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19-01)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려는 다윗
사무엘하 19장 1-15절
어떤 상황이 좋아도 마냥 좋아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슬퍼도 한없이 슬퍼만 할 수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인생은 남아 있고, 우리가 맺는 관계는 숱하게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할 역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얼마나 큰 괴로움 속에 있었고 어떤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전쟁 이후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왕위를 회복하는 과정의 첫 단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먼저 자기 병사들의 마음을 위로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느라, 자기를 따르는 군사들의 마음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요압의 충고를 받아들인 다윗이 마음을 추스르고 군사들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1-8a)
자식을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처럼, 자녀의 죽음은 부모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입니다. 아무리 자식이 원수이고 파렴치한 행동을 해도 부모의 사랑을 끊을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죄인을 대신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어찌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랑의 크기와 넓이를 생각한다면 용서 못할 사람이 없고 용납하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1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아뢰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2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3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4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5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 드리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6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7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하니 8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어떤 사람이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신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1-8a)
다윗은 아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아들 압살롬을 잃은 슬픔에서 일어나지 못합니다. 당연히 사람으로서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과한 슬픔은 정당화되지 못합니다. 아들의 죽음은 현실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와 다윗 왕조에게 주신 언약도 현실입니다. 감정은 억압의 대상은 아니지만 통제하지 않으면 모든 논리와 명분을 삼키는 괴물이 됩니다.
(1) 다윗에 대해 실망한 백성(1-3)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애곡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요압의 귀에 들어갑니다. 현재 요압은 아직 왕궁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전쟁터에서 부대를 정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소식이 요압뿐만 아니라 전장에 있던 모든 군사들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을 죽이고 반란군을 격퇴시켰다는 승리의 기쁨을 미처 맛보기도 전에 모두 슬퍼하고 애도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립니다. 군인들은 개선하지 못하고 전쟁에 져서 간신히 도망쳐 나온 부끄러운 병사들처럼 그렇게 조용히 성읍으로 돌아왔습니다.
(2) 압살롬을 잃은 다윗의 슬픔(4)
병사들이 성읍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다윗은 여전히 큰 소리로 울며 계속해서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죽은 아들을 위해 애곡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에 승리하고 왔는데도 아무도 환영하거나 승리의 기쁨을 나눌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모두 죄인처럼 쥐 죽은 듯 조용하게 성읍으로 귀환하였습니다.
(3) 요압의 충고(5-7)
