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03-01)
진정한 지도자의 조건
디모데전서 3장 1-7절
어떤 지도자가 통치하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의 국민들은 행복하거나 불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의 미래는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지혜로운 지도자는 나라를 안정시키지만, 반대로 어리석은 지도자는 불안하게 만듭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하면서 나라를 다스려 갑니다. 교회의 지도자들도 동일합니다. 어떤 목회자냐에 따라서 교회가 안정적이고 은혜스러워 날마다 부흥합니다. 바울은 교회의 지도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권면합니다. 예배의 자세에 대해 가르친 후에, 이제 교회의 지도자들이 갖추어야할 자격에 대해 가르칩니다. 교회의 지도자의 자격을 개인의 인격, 가정생활, 신앙경력, 이웃과의 관계의 차원에서 설명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감독의 중요성(1)
교회 안에서 목회자는 복종해야할 존재로 생각하고, 성도들이 목회자를 검증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도자는 공동체가 세운 그 공동체의 한 구성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자신보다 공동체를 중시해야 합니다. 항상 소통을 통해서 지도자의 식견을 공동체가 듣고, 지도자는 이 공동체를 통해 성령께서 하신 말씀을 잘 듣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1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1)
바울은 앞 본문까지 ‘영광스런 성도’의 삶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할 것에 대해 권면했습니다. 이제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에 지도자를 세우는 방법에 대해 권고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세워진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교회 안에 거짓 교사들이 활개한 상황이라, 영적 지도자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했습니다. 아무나 지도자가 되겠다고 자처해서도 안 되고, 엄격한 훈련과정을 통해서 지도자를 세워야 합니다.
바울은 먼저 교회의 지도자인 감독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라는 표현은 ‘이 말은 믿을 만한 진실한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다음 전개될 내용에 대한 중요성을 환기시키기 위해 관용구로 보아도 타당합니다. 바울은 반드시 믿고 따라야 할 중요한 교훈을 강조할 때 이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목회 서신에서 종종 사용되고 있습니다(디모데전서 1:15; 3:1; 4:9; 디모데후서 2:11; 디도서 3:8). 감독의 직분을 맡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자격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감독’을 세울 때 어떤 사람을 세워야 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감독’(ἐπίσχοπος)은 헬라어로 ‘교우를 돌보아 주는 사람’이란 뜻으로,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돌보는 직분을 가리키는 의미입니다. 감독은 교회를 다스리는 직능과 더불어 교인들의 생활 전반을 보살펴 주는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주교’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나, 개신교에서는 ‘장로(목사를 포함한)’로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오늘날 개신교에서 ‘장로’는 ‘목사장로’, ‘치리장로’로 나눕니다. 즉, ‘목사’도 넓은 의미에서 ‘장로’에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감독’의 직분은 개인적인 명예나 어떤 이권을 얻기 위한 위치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 선한 일을 하는 직분입니다. 이러한 열망을 기초로 감독이 되려는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아마 바울은 이것을 강조하면서 거짓교사들을 염두에 두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선생이 되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열망은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불의하고 탐욕적인 자들로서 경건의 말씀을 이용하여 물질적인 유익을 얻으려 하는 자들이었습니다(디모데전서 6:5). 바울은 강조하여 말하기를 선한 일에 대한 열망이 없는 자는 결코 감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합니다. 감독이 되려는 동기와 목적은 반드시 선한 일에 대한 열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곳에서 말하는 ‘선한 일’은 어떤 특정한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온 교회에 유익을 끼치는 모든 일들을 통칭하는 말로 볼 수 있습니다. 목회서신에는 같은 단어가 6회 나옵니다(디모데전서 2:10; 디모데후서 2:21;3:17; 디도서 1:16;3:11). 결국 ‘선한 일’이란, 감독은 전적으로 가르치고 다스리는 일을 하지만, 감독의 ‘선한 일’은 교회를 모두 책임 맡아서 최선을 다해 교회를 돌아보며 각 성도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모한다 함이로다’는 이것은 ‘감독’의 직분을 세상적인 명예와는 구별된 거룩한 목적, 곧 하나님의 영광과 긴밀히 연관된 직책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고린도전서 12:31; 14:1). 당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문제, 외부로부터 오는 핍박 그리고 거짓 교사들을 복음 파괴 등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감독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희생제물이 되어야 했습니다. 교회를 돌보는 일에 반드시 철저한 헌신과 자기희생이 요청되어졌던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이 직제화(職制化)하고 교권적이 되면 이와 같은 본연의 성격을 잃어버리기 쉬운 법입니다. 즉 그 같은 직분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청지기 직분임을 알고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수고와 봉사해야 합니다. 절대로 ‘감독’은 높은 교권적인 위치에서 다른 사람 위에 굴림 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직분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계급이 아니라 오직 섬기며 봉사하는 직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이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사명의식이 없으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해간다면 그것은 죽을 맛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열정과 영혼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처럼 넘쳐야 합니다.
