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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20-02)


위기 때에 있어야 할 지혜

사무엘하 20장 14-26절


세상은 힘을 숭상하는 자들의 놀이터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다 되었다면 공멸하였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이 유지되어온 것은 힘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세상을 살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주권자이심을 믿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맑은 날에는 우산의 필요성은 잘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평소에는 지혜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지혜는 그 힘을 발휘해서 많은 사람들을 살립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킨 세바를 잡기 위해 아마사에게 유다 사람들을 모아 군대를 소집하라고 명령하지만, 이것이 지체되자 아비새에게 세바를 잡으라고 다시 명령합니다. 아비새와 함께 기브아에서 아마서를 만난 요압은 아마사를 만나자 인사하는 척하며 아마사를 죽입니다. 그리고 군권을 장악한 요압은 세바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그 사이에 세바는 온 이스라엘을 다니며 군사를 모아서 아벨 성읍에 진을 치게 됩니다.

 

요압이 아벨 성을 파괴하려고 함(14-15)

하나님꼐서는 충성된 일꾼을 세워서 교회를 지키십니다. 참된 성도라면 교회의 어려움을 수수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애통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자가 참된 일꾼입니다.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고 통곡하며 부르짖은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14세바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다녀서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도 다 모여 그를 따르더라 15이에 그들이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세바를 에우고 그 성읍을 향한 지역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요압과 함께 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14-15)

세바가 아벨과 벧마아가에 있는 성읍에 들어가 숨고 성문을 닫자 요압은 토성을 쌓아 성벽을 하려고 합니다. 그 성읍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반란군을 진압하여 다시 옛 세력으로 회복하려는 관심뿐입니다. 주님을 위한 일이라고 다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진화를 물으십니다.

(1) 세바 반란군의 동향(14)

요압이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 아마사를 죽이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세바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지역 가운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요압은 세바를 쫓아 아벨로 갑니다. 여기부터 세바를 상대하는 인물은 다윗이 임명한 아비새가 아닌 요압으로, 그는 아마사를 죽이고 동생 아비새를 대신하여 다윗 군대의 군권을 손에 쥔 것을 보입니다. 아벨은 홀레 호수에서 북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성읍으로 여겨집니다. 벧마아가는 아람에 속한 마아가 왕국의 도시이면서 아벨과 매우 가까이 있었을 것입니다. 흔히 아벨 벧마아가로 두 성읍을 붙여서 부르기도 헸습니다(20:15; 왕상 15:20; 왕하 15:29). 베림은 한 지역의 이름일 것입니다. 이 지역 역시 아벨 주변일 것으로 추측되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 요압의 포위(15)

세바가 어떤 의도로 아벨 성으로 들어갔으며 아벨 사람들이 세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여기에 이르렸을 때는 사람들이 이미 상당수 모여서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요압의 군대는 아벨 벧마아가에서 세바르 가두고 성을 행햐 해자를 메우는 토성을 쌓았습니다. 요압과 함께 있는 모든 군사가 토성을 이용해 해자를 넘어가, 성벽을 쳐서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그는 세바를 잡기 위해 이스라엘 성 하나를 완전히 파괴하려고 한 것입니다.

 

아벨의 지혜로운 여인의 연설(16-19)

지혜의 말씀으로 세우시고 보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검을 통해 교회를 수호하고 악한 세력을 무너뜨리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교회는 진리의 말씀에서 떠나 세속적 가르침을 따를 때 무너집니다. 각종 이단이 교회 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피차 치열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며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16그 성읍에서 지혜로운 여인 한 사람이 외쳐 이르되 들을지어다 들을지어다 청하건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 하라 17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이르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하니 대답하되 그러하다 하니라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하니 대답하되 내가 들으리라 하니라 18여인이 말하여 이르되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19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거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머니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 하니(16-19)

요압의 무자비한 계획에 한 지혜로운 여인은 부드럽게 항거합니다. 자기 목적만 보고 밀어붙이는 요압의 혐의 정치가 여호와의 유업을 간직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한 무명 어머니의 목소리 앞에서 꺾입니다. 평화와 하나님의 유업을 짓밟는 세력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1) 요압과 만난 지혜로운 여인(16-17)

