, 성령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다릅니다.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생각을 알고 있기에 가능합니다(16). 또한 그들은 아무에게도 판단 받지 않습니다(15). 완전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각과 사고를 알기에 주를 알지 못하는 세상의 생각과 판단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16). 아쉽게도 독자들은 성령을 받은 자임에도 성령의 일을 모르며 세상의 가치에 편승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인해 성숙한 신령한 사람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지금까지 설명에 의하면 하나님의 구원 과정은 영원 전 계획에서 시작해(7) 때가 되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역으로 실행되었습니다. 사도는 이 내용을 성령의 능력으로 증거했고(4-5), 성령의 계시 사역을 통해 사람들이 이것을 인식했으며(10), 믿음의 반응을 통해 성령이 신자에게 임했습니다(12). 이 성령은 또한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 은혜를 알게 하고 영적인 것을 분별해 살게 하십니다(12-13). 계속 거룩하게 해서 주님과의 교제를 온전히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1:9). 독자들은 이 과정에 속해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데도그 과정에 합당한 삶의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의 방식을 여전히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인간의 지혜안에 담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논리나 기대를 거스르는 것이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비우고 부인하는 것이 사랑이요, 그것이 얻는 것이요 채워지는 것이요 살리는 것임을 믿는 것이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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