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02-01)
중보기도 하는 사역자
디모데전서 2장 1-8절
그리스도인이 되면서부터 새로운 고민이 생깁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대로 모든 일을 결정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일이 생기면, 먼저 ‘그리스도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삶 속에 ‘그리스도’라는 방지턱이 하나 더 생긴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그리스도로 살도록 부름 받았기 때문에 모든 일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도들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길을 바르게 따라 살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1-4절은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선한일이라고 권하며, 5-8절에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설명합니다. 8절은 ‘모든 분노와 다툼을 버리고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는 권면으로 마무리합니다. 모든 사람들, 특히 핍박자인 왕들과 권세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에도 분노의 마음이 아니라 거룩한 마음과 태도로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간구(1-4)
기도의 제목들이 많아질수록 영혼의 시야 또한 넓어집니다. 성도들은 기도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공급받기에, 기도하지 않고는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 능력을 얻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 기도함으로써 그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1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3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4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1-4)
믿음의 싸움을 싸우라고 권면했던 바울은, 이제 기도에 대해 권면합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는 ‘기도’뿐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진리를 왜곡하는 거짓 교사들에 의해 점점 교회가 어려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일 때마다 진리에 대해 논쟁이 끊임없이 행했습니다. 영적인 질서를 세워가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기도 밖에 없습니다.
⑴ 임금과 권세자들을 위한 기도(1-2)
디모데를 향한 권면에서 바울이 이제 강조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아마 바울은 거짓 교사들이 에베소 교회 안에 활개 치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기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①기도의 대상(1)
바울은 첫 번째 중요한 사항으로 말하는 것은 기도에 어떤 사람을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기도의 대상을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합니다. 어느 한 사람을 빼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②기도의 종류(1b)
바울은 기도에 대해 강조하면서 기도에 대한 표현을 네 가지로 사용합니다. 그는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고 권합니다. ‘간구’와 ‘기도’와 ‘도고’는 비슷한 용어라 특별한 의미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단어들을 언어상으로 비교해 보면, 첫째, ‘간구’(δέησεις)는 ‘긴박한 상황에서의 어떤 특별한 성취를 위한 탄원’을 의미합니다(히브리서 5:7). 둘째, ‘기도’(προσευχάς)는 일반적인 의미로 ‘하나님을 향한 모든 경건한 아룀’을 뜻합니다. 셋째, ‘도고’(ἐντευζεις)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것’(디모데전서 4:5)를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감사’(εὐχαριστίας)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심에 대해,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행하셨고 지금도 이루고 계시는 바에 대해 감사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③ 특별한 기도의 대상(2)
기도의 대상으로 특별히 ‘임금들’과 ‘권세자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중에도 특별히 이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합니다. 바울이 특정하고 있는 ‘임금들’(βασιλέων)은 당시에 성도들을 핍박하던 네로 황제뿐만 아니라 지위가 낮은 분봉왕들도 포함합니다. 악한 통치자를 위해 기도라는 권고는 사람들에게 충격적입니다.
주후 1세기 당시의 상황에서 왕들과 권세자들은 교회를 핍박하는 주된 세력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성도들이 기도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할 이유는, 바로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사실 성도들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성도들이 세속적인 권력에 대해 기도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통치자들의 정책이나 결정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권세자들을 위한 기도는 나라의 안녕과 사회 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정부와 사회가 평안한 상태로 나아갈 때 성도들도 안정된 생활을 영위해 갈 수 있습니다.
기도해야할 모든 사람 속에는 나라의 최고 지도자와 위정자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교회와 복음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고 적대세력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의 로마 황제나 각 지역의 분봉 왕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복음의 원수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입니다. 구약의 예레미야도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예레미야 29:7)라고 외쳤습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성읍을 위해서 힘써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써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이 평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⑵ 기도의 목적(3-4)
바울은 이제 권세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선한 기도는 하나님 앞에 상달되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흔쾌히 응답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요한일서 5:14).
기도의 목적은 단지 그리스도인들의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기뻐하시는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기도를 통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의 구원에 대한 언급을 신학적 논쟁으로 끌고 가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이것은 보편적 구원이나 제한적 구원과 같은 신학적 문제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아마 바울은 소수의 특별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거짓 교사들의 영지주의적 구원관을 비판하는 듯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시의 지식을 받은 특별한 사람들만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진리를 깨달아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의 구원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자로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가 선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러한 기도를 통해 성도들이 경건하고 단정한 가운데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도들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함으로 그들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기독교 신앙은 에베소 교회 안에 있던 거짓 교사들처럼 자기만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하는 것이 참다운 기독교 신앙임을 간접적으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기도까지도 개인의 욕심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하길 원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자기만 위한 이기적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품고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최고 지도자부터 연약한 사람들까지 품어주는 공동체입니다. 성도들은 모든 인류를 위해 기도할 때, 세상에 평화가 찾아오고 안정스러운 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밀려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하심(5-8)
만약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 자신의 생각만 고집한다면, 공동체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단지 자기주장만 관철하려기보다는 먼저 기도하고 서서히 주장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든든히 세워져 갈 것입니다. 비록 기도가 연약하고, 느리게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는 가장 거룩하고 가장 최선의 방법입니다.
