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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14-02)


하나님의 구별된 소유

신명기 14장 22-29절


어떤 한 사람이 부흥 집회에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헌금하는 시간이 되었지만, 가난해서 주머니에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을까하고 계속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헌금함이 자신의 앞에 왔습니다. 그는 서슴지 않고 일어서서 헌금함 위에 앉았습니다. 쑥스럽게 웃으면서 ‘나는 하나님께 드릴 돈은 없을 정도로 가난합니다. 드릴 돈은 없지만,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주의 종으로 쓰임을 받길 원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후에 그는 선교사 훈련을 받고 훌륭한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모세의 율법 강론은 12장에서 유일하신 여호와께 예배드리기 위해 합법적인 성소에서의 예배와 축제를 먼저 다루고, 13장에서 우상숭배를 근절하기 위한 예방 조치를 무서운 심판의 경고와 더불어 내놓았습니다. 14장은 이렇게 여호와만 섬겨야 하는 백성은 장례 관행과 먹는 음식도 차별화되어야 한다고 설교한 뒤 십일조 문제를 다룹니다.

 

십일조 규례(22-23)

하나님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을 ‘구별된 사람’, 즉 ‘성도’라고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공급을 받고 살아갑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찬양’입니다. 받은 은혜에 제사를 ‘예배’라 합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드리는 물질을 ‘헌금’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물질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22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22-2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14장 전반부에서는 가나안의 방식과 섞기지 않는 음식 규정을 통해서 거룩한 삶을 요구하셨습니다. 22절부터는 십일조를 통해서 거룩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일반적으로 십일조를 종교적인 의무로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십일조는 단순한 종교적인 의무만은 아닙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주권인 온 땅과 만물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신앙입니다.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레위인과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땅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냈던 십일조를 가지고 그들의 생계를 책임져 주었습니다. 레위인과 제사장들은 이스라엘에서 구별된 자들입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각자 해야 할 일을 구별된 사람들이 대신 담당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소유가운데 일부인 십일조를 구별하여 자신들의 역할을 대신한 그들을 위해서 십일조를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십일조는 의무감에 의해 받치는 것은 아닙니다. 빼앗긴 심정으로 드린 것이 아니라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드려야 했습니다. 왜 십일조를 내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입니까? 여호와께서 그 가나안 땅과 햇볕과 비를 주셨고, 열매를 맺고 수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먹고 마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광야에서 날마다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주셨던 다른 표현이고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광야와는 다르게 이스라엘 백성이 수고해서 수확이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수고가 있을 때부터는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 동안에 하나님의 완전한 공급과는 다르게 자신의 수고로만 얻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살아지기 시작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공급은 사라졌습니다. 자신들이 수고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공급해주시지 않으면 농사를 짓을 수 없습니다. 수확을 할 수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신 것이며 인간의 수고는 매우 작은 것밖에 없습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십일조는 당연히 드린 것으로 단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그 품목도 구체적으로 나열합니다. 매년 논밭과 과수원에서 수확한 추수물, 곧 모든 농산물의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고 권고하십니다. 이는 친히 하나님께서 농사하셨다는 신앙고백입니다. 곡식, 포도주, 기름 우선 곡식은 중동 지역에서 재배되는 보리와 밀이며, 기름은 그해 추수한 올리브 열매를 짠 감람유로서 새 기름입니다.

이것들을 모두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 즉 지정된 성소에 가족들과 가지고 올라가 함께 먹으며 기뻐해야 합니다. 여호와 경외하기를 몸소 배우기 위한 개인과 가족의 교육이기도 했습니다. 가축의 십일조가 누락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레위기 27장에 나옵니다. 농산물의 십일조를 들고 성소에 올라가야 하는데, 언제 올라가야 하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역과 논밭의 상황에 따른 수확기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날짜를 지정하지 않고 각자 성소로 순례를 했을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축제입니다.

성경에서 첫 번째 나오는 십일조는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 나옵니다(창세기 14:18-20). 전쟁에서 승리하며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의 사람 멜기세덱을 만납니다. 승리를 통해 얻어진 노획물 중에서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닥다리를 보았던 야곱은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서원합니다(창세기 26장).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마다 물질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기쁘게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하나님과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고백일 뿐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으로 드립니다.

