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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20-01)


다시 일어나는 반란

사무엘하 19장 40절-20장 13절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충신입니까? 우상숭배와 참된 하나님 경배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중심이 누구를 향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권력이 있을 때가 아니라 권력이 없을 때, 혜택이 많을 때가 아니라 희생을 요구할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갈립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진압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 유다 지파를 자신의 측근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을 이후 왕국 운영의 중심 세력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베냐민 지파를 포함하여 다른 지파들이 권력 구도에서 멀어지게 되자, 세바가 그들을 충동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아마사를 반란 진압군의 최고사령관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압이 아마사를 죽인 후, 다윗의 모든 군대를 이끌고 세바를 추격하였습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분쟁(40-43)

성도는 세상 사람들처럼 기득권을 지키며 자기를 높이려는 욕망을 가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싸워야 합니다. 먼저 교회에 출석했다고, 직분이 있다고, 많은 헌신을 했다고 해서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 생활한 지 얼마 안 되고, 많은 일에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볍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기득권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자녀요 그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뿐입니다.

40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과 함께 건너니라 41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 왕께 아뢰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 하매 42모든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 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얻어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느냐 43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40-43)

다윗이 전쟁에서 이기자 얼마 전까지 압살롬에게 충성 경쟁하던 자들이 서로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겠다고 겨룹니다. 유다 지파는 혈육이라고, 열 지파는 수가 많다고 하여 자신들이 자격 있다고 주장합니다. 참 꼴불견입니다. 다윗이나 하나님보다 자기 이익을 더 중시하는 자들입니다.

(1) 다른 지파들의 불만(40-41)

다윗은 이제 무사히 요단강을 건너 백성들이 모여 있는 길갈로 가게 되는데, 이곳에서 갈등이 다시 시작됩니다. 길갈에서 유다 백성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다윗을 맞이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다 사람들이 다윗을 영접하러 나온 모습을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매우 불쾌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다윗에게 유다 지파 사람들이 왕과 왕의 집을 도둑질하여 요단강을 건너도록 했다고 불평합니다. 이것은 유다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집을 예루살렘으로 모셔오는 데 적극적으로 나선 것에 대해 불만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이 먼저 유다 지파 사람들에게 연락하여 자신을 데리고 가라고 한 것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을 모셔 오기로 의논하는사이에 다윗에게 반역을 일으킨 유다가 다윗을 모셔오는 것을 선전하고, 측근처럼 행동하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에는 매우 거슬렸던 모양입니다.

(2) 유다 지파의 반박(42)

이에 유다 사람들은 자신들은 왕과 가장 가까운 친족이기 때문에 다윗을 모실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유다 사람들의 말은 19:12에서 다윗이 유다 장로들에게 한 말입니다. 다윗이 유다 사람들을 회유하기 위해 한 말을 유다 사람들은 다윗과의 친밀한 관계를 표시하기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왕에 대한 권한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왕에 대해 열 몫을 가졌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현재 열 지파가 이스라엘로 모였기 때문입니다. 열 지파에는 베냐민 지파가 포함되고 유다 지파에는 시므온 지파가 흡수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유다 지파와 다른 지파들 사이의 갈등(43)

이스라엘 왕국에서 열 지파가 모여 있는 이스라엘의 영향력이 더 강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유다가 독단적으로 행동한 것을 자신들을 무시하는 행위로 간주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자신들의 혈연관계를 더욱 주장하였고, 이런 유다의 주장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이 논쟁으로 분노를 느낀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바를 중심으로 다시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서로의 권리를 주장하며 싸우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은 원래 하나님과의 언약을 중심으로 열두 지파가 모인 공동체였으며, 하나님의 언약 아래 바로 서 있을 때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서로 한 형제로 여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무너지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사라진 곳에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적들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세바의 선동으로 사람이 떠나감(1-3)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형제를 비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교회의 정당한 권위에 불순종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도는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바른 말씀이 선포되고 행정이 정당하게 운영되기만 한다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할지라도 직분 맡은 자를 함부로 비방하지 않아야 합니다.

1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바인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이었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2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르나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왕과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따르니라 3다윗이 예루살렘 본궁에 이르러 전에 머물러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 열 명을 잡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고 그들에게 관계하지 아니하니 그들이 죽는 날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내니라(1-3)

세바가 북쪽 지파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킵니다. 유다 지파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듯하니 다시 다윗에게 반기를 든 것입니다. 충성심은 없고, 오직 자신들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열방의 왕을 원하는 자들일 뿐이었습니다.

(1) 세바의 선동(1)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다 사람들이 누가 다윗 왕국에서 더 큰 권리를 갖는가 하는 문제로 분쟁이 일어났을 때, 유다 사람들이 주장을 강하게 펼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상당히 불쾌해 하였습니다. 이때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이런 혼란을 이용하여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를 불량배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다윗의 입장에서 다윗을 대적하는 인물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만을 하나님 나라인 이스라엘 왕으로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세바는 나팔을 불어 다윗에게 맞설 군대를 소집합니다. 그리고 연설을 통해 우리가 다윗과 나눌 분짓도 그에게서 받을 유산도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이제 자신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에게 각자의 장막으로 돌아가라고 연설합니다. 여기서 각자의 장막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더 이상 다윗을 따르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런 세바의 선동에 불만에 가득 차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에게서 돌아서서 세바의 반란에 동참하기로 결심합니다.

