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17-02)
목숨을 다해 헌신한 다윗의 사람들
사무엘하 17장 15-23절
사람들은 자신이 경배하는 대상을 닮아갑니다. 그 대상의 성품과 가치관과 삶의 목표가 자신의 것이 됩니다. 대상의 실패는 자신의 실패가 되고, 대상의 성공은 자신의 성공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그분의 뜻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다윗을 죽일 매우 효과적이고 지혜로운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압살롬은 그의 계획을 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후새를 불러 그의 생각도 물어봅니다. 다윗을 구할 기회를 얻은 후새는 아히도벨의 계획이 좋지 못하다고 평가하고 더 좋은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많은 군사를 모은 다음에 압살롬이 앞장서서 다윗을 죽이는 것이다.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좋은 계획 대신에 후새의 어리석은 계획을 선택하는 잘못을 범합니다.
추격을 피하는 다윗(15-2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하게 사용하십니다. 우리에게 큰 지식, 능력, 재산이 없더라도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의 결과는 우리의 조건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를 사용하신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일상에서 지극히 평범한 일을 하더라도 성실하게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15이에 후새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이르되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고 나도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으니 16이제 너희는 빨리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전하기를 오늘밤에 광야 나루터에서 자지 말고 아무쪼록 건너가소서 하라 혹시 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몰사할까 하노라 하니라 17그 때에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사람이 볼까 두려워하여 감히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에느로겔 가에 머물고 어떤 여종은 그들에게 나와서 말하고 그들은 가서 다윗 왕에게 알리더니 18한 청년이 그들을 보고 압살롬에게 알린지라 그 두 사람이 빨리 달려서 바후림 어떤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의 뜰에 있는 우물 속으로 내려가니 19그 집 여인이 덮을 것을 가져다가 우물 아귀를 덮고 찧은 곡식을 그 위에 널매 전혀 알지 못하더라 20압살롬의 종들이 그 집에 와서 여인에게 묻되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이 어디 있느냐 하니 여인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시내를 건너가더라 하니 그들이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15-20)
다윗과 다윗의 나라와 다윗의 하나님께 자기 목숨 아끼지 않고 충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용감하게 주저 없이 행동합니다. 예루살렘 기득권이 주는 편안함과 그들이 보장하는 안전에 길들어지지 않고 광야의 다윗이 추구하는 대의를 위해 험한 삶을 감수합니다.
(1) 후새의 전언(15-16)
아히도벨의 계획을 알게 된 후새는 자신과 같이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아히도벨과 압살롬과 그의 장로들이 논의한 모든 내용을 알려주고 아히도벨의 계획까지 전달합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 만들어놓은 정보망이 제대로 발휘된 것입니다. 후새는 다윗에게 단순한 정보뿐만 아니라 대처 방안까지 알려줍니다. 그는 사람을 빨리 보내서 다윗에게 광야 나루터에 머물지 말고 오늘 밤 안으로 반드시 건너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몰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후새의 조언은 아히도벨이 계획한 것이 실행될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만일 아히도벨의 계획이 실행되면 현재 다윗과 그와 함께한 사람들은 매우 위험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좀 과장된 면도 있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만을 죽이겠다고 했는데, 후새는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윗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이 몰살될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2) 우물 속 요나단과 아히마아스(17-19)
17절은 당시 예루살렘과 그 근방에 있던 다윗의 정보원들이 어떤 상황에 있었고,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였는지를 설명합니다. 이때 다윗의 정보 전달원 역할을 한 사람은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과 아히마아스이며, 이들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성 밖에 있는 로겔 생가에 머물렀습니다. 이들은 공식적으로는 다윗을 지지하여 예루살렘을 떠난 것으로 되어 있어야 다윗과 예루살렘 사이를 편히 오갈 수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물이 귀한 고대 근동 사회에서 샘가는 여행객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이 쉬면서 정보를 나누는 장소이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숨기가 예루살렘 성보다는 쉬웠습니다. 이렇게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예루살렘 성 바로 옆에 있는 로겔 샘 곁에 숨어 있으면 성에서 사독과 아비아달이 보낸 여종이 나와서 이들에게 정보를 전달하였고, 이들은 그 정보를 다윗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여종이 중간 정보전달자의 역할을 한 것은 사람들 눈에 가장 띄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후새와 다윗을 지지하던 제사장들은 다윗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도왔습니다. 정보원들이 한 청년에게 발각되었습니다. 청년은 로겔 샘 곁에 거하고 있던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를 알아보았고, 이들에 대해 압살롬에게 알립니다. 이 청년의 신분은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압살롬의 부하로 생각됩니다. 이 일로 다윗에게 정보를 전달하기가 곤란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압살롬에게 들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재빨리 로겔 샘을 떠나서 바후림의 한 집으로 들어갑니다. 바후림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거하는 지역으로 사울의 친척인 시므이가 사는 곳입니다. 시므이는 다윗이 바후림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다윗의 정보원들은 바후림에서 은신처를 찾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이들이 들어간 집 뜰에는 우물이 있었고, 이들은 우물로 내려갑니다. 아마도 물이 적어서 잘 사용하지 않는 우물이었던 같습니다. 이들이 우물에 내려가자 그 집 여주인이 우물 덮개를 가져다 우물 입구를 덮고 그 위에 곡식들을 널어놓았습니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여주인이 기지를 발휘한 것입니다.
