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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01-01)


속지 말아야할 거짓 교훈

디모데전서 1장 1-11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복음은 참 복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우리는 올바른 것을 안다고 해서 올바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하지만 올바른 가르침은 항상 필요합니다복음에서 나온 교훈이 아니면 우리는 그 교훈에 따라서 그릇된 삶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잘못된 가르침은 병균과 같아서 그 가르침을 받는 개인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 전체를 병들게 합니다병을 이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병균을 이기는 바이러스를 갖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홀로 남겨둔 장로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서남겨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합니다그에게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거짓 교사를 물리치고 바른 교훈을 가르치는 것이 사명이라고 권합니다그리스도인들이 삶의 열매를 잘 살피므로 항상 거짓 교훈에 휩쓸리지 않고 에베소 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도록 권면합니다.

 

문안 인사(1-2)

성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확신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확신정의가 분명하지 않으면 혼란과 어둔 세상을 향해 싸워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사단은 가장 먼저 성도들의 정체성을 공격하고 무너뜨리려고 시도하기 때문입니다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알리고 있습니다.

1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1-2)

사도 바울은 문안 인사에서 자기에 대한 소개와 이 서신을 받는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기원합니다또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소개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사도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먼저 바울은 문안 인사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소개와 이 서신을 받는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⑴ 발신자 사도 바울(1)

사도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고 소개하면서자신이 어떻게 사도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합니다또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소개합니다.

① 사도권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을 사도로 소개합니다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서 사도가 되었다고 주장합니다자의적으로 사도직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거짓 선생들은 스스로 교회의 선생을 자처하며 바울의 사도성을 공격했던 것입니다.

② 사도의 근원

바울이 다른 서신에서는 자신의 사도됨을 소개할 때 주의 뜻에 따라 되었다고 말하는데여기서는 명령을 따라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특이합니다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도가 되었고 자신의 사도됨의 기원입니다그 기원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다른 서신에서는 바울은 사도가 된 것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되었다고 말하지만이 디모데전서에는 특이하게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에 따라서 되었다고 말합니다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도가 되었다는 것은 사도됨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사도적인 권위를 강조하고 싶을 때 이런 표현을 사용합니다디모데전서처럼 예수의 명령에 따라 사도가 되었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사명감에 대해 강조하고 싶을 때 사용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사도로 삼으신 하나님을 구주로 소개합니다그의 서신들에서 대부분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라고 소개하는데조금 디모데전서에는 특이하게 하나님을 구주 소개합니다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은 늘 구원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그 하나님의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약에서는 펼치신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후, 5년을 더 살다가 주후(AD) 60년에 순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1차로 로마 감옥에서 풀려난 후에 바울은 스페인(당시 땅끝)에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그런 후에 다시 소아시아 지역을 방문하면서 말씀을 전합니다그렇게 소아시아를 방문하는 동안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기록하였습니다그리고, 67년에 다시 체포되어 로마에 도착하고 감옥 생활하면서 마지막으로 디모데 후서를 기록한 후에 순교를 당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에베소를 방문하여 잠시 사역한 후에이 에베소 공동체는 거짓 교사들로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디모데를 문제점이 많은 에베소 공동체에 남겨두고 마게도니아로 떠났습니다젊은 장로를 문제가 많은 곳에 남겨두고 떠날 때바울은 걱정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노심초사하면서 문제 많은 공동체를 바르게 지도할 수 있을지 기록한 서신이 바로 디모데전서입니다.

⑵ 수신자 디모데(2a)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서신을 썼습니다그를 참 아들로 묘사합니다참 아들이란 표현은 거짓 아들을 염두하고 사용한 표현합니다이 표현은 친밀감의 표현인 동시에 디모데가 바울 복음의 참된 계승자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로마 감옥에서 풀려난 바울은 자신이 전도했던 교회를 돌아보는 길에 에베소를 방문했다가 교회 안에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으로 공동체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리고 그곳에 디모데를 남겨 두고 마게도니아로 떠났습니다.