(2) 분열된 왕국(2)

이런 상황에서 오직 유다 지파만 다윗을 따랐고, 결국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모습은 다윗이 처음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대조를 이룹니다. 다윗은 처음에 헤브론에서 유다 사람의 지지를 받아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넬과 이스보셋의 죽음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고, 유다와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지 속에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압살롬의 반란 이후 상황은 바뀌어 다윗이 처음 왕이 되던 상황으로 돌아가 오직 유다 사람의 지지만을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쓸쓸하게 돌아왔습니다. 다윗이 이런 결과를 얻게 된 이유는 다시 왕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의견을 묻고 도우심을 구하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분명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반란군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압살롬의 죽음 이후 또다시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수완을 이용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려 하였고, 일부 성공을 거두는 듯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수완은 이해관계가 부딪히자 금방 한계를 드러내고 또다시 갈등과 반란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정치적 수완과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이런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3) 다윗의 후궁들(3)

다윗이 예루살렘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압살롬에게 강간당한 열 명의 첩을 감시가 붙은 집 즉 감옥같은 곳에 감금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녀들을 압살롬의 반란에 동조한 죄인들처럼 다루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녀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서 기본적인 부양은 하였지만 더 이상 아내로 여기지 않았고, 그들과 관계도 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가두어 두었습니다. 이런 모습에 대해 그녀들이 ‘생과부’가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은 구약에서 여기에 단 한번 나오는데 생과부는 다윗이 그녀들을 가혹하게 대했다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그녀들의 모습은 암논에게 강간당하고 압살롬의 집에서 외롭게 지내던 다말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남성들의 힘과 폭력에 의해 또 죄 없는 여성들이 희생당하게 됩니다. 다윗이 여성에게 매정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압살롬의 군대장관으로 반란에 앞장섰던 아마사까지 군대장관으로 등용한 반면 힘없는 여성들은 죄인 취급하며 가혹하게 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을 보면 그가 하나님의 인정받은 인물이라 해도 가부장적인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다윗의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은 즐겁고 행복하고 축복이 넘치는 귀환이 아니었습니다.

 

군대를 파견하는 다윗(4-10)

 

교회가 지금 말씀을 올바로 가르치고 있습니까? 깨끗한 삶을 통해 세상의 불의를 드러내고 있습니까? 교회는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등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명백히 선포해서 의와 불의를 드러내야 합니다. 빛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세상에 거룩한 삶이 무엇인지 보여줘야 합니다. 만약 세상이 행하는 죄에 은근슬쩍 동참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그것을 책망해야 합니다(엡 5:11). 모든 것을 아시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하나님을 마땅히 두려워 해야 합니다(딤후 4:1).

4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 일 내로 유다 사람을 큰 소리로 불러 모으고 너도 여기 있으라 하니라 5아마사가 유다 사람을 모으러 가더니 왕이 정한 기일에 지체된지라 6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주의 부하들을 데리고 그의 뒤를 쫓아가라 그가 견고한 성읍에 들어가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 7요압을 따르는 자들과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과 모든 용사들이 다 아비새를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으려고 예루살렘에서 나와 8기브온 큰 바위 곁에 이르매 아마사가 맞으러 오니 그 때에 요압이 군복을 입고 띠를 띠고 칼집에 꽂은 칼을 허리에 맸는데 그가 나아갈 때에 칼이 빠져 떨어졌더라 9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내 형은 평안하냐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와 입을 맞추려는 체하매 10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하지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의 배를 찌르매 그의 창자가 땅에 쏟아지니 그를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4-10a)

아마사에게 군대장관 자리를 빼앗기고 전쟁의 지휘권도 동생에게 빼앗긴 요압은 다윗의 신임을 얻는 아마사를 비겁하게 속여서 죽입니다. 그에게 관심은 왕도 왕의 나라도 아닙니다. 자신의 안위와 권력뿐입니다. 세바가 외부의 떠들썩한 반란자라면, 요압은 내부의 은밀한 반란자였습니다.

(1) 진압군 조직(4-5)

예루살렘에 돌아온 다윗은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합니다. 일단 아마사에게 유다 사람들 중에서 자원자들을 모아 자원군을 만들라고 지시합니다. 다윗은 아마사를 자신의 군대장관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준 것입니다. 하지만 시일이 지체되자 자신의 군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합니다.