이러한 바울의 교훈을 오늘날 교회 안에 성도들이 반드시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중직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그 동기가 선한 일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할 것이며, 중직자가 된 후에도 이러한 열망을 잃지 않도록 항상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감독의 자격(2-5)
공동체에서 지도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특히 영적인 공동체는 더욱 그렀습니다. 따라서 지도자는 하나님께서 택정하셔야 하고, 공동체는 그 하나님의 뜻을 잘 반영하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로의 기준을 따라서 잘 선정하고 또 그런 장로로 양육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2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4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5(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2-5)
바울은 교회가 든든히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영적인 지도자가 바로 서야함을 권합니다. 이것을 알았기에 지도자의 삶에 대해서 교훈합니다. 바울은 영적인 지도자인 장로의 자격에 대해 몇 가지 거론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덕목은 디도서에서도 제시되어 있습니다(디도서 1:6-7). 감독은 ‘선한 일’을 힘쓰는 자이므로 덕행의 전형이어야 하며, 교회 안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비행(非行)이 없어야 합니다.
⑴ 일반적인 품성(2-3)
바울은 감독이 되고자 하는 동기에 대한 설명에 이어서, 감독이 될 수 있는 인격적인 자질에 대해 설명합니다. 여기서 설명하는 감독의 자질은 대단히 고상한 수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자질입니다. 바울은 긍정적인 측면에서 감독이 갖추어야 할 자질과 부정적인 측면에서 감독이 될 수 없는 자질에 대해 설명합니다.
① 긍정적인 자질(2)
감독으로 긍정적인 자질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고, ‘신중’하고, ‘단정’하며, ‘나그네를 잘 대접’하고, ‘가르치기를 잘’하고, ‘관용하는 자’라야 합니다.
먼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집사의 자격과도 관련하여 요구되고 있는 것으로서(12) 성적으로 자유분방하여 일부다처로 여러 아내를 둔 자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반드시 결혼한 자라야 한다거나 이혼한 자는 안 된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일부다처제에 대한 반대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합니다. 바울도 이 서신을 기록할 당시에 독신이었으며, 과거에 결혼했다가 이혼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절제’하고 ‘신중’하며 ‘단정’한 것을 지적합니다. 이것들은 비슷한 자질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가 가능한 자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절제’(νηφάλιος)는 세상적인 모든 욕망을 제어하는 중에 영적으로 깨어있는 진지한 삶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신중’은 앞선 절제와 비슷한 의미이지만, 모든 일에 조심하며 깊이 생각하는 심적 자세를 의미합니다(디도서 1:8;2:2). 그리고 ‘단정’은 ‘신중’은 내적인 자세를 의미한데, ‘단정’은 외적인 태도를 의미합니다. 즉 의복이나 행동을 단정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것’은 선한 일에 대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당시는 교통이나 숙박시설이 발달되지 않아서 여행자들이 어려움을 치렀습니다. 이들을 위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나그네를 잘 대접하지 않는 자가 선한 일에 열망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잘 가르치는 것’은 감독의 가장 중요한 자질입니다. 특히 거짓 가르침이 많은 시대에 잘 가르치는 것은 감독의 필수적인 자질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말을 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믿는 도리를 분명하게 밝히는 능력을 뜻합니다.
② 부정적인 자질(3)
바울은 감독이 될 수 없는 부정적인 자질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책망 받을 만한 일이 있는 자는 감독이 될 수 없습니다.
먼저 ‘술을 즐기지 않는다’는 말은 술에 중독된 것이나 취해 인사불성이 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디도서 1:7). 바울은 술 마시는 것 자체를 완전히 죄악시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디모데에게 건강을 위해 술을 조금씩 마시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디모데전서 5:23). 감독이 남을 지도하는 위치에서 술에 취해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구타하는 사람’은 감독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직접 폭행하는 것도 있지만, 언어로 폭행하는 것도 있습니다. 감독은 잘 타이르는 자가 되어야지, 구타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관용하는 것’은 ‘다투지 않는 것’과 대조적인 것입니다. 분쟁을 유발하는 자는 감독이 도리라고 수 없습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 어떤 손해나 아픔도 감수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지막으로 ‘돈을 사랑하는 자’도 감독이 될 수 없습니다. 단순히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는 정도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만족을 느껴(시편 23:1) 하나님보다 더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아니함을 가리킵니다. 있는 것을 족하게 여기고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유익이 됩니다(디모데전서 6:6).