이렇게 아벨 성이 파괴될 위험에 처하게 되자 이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한 인물이 성읍을 대표하는 협상가로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지혜로운 여인’으로 표현된 한 이름 없는 여성입니다. 이 표현은 드고아의 지혜로운 여인과 동일한 표현입니다. 이 여인은 성읍에서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반복적으로 소리를 치며 요압에게 자신의 말을 듣기 위해 가까이 오라고 요청합니다. 이 모습은 잠언 8:6에서 지혜가 길 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서 성문 결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문에서 사람들을 부르며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외치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리고 요압은 이 지혜로운 여인의 외침을 듣고 그녀의 말을 따라 그녀에게로 다가갑니다. 아마도 지혜로운 여인은 성벽 위에서 외치고 있었고, 요압은 그녀의 말을 듣기 위해 성벽으로 다가간 것입니다.

(2) 지혜로운 여인의 질문(18-19)

이렇게 요압을 가까이 오게 한 지혜로운 여인은 자신을 ‘당신의 여종’으로 매우 겸손하게 표현하며 부드러운 말로 협상을 시작합니다. 이것은 아비가일이 다윗과 협상하기 위해 자신을 ‘여종’이라고 표현한 것과 유사합니다(삼상 25:24). 하지만 부드러운 시작과 달리 그녀의 말은 매우 논쟁적이며 훈계조입니다. 아벨의 여인은 네 가지 이유로 아벨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 첫째 아벨이 유서 깊은 지혜의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아벨의 지혜로운 여인은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라는 속담으로 말을 시작합니다. 아벨이 옛날부터 지혜 전이 있는 도시로 이곳에 지혜로운 조언을 듣기 위해 많이들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끝내었다는 말은 그곳에서 조언을 구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아벨이란 도시는 지혜가 매우 깊고 풍부하고 유용하며 이스라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여 아벨을 공격하는 것은 잘못임을 일깨웁니다. 둘째로, 자신은 충성되고 평화롭게 이스라엘의 통치를 받는 백성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현재 다윗 왕권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천명한 것으로 다윗 왕권을 지지하는 자신들을 죽이는 것이 정당한지를 간접적으로 물은 것입니다. 셋째로, 이스라엘 중에 어머니 같은 성음을 파괴하려는지 묻습니다. ‘어머니 같은 성읍’은 ‘성읍, 즉 이스라엘 중에 어머니’라는 뜻으로 이것은 아벨이 이스라엘의 어머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불린 사람은 사사 드보라가 유일한데, 그녀는 선지자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신앙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을 올바로 재판하였으며, 또한 이스라엘을 적의 손에서 구원해낸 사사입니다. 드보라에게 와서 재판을 받았던 것처럼 문제가 생기면 아벨에 와서 물어보아 해결 받고 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어머니라는 것은 이스라엘을 지혜로 교육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의미합니다. 넷째로, 아벨은 ‘여호와의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기업이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그곳에 살도록 주신 곳이므로 함부로 파괴하거나 빼앗거나 팔거나 해서는안 되는 장소다. 아벨의 지혜로운 여인은 아벨을 파괴하는 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어기는 행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녀의 말은 여호와의 율법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에만 골몰하는 요압에게 그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직언한 것입니다.

 

세바의 죽음(20-22)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 세상의 핍박과 교회의 타락을 막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핍박과 어려움을 이겨 내야 합니다. 쭉 성경을 품에 안고 순교의 길을 걸었던 신앙의 선배들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의 능력이 세상을 이깁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요압과의 담판에서 요압의 행동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려는 행동이라고 호소함으로써 요압을 물러나게 만듭니다.

20요압이 대답하여 이르되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삼키거나 멸하거나 하려 함이 아니니 21그 일이 그러한 것이 아니니라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그의 이름을 세바라 하는 자가 손을 들어 왕 다윗을 대적하였나니 너희가 그만 내주면 내가 이 성벽에서 떠나가리라 하니라 여인이 요압에게 이르되 그의 머리를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어던지리이다 하고 22이에 여인이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가매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진지라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에게 나아가니라(20-22)

세바가 여인의 지혜 앞에서 머리가 베입니다. 허망한 인생입니다. 세바는 다윗과 함께할 ‘분깃이 없다’고 한 자신의 말처럼 스스로 하나님 나라 분깃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유업을 기억하고 소중히 여긴 아벨 성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1) 요압의 대답(20)

요압은 이제야 자신의 행동이 매우 심각한 죄라는 것을 인식하고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그런 의도를 가지고 행동한 것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합니다. 이런 반복적인 부인은 요압이 아벨의 여인의 공격에 당황했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아벨의 지혜로운 여인은 요압의 어리석은 생각을 깨닫게 한 것입니다.