(2) 아비새의 지원 부대(6-7)

그는 아비새를 불러 군대를 이끌고 세바를 추적하라고 명령합니다. 출정이 더 늦어지면 세바가 든든한 성읍들을 점령하게 되고, 그러면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반란을 빠른 시간 내에 제압해야 한다는 이런 계획은 아히도벨의 계획을 기억나게 합니다. 다윗이 요압이 아니라 아비새를 부른 것을 보면 요압의 지위가 강등되어 아비새 밑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은 최고 군대장관의 지위는 아마사에게 주었고, 요압의 군대는 아비새의 손에 주었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후에 요압이 명령에 불복하고 압살롬을 죽인 것을알고 강등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7절에서 아비새는 요압이 이끄는 정규군과 다윗의 친위 용병부대인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을 이끌고 세바를 쫓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출발합니다.

(3) 아마사를 죽인 요압(8-10a)

아비새가 이끄는 군대가 출발해서 기브온 근처에 있는 큰 바위에 이르자 그곳에서 아마스를 만나게 됩니다. 아마스는 아비새가 군대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서 자신이 모은 군대와 함께 합류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사를 본 요압은 허리에 찬 칼을 떨어뜨리고 아마사에게 다가가 인사하기 위해 입을 맞추는 체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칼로 아마사의 배를 찔러 죽입니다. 요압의 칼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본문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요압이 아마사를 죽인 장면은 사사기 3장에서 에훗이 에글론 왕을 죽인 장면과 유사합니다. 이런 유사성을 통해 아마사가 눈치 채지 못하게 요압이 왼손에 단검을 숨기고 있다가 왼손으로 단번에 아마사의 배를 찔러 죽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요압의 행동은 그가 아마사를 우발적으로 죽인 것이 아니라 죽일 기회를 엿보다 계획적으로 죽인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평화를 말하며 인사하는 척하다가 죽인 것은 아브넬을 죽일 때와 유사합니다. 요압은 자신과 적으로 싸웠던 아마사 때문에 군대장관에서 밀려난 것에 원한을 품고 아마사를 죽인 것이고, 이것은 다윗에 대한 항의의 행동입니다. 이렇게 요압은 점점 더 다윗이 통제하기 어려운 인물이 되어가고 있으며 다윗의 리더십에 치명적인 흠집을 내고 있습니다.

 

선동으로 재기하는 요압(10b-13)

 

성도는 고난을 받는 일이 생길지라도 불의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특히나 교회 안의 범죄라면 죄의 경중에 따라 공정하게 치리하도록 교회에 요구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꿩 잡는게 매’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하나님께서 세운 말씀의 권위를 멸시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불의를 책망하고 공의로운 판단을 시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10…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을새 11요압의 청년 중 하나가 아마사 곁에 서서 이르되 요압을 좋아하는 자가 누구이며 요압을 따라 다윗을 위하는 자는 누구냐 하니 12아마사가 길 가운데 피 속에 놓여 있는지라 그 청년이 모든 백성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아마사를 큰길에서부터 밭으로 옮겼으나 거기에 이르는 자도 다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 옷을 그 위에 덮으니라 13아마사를 큰길에서 옮겨가매 사람들이 다 요압을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아가니라(10b-13)

 

요압의 전형적인 비열한 수법(3:27: 삿 4:19-22)으로 아마사를 제거합니다. 아브넬을 죽이고 압살롬을 죽일 때처럼 자신의 야망을 거스르는 자를 제거하는 데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고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세바가 외부의 반란자라면, 요압은 내부의 은밀한 반란자였습니다.

(1) 병사의 선동(10b-13)

요압은 아마사를 죽인 후 부대를 끌고 자신이 주도하여 세바를 쫓으러 출발합니다. 본문에서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라고 표현한 것은 이제 부대의 주도권이 요압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압은 자신의 부하 하나를 아마사의 시체 곁에 남겨두고 아마사의 시체를 보고 놀라며 주저하는 유다의 군사들에게 요압 자신을 따르라고 선동합니다. 이미 아마사는 죽었기 때문에 이제는 요압을 따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아마사는 유다 군대의 지휘관이었기 때문에 유다의 군사들은 아마사의 죽음을 보고 두렵고 혼돈에 빠졌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본 요압의 부하는 아마사의 시체에 옷을 덮고 길에서 옮겨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2) 요압의 재기(12-13)

이렇게 요압은 또다시 다윗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살려준 인물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차 없이 죽이고 자신의 권력을 다시 회복하였습니다. 한편으로 아마사의 비참한 죽음은 그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다윗 편에 서지 않고 압살롬 편에 서서 다윗을 대적한 하나님의 벌이었습니다.

요압은 다윗 왕국에서 다윗의 반대자를 심판하는 하나님의 칼 역할을 하였지만, 정작 요압 자신은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욕심을 위해 움직이는 요압의 손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자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된 요압도 후에 다윗의 유언에 의해 솔로몬의 손에 죽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열과 다툼, 은밀한 죄악의 위험에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키십니다. 유다 지파와 북쪽 열 지파 모두 다윗이나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보다 그가 차지한 권력을 더 동경했습니다. 결국 충성 경쟁에서 밀리자 북쪽 지파들은 세바와 반란을 일으킵니다. 요압은 어떻습니까? 전쟁 공로를 앞세워 교만해졌고, 그 권한을 사적 복수에 악용한 내부 반란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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