이런 상황을 가장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은 바로 압살롬을 죽인 요압입니다. 요압은 다윗에게 가서 그의 행동이 전쟁을 마치고 온 군사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군사들이 압살롬의 손에서 왕과 왕의 아이들과 처와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하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이것은 만일 압살롬이 살아서 승리하였다면, 다윗과 그의 자녀들과 아내들을 살려두지 않았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요압의 말은 한편으로는 과장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입니다. 요압은 다윗이 왕을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왕을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신다고 하는데, 여기서 왕을 사랑하는 자는 요압과 다윗의 군사들이고 미워하는 자는 압살롬입니다. 왕에게 반역한 압살롬의 죽음을 애도하느라 왕을 위해 싸운 군사들을 외면하고 모욕하는 것은 왕을 사랑하는 자를 미워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요압은 사랑과 미움이라는 매우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다윗의 행동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현재 다윗의 태도가 다윗의 군사들에게는 매우 불합리하다고 말한 후에 요압은 극단적인 말로 다윗에게 화를 냅니다. 만일 압살롬이 살고 우리가 모두 죽었으면 왕이 좋게 여겼겠다고 말하며 왕을 몰아붙입니다. 그러고는 다윗에게 당장 나가서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라고 명령합니다. 만일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면서 오늘 밤에 왕 곁에 아무도 없을 것이며, 이제까지 겪었던 것보다 더 끔찍한 재앙을 겪게 될 것이라고 협박합니다. 이 협박은 다윗이 자신의 명령대로 하지 않으면 자신의 손으로 다윗을 왕위에서 끌어내리겠다는 것입니다. 요압은 다윗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압살롬은 반드시 살리라는 다윗의 명령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인 것이 바로 요압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다윗과 이스라엘 군대의 이런 우울한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요압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압은 자신이 압살롬을 죽인 사실은 다윗에게 숨기고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의 태도에 대해서만 화를 내고 있습니다. 요압의 입장에서 압살롬의 죽음에 다윗이 슬퍼하고 이를 보는 군사들이 죄책감을 느끼게 되면 압살롬을 죽여서 이런 상황을 만든 자신에게 모든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입장이 난처해져 다윗 왕국에서의 입지도 좁아지게 됩니다. 요압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압살롬을 죽였는데, 그로 인해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압은 비난의 화살을 다윗에게 돌리고 다윗이 잘못했다고 다그치며 만일 자신의 말을 안 들으면 가만히 안 있겠다고 협박한 것입니다. 현재 요압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군사들과 막 돌아온 상황이라 군인들의 신뢰를 깊이 받고 있기에, 다윗의 행동을 비난하며 군사들을 선동하여 다윗을 떠나게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아들의 반란으로 체면을 잃었고 전쟁터에 나가지도 않았기 때문에 군사들의 신뢰도 요압보다는 약했습니다. 요압의 협박은 단순한 으름장이 아니라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었습니다. 명령을 어긴 요압의 기세등등한 모습과 그런 요압에게 왜 압살롬을 죽였느냐고 항의 한마디 못하고 요압의 기세에 눌려 그의 말을 순순히 따르는 다윗의 모습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4) 백성들의 승리를 축하함(8a)
8절에서 다윗은 요압이 시키는 대로 일어나 성문에 앉아 모든 백성들이 자신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왕의 위치로 돌아와 자신을 위해 싸워준 백성들을 위로하고 승리를 축하하였다는 의미로 다윗은 아버지로서의 슬픔을 가슴에 묻고 다시 이스라엘의 왕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완전히 요압에게 눌려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권위 있고 위엄 있는 왕권을 회복한 것은 아닙니다. 압살롬의 반란으로 다윗 왕국에서 요압의 권력이 더욱 강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후에 다윗이 죽으면서 솔로몬에게 요압이 죗값을 치르게 하라고 유언하는 것을 보면 이후로 요압은 다윗이 손대기 힘든 권력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반란 세력의 지지를 호소함(8b-15)
전도와 선교를 하다보면 복음을 가부하고 외면하는 사람들로 인해 낙심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족들을 위해 기도할 때도 속히 응답되지 않으면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택한 자를 구원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실 것입니다. 다윗을 반역했던 유다 지파 사람들이 다윗을 맞으려 나온 모습을 통해 인간관계는 인내가 필요함을 볼 수 있습니다.
8…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9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이르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그 땅에서 나가셨고 10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11○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12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13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14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매 그들이 왕께 전갈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15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오니라(8b-15)
다윗은 자신의 혈육인 유다 지파를 도전하되 겸손하게 부탁하여 환궁 계획을 추진합니다. 요압을 대신하여 유다지파 출신의 장수 아마사를 군대장관으로 임명하여 유다 백성들에게 더 믿음을 줍니다. 새 시대를 위해서 과감히 자신을 낮추기도 하고 단호하게 끊어내기도 한 것입니다.
