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19-02)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얻는 다윗
사무엘하 19장 16-39절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과 만나는 일은 괴롭습니다. 말의 숨은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관계는 피곤하기 그지없습니다.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맹세하지 않아도 그 말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말의 진실성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에 슬픔에 잠겨 압살롬의 이름을 부르면 큰 소리로 웁니다. 이런 다윗에 대한 이야기가 알려지게 되면서 다윗의 군대는 조용히 성으로 돌아옵니다. 이에 요압은 다윗에게 화를 내며 당장 일어나 나가서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지 않으면 다윗을 버리겠다고 협박합니다. 이런 요압의 말에 다윗은 왕의 임무를 감당하였고, 백성들은 다윗을 다시 왕으로 모실 계획을 세웁니다.
다윗에게 용서를 비는 시므이(16-23)
용서는 다른 사람의 죄를 기억하지 않고 덮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했다고 하면서도 똑같은 상황이 생기면 과거의 실수와 죄까지 들취냅니다. 말로는 용서했다고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사람의 잘못과 실수를 차곡차곡 쌓아 두는 것입니다. 또 용서했다고 하면서도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뤄지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를 모두 용서해 주셨고, 그것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16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에 17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 강을 밟고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18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19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20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21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라 22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23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16-23)
시므이에 대한 다윗의 용서는 귀했으나 온전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왕 되심이 아니라 자신의 왕 됨으로 인한 용서였고, ‘오늘’이라는 단서가 붙은 용서였습니다. 시므이가 죽지 않으리라는 다윗의 맹세는 그가 사는 날까지만 유효했습니다. 결국 그 맹세는 시켜지지 않습니다.
(1) 요단으로 온 시므이(16-17)
다윗이 요단강으로 오자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하게 다윗을 맞으러 나옵니다. 그는 이전에 다윗이 바후림을 지날 때 나와서 계속 저주하여 다윗 일행이 바후림에서 쉬지 못하게 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제 다윗이 왕으로 되돌아오고 있기에 다윗에게 보복당할 것이 두려워 다윗을 영접하러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베냐민 사람 1,000명도 시므이와 동행하였습니다. 아마도 시므이뿐만 아니라 바후림과 그 부근에 거하던 베냐민 지파 사람들도 다윗을 지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은 베냐민 지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시므이의 행동만을 기록했지만, 베냐민 사람들도 시므이와 함께 행동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음식을 제공하며 므비보셋을 모함했던 시바는 이번에도 재빠르게 움직여 자신의 아들들과 종들을 대거 이끌고 나와 다윗을 환영합니다. 본문에서는 시바가 ‘다윗 앞에서 요단강으로 돌진하였다’고 표현하여 열광적으로 다윗을 환영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온몸으로 다윗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다윗을 위해 많은 식량을 준비한 것처럼 이번에는 배를 준비하여 다윗을 맞이하러 직접 요단을 건너가 다윗이 무사히 요단을 건널 수 있게 세심한 배려를 해줍니다. 이런 시바의 행동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충성스럽고 믿을 만해 보이지만, 므비보셋의 신하로서는 전혀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의 행동은 철저히 계산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면 므비보셋과 만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이 므비보셋을 모합한 말이 거짓이었다는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것을 대비하여 다윗이 므비보셋의 말과 자신의 말 중에서 자신의 말을 믿게 하거나 혹시 믿지 않더라도 최소한 자신에게 주는 벌을 줄여보기 위해 다윗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보답을 받게 됩니다.
(2) 왕을 만난 시므이(18-20)
다윗이 요단을 건너오자 시므이는 다윗 앞에 엎드려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면서 자신에게 벌을 내리지 말아 달라고 간청합니다.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기억하지 마옵소서’,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라는 반복적인 말을 통해 매우 간절하게 다윗의 용서를 구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시므이는 말로는 간절하게 용서를 빌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지파인 베냐민 사람 1,000명을 대동하고 와서 다윗이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수 없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1,000명의 베냐민 사람은 단순한 사람들이 아니라 언제든지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로 겉으로 보기에는 다윗을 환영하는 인파 같지만 실제로는 여차하면 시므이의 보호막이 되어줄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런 시므이의 말과 행동의 괴리는 시므이의 사죄가 진심이 아님을 나타냅니다. 정말로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면 혼자 와서 용서를 구하고 살리든 죽이든 처분에 맡기겠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사죄일 것입니다.
