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18-02)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
사무엘하 18장 19-33절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는 수많은 사람을 살인한 유명한 악당 총잡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포악하기 때문에 그의 목에는 많은 포상금이 걸려 있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그 악당이 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지만, 한 소녀만은 슬퍼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울고 있었던 이유는 그 악당이 바로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때로는 좋은 소식이 개인에 따라 슬픈 소식이 되기도 합니다.
마하나임에서 모은 군대를 이끌고 압살롬의 군대와 싸우기 위해서 출정하려던 다윗은 신하들의 만류로 전쟁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다윗의 군대는 에브라임 숲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압살롬의 군대를 이기고 압살롬은 숲속을 헤매다 머리카락이 나무에 걸려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이를 안 입은 다윗의 명령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입니다. 그의 죽음으로 반란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전령의 선발(19-23)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승리의 소식을 듣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들이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습니까? 갖가지 이유를 대며 요압처럼 복음 전파를 막고 있진 않습니까? 복음을 맛본 우리는 아히마아스처럼 지금 당장 복음을 전하려 해야 합니다.
19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빨리 왕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 갚아 주신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20요압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 것이니라 왕의 아들이 죽었나니 네가 오늘 소식을 전하지 못하리라 하고 21요압이 구스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본 것을 왕께 아뢰라 하매 구스 사람이 요압에게 절하고 달음질하여 가니 22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다시 요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아무쪼록 내가 또한 구스 사람의 뒤를 따라 달려가게 하소서 하니 요압이 이르되 내 아들아 너는 왜 달려가려 하느냐 이 소식으로 말미암아서는 너는 상을 받지 못하리라 하되 23그가 한사코 달려가겠노라 하는지라 요압이 이르되 그리하라 하니 아히마아스가 들길로 달음질하여 구스 사람보다 앞질러가니라(19-23)
전쟁에는 승자가 없습니다. 아들과 아비의 전쟁에서 승리가 어디 있으며, 왕의 아들의 부고(訃告)를 전해야 하는 승리가 왕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들을 죽여야 이기는 전쟁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짓은 역사 내내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긴 자가 독식하는 세상은 정상이 아닙니다.
(1) 아하마아스의 자원(19-20)
압살롬이 죽음으로써 반란이 진압되자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이 소식을 왕에게 빨리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원래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정보를 다윗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으로 후새가 알려준 정보를 다윗에게 전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자 바로 다윗에게 알리겠다며 요압에게 허락을 구합니다. 기쁜 소식을 하루라도 빨리 왕에게 알리고 싶어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압은 오늘 소식을 전하지 말고 좀 기다렸다가 다른 날 전하라고 권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상황이 다윗에게는 그다지 반갑고 기쁜 소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록 압살롬을 이겨 전쟁이 끝나고 왕좌는 지켜냈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요압은 다윗이 압살롬을 사랑하고 그가 살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요압은 자신과 한편인 아히마아스가 혹시라도 왕의 아들의 죽음을 알려 왕의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려하여 아히마아스를 만류합니다. 요압은 다윗의 이런 간절한 마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될 압살롬을 가차 없이 죽여버린 것입니다.
(2) 구스 사람 전령(21)
대신에 요압은 구스 사람을 하나 뽑아서 다윗에게 소식을 전하라고 보냅니다. 이집트 남쪽 지역에 있는 구스는 현재의 수단으로 구스 사람은 외국인 용병이었습니다. 요압은 다윗이 사울과 이스보셋의 죽음을 알린 사람들을 처벌한 일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부하들이 압살롬을 죽였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다윗이 그 소식을 전한 사람에게 어떤 해를 가하거나 원한을 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혹시 처벌을 해도 무관한 외국인 용병 구스 인을 보낸 것입니다.