(2) 요압의 제안(21)

요압은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후 단지 세바가 다윗에게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를 잡으려고 하는 것이니 그만 넘겨주면 떠나겠다고 협상합니다. 무조건 공격하여 다 죽이려던 요압이 세바만 넘겨주면 물러가겠다고 한 발 물러선 것입니다. 압살롬과 아마사도 죽이는 등 다윗의 명령도 무시하던 요압이 아벨의 여인의 권위 있는 말에 승복하고 한발 물러선 것입니다.

(3) 지혜로운 여인의 설득(22)

이에 아벨의 여인은 요압의 협상을 받아들여 세바의 머리를 성벽에서 던져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 여인은 지혜로 성읍 사람들을 설득하였고 마침내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져주었습니다. 요압은 성읍에서 물러가고 아벨은 무사하게 됩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아벨의 지혜로운 여인의 모습은 그녀가 아벨의 지도자였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녀는 성읍을 대표하는 지도자로서 요압의 공격의 부당성을 폭로하며 협상하였으며, 요압의 말을 듣고 세바의 머리를 넘겨주는 결정을 내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결정을 관철하기 위해 아벨의 시람들을 설득합니다. 결국 모든 일이 그녀의 결정대로 이루어집니다. 아무도 제지하거나 거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왕의 심복인 군대장관 요압조차도 그녀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성 지혜자가 한 지역의 지도자 역할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벨의 지혜로운 여인으로 인해 요압은 어리석은 행동을 멈추었고, 아벨은 전쟁과 살육과 파괴를 피할 수 있었으며, 다윗 왕은 자신의 백성을 학살하였다는 악평을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세바를 제거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제압하고 다시 다윗 왕권을 든든히 세우게 됩니다.

 

조직 개편하는 다윗(23-26)

성도는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사용해서 교회가 온전히 모습을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가르치는 은사를 가졌다면 다른 사람이 말씀을 깨닫도록 가르치며 은혜를 나눠야 합니다. 다스리는 은사를 가졌다면 교회가 질서 가운데 움질여 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공동체를 위해 쓰도록 주신 은사이므로 자신이 받은 대로 풍성히 나워야 합니다.

23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지휘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지휘관이 되고 24아도람은 감역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25스와는 서기관이 되고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 26야일 사람 이라는 다윗의 대신이 되니라(23-26)

이 단락은 다윗의 신하들의 명단으로 두 명의 군대 지휘관인 요압과 브나야, 두 명의 민간 관리인 아도람과 여호사밧, 그리고 두 명의 제사장인 사독과 아비아달이며 스와는 서기관으로, 이라는 대신으로 언급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압이 군대 최고 책임자로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아마도 요압은 아마사를 죽이고 세바의 반란을 진압한 뒤 다시 다윗 부대의 군대장관로서 권력을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 신하들의 명단은 압살롬과 세바의 반란으로 어수선했던 정국이 다시 정상화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다윗 신하의 명단을 끝으로 다윗 왕의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21-24장은 부록으로 다윗이 다스리던 시대에 일어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모아놓은 모음집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시작한 다윗 왕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큰 은혜를 입었지만, 그의 말년은 하나님께서 그와 동행하시는 모습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다윗도 하나님께 의지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끝까지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은 사울처럼 왕위에서 내쫓지 않으시고 후계자도 준비해주심으로 다윗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셨습니다. 결국 인간이 의지할 것은 인간의 신실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세바와 요압은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려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힘의 남용으로 시작된 다윗 왕가의 비극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다른 무자비한 힘이 아니었습니다. 피는 피를 부르고 같은 칼을 부르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신뢰하는 한 여인의 지혜로 하나님의 유접은 보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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