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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3-03)

 


천국의 비밀 3-겨자씨, 가라지의 비유

마태복음 13장 31-43절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후에, 나단 선지자가 찾아가서는 책망합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의 암양 새끼 한 마리마저 빼앗은 부자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부자가 누구인지는 아직 숨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곧 들어납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사무엘하 12:7). 배우의 특징은 이렇게 숨김과 드러냄에 있습니다.

 

  •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비유의 의미, 가라지의 비유에 대한 해설로 구성됩니다. 비유와 해설은 하늘나라가 성장하는 특징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늘나라는 비록 작게 시작하지만 놀랍게 성장할 것이고, 사탄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자랄 것입니다.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31-33)

예수님께서 소개한 천국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소수의 추종자들만 얻을 뿐입니다. 그 왕의 권세도 놀랍지만 압도적이지 않았습니다. 권세자들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천국은 그렇게 겨자씨처럼 아주 작게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나무처럼 자라서 온 세상에 영향력 있는 나라로 성장할 것입니다.

 

31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3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31-33)

 

예수님께서는 계속 천국에 대한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1) 겨자씨의 비유(31-32)

 

겨자씨의 비유는 13장의 비유 중에서 처음으로 해설이 주어지지 않는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의미가 전달될 것으로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씨를 뿌렸으므로 하늘나라를 시작한 주제는 교회가 아닙니다. 문맥에서는 뿌린 주체가 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37). 인자가 말씀을 뿌리는 활동으로 하늘나라가 시작됐습니다.

겨자씨를 심는다고 나무처럼 자라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과장법을 사용해서 겨자씨가 가장 작은 씨 중 하나이지만 새들이 둥지를 틀 만한 나무처럼 성장하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나무’는 왕국을 묘사하는 이미지이기 때문에(에스겔 17:2-10, 22-24, 31:3-18; 다니엘 4:7-12, 17-23), 비유에 나오는 ‘겨자씨’는 하나님의 왕국(나라)을 가리킵니다. 이 나무의 가지에 새들(모든 민족)이 둥지를 틉니다.

겨자씨의 비유는 크게 성장한다는 것보다는 현재와 미래의 대조에 초점을 맞추며, 처음으로 ‘작은 것’을 주제로 제시합니다. 하늘나라는 세상적인 기준에 따라서는 파악되지 않을지라도 현재 성장하고 있으며, 미래는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현재 겸손하고 보잘 것 없이 시작됐으나 그 미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입니다. 독자는 겨자씨 비유가 성공주의나 승리주의를 부추기는 목적의 비유가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늘나라는 이 나라를 가져오신 예수의 활동처럼 겸손과 섬김과 긍휼로 시작해서 그와 같은 성격의 나무로 자랍니다. 성공과 승리를 꿈꾸는 사람들이 터전으로 삼는 나라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백향목과 같은 나라가 아니라 겨자씨와 같은 나라를 심으셨기 때문입니다. 겨자씨처럼 누룩도 처음에는 그 존재가 식별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합니다. 시간이 흘렀을 때 놀랄 정도로 극적인 결과로 나타납니다.

 

(2) 누룩의 비유(33)

 

본문은 ‘밀가루 서 말 안에 숨겼다’고 표현함으로써 ‘숨겨진’ 속성에 초점을 둡니다. 밀가루 반죽에 누룩이 들어가기 만하면 반드시 부풀어 오르게 됩니다.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하늘나라의 진리는 숨겨져 있는(13:35, 44) 누룩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하늘나라는 눈에 띄지 않게 겸손하게 시작했고(예, 12:19), 땅의 소금과 세상의 빛과 같이 영향을 끼침으로써(5:13-16), 비밀스럽게 세상을 점령해 나갑니다. 겨자씨처럼 하늘나라가 자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쉼을 누리는 것처럼 누룩처럼 부풀어 올라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하늘나라 운동 역시 승리주의나 성공주의로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작이 겸손했다면 성장 과정도 겸손합니다. 이러한 특성은 사람들의 시야에 크게 들어오지 않지만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 드러난 하늘나라의 비밀은 하늘나라가 이미 시작됐고 그 나라는 겸손하고 비밀스럽게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는 공통적으로 하늘나라의 현재성과 멈추지 않고 성장하는 속성을 드러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하늘나라의 성장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갖도록 돕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예수께서 가져오신 하늘나라는 하늘의 군대를 동원해서 거창하게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제자들로 시작됐습니다. 하늘나라의 활동은 로마에 대한 승리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치유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감춰진 것을 드러내는 예수의 비유(34-35)

천국의 확장은 은밀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끝은 시작할 때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를 것입니다. 그 출현도 떠들썩하지 않고 은밀할 것입니다. 교회의 성도들은 떠들썩한 영향력이 아니라 잔잔하지만 힘 있는 영향력을 구할 일입니다.