5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6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7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8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5-8)
바울은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하라고 한 후에, 그리스도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중보자가 되신 것처럼, 성도들이 자기만의 신앙이 아니라 세상의 중보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가르치기 위해 사도로 부르심 받았음을 강조합니다.
⑴ 예수는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오심(5-6)
이제 바울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해 설명합니다. 먼저 개역개정 성경에는 ‘γάρ’(왜냐하면)가 번역이 생략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강조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신 예수 밖에 없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은 전 우주를 총관하고 계신 분은 유일하신 절대자요 초월자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구원과 은택을 받을 자가 단지 유대인이나 특정 집단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로마서 3:22).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오로지 한 분으로서 그 어느 민족에게나 똑같은 관계를 가지시고 똑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분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도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구원관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반박합니다. 그들은 잘못된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성도들에게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영지주의 신관은 이원론적입니다. 영지주의는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초월적인 지고(至高)의 신이 있다고 보고, 조금 덜한 열등한 신이 천지만물을 창조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사람’이란 표현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께서 참된 인간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은 영지주의의 가현설(假現說)에 대한 반대입니다. 영지주의에서는 구원자가 사람일 수 없습니다. 단지 사람처럼 나타났을 뿐 사실은 신적인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중보자이며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는 참된 사람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참된 인간으로 오셔야만 했던 필연적인 이유는 친히 자신을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입니다. 영지주의와 기독교 구원의 핵심적인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영지주의는 계시의 지식을 받음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원자는 계시의 지식을 전달해 주는 역할만 하면 되기 때문에 굳이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와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복음의 핵심은 구원이 영적 지식을 소유함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서 죄사함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사람으로 오셔야만 했던 것은, 그가 대속적인 제물로 죽으셔야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구원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계획하셨던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어 그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신 것은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한 것입니다. 영지주의에서 구원자는 소수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왔지만, 그리스도 예수는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선한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⑵ 바울은 이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7-8)
이제 바울은 자기 자신과 사역에 대해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7)고 소개합니다. 이러한 구원의 복음을 위해 전파자로서 ‘사도’로 세움 받았습니다. 바울은 ‘내가 사도가 되었다’라고 말하지 않고 ‘사도로 세움 받았다’고 수동태로 설명하는데, 이것은 그를 사도와 전파자로 세운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스스로 선생이 되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운 자입니다. 그것이 참말이며 거짓말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왜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해야 했습니까? 디모데가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 의심이나 도전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왜 바울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야만 했습니까?
아마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시 한 번 확신과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거짓 교사들을 상대해야만 했던 젊은 디모데는 자신의 위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자신감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신임을 받는 제자였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에 의해 사도로 세움 받았다는 것이 거짓이 아닌 진실이라면, 그러한 바울로부터 세움을 받은 디모데도 하나님이 세우신 종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디모데는 이러한 사실에 대한 확신을 갖고 거짓 교사들을 물리쳐야 했습니다.
바울은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도하기를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생활 속에서 종일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즉 통치자와 백성들 모두를 위해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과 더불어 교통과 교제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는 자신이 속한 곳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먼저 남자들이 교회 내에서 서로 화목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엄격히 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태복음 5:23-24)고 하셨습니다.
바울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란 말을 사용한 것은 이방인과 유대인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여전히 선민의식(選民意識)을 고수하고 있었으므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하는 것을 배척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분쟁이 종종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분쟁은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 가운데서 종식되어져야 했습니다.
기도의 자세에 대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고 언급합니다. 성경에 소개된 일반적인 기도의 자세는 서서 손을 들고 기도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출애굽기 9:29; 열왕기상 8:22; 시편 63:4; 누가복음 18:11). 그러나 바울의 의도하는 기도는 손을 들고 기도하는 자세를 말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분노와 다툼이 없는 손’입니다.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적질을 행하거나, 기타 범죄를 짓고 나서 더렵혀진 손을 듣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손으로 듣다면 하나님께서 돌아설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할 때는 몸의 자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기도는 매우 연약해 보이고, 느리게 보일지라도, 가장 거룩하고 가장 선한 영적 싸움의 길입니다.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께 지는 일이 참다운 승리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자신이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하는 일입니다. 기도가 승리의 길인 이유입니다. 사사로운 일에 집착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뜻을 깨닫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함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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