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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01-02)

 


복음으로 하나 되어야 할 교회

고린도전서 1장 10-17절


단체 경기는 팀워크(team work)이 중요합니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선수들이라 할지라도 단체 경기에서 팀워크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그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없습니다. 교회도 구성원들이 팀워크이 제대로 이룰 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종종 분열이나 편 가름이 있습니다.

 

  • 사도 바울은 서론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교회 문제로 들어갑니다. 인편으로 주고 받은 주제들을 먼저 다루는데, 6:20까지 이어집니다. 첫 주제는 교회 속에 있는 분쟁이며 4:21까지 진행됩니다. 바울 입장에서는 그만큼 심각한 문제인 듯합니다. 본문은 그 시작 부분입니다. 글로에의 집 사람들을 통해 전해 받은 것을 근거로 성도들에 대한 전체적 권면을 하고, 그들 문제가 무엇인지 재신술함으로써 주체적으로 다르기 시작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할 공동체(10-11)

교회(敎會)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 된 몸입니다. 분쟁이 아닌 연합과 조화가 교회의 본 모습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저마다 취향에 따라 어떤 인간 지도자들을 선호하면서 숭배한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몸을 허무는 행위입니다. 모든 성도들의 참된 일치를 위해서는 모두가 예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10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10-11)

 

사도 바울은 본격적인 본론으로 성도들의 첫 번째 문제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그 문제는 다름 아닌, 교회 안에 분열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그 문제에 대한 전체 권면을 제시합니다. 비록 형제들이라는 표현을 통해 친밀함을 유지하지만, 바울의 권면은 묵직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주 예수 그리스도, 곧 구원 과정의 핵심이요(2) 성도가 주님으로 섬기고 교제할 대상이자(9) 다시 오셔서 역사를 완성하실 분(7)의 이름을 걸고 권면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권면의 내용은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10)라며, 정리하면 세 가지 권면으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① 모두 같은 말을 하고, ② 그들 분열이 없게 하고, ③ 같은 생각과 같은 판단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같이 됨’을 통해 분열 문제를 해결하라고 명합니다. 여기에는 말과 사고 판단의 영역들이 포함됩니다. 행위에 앞서 내적 인지 영역과 그것을 표현하는 말의 영역을 통해 온전히 회복된 교회를 만들라는 권면입니다. 8절에서 말한 책망할 것이 없는 모습이며,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에게 어울리는 거룩함으로의 회복입니다. 거룩한 사람들은 거룩한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다른 생각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너무 깊어지면 분쟁으로 발생됩니다.

 

고린도 교회의 상황(11-12)

기독교의 핵심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언제나 주인으로 인정할 때 겸손할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 될 때,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종종 공동체 안에서 자기만을 세우려 하고, 자기중심적인 활동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행동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1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11-12)

 

고린도 교회의 분열은 신학적인 차이 때문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경쟁과 비교의식 때문입니다. 사회적인 분위기에 편승해서 교회 안에서도 분파에 따라 지도자를 중심으로 분열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의 문제점은 세상적인 삶의 원리의 방법을 교회 안에서도 동일하게 행했던 것입니다.

 

(1) 바울이 들은 것(11)

 

바울은 10절에서 전체적 권면을 했지만, 곧 바로 구체적 명령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 상황을 설명함으로써 바울 자신이 고린도 교회의 상황 인식과 그에 대한 권면의 적절함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합니다. 바울은 글로에Chloe의 집 사람들을 통해 정보를 받았다고 밝힙니다. 현대 성도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지만, 당시 고린도 성도들은 이름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정보의 신뢰성을 주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 분쟁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분쟁(分爭)'이란 단어의 원어 의미는 경쟁과 불화로 인한 갈등입니다. 이 단어는 바울이 교회 상황을 진단하는 3:3에 다시 언급되는데, 시기심과 연결되어 나옵니다. 결국 바울이 얻은 정보에 의하면 교회 분열의 핵심은 시기와 경쟁이 어우러진 비교의식이었습니다.

 

(2) 구체적인 상황(12)

 