 

34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35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34-35)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무리에게 말씀하셨고, 비유가 아니고는 아무것도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34). 34절의 과장법은 그만큼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의 비밀을 알려주기 위해 애썼으며, 이런 모습은 구약에 이미 예언된 패턴이 성취된 것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선지자를 통해 … 성취되기 위함이었다’는 마태복음의 인용 공식입니다. 본문은 시편 78:28의 인용입니다. 마태는 시편 78:2을 근거로 예수가 비유를 많이 전하셨는지 설명합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비유를 전달하신 목적이 하늘나라의 비밀, 곧 감춰진 것을 알리는 데 있음을 강조합니다. 하늘나라의 비밀을 비유라는 수단으로 쉽게 해석될 수 있으며, 동시에 비유 자체가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쉽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된 비유 역시 해석이 필요합니다.

비유를 통한 계시에 귀를 기울여 해석을 듣지 않으면 하늘나라의 비밀은 비밀로 남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비유를 전달하는 자에게 관심을 갖고 들으려는 자에게 비유에 감춰진 것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비밀은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고 비유를 통해 전해졌으나, 영적으로 귀와 눈이 닫힌 자들에게는 하늘나라의 속성이 열리지 않은 비밀로 남습니다. 비유가 전달하는 내용이 의미 없이 지나가버리는 것은 청중의 문제입니다.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은 옛 시대의 조상들처럼 비유에 관심을 갖지도 않고 응답하지도 않았으나, 소수의 남은 자들인 제자들만 예수의 해석을 듣습니다.

 

가라지 비유의 해설(36-43)

비유는 하늘나라의 비밀을 드러내는 예수님의 방식입니다. 하늘나라의 왕이 직접 오심으로 드러난 실체를 반영한비다. 비유는 소수의 제자들을 그 나라의 현존으로 초대할 뿐 아니라 그들을 격려하는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비유를 해설해 주시고 계십니다.

 

36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7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43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36-43)

 

좋은 씨를 뿌린 자는 인자입니다(8:20; 9:6; 11:19; 12:8). 인자는 그의 천사들과 함께 와서 심판을 수행할 것인데, 재림이 바로 종말의 추수가 일어날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39절에서 ‘마귀’를 지칭함으로써, 열매가 맺히지 않는 원인이 마귀의 활동에 있음을 드러내십니다.

독보리들은 추수 때까지는 밀과 함께 자라지만, 시대의 마지막에 인자가 천사들을 시켜 모으고 태울 것입니다. 씨를 뿌린 인자가 추수를 하는 역할도 수행할 것입니다(25:31-46). 인자는 지상에서 고난의 세월을 보내면서 겸손과 긍휼의 삶으로 씨를 뿌렸으나, 세상의 끝에는 ‘주’로서 재판장의 자리에서 세상을 심판할 것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인자의 심판으로 아궁이에 던져집니다(42; 다니엘 3:6,11,15,20). 그들은 형벌의 장소인 지옥에서 슬피 울고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42절에 있는 악인의 운명과 43절에 있는 의인의 운명이 대조되는데, 대조의 강조점은 장소에 있습니다. 43절은 의인들에 대한 약속입니다. 독보리의 운명과 달리 의인들은 그들의 아버지 나라에서, 곧 완성된 하늘나라에서 해처럼 빛나게 될 것입니다(다니엘 12:3; 참조, 마태복음 17:2). 이는 다니엘 12:3의 언어로서 의인들이 받을 상을 의미합니다. 의인들은 다니엘서에서 지혜로운 자로 표현되며, 마태복음에서는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자들입니다.

 

독보리의 비유는 하늘나라가 시작된 이후부터 완성 이전까지의 기간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분석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시대의 마지막에 악인들이 의인들에게서 분리될 것이라는 사실은 하늘나라의 비밀입니다.

첫째,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땅의 문제를 지적한다면, 독보리의 비유는 하늘나라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의 원인을 사탄의 활동에서 찾습니다. 밭은 세상을 상징하므로, 역사의 끝에 천사들이 심판을 집행하기 전까지는 이 세상에서 악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의인들과 공존합니다. 악인들이 번영하고 의인들은 고통을 겪는 모순과 혼란의 상황이 이 시기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둘째, 악한 자들은 형벌을 받고 의인들은 신원을 받을 것입니다. 독보리 비유에 대한 해설에서 예수님은 일곱 개의 핵심 사항을 최후 심판 장면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십니다(13:37-39).

셋째, 비유는 교회를 향해 격려와 경고를 동시에 던집니다. 격려와 경고를 목적으로 최후 심판 이후에 보내질 복의 장소와 형벌의 장소가 대조됩니다. 의인들은 반드시 천상의 존재로 변화됩니다. 하늘나라의 제자들은 역사의 끝에 일어날 비밀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는 영광스러운 변화를 소망하면서, 불법이 아니라 의인들의 호칭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넷째, 비유 해설은 교회의 혼합성, 즉 의인들과 악인들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내포합니다. 세상에서 악인들이 의인들 가운데 있듯이, 거룩한 성도들의 공동체에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말씀을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는 태도로 언제나 긴장해야 합니다.


겨자씨 한 알이 자라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누룩이 빵을 부풀리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느리지만 이루어질 일입니다. 씨를 심고 누룩을 넣은 이의 인내를 닮아야 합니다. 악인이 우세하는 것 같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창세부터 감추어진 것들이 드러나는 날, 모든 숨은 의인들이 해처럼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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