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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01-01)

 

 


고린도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

고린도전서 1장 1-9절


 

당신에게 대통령 취임식 후 만찬까지 참석해달라는 초대장이 왔습니다. 이런 큰 행사에 초대장을 받았다면 얼마나 황송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천국잔치에 초대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죄인이 아닌 거룩한 사람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이제는 그에 걸맞게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성도들에게 가장 고민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합당하게 살아가야 하지만, 삶 속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이 편지를 보냈던 교회에 독보적인 교회는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무시하지 않고 문안합니다. 그는 고린도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증거 위에 굳게 서서 모든 은사에 부족함 없이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을 감사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에베소에 있던 소스데네(Sosthenes)는 고린도 교회에게 편지합니다.

  

거룩한 초대를 받은 교회(1-3)

그리스도인의 자기 정체성 인식은 모든 문제 해결의 실마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쁘신 뜻으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거룩한 교회(Holy Church)’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공동체는 세상의 공동체와는 다른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장해 나갑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룩해야할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1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1-3)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고린도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분당과 은사 남용, 부도덕 등 유난히 문제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먼저 그들에게 따끔한 회초리를 드는 대신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가섭니다. 고린도 전서를 읽어보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성도들을 향한 뜨거운 관심이 있었습니다.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감동이 됩니다.

 

⑴ 발신자(1)

 

먼저,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보내는 자신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을 ‘사도(使徒)’로 부르셨다고 소개합니다. 고린도 모든 성도들 또한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도(聖徒)’로 불러서 세우셨다고 합니다. 그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⑵ 수신자(2)

 

수신자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바울은 수신자를 문제가 많은 교회이지만 고린도 교회도 하나님의 교회임을 분명히 합니다.

 

본문을 통해 ‘교회(敎會)’를 정의해 보면, 첫째로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고,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룩해진 자들이며, 마지막으로 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께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잠시 고린도 도시는 무역항으로 풍요로운 도시였습니다. 무역이 매우 발달한 항으로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리스 철학에 기초한 스콜라 철학자, 시인, 수많은 상인, 무역업자들 그리고 퇴역 군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인종으로는 그리스인, 로마인 그리고 유대인까지도 합세한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다양한 인종만큼이나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인 영향을 받아서 고린도 문화를 형상해 갔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 만큼이나 많은 종교가 있어서 우상을 숭배하였고, 성적으로 타락한 도시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 사람들이 ‘당신은 고린도사람!’이라고 하면, 이 의미는 고린도 사람들처럼 방탕하고 음란하며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큰 욕이었습니다.

이러한 영향에 고린도 교회에도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했습니다. 그 고린도에 있는 문제들로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성도들끼리 분쟁이었고, 영적으로 점점 우상숭배 제물, 성적 타락, 은사 문제 등을 있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고 고린도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교회 안에 헤아릴 수 없는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바울이 전해 듣고 그는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자라도록 권면하기 위해 바울 쓴 편지가 바로 ‘고린도전서’입니다.

 

비록 고린도교회가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지만, 바울은 보이는 데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시각(視覺)에 기초하여 보았습니다. 문제점들이 많았지만, 고린도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로, 고린도 성도들을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게 된 성도’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부르신 거룩한 공동체며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도(聖徒)’란 하나님의 자비로운 부르심에 의해 거룩하게 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세상에 통용되는 인간적 모든 가치관을 뛰어 넘어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거룩한 초대를 통한 축복(4-9)

성도들이 온전하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베푸신 은혜 자체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의식과 부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정체성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고린도의 문제점은 이러한 교회와 성도에 대한 정체성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혼란이 있었습니다.

 

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9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4-9)

 

서신의 목적이 고린도교회를 바르게 고치는 것이지만, 다른 서신들과 마찬가지로 감사하는 부분을 담고 있습니다. 바울은 다른 교회들에 대해 감사하듯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로마서 1:8; 에베소서 1:16; 빌립보서 1:3; 골로새서 1:3; 데살로니가전서 1:2; 데살로니가후서 1:3; 디모데전서 1:12; 디모데후서 1:3; 빌레몬서 4 등). 책망보다 칭찬을 통한 권면이 인격적인 관계 형성과 변화를 가져옵니다. 고린도 교회는 가장 문제가 많은 교회였지만, 바울은 문제점들을 책망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에게 사랑의 대상이자 근심의 대상이었습니다. 바울은 교회와 스승이 아닌 아버지로서 관계합니다(4:14-15). 교회의 아비지인 바울은 잠시도 자녀인 고린도 교회에게서 마음을 뗄 수 없습니다.