(3) 시므이를 용서한 다윗(21-23)
이런 상황에서 다윗의 충직한 신하인 아비새는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한 것을 언급하며 그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윗을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표현함으로써 다윗을 저주한 것이 다윗뿐만 아니라 다윗을 선택하신 여호와께 대한 불경죄임을 밝힘으로써 시므이를 죽일 정당한 죄목을 찾은 것입니다. 사람을 저주하거나 비방한 것은 죽을 죄가 아니지만, 여호와를 비방하거나 저주했다면 죽을죄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다윗은 아비새에게 이것은 개인적인 일이니 상관하지 말라고 말리면서, 오히려 아비새를 자신의 대적자(사탄)라고 말합니다. 다시 이스라엘의 왕이 된 이 좋은 날 사람을 죽이는 일을 행하지 않을 것이며 시므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시므이의 사죄와 다윗의 용서는 진심 어린 사죄와 용서가 아니라 일종의 정치적인 행동들입니다. 시므이는 1,000명의 사람들을 끌고 와 세를 과시하며 자신을 용서하라고 말하고 있고, 힘에서 열세이며 더 이상 피 흘리는 싸움을 할 수 없는 다윗은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시므이를 용서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힘으로 사죄와 화해를 하는 것은 진정한 사죄와 화해가 아니며 또 하나의 폭력입니다. 다윗은 이때 당한 모욕을 잊지 못하고 후에 솔로몬에게 시므이를 편히 죽게 하지 말라고 유언합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은 시므이에게 당한 모욕을 용서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행동에 대해 옳다 그르다 쉽게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자신의 화해의 손짓에 응해주는 사람에게는 용서와 자비를 보여주지만, 자신을 힘으로 누르며 화해를 강요하는 사람에게는 모욕감을 느끼는 다윗의 모습에서 우리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진정한 화해와 용서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합니다.
다윗을 마중 나온 므비보셋(24-30)
요즘 감사의 조건이 무엇입니까? 좋은 직장에 입사하고,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고, 준비하던 일들이 잘 진행되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하박국의 말씀처럼(합 3:17) 감사해야 합니다. 사업이 망하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병들어 다시 회복될 가망이 없다 해도 죄인인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구원이 가장 큰 감사의 제목입니다.
24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25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 26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27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28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29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하니 30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24-30)
므비보셋은 돌아오는 다윗을 맞이하면서 초라한 행색을 유지합니다. 시바의 배반에 절뚝발이 므비보셋이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 해서라도 도주 중인 왕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뿐이었을 것입니다. 이로써 다윗과 오해를 풀고 화해하였다. 다윗은 왕좌만이 아니라 사람도 얻었습니다.
(1) 다윗을 만나러 온 므비보셋(24-25)
므비보셋과 다윗이 만난 장소가 어디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24절에서는 므비보셋이 요단으로 내려갔다고 하고, 25절에서는 예루살렘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무엘하 20:2에서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요단에서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므비보셋도 다윗을 영접하기 위해 요단으로 나옵니다. 본문은 므비보셋이 다윗이 성을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발을 피거나 발톱을 깎지 않았으며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지 않은 상태로 지냈다고 설명합니다. 우리말에서 ‘발을 맵시 내지 않았다’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발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발을 씻거나 발톱을 깎거나 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행동은 애도의 표시로 므비보셋이 다윗이 성을 떠난 것에 대해 매우 슬퍼하며 애도를 표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므비보셋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뒤에 나오는 므비보셋의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2) 므비보셋의 거짓말(26-28)
다윗은 므비보셋을 보자, 제일 먼저 왜 자신과 함께 가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이미 시바에게서 므비보셋이 다윗이 폐위된 것을 기뻐하며 반역을 일으킬 마음을 품고 있다는 말을 들어서 므비보셋을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분명히 므비보셋의 행색을 보고 시바의 말과 달리 므비보셋이 자신이 없는 동안 자신에 대한 애도의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심을 거둘 수 없는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이유를 물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 므비보셋은 자신은 분명히 나귀를 타고 왕과 함께 떠나려고 하였지만, 자신의 종이 속이는 바람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말하고, 또한 자신의 종이 자신을 모함한 사실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므비보셋이 말하는 좋은 ‘시바’를 가리킵니다. 이 부분에서 시바의 말과 므비보셋의 말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므비보셋은 더는 변명하지 않고 다윗의 처분에 맡기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미 사울의 왕권이 무너지고 다윗이 왕위에 오르면서 자신과 자신의 집은 죽어 마땅하지만, 왕의 호의를 받아 왕의 상에서 밥을 먹는 은혜까지 누리게 되었는데 어떻게 불공평하다고 말하며 억울하다고 말하겠냐고 합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의 판단에 맡기면서 다윗이 ‘하나님의 사자’ 즉 천사와 같은 신적 지혜가 있는 사람이니 누가 옳은지 그른지 잘 판단할 것이라고 합니다.
