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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01-03)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십자가

고린도전서 1장 18-31절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 겉으로 보기에 무기력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잡아 죽이는 세력에게 힘으로 저항하지도 못하고, 지혜롭게 빠져 나가지도 못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강력한 능력이 있습니다. 죄와 사망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무력하게 만드신 하나님께서 하락하신 속죄의 능력이 있습니다.

  

  • 이제 바울은 17절에서 말한 복음의 내용과 전달 방식 중 복음의 내용에 대해 다룹니다. 특별히 세상이 무가치하게 여기는 십자가의 그리스도에게 집중합니다. 18-25절에서는 ‘우리’라고 세상의 이해와 다르게 하나님의 구원 방법과 ‘우리’가 전하는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26-31절까지는 ‘너희’라는 2인칭으로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독자들과 어떤 관계인지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방법과 ‘우리’가 전한 그리스도(18-25)

십자가에 대한 태도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십자가를 모르는 사람은 구원의 길을 알 수 없습니다. 세상적인 지식이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열어두신 길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또한 교회도 복음으로 형성하기 때문에, 당연히 복음을 모르면 교회를 모른 것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고린도 지역에 유행하던 다른 철학이나 영지주의 같은 종교가 혼합되어 있었습니다.

 

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18-25)

 

고린도 교회는 성도들은 너무 똑똑했습니다.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고 가장 우월하다고 여겼습니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선생들이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인간의 지혜를 폐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십자가를 제대로 알았다면 작시 어리석음을 먼저 보았을 것입니다.

 

(1) 십자가의 역설(18)

 

바울은 먼저 이유를 설명하는 접속사 ‘왜냐하면’을 사용하여, ‘십자가의 도’(로고스)라는 표현으로 앞부분과의 연결성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혔느냐?’(13)와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17)에서 말한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결에 복음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러한 연결은 이 부분이 교회 분열 상황과 관련 있으며, 왜 바울이 말의 경쟁이 아니라 복음에만 집중하는지를 이해하도록 이끕니다. 더 나아가 독자들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도 인식하게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바울은 십자가 메시지에 관한 대조로 설명을 시작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8) 십자가의 도가 미치는 영향에 관해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는 인간에게 ‘구분’을 가져다줍니다. 바울의 두 종류는 멸망하는 자와 구원받는 자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멸망하는 자들, 곧 하나님을 거절하는 세상에 속해 있기에 장차 심판받을 그들에게 십자가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구원과 멸망, 어리석음과 능력의 대조이며, 바울을 포함한 성도인 ‘우리’와 불신자 ‘그들’과의 대조입니다.

 

(2)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구원 방법(19-21)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과 인간의 지혜 사이에 있는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질문을 사용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조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지혜와 관련해 세상과 하나님을 대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지혜를 멸하시겠다는 이사야 29:14를 인용하여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라는 말씀을 필두로, 세상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인간 지혜로 알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오직 그분이 자신을 계시하고 구원 과정을 보이셔야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과정의 주도권을 갖고 계시며 그분만의 방법으로 진행하십니다. 그 방법은 사람의 생각과 예측을 뛰어넘습니다. 오직 선포(전도)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선포란 18절에 있는 십자가에 대한 말을 의미하고, 믿음이란 그에 대한 응답을 말합니다. 즉, 십자를 말하는 미련한 방법에 긍정적으로 응답하는 사람만 구원을 경험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세상 지혜를 무색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왜 십자가에 대한 선포를 미련한 방법이라고 한 겁니까? 이어지는 부분(22-25)에서 그 내용을 다룹니다.

 

(3) 세상의 추구와 ‘우리’의 전도 내용(22-25)

 

왜 ‘십자가의 도’가 세상 보기에 미련한 것인지를 설명하고 세상 반응과 대조되는 바울의 선포 내용을 서술합니다. 세상 반응과 관련해 바울은 유대인과 헬라인의 경우를 구분해 설명합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합니다.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역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증거를 구한다는 말입니다. 그들에게 십자가는 하나님의 표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강한 혐오감과 반대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인데(신명기 21:22-23),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당연히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한편, 지혜를 추구하는 헬라인들에게 십자가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철저한 실패이자 수치스러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우리’)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만 전합니다. 세상이 알 수 없는 진실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십자가 자체는 아무 의미 없습니다. 단지 끔찍한 죽음의 장소일 뿐입니다. 하지만 부활은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예수님의 존재가 새롭게 인식되고 이를 통해 그분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가 비로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 곧 그것을 믿는 자들에게만 경험되는 비밀입니다. 그렇기에 자기 지혜로 부활을 못 믿는 자들에게 예수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유대인과 헬라인을 막론한 모든 믿는 자들에게 그분은 하나님께서 능력이자 지혜입니다. 아쉽게도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세상보다 지혜롭고 그분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부연합니다. 그것이면 됩니다. 고린도 교인의 경우가 보증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독자들과의 관계(26-31)