(3) 아히마아스의 두 번째 자원(22-23)
하지만 아하마아스는 이런 요압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자신도 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에 요압은 아히마아스에게 도대체 왜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고, 이 소식을 전해도 다윗은 상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합니다. 하지만 아히마아스는 이런 요압의 설득에도 계속해서 보내달라고 요청하였고 요압은 할 수 없이 허락합니다. 아히마아스는 허락을 받고 바로 달려가는데, 구스 사람이 가는 길과 다른 길로 빠르게 달려가서 구스 사람을 앞지릅니다. 대부분 학자들은 구스 사람은 지름길이지만 달리기 어려운 숲길을 택한 반면, 아히마아스는 좀 돌아가는 길이지만 달리기 쉬운 들길을 선택한 것으로 봅니다. 아히마아스가 이렇게 다윗에게 먼저 소식을 전하려고 애쓴 것은 좋은 소식을 전하여 상을 받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후에 그가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는 알리지 않는 것을 보면 이런 그의 생각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요압은 이런 아히마아스의 생각을 모르고 말린 것입니다.
다윗이 전쟁의 소식을 기다림(24-27)
우리가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매일 성경을 읽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더 분명히 할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적 곤고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 배고픔과 목마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만 해결됩니다. 한 주간의 삶이 아무리 고단해도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24때에 다윗이 두 문 사이에 앉아 있더라 파수꾼이 성 문 위층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홀로 달려오는지라 25파수꾼이 외쳐 왕께 아뢰매 왕이 이르되 그가 만일 혼자면 그의 입에 소식이 있으리라 할 때에 그가 점점 가까이 오니라 26파수꾼이 본즉 한 사람이 또 달려오는지라 파수꾼이 문지기에게 외쳐 이르되 보라 한 사람이 또 혼자 달려온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도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27파수꾼이 이르되 내가 보기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하니라(24-27)
아히마아스는 요압이 만류하는데도 승전보를 속히 전하고 상을 얻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압살롬의 신변에 대한 다윗의 질문은 회피합니다. 좋은 소식은 자기가 전하고 궂은 소식은 떠넘기는 비겁한 태도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이긴 소식이나 생존한 소식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입니다.
(1) 먼저 달려오는 사람(24-25)
그때 다윗은 성의 두 문 사이에 앉아 전쟁과 압살롬에 대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아히마아스가 마하나임 성 근처에 나타났고, 성문을 지키는 파수꾼이 그를 발견하게 됩니다. 누군가 혼자 열심히 달려오는 모습을 본 파수꾼은 다윗에게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사람이 오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고대 전쟁에서는 사람이 소식을 전달했기 때문에 먼저 사람을 보내어 승리와 패배의 소식을 알리고, 그 후에 본진이 왕궁으로 귀환하였습니다.
(2) 두 번째 달려오는 사람(26)
이렇게 한 사람이 열심히 달려 가까이 왔을 때, 파수꾼은 저 멀리서 또 한 사람이 달려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실도 왕에게 보고하자 다윗은 그 사람도 전령이라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3) 아히마아스(27)
처음 사람이 성에 가까이 왔을 때 파수꾼은 그가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라는 것을 알았고 이 사실을 다윗에게 알리자 다윗은 아히마아스가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좋은 사람이란 다윗에게 충성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충성스러운 사람이 열심히 달려오는 것은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아히마아스를 희망적인 마음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전령의 보고(28-33)
당신은 정말로 항상 기뻐합니까? 이 땅에는 희로애락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기쁘고 즐거울 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속상하고 슬플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속상하고 슬플 때에도 기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복음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생각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아는 자는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그 복음을 알려 줘야합니다.
