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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26-01)

 


보배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책임

신명기 26장 1-19절


중세 종교개혁의 중요한 성과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인간의 의로 스스로 구원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조명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되어야 가능한 일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으로 잃은 것이 있습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부터 말미암은 관계적인 차원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이웃을 향한 사랑의 삶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안에서도 이웃들, 특히 사회의 밑바닥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들에게 우리들이 어떻게 하느냐가 결국 하나님의 백성인지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언약 백성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지켜야 할 제반 율법의 선포가 25장으로 마무리 되고, 26장에서 모세는 전반부에서 충분히 설명했던 예배에 대한 문제로 전환합니다. 언약 공동체는 예배 공동체인비다. 그들은 우선 예배에서 성공해야 하며 이어서 삶의 제반 영역에서 거룩한 백성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세는 축복과 저주의 선포로 자신의 연설을 마무리하기 전에 다시 예배의 문제에 집중합니다.

 

첫 소산물의 봉헌(1-11)

예배와 찬양은 하나님께만 돌려 드려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상(돈, 권력 등)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것이 아까워서 하나님께 드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웃의 아픔을 보고도 자신의 것이 아까워서 외면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예배자로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첫 수확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1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3그 때의 제사장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나이 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4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받아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앞에 놓을 것이며 5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6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7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에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8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험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9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10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11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1-11)

 

신명기 25장까지 하나님의 공동체에 대한 구성을 살펴보았습니다. 특별히 이웃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합당한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만 예배를 잘 드리면 된다는 생각했지만,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 예배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을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를 잘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현재는 하나님 나라에 살지 않으면서도 죽어서는 가고 싶은 이중적인 이상한 논리가 생겼습니다. 그러니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교인이 나온 것입니다. 신명기에서는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말해 줍니다.

 

⑴ 지정된 장소에서 봉헌(1-4)

 

본문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에 집중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무엇보다 가장 먼저 잘 지켜야 할 법도가 하나님께 대한 바른 예배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살고 있는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압제과 박해 속에 있던 애굽으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신 것을 감하기 위해 그 해 첫 소출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의 표시를 드려야 했습니다. 따라서 매년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풍성한 수확물을 거둘 때 가장 먼저 첫 수확물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삶에 대한 감사를 결코 잊어선 안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맏물’은 ‘첫째’, 또는 ‘시작’을 의미하는데,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수확한 최초의 첫 열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린 것은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과 통치권, 그리고 소산물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추수할 수 있게 된 것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논밭의 곡식과 작물들, 과수원의 모든 과일들이 포함됩니다.

장소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 즉 ‘지정된 성소’입니다. 앞서 이 택하신 성소를 굳이 유일한 중앙 성소로 볼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각 지방에 중앙의 통제를 받는 여호와의 성소들이 있었으며, 거기에 제사장들이 파견되어 제의를 감독했을 것입니다. 아마 그곳은 레위인들이 거주하는 성읍들, 곧 전국에 흩어져 있던 레위 도성들 중 몇 곳이 지정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백성들은 자신의 지역에 속한 그 성소로 올라가 첫 소산물을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로 바치며 축제를 벌였을 것입니다.

이 첫 소산물의 봉헌을 위한 특정한 날짜는 지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각 개인이 적절한 날에 들고 올라가야 합니다. 지역마다 수확기가 차이가 나고, 또한 개별 농부 간에도 그것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며, 작물의 종류와 과일 나무의 종류에 따라 각기 수확기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3대 절기는 추수기와 맞물려 있으므로, 이때 성소에 올라가면서 첫 수확물을 챙겨서 올라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음력 1-3월은 곡식 추수기로 유월절이 있는 1월은 보리 추수, 오순절이 있는 3월은 밀 추수기였으며, 건기 6개월을 지나 음력 7월이 되면 초막절(수장절)은 포도를 비롯한 과일들을 수확하는 가을 수확기였습니다.