본문애서 분열의 구체적인 모습이 제시됩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 분쟁은 어떤 이는 바울에게, 또 다른 이는 아볼로Apollos, 혹은 게바(베드로)Cephas에게 속한 자라고 말하고, 심지어 그리스도Christ에게 속한 자라고 말합니다. 자기와 관련된 지도자들을 내세워 서로 비교와 경쟁하여 자신의 우월성을 세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은 로마 식민 도시인 고린도에서 있었던 경쟁 분위기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고린도 학풍의 분위기가 수사학 학파들의 경우 제자들은 자기 선생을 변호하기 위해 상대 학파를 논쟁으로 공격하여 우위를 점하려 했습니다. 선생들 역시 더 많은 학생과 후원자를 얻기 위해 상대 학파의 지도자와 경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경쟁은 또한 도시 행정과 관련해 우위를 점하려는 정치 모임과도 관련 있었습니다. 만일 어느 모임이 경쟁을 통해 지방 총독이나 황제 앞에서 도시 행정관으로 임명되면 재정이나 명예와 관련한 기회를 얻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논쟁은 마치 오늘날 정치인들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그렇기에 당시 엘리트 계층은 경쟁을 사회생활의 필수요건처럼 여겼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교회 안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록 정치 요소는 아닐지라도, 교회의 지도자들을 통해 자신들을 우위에 두고 싶은 경쟁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에게 속했다고 말한 것은 모든 것을 다 이기고자 하는 표현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교회 안에 있던 엘리트 계층 사람들을 중심으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상의 삶의 원리와 형태가 교회 안에서도 여과 없이 그대로 적용되어 나타난 폐단입니다.

 

바울의 응답(13-17)

 

현란한 말이나 감동적인 언어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의 능력이 없는 것에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구원의 능력을 잃어버리는 빈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말의 지혜, 곧 인간적인 웅변술이나 철학과 사상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3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14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13-17)

 

성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세례를 받아서, 이제는 사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지도자한테 세례를 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이제는 그분처럼 자신을 죽이고 남을 높이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1) 반문(13)

 

교회 문제에 대한 바울은 대답하기 시작합니다. 세 가지 수사 질문으로 진행합니다. 첫 질문은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입니다. 그리스도는 한 개인을 하나님과의 새 언약 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열쇠입니다. 또한 그런 개인들이 모인 하나님이 백성 모임, 곧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가 경쟁으로 성도를 나누고 편애를 통해 몸을 찢었습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그 개념 자체가 부끄러운 것입니다. 아마도 그리스도를 들먹인 12절 마지막 표현에 대한 응답일 듯합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질문은 바울과 관련된 형태로 제시됩니다. 바울이 독자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또한 바울의 이름으로 성도들이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듣는 자들이 부정적으로 답하는 방식으로 질문함으로써 스스로 아니라고 대답하게끔 유도합니다.

십자가는 성도가 되는 과정에 대한 것이고, 세례는 하나님의 교회 구성원 되는 것과 관련 있습니다. 이 두 과정 모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바울을 그 과정 중심에 놓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렇기에 사람을 중심으로 한 경쟁적 분열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하나님 백성 됨의 모습과 거리가 멉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권면은 3장에서 제시됩니다.

 

(2) 바울과 세례(14-17)

 

바울은 13절의 세례 문제와 연결해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이 주제를 언급한 것은 독자들이 세례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과의 관계를 오해 혹은 왜곡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들은 세례의 과정을 마치 세상 학파에서 선생과 제자의 관계 혹은 정치 모임에서 후견인과 후원 받는 자의 관계가 맺어지는 것처럼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의 이해와 그로 인한 분열의 결과의 분명한 선을 긋습니다. 그의 의도는 몇 가지 표현을 통해 전달됩니다. 먼저 자신이 세례 준 사람이 적다는 것에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합니다. 또한 세례를 적게 준 목적이 누군가 자신의 이름으로 주었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적어도 자신이 세례 준 사람들은 경쟁의 분열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본인 역시 경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세례를 주지 않았음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비록 그리스보Crispus와 가이오Gaius를 언급한 후, 스데바나Stephanas의 집 사람들이 생각나 추가했지만, 그 외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말이 사실임을 부연합니다.

 

바울의 입장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은 17절 표현입니다. 자신이 왜 세례에 집중하지 않는지를 설명합니다. 소명과 그의 사역 내용과 방법 때문입니다. 그의 소명, 곧 그리스도가 자신을 보낸 것은 세례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례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부탁한 마지막 명령 속에 들어 있기는 하지만(마태복음 28:19), 그 자체가 핵심이 아닙니다. 구원은 세례가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에 회개와 믿음으로 응답함을 통해서만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의 복음 증거 내용과 방법도 다릅니다. 그는 말의 지혜로 하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말로 경쟁에서 이기려는 세상 방법으로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가 그렇게 했던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복음의 내용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7절 표현은 바울의 입장뿐 아니라 독자들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도 보여줍니다. 이 표현에 의하면 독자들의 문제는 세상에서 통용되는 말의 지혜를 통해 경쟁에서 이기려 하고 분열을 만든 것입니다. 세례도 그런 통로로 이용되었습니다. 그 주장 안에는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세상에 부합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17절에 근거한 구체적 설명은 18절부터 복음의 내용(18-31)과 절달 방식(2:1-5)을 언급하는 것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고린도 교회는 자기에게 세례를 준 지도자를 중심으로 분열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은 예수님만 높임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자신은 죽여서 지체를 살리고 세우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럴 때 한 마음과 한 뜻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당신 때문에 분열되었던 교회가 성령의 은헤로 하나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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