(1)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여론(8b-10)
전쟁이 끝난 후 압살롬에게 모였던 이스라엘 군대들은 모두 흩어져서 각기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압살롬의 군대가 완전히 해체된 것으로, 이것은 18:17의 말을 반복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이 문장을 반복하여 기록한 것은 이제 압살롬의 반란이 완전히 정리된 상황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다윗을 왕으로 모실 의논을 하게 됩니다. 10절의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압살롬도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라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왕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는 압살롬이 자신들의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압살롬은 하나님께서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기름 부음’이란 왕이 되었다는 상징적인 행동이지만,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전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의 진정한 의미는 여호와께서 그를 왕으로 선택하셨다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이 없는 기름부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들의 손으로 기름을 부었기 때문에 압살롬을 왕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압살롬이 죽자 다윗이 자신들을 원수들과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다시 다윗을 왕으로 섬기자고 합니다. 여기서 ‘변론하다’는 사람들이 격렬하게 토의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을 다시 왕으로 모시는 데, 이런 저런 의견들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살았던 실제 이스라엘 사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좀 더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상황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업적을 다시 기억하여 다윗을 다시 왕으로 모시기로 결정합니다. 사실 이들이 언급한 다윗의 업적은 다윗이 혼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다윗의 손을 통해 이루어 주신 업적들입니다. 결국 다윗이라는 위대한 왕도 하나님께서 안 계시면 참으로 연약하고 힘없는 존재라는 것을 다윗과 우리 모두에게 깨닫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다양한 도구로 쓰임 받고 있는 우리는 우리를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 유다 장로들에게 호소함(11-12)
요압의 협박에 압살롬의 죽음은 마음에 묻고 다시 이스라엘 왕의 모습으로 돌아온 다윗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웁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을 다시 왕으로 세우려는 것을 알고 자신도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연락하여 유다 장로들에게 왜 너희들은 왕을 왕궁으로 모시는 데 이스라엘보다 늦장을 부리느냐며 자신을 왕으로 다시 모시는 일에 유다 지파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합니다. 유다는 다윗이 속한 지파이고 처음으로 다윗을 왕으로 섬긴 지파입니다. 하지만 다윗 권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다윗을 배반하고 압살롬을 왕으로 섬김으로 반란의 진원지이며 핵심 세력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런 유다 지파를 처벌할 것인지 아니면 용서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유다의 장로들에게 유다와 자신은 골육 친척인 것을 강조하며 자신을 다시 왕으로 섬길 것을 촉구합니다. 여기서 다윗이 유다에게 골육 친척이라는 말을 쓴 것은 같은 지파라는 의미도 있지만 한 형제이고 한 핏줄이니 이전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같이 잘 지내보자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반역을 일으킨 유다를 다시 자신의 편으로 삼기 위해 유화정책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다윗이 유다에게 압살롬을 지지한 책임을 묻고 피의 복수를 선언하면 유다가 반감을 갖고 다른 왕을 선택할 수도 있고, 그러면 또다시 유다의 굴복을 받아 내기 위해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3) 아마사의 지지를 호소(13)
다윗은 압살롬의 군대장관이던 아마사를 불러 우리가 친척이 아니냐면서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장관이 되어달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보여주기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 맹세합니다. 아마사는 윗의 또 다른 누이 아비갈의 아들로서 요압과는 사촌지간입니다. 아마사는 현재 유다 지파와 예루살렘의 군권을 쥐고 있는 인물로 보입니다. 유다를 전쟁이 아닌 유화 정책을 통해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는 다윗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군권을 쥐고 있는 아마사를 용서하고 자신의 군대 통수권을 넘겨준다는 유화 정책을 폄으로써 무력 충돌 없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려는 것입니다.
(4) 유다 지파가 다윗의 귀환을 요청(14)
이렇게 다윗이 먼저 손을 내밀고 지지를 호소하며 반란에 가담한 죄를 묻지 않는 관용 정책을 폄으로써 유다 사람들은 다시 다윗을 지지하게 되었고 왕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와도 좋다는 소식을 보냅니다. 다윗은 큰 어려움 없이 다시 유다 사람들의 영접을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5) 요단에 도착한 다윗(15)
15절에서 다윗이 귀환하기 위해 요단을 건널 때 유다 사람들이 길갈에 모여서 다윗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을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이스라엘 내에서 또 다른 피의 숙청을 일으키지 않고 평화롭게 다시 왕으로 복귀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이런 결정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요압입니다. 요압은 반란군의 대장이었던 아마사를 자신을 대신해서 군대장관으로 삼은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후에 아마사를 죽입니다.
슬픔에 빠지면 모든 것이 그 문제에 전부인 듯 다가옵니다. 아직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많다는 것을 놓치고 그 문제에만 집착한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감정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감정에 삼키어서는 안 된다는 독한 조언이 약이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상황에 지지 않으실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니 다 끝난 듯이 여기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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