(3) 압살롬의 추격자들(20)
압살롬의 군사들이 이 여인의 집까지 찾아와서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묻자, 여인은 그들이 시내를 건너갔다면서 이미 이곳을 지나갔다고 거짓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믿은 압살롬의 군사들은 그들을 뒤쫓았지만 찾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도운 이 여인의 모습은 여호수아 2장에서 여리고 성에 들어온 두 이스라엘 정탐꾼을 도운 라합과 유사합니다. 둘 다 자신의 집에 숨겨주었고 좀 더 완벽하게 숨기기 위해 숨을 곳을 곡식으로 덮었습니다. 또 자신이 숨긴 사람을 찾는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도망간 방향을 알려주어 자신과 자신이 숨긴 사람들이 좀 더 안전해지게 만들었습니다. 이 여인은 정탐꾼을 도운 이유를 분명히 밝힌 라합과는 달리 베냐민 사람인 자신이 왜 다윗의 편을 들었는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돕기 위해 은밀하게 사람들을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름 없는 여인들의 손을 통해 도움을 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다시 다윗에게 은혜를 베풀고 돌보기 시작하셨다는 징표입니다. 반대로 압살롬의 입장에서는 이번에도 그의 계획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그냥 두셨을 때는 승승장구하는 것 같았는데, 하나님께서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압살롬의 계획들이 자꾸 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단을 건너는 다윗(21-23)
세상 사람들은 부와 권력을 가지면 평안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평안함이 임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않아서 해를 당하게 되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이 행하는 방식, 유행, 상식에 동조하지 않고 의연하게 하나님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21그들이 간 후에 두 사람이 우물에서 올라와서 다윗 왕에게 가서 다윗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일어나 빨리 물을 건너가소서 아히도벨이 당신들을 해하려고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22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새 새벽까지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더라 23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의 조상의 묘에 장사되니라(21-23)
여리고의 기생 라합처럼 아비아달의 두 아들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숨겨준 여인의 활약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이고, 시대의 대세를 따르지 않는 의식 있는 여인이며, 목숨을 걸고 위험을 감수할 줄 아는 여인입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실 것입니다.
(1) 요나단과 아하마아스의 보고(21)
압살롬의 군사들이 지나간 후에 두 사람은 우물에서 올라와서 다윗에게로 갑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무사히 다윗에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다윗에게 서둘러 요단강 물을 건너라고 말하며 아히도벨의 계략을 알려줍니다. 이미 17:1-3에서 아히도벨의 계획을 언급하였기 때문에, 여기서는 반복하지 않고 단지 ‘이같이’라는 말로 생략하고 있습니다.
(2) 요단을 건너는 다윗(22)
예루살렘에서 온 정보를 들은 다윗은 후새의 말을 따라 요단 물을 건넜습니다. 여기서 ‘새벽까지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다’라는 표현을 집어넣은 것은 아히도벨의 계획이 완전히 실패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아히도벨의 계획은 요단을 건너기 전에 다윗의 군대를 덮쳐서 군대를 해산시키고 다윗을 죽이는 것이었는데, 다윗의 군대가 모두 안전하게 요단을 건넜으니 더는 이 계획을 실행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3) 아히도벨의 죽음(23)
아히도벨은 자신의 계획이 실행되지 못하고 다윗과 그의 군사들이 무사히 요단강을 건너간 것을 알고는 압살롬의 반역이 실패할 것을 예감하였습니다. 아히도벨이 보기에 압살롬의 반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요압이 없는 틈을 이용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다윗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요압의 군대가 오기 전에 단시간 내에 끝내야 하는 작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후새의 화려한 말솜씨에 이가 다윗을 죽일 기회를 놓친 것을 보고 압살롬의 반역이 실패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실제로 요단을 건너 마하나임으로 간 다윗은 그곳에서 요압을 만나 압살롬을 칠 부대를 구성하고 전쟁을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아히도벨의 예측은 사무엘하 16:23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확하고 틀림없었습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의 실패를 예측하고 나귀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을 매 죽습니다. 아히도벨이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압살롬이 지면 다윗이나 요압이 자신을 살려두지 않을 것이고, 매우 모욕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니 그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장사되어 치욕적인 죽음을 피하려고 한 것입니다. 둘째, 머리 좋은 아히도벨에게 가장 비참한 심판은 머리 좋은 자신이 선택한 왕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음으로 자기 계획이 실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계획이 실패한 것이 하나님의 개입에 의한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왕을 배반한 자신에게 내려진 심판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자살한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탁월한 전술을 가졌다 할지라도, 인간이 하나님을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인간의 지혜를 이룰 수 있어도, 하나님께서 막기로 작정하시면 인간의 어떤 지략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히도벨의 천재적 지략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의 투박하고 진솔한 기도에 무너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모든 지혜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지혜를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할 때 악한 자들의 권모술수가 모두 무너질 것임을 신뢰해야 합니다.