 

(1)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이유(4)

 

바울은 인사말 이후에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언급합니다. 고린도 교회에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4) 감사합니다. 은혜란, 사람의 형편과 관계없이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계획을 따라 무엇인가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스르는 우상 숭배자들이었던 고린도 사람들을 부르시는 은혜를, 그리고 이 부르심에 더하여 신령한 선물을 주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4) 주어집니다. 그리스도 예수 바깥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은혜의 범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넘어서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효력이 있습니다.

 

(2) 감사의 이유에 대한 내용Ⅰ(5-7)

 

바울은 감사의 이유에 대해서 부연 설명하면서, 먼저 고린도 성도의 상태에 대해 집중합니다. 감사의 이유는 그들을 향한 은혜의 영역에 말과 지식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5)라고 ‘풍족’한 것에 감사합니다. 또한 그것으로 인해 그들 가운데 메시아에 대한 증거가 견고하게 확증되었습니다. 고린도는 그리스 철학의 근거지였습니다. 그리스 철학은 이성적으로 올바른 것을 판단하고 지혜를 사랑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언변에 능하고 그리스 철학에서 발생한 지식에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음으로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말합니다(7). 고린도 교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고린도 성도들은 은사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은사를 사랑했던 교회 중에 하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에 은사, 특히 진리 체계와 진리 이해의 은사를 풍성하게 주셨지만, 사람들은 이 풍요를 가난하게 만들었습니다. 십자가의 도와 하나님의 지혜(1:18,24)는 잊히고 풍요한 은사는 분쟁의 도구가 되고 맙니다(12:12이하). 이처럼 사실 감사할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의 삶을 보면서 당시 상황은 한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의 미래 거룩하게 변화될 모습을 보면서 감사했습니다.

 

(3) 감사의 이유에 대한 내용Ⅱ(8-9)

 

바울의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에 출발점을 둡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풍족한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것입니다(8). 성도들을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와의 교제 안으로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9) 구원의 과정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성도의 현재 삶에도 은혜를 베푸셔서 미래 완전함으로 연결시키시기에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얼핏 보기에 이런 감사 이유들은 고린도 교회들의 모습을 상당히 고무적인 것으로 보게 하지만, 사실 아픈 현실에 대한 반어적 진단이 담겨 있습니다. 서신 뒷부분에 나타난 교회의 현실은 5-7절의 감사의 내용과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말은 교만하여 교회를 어지럽히는 데 사용되었고(4:19-20), 지식도 자신을 합리화하는 도구였습니다(8:1,10-11). 주님과 연합하는 만찬은 우상 재물과 섞여버렸고(10:19-22), 성령의 은사 역시 교회를 분열시키는 요소가 되었으며(12-14장), 주님의 오심과 관련해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기도 했습니다(15장). 오히려 그들은 책망 받을 것이 많기에 주의 오심을 두려워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식으로 감사 이유를 기술한 것은 그들을 향한 바울의 사랑과 기대의 마음 때문이며, 몇 가지를 인식시켜주기 위해서입니다. 첫째, 비록 그들 개인과 공동체에 문제가 많지만 여전히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예수 안에 있는 존재임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수신자 소개 내용을 통해 전하려는 의도와 같습니다. 둘째, 그들에게 신자 삶의 중요 요소를 인식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과의 교제 안으로 부르심 받은 자들입니다. 기본적으로 주의 만찬을 통한 연합을 의미하지만(10:16-17) 교제란 일회적 사건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그 관계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는 그런 삶을 개인과 공동체적으로 만들어가고 세워주는 통로여야 합니다. 또한 그 과정은 시간적으로 과거의 구원과 현재 구원의 삶, 그리고 미래 구원의 완성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과 다른 가치로 살아야 합니다. 지금 은혜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예수와의 언약 관계를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자의 삶입니다. 셋째,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이 감사하는 것은 신자의 삶 자체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5절은 그 은혜의 풍성함을 강조하기 위해 ‘모든’이라는 표현을 세 번 반복합니다. 또한 8-9절에서 신자의 삶을 만들어가고 완성케 하신 하나님의 신실함을 말합니다. 모든 것이 그분의 은혜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꼭 기억해야 하고 그것으로 삶을 돌이켜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비록 문제 많은 교회지만 바울은 그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고 그 은혜에 성도들을 의탁합니다. 이런 면에서 바울은 귀한 사역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사람으로 초대하셨고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이제는 구원의 은혜를 만끽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흠잡을 곳 없는 거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바로 초대를 받은 성도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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