에베소에서 사역에 있어서 바울과는 비슷하지만 다른 가르침으로 미혹하던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그러기 때문에 자신의 가르침을 가장 잘 반영한 사람은 다름 아닌 디모데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사역을 통해 에베소 교회의 거짓 교사들을 염두에 둘 때이 표현의 중요성은 더욱 들어납니다바울은 오직 디모데만이 복음의 참된 계승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그는 디모데는 거짓 교훈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에베소의 공동체를 돌보는 귀한 사역을 받았습니다그에게 올바른 가르침과 경건한 삶을 통해 진리 가운데 잘 세워줄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⑶ 인사 내용 은혜와 긍휼과 평강(2b)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은혜긍휼과 평강을 빌어주고 있습니다다른 성경과는 다르게 하나 더 긍휼이란 단어가 첨가 되어 있습니다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일반적으로 은혜와 평강이라는 말을 인사말로 사용했습니다(고린도전서 1:3; 고린도후서 1:2; 갈라디아서 1:3; 에베소서 1:2; 빌립보서 1:2; 골로새서 1:2; 데살로니가전서 1:1; 데살로니가후서 1:2; 디도서 1:4; 빌레몬서 1:3). 그러나 본문에서는 긍휼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이처럼 긍휼이 서신의 인사말에 언급된 경우는 본서 외에 디모데후서 1:2 ; 요한이서 1:3 ; 유다서 1:2에만 해당됩니다긍휼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상황을 지배하시고 한없는 사랑과 위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긍휼은 죄인들을 고통에서 구원하여 항상 새롭게 합니다한편 은혜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구원의 선물이며평강은 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의 결과입니다이렇듯 모든 은혜와 긍휼과 평강은 하나님께로서만 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참된 아들로 묘사합니다. ‘참 아들이란 표현은 친밀감의 표현인 동시에 디모데가 바울 복음의 참된 계승자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에베소 교회의 거짓 교사들을 염두에 둘 때 이 표현의 중요성은 더욱 드러납니다바울은 오직 디모데만이 복음의 참된 계승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서신을 기록한 목적(3-7)

오늘날 성도들은 이 시대에 속한 유행한 가르침을 따르려고 합니다그것이 지혜롭게 능력이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성도들은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진리 안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특히 성경적인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거나 복음의 가치를 훼손한 가르침은 피해야 합니다.

3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4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5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6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7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3-7)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디모데를 남겨둔 이유를 설명하면서어떻게 사역해야 할지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이곳에서 복음 전파하는 어려운 과정특히 거짓 교사들의 거짓 교훈과 방해에 대해 격려하고 확신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디모데가 에베소 교회를 사역할 때 필요한 교훈을 주기 위해 서신을 썼던 것입니다.

⑴ 에베소에 남겨둔 이유(3-4)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고하였습니다디모데가 사역하고 있는 에베소 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거짓 선생들이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어떤 사람들이 들어와 자기들도 알지 못하는 거짓 가르침을 가르쳤습니다이러한 가르침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아무런 유익도 없었습니다쓸데없는 말싸움과 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 교회는 디모데의 도움이 필요한 만큼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젊은 디모데는 혼자서 거짓 교사들을 상대하기가 두려워서 에베소에 남아 있기를 꺼려했을 것입니다그래도 바울은 권하였습니다명령하지 않고 권한 것은 그의 의사를 충분히 존중해 주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기본과 목적도 몰랐습니다그저 율법을 가르치는 목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선생이 되기만 원했습니다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거나 복음을 가르치는 것은 뒷전이었습니다그들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유명해져 우월의식만 가지길 원했습니다.

⑵ 바른 복음의 목적(5)

디모데가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거짓 교사들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도록 막아야 했습니다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상관없거나 그 복음의 가치를 훼손하는 가르침을 말합니다그 교훈은 신화(神話)와 끝없는 족보에 의지해서 가르쳤습니다이 신화는 구약과 유대적인 전통을 헬라 관점에서 신화적으로 해석한 내용입니다그리스나 로마 신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들과유대교의 영향을 받아 자신이 아브라함의 혈통인 것을 자랑하려고 성경에 기록된 유명한 조상에게 자신의 족보를 끼워 맞추는 거짓스러운 이야기들입니다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었습니다그 결과 스스로 교만하려니 성도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 교훈의 목적은 복음의 목적은 성도들로 하여금 사랑을 행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복음은 단지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대상입니다성도들이 실천해야할 사랑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어야 합니다이 세 가지 요소는 복음의 중요한 특징입니다정결한 마음은 나중에 거짓 교사들의 교만하고 부패한 마음과 대조되며선한 양심은 거짓 교사들의 화인 맞은 양심과 대조되고그리고 거짓이 없는 믿음은 미혹하는 영과 귀신이 가르침을 따르는 거짓 신앙과 대조가 됩니다.

⑶ 거짓 교사들의 모습(6-7)

에베소 교회에는 거짓된 교사들 중에 거짓 교훈으로 통해서 인기를 얻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부러워했고그것을 따라 자신들도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였습니다하지만거짓 선생들은 교훈의 참된 목적에서 벗어났습니다원래는 복음 안에 있었는데나중에 잘못된 길로 벗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그들의 가르침은 헛된 말과 공허한 말로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논쟁만 불러 일으켰습니다복음은 사변적인 논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아니라 율법을 신기한 방식으로 해석해서 자신의 지식만 자랑하던 자들이었습니다하지만 스스로 자신들이 무슨 말하고 있는지를 몰랐습니다그러나 율법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왜곡한 사람들이 문제입니다그들은 세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첫째지도자가 되기에는 부적합한 결함이 있었습니다둘째 그들은 복음에서 떠나서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고 있었습니다마지막으로 그들은 교회를 분열시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거짓 교사들이 더 이상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요구했습니다그들의 이기심이 가득한 가르침을 막아야 에베소 교회 안에서 사랑이 가득해지는 것입니다그래서 에베소 성도들이 깨끗한 마음과 순수한 양심과 진실한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으로 가득해집니다에베소 성도들이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풍성해지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그러니깐거짓된 교훈에는 이권을 추구하기 때문에 거룩한 공동체를 분열과 다툼을 조장시키지만바른 교훈은 아름다운 공동체를 겸손한 사랑으로 교회를 세웁니다.