중간기 유대 문헌은 음력 3월 칠칠절 시기부터 음력 7월 초막절까지 중간에 언제든 가져올 수 있도록 허용하는데, 각 지역마다 별도의 날을 잡아 오도록 권면합니다. 앞서 18:4에서 첫 수확물을 바치는 예배를 살펴본 바 있습니다. 거기서 구체적인 품목들인 ‘첫 곡식과 포도주, 기름’이 명시되어 있고, 흥미롭게도 ‘처음 깎은 양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대추 열매, 과일 꿀, 석류, 무화과와 같은 모든 첫 수확물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농부들은 첫 수확물을 들고 제사장 앞으로 가서 이 풍성한 열매가 약속의 땅에 살면서 얻었음을 고백하는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올려야 했습니다(3). 제사장은 헌제자에게서 그 예물 광주리를 받고 제단 앞에 놓아 하나님께 봉헌해드렸습니다(5).

 

⑵ 구원과 축복에 대한 찬양(5-11)

 

제사장이 제단 앞에 첫 소산물의 예물을 놓은 뒤 헌제자는 찬양과 기도를 올립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민족이 겪었던 쓰라렸던 역사와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에 대한 간략한 회고이자 신앙고백적 찬양입니다. 자신들의 위대한 조상은 ‘아무 것도 없던 자들’, ‘방랑하는 아람 사람’이었는데, 애굽으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야곱과 아들들이 겪은 기근으로 ‘파멸해 가는 조상이었든’, ‘정처 없이 유리하던’ 조상들이었든지 간에, 그들은 아람 땅을 떠난 후 약속이 땅에 정착하지 못한 채 오랜 기간 불안정하게 떠돌아 다녀야 했습니다. 헌제자는 그 후 애굽 땅에 들어간 조상들이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 생생히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 가련한 조상들의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어 극적으로 구원해주셨음을 고백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조상들을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셨기에 이토록 풍성한 복을 누릴 수 있음을 토지소산의 만물을 올려 바치면서 감사의 고백을 드렸습니다. 분명 제단 앞의 이러한 찬양과 기도는 헌제자의 입에서 음성으로 발설되어 하나님께 올라갔을 것입니다.

사실 가나안 땅은 객관적으로 볼 때 매우 농사가 불리했던 토양과 기후 조건을 지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불리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11절은 레위인에 대한 언급으로 인해 이어지는 매 3년의 십일조 규정에 묶이는지 아니면 이 첫 소산물의 예배에 포함되는지 다소 모호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첫 소산물의 규정임이 분명합니다. 즉, 첫 소산물을 레위인들 및 거류민들과 나누며 즐거워하라는 지시입니다. 12:17-19에서 백성들이 각종 십일조(곡식, 포도주, 기름), 가축의 첫 태생, 각종 서원과 낙헌의 예물 및 거제물을 성소에 바칠 때 가족들을 비롯하여 노비와 레위인이 함께 먹어야 한다는 규정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거기서 토지의 첫 소산물은 누락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여기서 보완되고 있다고 보아야 하며, 따라서 그 규정을 따라 이 첫 소산물도 레위인과 나그네가 함께 나누어 먹은 것입니다. 다만 토지의 첫 소산물에는 나그네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12장에서도 언급했듯이, 민수기 18:12은 토지의 첫 소산물이 제사장 몫이었습니다.

따라서 농부들은 이 첫 수확물의 예물을 가지고 올라가 광주리에 일부를 담고 제단 앞에 바친 뒤 레위인과 거류하는 객들과(아마도 그 외 사회적 약자들 및 가난한 사람들도) 함께 먹으며 즐거워했고, 남은 것은 모두 제사장 몫으로 드렸을 것입니다. 이 첫 수확물은 토지 농산물의 십일조와는 별도였습니다. 모든 수확을 끝낸 후에 십일조를 떼서 바치지만, 이 것은 첫 번째 수확을 거둬 먼저 봉헌하는 중요한 감사 예물이었습니다. 그 양이 어느 정도인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앞서 16:16-17에서 말한 대로 랍비들은 형편이 넉넉한 농부에게는 1/40을 제시했고, 바리새인의 샴마이 학파는 최대 1/30, 평균 1/50, 궁한 경우 1/60로 정했습니다. 이 첫 소산물들은 일부를 레위인들과 먹고 남은 것은 제사장 몫으로 돌린 다른 봉헌물들과 달리, 레위 인을 포함하여 나그네와(아마도 다른 약자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모든 소산물은 이스라엘 백성의 노력한 대가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이고, 하나님의 축복임을 인정하는 것이 예배의 조건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첫 소산물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즐겨 받으시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 자기 자부심으로 가득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아니라 자신이 영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배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매 3년의 십일조 봉헌(12-15)