갈등은 모두 서로 자신의 힘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생깁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인간의 능력을 폐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십자가를 제대로 알면 자신의 연약함을 제대로 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지체의 도움으로 산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26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26-31)

 

개인은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지도자를 따르면서 파당이 형성되었고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은 교회를 구성했지만, 하나님과 복음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일어나는 상황이었습니다.

 

(1) 독자들의 구원(26)

 

이전 상황 2인칭 지시어(‘너희’)를 통해 왜 십자가의 예수님만 하나님의 능력이고 구원인지를 독자들과 연계해 설명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형제들아’라는 호격과 ‘보라’라는 명령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 곧 독자들의 구원 경험을 상기시킵니다. 그들 모두가 세상 지혜와 능력이 탁월하거나 좋은 가문 출신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세상 최고의 사람들이 아니며, 세상 보기에 구원의 조건을 가진 자들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2) 하나님의 구원 방법과 이유(27-29)

 

독자들을 주어로 사용한 26절과 달리 27-28절은 하나님을 주어로 사용해 독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세상의 기대와 다름을 설명합니다. 세상은 능력과 지혜를 포함해 무엇을 가진 자를 선택합니다. 효용성 높고 어떤 결과를 산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인들 역시 그런 세상 속에 살고 있고, 세상의 선택을 추구하며 살려 합니다. 심지어 세상의 선택 방식을 교회에 도입하여 서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다릅니다. 세상에서 어리석은 사람들을 선택하고 연약한 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천하게 여김 받는 자들과 멸시 받는 자들, 심지어 없는 존재처럼 여김 받는 자들을 택하셨습니다. 세상 지혜나 능력이나 자랑을 무색하게 하고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아무 육체라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29). 하나님 대신 자신을 주인으로 삼는 것이 죄의 근원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는 방법에서도 그 죄의 오만함과 자부심을 완전히 꺾어버립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방법은 죄악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자들을 향한 사랑이기도 하고, 높은 마음 가진 세상 죄에 대한 정의로운 심판이기도 합니다.

 

(3) 하나님의 구원 방법의 결과(30-31)

 

독자들은 하나님의 정의와 은혜의 수혜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예수님와 독자와의 관계성을 통해 이를 표현합니다(30). 초점은 독자들의 상태입니다. 주절 안에 주어(너희)와 현재 상태 동사(에스테)를 통해 그들의 현재 모습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그들의 상태는 세 가지 표현을 통해 구체화합니다. 첫째, ‘하나님으로부터’입니다. 구원 과정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27-28절에서 언급한 세상과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의미합니다. 둘째, ‘그리스도 예수 안에’입니다. 구원 과정의 결과로서 하나님/예수님의 통치 안에서 그분과 관계 맺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독자들은 공의와 은혜라는 하나님의 구원 방법을 통해 현재 예수님의 통치 안에 있는 존재임을 말합니다. 1:9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와 독자와의 관계성을 묘사한 것과 일치합니다. 셋째,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결과로 얻게 된 상태입니다. 한편, 바울은 독자들 상태와 더불어 예수님이 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관계절을 통해 부연합니다(30).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 ‘우리’(바울과 독자들 모두)에게 지혜가 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셨으니).’ 독자들의 구원과 관련해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알 수 없는 하나님 구원 방식의 핵심이라는 말입니다. 결국, 이 부분에서 말하는 바는 독자들이 세상 방식이 아닌 십자가의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들이기에 세상 방식을 따라 사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 방식의 경쟁을 멈추고 오직 주님께만 집중해야 함을 전달합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공동체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세상의 능력을 이기고, 십자가의 지혜로 세상의 지혜를 이기는 공동체입니다. 십자가만이 갈등과 분열을 이기고 사랑으로 하나가 되게 합니다. 분열의 공동체에 없는 것이 바로 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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