하지만 그들을 따른 에베소 성도들은 놓친 것이 있었습니다그것은 율법을 가르칠 만한 합당한 인격도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교훈에 중심된 내용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서 교사만 되려고 하였습니다사람들 앞에서 가르치는 선생이 되려면선생이 되기 전에 먼저 청결한 마음을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자문해 보아야 했습니다하지만 그들은 사리사욕에 빠진 자들이었습니다언급된 모든 것은 하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바울 시대만이 아니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인기주의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하나님의 사역자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기 하기보다는 자기를 세우는 일에 노력합니다이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늘날에도 잘못된 가르침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잘못된 가르침을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게 만듭니다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오늘날 성경적이지 않은 온갖 성공 신화들이 교회에서 남무 합니다그리고 교회에서 인맥 중심 등과 같은 이야기들이 진행됩니다이러한 것들은 성도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모든 교회들과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도록 기도하며 노력해야 합니다.

 

율법의 올바른 사용(8-11)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성취하셨습니다그것이 영광스러운 복음입니다더는 율법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정죄하지 못합니다하지만 율법은 무용지물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담은 거룩한 말씀으로 무엇이 죄이고 선인지 가르쳐줍니다복음 안에서 율법은 의미가 있습니다.

8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9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10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11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8-11)

사도 바울은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당시 교회들을 순례하면서 복음을 가르치던 교사들을 분별하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거짓 교사들이 율법을 잘못 사용하여 공허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습니다디모데에게 율법의 올바른 사용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⑴ 율법의 기능(8)

율법을 올바르게 사용하면 그것은 선한 것입니다율법은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합니다그런데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해석은 사람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종 불의와 불법을 행하는 자로 만들고 있습니다거짓 교사들은 율법을 지키고 행하는 자들이 아닙니다거짓 교사들은 율법을 지키고 행하는 자들이 아니라 율법을 파괴하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⑵ 율법에 지적한 것들(9-10)

바울은 9-10절에서 율법의 목적과 반대되는 열다섯 가지의 불의한 목록에 대해서 소개합니다여기서 의롭지 못한 자를 말하면서 십계명에 기초한 죄의 목록을 말합니다바울은 십계명을 통하여 신자들의 행위의 표준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연약한 점을 드러냅니다.

1-4계명(불법한 자복종하지 아니하는 자경건하지 아니한 자죄인거룩하지 아니한 자망령된 자), 5계명(아버지를 죽이는 자어머니를 죽이는 자), 6계명(살인한 자) 7계명(음행하는 자남색하는 자), 8계명(인신매매하는 자), 9계명(거짓말하는 자거짓 맹세하는 자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을 말합니다.

이 목록은 불법에서 시작하여 올바른 교훈을 거스른 것은 모두 교훈의 참되 목적에서 벗어난 것입니다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가르친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것을 파괴하고 배척하는 행위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교훈이 가져올 수 있는 파괴적인 결과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이런 모든 것들은 올바른 교훈에 반대되는 것들입니다.

⑶ 율법의 바른 사용(11)

바울은 마지막으로 다시 올바른 교훈이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따른 것입니다여기서 복음의 특징은 두 가지로 복된 것이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소개합니다이 교훈은 바른 교훈건전한 교훈을 의미합니다즉 이 교훈은 복음에 기초합니다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복음을 맡기셨으며 그는 에베소에서 복음을 충실하게 전하였습니다.

선악을 구분할 있는 방법은 그 사람의 열매입니다거짓 교훈에 속지 않으려면 그것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삶에 어떤 열매가 나타나는지 살펴야 합니다그 가르침이 선하면 그들의 삶을 당연히 선한 열매가 맺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거짓되면 거짓 사리사욕의 열매들이 맺은 것입니다예수님께서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마태복음 12:33)고 하셨습니다.


이제 참다운 교훈의 기준이 오직 복음입니다복음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새 언약의 성취입니다복음이 없이 율법을 말하면 그 율법이 자신을 정죄하는데도 율법준수만을 요구하는 사람이 됩니다스스로 자신과 타인에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우는 죄를 짓게 됩니다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론에 미혹되지 말고건전한 교훈을 붙잡음으로써 하나님의 경영을 점차 이루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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