경제 활동은 정직하고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신 물질을 통해 하나님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당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십일조를 통해서 또 다른 용도인 연약한 자들을 돌아보도록 하신 권고하십니다. 특별히 오늘날 헌금 이름으로 바꾼다면, ‘구제헌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2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13그리 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 하였나이다 14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15원하건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보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12-15)

 

매 3년의 십일조에 대해 앞서 14:28-29에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이 3년 주기로 바치는 십일조는 가장 우선이 목적이 레위인, 객, 고아와 과부, 즉 사회적 약자 부양하는 데 사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매 3년의 십일조를 바칠 때 14장에서 언급되지 않은 감사의 고백을 담은 기도를 올리도록 지시합니다. 아마 이 고백의 낭송은 매 3년의 십일조만이 아닌 매년 십일조를 바칠 때마다 실행되었을 것입니다. 고백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그 말씀대로 십일조를 거룩하게 잘 간수하여 정성스럽게 성소로 가지고 올라왔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십일조의 예물은 거룩한 성물이므로 부정한 것에 접촉되지 않도록 잘 보관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특히 장례가 발생했을 때는 가족과 조문객들에게 송장의 부정 결의 집단 감염이 발생하여 성물로 떼어놓은 십일조의 물품에도 부정이 옮을 수 있었으니 주의해야 했습니다. 하객들을 위해 잠시 십일조 곡식에서 떼어 음식을 만들면 십일조 곡식 전체가 더럽혀졌을 것이고, 장례로 인해 부정해진 몸으로 십일조 곡식과 접촉하면 더럽혀졌을 것입니다. 농부는 깨끗하게 보존된 십일조를 성소에 가지고 올라와야 했습니다. 이것을 고려할 때 현재의 농부의 고백이 매 3년의 십일조에만 국한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매년의 십일조를 봉헌할 때마다 이 같은 감사 기도를 올려야 했을 것입니다. 당당하게 복을 달라고 기도할 만큼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사용할 줄 아는 성도가 되었어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많은 물질을 소유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영화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유한 물질을 가지고 사랑으로 나누고 베풀고 자비하고 관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때, 그 사람이 보배처럼 영광스러워질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요구되는 순종의 삶(16-19)

말씀에 대한 순종하는 것이 참다운 예배가 될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이 없이는 자신의 유익을 위한 종교 행위 밖에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주신 율법을 마음과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16오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령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17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라 18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셨느니라 19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16-19)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모든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면 그들에게 복 주신다는 약속이 반복됩니다. 그들은 ‘보배로운 백성’이 될 것입니다. 앞서 7:6에서 살펴본 대로 세굴라는 일반적인 재산이 아닌 매우 소중한 보물이나 소유물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오래도록 몰래 숨겨 놓은 종자돈과 같이 귀중한 물품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한 보화처럼 여기고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그토록 귀하게 여기시며,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영광스러운 여호와의 성민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종종 성도들 중에서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세상 앞에서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얻고 싶어 합니다. 그 길을 하나님께서 이미 제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소중한 분으로 여기면 됩니다. 그러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로 반응하는 마음은 없으면서 교회를 향하여 비판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보는 시각대로 교회가 잘못한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비판할 만큼 교회를 사랑하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이웃을 섬기는 사람을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이나 교회 그리고 사회를 진실하게 아끼며 사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차 가나안 땅에 입성하면, 수고해서 농사를 지어야 먹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잘못하면, 자신의 노력이나 ‘바알’과 같은 우상의 힘으로 소출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난 영적인 범죄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시지 않으면 풍성히 채워질 수 없습니다. 소출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그들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케 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세로 살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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