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02-02)
불의의 대가: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
아모스 2장 6-16절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세상의 힘이나 재물, 지식으로는 이를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날을 준비하며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의로움에 의지하여, 겸손하게 회개하고 의로운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 북이스라엘은 의인과 가난한 자를 팔며 힘없는 자를 핍박하고 음행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그들을 구해 내시고 아모리 땅을 차지하게 하셨건만, 그들은 선지자와 나실인까지 현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죄를 물으실 때에 목숨을 건질 자가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6-8)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탐욕과 불의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을 억압하거나 불의를 행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과 선택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 항상 점검해야 합니다.
6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7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8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6-8)
지금까지의 열방 신탁의 끝은 이스라엘입니다. 아모스는 여덟 번째로 심판을 외치는데, 청중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본문에는 두 종류의 이스라엘의 죄(6-12)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포(13-16)가 나타납니다. ‘은을 받고 의인을 판다’에서 ‘은’은 무엇이고, 어떻게 의인을 팔 수 있는지 묻게 됩니다. ‘은’은 재물과 정당하지 않은 뇌물을 뜻합니다. 상대방은 뇌물을 주고 불의한 요청을 하고, 받는 사람은 그 대가로 의인을 넘겨주어 판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법정 상황으로 보입니다. ‘의인’은 무고한 자를 일컫는 용어일 것입니다. 무죄를 선고 받아야 할 사람을 유죄로 모는 것은 죄악입니다. 재판장이 불의한 뇌물을 받고,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선포함으로 뇌물을 준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파는 것’은 앞 문장의 동의어 반복으로 보입니다. 즉 가난한 자가 무고함에도 불구하고 재판정에서 잘못된 판정을 받아 유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의인 대신 가난한 자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글자 그대로 무전유죄입니다. 그가 받은 신 한 켤레는 뇌물이지만, 이는 적은 뇌물을 받고 돈 없는 사람을 죄 있다고 함으로써 재판을 굽게 하는 현실을 풍자하는 것입니다.
7절에서 두 문장은 동의어 반복이라 볼 수 있습니다. ‘힘없는 자’는 ‘가난한 자’와 동의어로 신분이 낮은 자를 가리킵니다.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는 것’은 힘 있는 부유한 지주 계층이 법을 왜곡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적용함으로 없는 자들을 밟는 것입니다. 그들은 간 한 자들을 먼지처럼 여기 고운이 없는 그들을 경멸하며 마음대로 다루었습니다.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한다’도 왜곡된 판결을 하여 무고한 사람이 가난 때문에 곤경에 처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어 아모스의 두 번째 비판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니는 부자(父子)에 대해 언급합니다. 여자가 젊은 여자로 표현된 것을 보면 창기가 아니라 아마도 주인이나 주인의 아들에게 팔려 온 여자 노예일 것입니다. 경제적인 예속 상태를 악용하여 부자가 한 여인과 성관계를 갖는 것은 언약 위반입니다(레 18:7-8;19:20-22;20:17-21). 이런 위반은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율법에 따르면 가난한 자의 전당 잡힌 옷은 해지기 전에 돌려주어야 하며(출 22:26-27: 신24:12-13),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아야 합니다(신 24:17). 옷에 눕는다는 것은 가난한 자에게는 생존의 문제인 옷을 단지 일시적인 유희를 위하여 사용하는 악행입니다. 이는 그 옷을 돌려주지 않고 옷에 눕든지 거드름을 피우며 식사하든지, 성교를 즐기는 것입니다. 즉 옷을 전당 잡혀 밤을 추위로 지내는 가난한 자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이러한 행위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모든 제단 옆에서 한다는 말은 거리낌 없이 불의를 행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배가 윤리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란 세금을 내지 못한다고 대신 빼앗은 포도주일 것입니다. 그렇게 불법의 포도주를 마시며 기뻐하는 곳은 그들의 신전입니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으로 예배드리고 아무 거리낌 없이 벌금으로 받은 포도주를 즐기는 것입니다. 지배층은 가난한 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며 빼앗은 옷으로 사치하며, 궁핍한 농민들을 착취해 얻은 포도주로 낙을 누립니다. 그리고 화려한 예배를 드리며 자신들의 불의에 대해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은 채 자신들만의 천국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이스라엘의 죄(9-12)
우리도 종종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고 세상의 가치관에 따라 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하나님의 은혜에 걸맞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9내가 아모리 사람을 그들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였느니라 10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가 차지하게 하였고 11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실인을 일으켰나니 이스라엘 자손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그러나 너희가 나실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령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9-12)
6-8절이 하나님께 드린 화려한 예배 뒤에 숨겨진 백성들의 불의를 공격한 것이라면, 9-12절은 주어진 은혜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는 이스라엘 백성을 비판합니다. ‘아모리 사람’이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살던 민족들입니다. 아모리 족속은 키가 크고 강했으며, 굳건한 성읍에 살고 있었습니다(민 13:28, 31-33).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 나무같이 강력한 존재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모리 족속의 열매와 뿌리를 진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셨습니다. 또 아모리 사람들을 없애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살면서 선지자와 나실인을 세우셨습니다. 선지자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나실인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별된 이로, 시체를 만지지 않고 포도주를 가까이하지 않으며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사람입니다(민 6:1-12). 이들은 보통 사람보다 더 헌신적으로 하나님을 섬겨 백성이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소금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백성은 이렇게 구별된 이들이 그들의 일을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나실인에게 금하는 포도주를 먹게 하고, 예언자가 예언하지 못하도록 함으로 자신들이 하나님께 가는 길을 차단했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 선포(13-16)
하나님의 심판은 실제로 다가올 현실이며,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힘, 재물, 지식으로는 그 심판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날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의로움에 의지해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회개하고 의로운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13보라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내가 너희를 누르리니 14빨리 달음박질하는 자도 도망할 수 없으며 강한 자도 자기 힘을 낼 수 없으며 용사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으며 15활을 가진 자도 설 수 없으며 발이 빠른 자도 피할 수 없으며 말 타는 자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고 16용사 가운데 그 마음이 굳센 자도 그 날에는 벌거벗고 도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3-16)
강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백성을 누르는 강도는 곡식단을 가득 실은 수레가 흙을 무겁게 누르는 강도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을 누른다는 것은 백성을 한 번에 멸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상태를 유지하면서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는 멸망의 선포보다는 힘의 상실을 통한 고통이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이제 그 힘이 공급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달리는 재주를 가지고 빨리 달음박질하는 자도 도망할 수 없습니다. 힘이 강한 자도 힘을 낼 수 없습니다. 천하의 용사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습니다. 활을 가진 자, 발이 빠른 자, 그리고 말 타는 자조차도 목숨을 구할 수 없습니다. 또 용사 가운데 마음이 굳센 자도 벌거벗고 도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모스서에서 그날은 여호와의 날이며 심판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저 심판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불의에 대한 심판은 우리에게도 경고가 됩니다. 우리는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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