 

연약한 성도들이 가장 시험 받기 쉬운 부분이 물질입니다. 십일조는 그들에게 무거운 짐일 될 수 있습니다. 세상 기준은 물질의 다소(多少)에 따라 사람을 평가되어지기 때문에 무조건 움켜지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든 물질이 다 하나님의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십일조 이상까지도 기쁨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성소에서 먼 곳에서 바치는 십일조(24-27)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로 나온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드림으로 신앙고백합니다. 하나님께 향한 감사를 하나님께 충성한 자들과 함께 나누게 하신 것이 십일조입니다. 오늘 우리의 헌금은 하나님을 위해 충성스럽게 일한 사람들을 잘 섬기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24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27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이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24-27)

 

십일조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표현이나 형식이 아니라 실천적인 신앙고백입니다. 가진 것을 드려야만할 수 있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그렇게 십일조는 겸손한 신앙인 것과 동시에 적극적인 신앙의 실천입니다. 이러한 십일조는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성소에서 멀리 사는 이들에게도 십일조를 지킬 수 있도록 조치해 주셨습니다. 누군가 자신이 사는 곳이 성소에서 멀다면 십일조 물품을 옮기기가 어렵습니다. 필자는 현재 이 ‘택하신 곳’이 예루살렘 성전이나 특정한 장소에 국한된 성소라고 보지 않고 있습니다. 이 ‘성소’는 중앙 성소의 통제를 받는 여호와가 택하신, 지방의 합법적인 성소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자기 마을에서 성소까지 꽤 먼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멀다’의 기준은 명시되어 있지 않은데, 어떤 유대 문헌은 3일 길로 제시하지만 근거는 없습니다. 이 역시 본인의 판단에 맡겼을 것입니다.

그해 십일조의 양에 따라 운반이 버겁다고 판단되면 ‘멀다’의 기준이 적용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경우 모든 품목의 십일조를 팔아 ‘은전’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봉헌자는 그 은전을 주머니에 잘 싸서 여호와께서 ‘택하신 성소’에 올라가야 한다 거기서 그 돈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사서 마음껏 십일조의 축복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구매품목들이 나열됩니다: 소나 양/염소, 포도주나 독주(곡주), 곡식과 포도주(포도 음료) 및 기름과 다른 품목들이 성소 주변에서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돈으로 다시 사는 품목에 소와 양이 있는 것으로 보아(26), 토지 소산물의 십일조는 대표적인 표현일 뿐 십일조 품목에는 정기적으로 바쳐야 할 가축의 십일조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 나열된 물품들은 단순히 대표성을 지닌 것들로 보아야 합니다.

봉헌자는 이것들을 십일조 물품으로 구입해 가족과 더불어(또한 레위인들과) 축복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이 십일조 축제의 자리에는 가족들만이 아니라 레위인들도 동참시킬 것을 명령합니다(또한 12:17-19). 이것은 현실적으로 지방에 합법적 제의 중심지가 있었을 것이라는 필자의 ‘복수의 여호와 성소’ 이론을 뒷받침합니다. 십일조는 사제들의 몫이라는 민수기의 십일조 법을 따라 일부를 먹고 즐긴 뒤 남은 모든 십일조 품목은 전부 레위인들의 몫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날에는 자기 재산이 축 나는 날이 아니라 즐겁게 축제를 벌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나눌 수 있는 날이 되라고 하십니다.

 

오늘날도 자신의 소유를 자원하는 마음으로 내놓은 사람들은 드리면서도 이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마음인지 알 수 있습니다. 헌금을 드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감사와 찬양할 수 있습니다. 헌금이 더 많은 것을 받는 것, 투자하는 마음으로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린 것입니다. 받치는 일 자체가 그에게 축복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십일조(28-29)

공동체는 몸과 같이 하나입니다. 공동체는 하나로 연합을 이루어가는 공동체입니다. 공동체 안에 연약한 지체가 모른 척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결국 공동체 스스로 병들어 가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 연약한 사람들을 위해 물질로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28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 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28-29)

 

하나님께서는 생소한 다른 십일조를 명령하셨습니다. 이 십일조는 7년 주기의 매 3년째마다 특별하게 드립니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십일조와 별개의 십일조가 아닌 동일한 것인데, 3년 주기로 용도가 더 특별했습니다.

이 매 3년의 십일조는 ‘네 성읍에 저장해야’한다고 설명되는데(28), 이것으로 레위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인 객(이방 거류민)과 고아와 과부들을 먹이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을 실천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더 큰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29). 매년 가족들이 즐거워하면 먹던 십일조를 사회적인 약자에게 나누어 먹으면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치는 것으로 간주될 것입니다.

 

우리들도 공동체 안에 사회적인 약자들을 배려하는 십일조를 잘 행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받은 헌금을 반드시 일부를 구별해서 약자들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도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을 잘 돌아보아 아름답게 그들을 섬겨야 합니다. 십일조의 정신을 잘 실천하면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다른 것으로 축복하실 것입니다.


우리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질은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답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이 ‘십일조’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시이며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들에게 사랑할 때, 물질로 사랑을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께 드려야할 것으로 표현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신의 주변에 연약한 이웃을 물질로 섬기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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