마하나임(24-29)
우리 힘의 원천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따라서 결과주의, 성공주의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결과보다 동기를 중요하게 여겨야 하고, 성공을 위해 불의한 방법을 쓰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불의는 결코 용납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힘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공의와 사랑으로부터 나옵니다. 정직, 약속 준수, 순전, 긍휼을 행해야 합니다. 비록 손해를 보더라도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불의한 자가 힘을 얻지만, 하나님께서는 불의 한 자를 심판하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24이에 다윗은 마하나임에 이르고 압살롬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함께 요단을 건너니라 25압살롬이 아마사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지휘관으로 삼으니라 아마사는 이스라엘 사람 이드라라 하는 자의 아들이라 이드라가 나하스의 딸 아비갈과 동침하여 그를 낳았으며 아비갈은 요압의 어머니 스루야의 동생이더라 26이에 이스라엘 무리와 압살롬이 길르앗 땅에 진 치니라 27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28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29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에게 먹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24-29)
아히도벨은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자신의 전략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다윗이 요단강을 건넜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압살롬의 패배를 직감했고, 자신의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는 자기 전부를 다해 압살롬에게 충성했고, 그의 실패와 죽음이 자기 몫이란 것도 알았습니다.
(1) 다윗을 뒤따르는 압살롬(24)
다윗이 마하나임에 도착하였습니다. 마하나임에서 이스보셋이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통치했었습니다(2:8-9). 그러므로 왕도(王都)로 가능했던 마하나임은 다윗이 이런 상황에서 사용하기에 적절한 규모와 성채를 갖추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다윗이 마하나임에 도착한 때와 압살롬이 요단을 건넌 때 사이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나 압살롬이 자기들의 군대를 조직하고 정비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2) 압살롬의 군대(25-26)
압살롬이 최고사령관으로 임명한 사람은 ‘아마사’입니다. 아마사는 이스라엘 사람 이드라의 아들인데, 그의 어머니는 나하스의 딸이며, 스루야의 동생인 아비갈입니다. 역대기는 아비갈(=아비가일)을 스루야와 함께 이새의 딸로 언급합니다(대상 2:16-17). 나하스의 아내가 스루야와 아비같을 낳은 뒤 그 딸들을 데리고 이새와 재혼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나하스는 암몬 왕 나하스와 동일 인물일 수 있으나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아비갈의 남편인 이스라엘 사람 ‘이드라’는 역대기에서 이스마엘 사람 예델이라 불립니다(대상 2:17). 본문의 이스라엘은 이스마엘로 고쳐 읽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마사와 요압은 이종사촌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압살롬이 길르앗에 진영을 설치했습니다. 압살의 이름이 이스라엘 뒤에 기록님은 압살롬이 군대를 이끄는 사람이 아니었음을 암시합니다. 주둔지가 길르앗의 어느 지역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마하나임이 길르앗의 남부 지역이므로, 압살롬의 군대가 마하나임의 북쪽에 진영을 설치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과 싸우러 가는 동안 전체 이스라엘에서 군대를 소집할 수 있도록 군대의 행군 방향을 세겜을 경유하는 방향으로 잡고 북진하다가, 야베스 근처에서 요단을 건넜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3) 다윗을 돕는 사람들(27-29)
마하나임에 있는 다윗을 돕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나하스의 아들 ‘소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하스 역시 람바에서 왕이었던 나하스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있으나, 왕이라고 언급되지 않은 것을 볼 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암몬 왕 나하스를 가리킨다면, 이 소비는 다윗과 싸운 하늘의 형제이고 하늘이 죽은 뒤 암몬의 왕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 역시 왕이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나하스가 많은 사람들이 흔히 쓰는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어편 경우든 소비는 큰 부자이며, 그 지역의 지도자였을 것입니다.
둘째는 로테발 사람 알미엘의 아들 ‘마길’입니다. 암미엘(-엘리암)은 밧세바의 부친 이름이 기도합니다(대상 3:5; 삼하 11:3). 하지만 이 둘이 동일 인물일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본문의 마길은 므비보셋을 돌봐주었던 사람입니다(9:4). 로데발은 야베스 길르앗과 갈릴리 호수 중간에 있는 성읍으로 여겨지나 확실하지 않습니다.
셋째는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입니다. 로글임은 야베스 길르앗으로부터 북동쪽으로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성읍입니다. 이들은 생활필수품인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 그리고 음식을 만들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팔과 볶은 녹두와 꿀과 버터와 양과 소의 치즈를 가져왔습니다.
다윗 주변의 사람들은 자기 전부를 건 사람들입니다. 명분을 위해 충성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의 사람 아히도벨도 끝까지 충성했습니다. 그 충성을 자진으로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충성이 다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를 향한 충성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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