(3) 다윗의 결정(29-30)
이런 므비보셋의 말에 다윗은 ‘왜 그렇게 말하느냐?’고 하면서 일단 누그러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일단 므비보셋의 말을 믿어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므비보셋의 원래 재산을 다 돌려주지 않고 시바와 나누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므비보셋의 말을 완전히 믿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만일 므비보셋의 말이 다 옳다고 생각했다면 다윗은 자신의 주인을 모함한 시바에게 벌을 주거나 시바에게 준 모든 것을 빼앗아 므비보셋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보면 므비보셋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에게 계속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시바의 편을 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말에 므비보셋은 다윗이 평안히 왕궁으로 돌아왔으니 재산은 모두 시바에게 주라고 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자신보다 시바를 더 신뢰한다는 것을 눈치 챈 므비보셋이 자신의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한 말입니다. 이 말에 대한 다윗의 반응이나 결국 재산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다윗과 요나단의 언약으로 베푼 므비보셋에 대한 은혜도 반역이라는 사건을 겪으며 흔들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르실래와 만난 다윗(31-39)
대가를 기대하면서 인정을 받으려는 헌신은 진정한 헌신이 아닙니다. 이 정도 했으니 그 대가로 어느 정도 대우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헌신한다면 어느 순간 교만해져 자신을 높이려 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하나님께 보상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무익한 종이라는 생각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31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32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33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34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5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36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37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 38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39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31-39)
길르앗의 바르실래는 음모와 모함과 배반으로 점철된 팍팍한 다윗의 일생에서 맘 놓고 편한 숨 내쉴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습니다. 변함없는 신뢰와 지원과 충성, 대가를 바라지 않는 헌신에서 다윗은 언약하신 것을 기필코 이뤄주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1) 다윗을 배웅하려 온 바르실래(31-32)
이 단락은 바르실래에 관한 단락으로 시점은 요단을 건너가기 전입니다. 바르실래는 요단 동편에서 매우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으로 다윗이 마하나임에 거하는 동안 다윗에게 필요한 물품을 제공해준 인물입니다.
(2) 다윗의 제안(33)
다윗은 요단으로 마중 나온 바르실래에게 예루살렘으로 같이 가자고 제안합니다. 자신이 그동안 받은 은혜를 예루살렘에서 갚겠다는 것입니다.
(3) 바르실래의 부탁(34-37)
하지만 바르실래는 자신의 나이가 80세로 너무 늙어서 왕이 제공하는 맛있는 음식의 맛도 모르고 흥겨운 노래도 잘 들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또한 자신은 자신의 묘실이 있는 이곳에서 죽기를 원한다면서 다윗의 제안을 사양합니다. 자신의 부모가 있는 묘실에 묻히는 것은 평안한 죽음을 의미하며 매우 명예로운 일입니다. 바르실래는 이런 평안함과 명예로움을 택한 것입니다. 대신에 바르실래는 김함을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합니다. 본문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김함은 바르실래의 아들로 추측됩니다.
(4) 왕의 허락(38-39)
이런 바르실래의 요청을 받아들여 다윗은 김함을 데리고 가겠다고 하며 또한 바르실래가 나중에라도 요청하는 것이 있으면 들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 약속은 죽으면서 솔로몬에게 바르실래의 자손들을 후대하라는 유언을 남김으로 대를 이어 지켰습니다.
바르실래에 대한 이야기까지 해서 19:9부터 시작된 압살롬 반란 사건에 대한 논공행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됩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투항하는 적에게 대해서는 화친 정책을 사용하였고 자신을 도운 사람에게는 상을 주었습니다. 신뢰하기가 애매한 므비보셋은 애매한 상태로 두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말은 우리 마음에 심긴 말씀에 대한 반영입니다. 우리의 말은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이 말의 진실성을 잃을 때, 우리 안에 있는 말씀도 힘을 잃습니다. 믿음에 있어 온전한 사람은 곧 말에 있어 온전한 사람입니다(약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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