28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아뢰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의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29왕이 이르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하니라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30왕이 이르되 물러나 거기 서 있으라 하매 물러나서 서 있더라 31구스 사람이 이르러 말하되 내 주 왕께 아뢸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하니 32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33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28-33)
다윗이 정말 궁금한 것은 승리 소식이 아니라 아들이 무사하다는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전사 소식을 듣지만, 그 소식을 전한 사자를 해할 수 없었습니다. 암논에 이어 사랑한 아들 압살롬까지 잃었습니다. 권력을 남용하고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지 않은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1) 아히마아스의 보고(28-30)
아히마아스는 왕에게 오자 샬롬을 외치고 땅에 엎드려 절합니다. ‘평강 하옵소서!’는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평강을 외친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표시로 그는 다윗이 물어보기도 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면서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를 왕의 손에 넘겨주셨다고 말합니다. 압살롬의 부대를 이겼다고 보고하는데, 아히마아스는 제사장으로서 전쟁 승리의 공을 여호와께 돌리며 감사의 찬양을 돌린 것입니다. 이런 승리의 소식에 다윗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대신 압살롬의 안부를 묻습니다. 이것은 다윗에게는 승리 소식보다는 아들 압살몸의 생사여부가 더 중요한 문제였음을 알려줍니다. 이에 대해 아히마아스는 답변을 회피합니다. 자신이 요압의 명령으로 소식을 전하러 떠날 때 어떤 소동과 웅성거림은 있었지만, 그것이 무슨 일인지 확인하지 못하고 요압의 명령을 따라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바로 뛰어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아히마아스의 대답은 곤란한 답변은 피하려는 술수입니다. 아히마아스는 왕이 아들의 죽음 소식을 좋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한 요압의 말에 안 좋은 소식은 구스 인이 전하게 하고 자신은 숭리의 좋은 소식만 전하여 왕의 환심을 사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스인을 앞질러 다윗에게 도착하여 마치 자신은 압살롬의 죽음을 미처 알지 못하고 다음에 도착하는 사람보다 먼저 출발한 것처럼 거짓말한 것입니다. 이런 아히마아스의 모습은 매우 영악하게 보이며 권력과 상에 대한 강한 탐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압살롬의 소식을 모른다는 아히마아스의 말에 다윗은 더 이상 질문하거나 아히마아스를 칭찬하지 않고 바로 구스 사람을 부릅니다. 현재 다윗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압살롬의 생사여부이기 때문입니다.
(2) 구스 사람의 보고(31-32)
부름을 받은 구스 인도 동일하게 승리를 전달합니다. 이어서 다윗은 그에게 압살롬의 안부를 물었고 구스인은 압살롬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알립니다. 앞을 대적하이 일어나는 모든 왕의 원수들은 그 청년처럼 되기 위한다는 말은 압살롬이 벌을 받아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스인은 다윗의 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용감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슬퍼하는 다윗(33)
압살롬의 죽음 소식을 들은 다윗은 몹시 괴로워하며 성문 위층으로 올라가 압살롬의 죽음을 애곡합니다. 그는 ‘내 아들 압살롬아’를 네 번이나 반복하여 외치고 자신이 대신 죽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며 깊은 슬픔에 잠깁니다. 다윗은 압살롬에 대해서는 사울과 요나단처럼 애가를 불러 죽음을 기념할 수도 없었고, 아브넬처럼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줄 수도 없었습니다. 비록 아들이지만 반역죄를 지은 죄인이기 때문에 왕으로서 그의 죽음에 대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다만 아버지로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슬퍼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은 이전에 아들을 잃고도 씩씩하게 목욕하고 식사하며 일상으로 바로 돌아온 중년의 자신만만하던 다윗의 모습과 대조됩니다. 현재 다윗의 모습은 가장 유능하고 아름다우며 장성하여 자신의 뒤를 이을 기둥 같은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져 슬퍼하는 노년의 다윗의 모습입니다. 그는 비록 하나님의 은혜로 왕좌는 지키게 되었지만,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을 잃음으로 상처뿐인 영광이 된 것입니다. 아마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을 애곡하면서 자신의 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가슴을 치고 통곡하였을 것입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가정에 이런 피비린내 나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다윗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 만큼 그에 대한 벌도 무거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식마저 더할 나위 없는 소식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패하고 있는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 나에게만 좋은 소식에 대해서 겸손해야 합니다. 미안해해야 합니다. 때로는 부끄러워하기도 해야 합니다. 참 복음은 자기를 버려 우리를 살리신 그리스도의 소식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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