⑵ 가정을 잘 다스린 자(4-5)
계속해서, 바울은 감독의 일반적인 자질에 대해 설명합니다. 당시에는 잘 사는 가정은 자녀 교육을 대개 자기 노예들에게 일임했습니다. 부모들의 직접적인 훈계와 사랑을 받지 못한 자녀들 중에 풍기와 정신상태가 많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은 먼저 자신의 가정을 잘 다스려 많은 이들에게 본을 보여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집을 잘 다스림은 교회의 다스림에 대한 모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라야 감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가정 교회가 많았던 당시에 가정은 작은 단위의 교회와 같습니다. 작은 교회를 잘 목회하지 못하면 큰 교회를 목회할 수 없듯이, 먼저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라야 감독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가정을 어떻게 다스리고 가르쳐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릴 자격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공손함’은 자기 자신을 제재하여 위신과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을 가리키지, 남들을 엄격히 다르거나 혹은 자기를 높이는 행동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의 지도자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도 위신을 지켜 그 자녀들로 하여금 진심으로 아비의 말에 순복하게끔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목회서신에서 가정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강조합니다. 가정을 잘 다스리는 것은 감독뿐만 아니라 집사의 자격에서도 강조되고 있습니다(디모데전서 3:12).
5절에 ( )가 쳐져 있습니다. 이 절은 사본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4절을 설명하는 구절로서 일종의 삽입 구절임을 시사해 줍니다. 감독이 직분을 받기 전에 가정 사정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결국 교회 지도자들이 자기의 가정에 충실할 때에야 이것은 결국 자기의 가정에 충실할 때에야 비로소 올바른 목회를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교회의 지도는 내적인 면에서 자기 자신과 가정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자신의 생활을 지도하는 일에서 실패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도하거나 이끄는 데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돌보는 직책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과 가정을 돌보는 일에 그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모든 사람이 받을 만큼 믿음직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감독의 모습(6-7)
감독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새로 입교한 자는 열정은 칭찬 받을 수 있지만 너무 빨리 책임을 맡으면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감독은 교회 안에서 인정받은 사람이 세워져야 합니다. 인정받은 사람은 온전히 삶과 인격에서 흘러나오는 권위로 다스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감독의 자격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6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6-7)
바울은 마지막으로 감독의 자격에 대해 신앙의 경력 측면에서 설명합니다. 먼저 ‘새로 입교한 자’는 감독으로 세우지 못하게 합니다. ‘새로 입교한 자’(νεόφυτον)는 ‘새로 심은 나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최근에 개심하여 세례 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너무 급격히 교회의 중책을 맡기면 자만심에 빠지거나 지나친 책임감으로 중단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특히, 에베소 교회는 새롭게 세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새로운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신자도 종종 교회의 직책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교회의 중직인 감독에는 회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신자를 세워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그 이유로 초신자가 중직을 받으면 교만해질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세상에서는 다스리는 직분을 맡게 되면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위치로 올라가지만, 교회에서는 감독은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입니다. 교회 사역을 세속적인 가치로 임하게 되어서, 어려움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나가서 직분을 매우 세속적인 방법으로 진행함으로 거룩한 공동체가 쉽게 세속화가 될 수 있는 원인이 됩니다.
바울은 ‘새로 입교한 자’들이 잘못 사역하다가 보면,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라고 표현합니다. ‘마귀’(διαβόλου)를 ‘사단’을 위미합니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초신자가 교만하여 사역을 잘못 행하게 되면, 자칫 잘못하면 마귀의 올무에 빠진다는 의미입니다.
초신자의 직분에 대한 교만을 지적한 후, 더불어 감독의 마지막 자격을 언급니다. 그는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라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는 자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여기서 ‘외인’은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가리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칭찬을 받지 못하는 자가 감독이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가 바른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성도는 하늘나라의 시민인 동시에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베드로전서 2:12).
다시 바울은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고 언급합니다. 칭찬을 받지 못하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비방을 받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비방을 받으면 마귀가 쳐놓은 올무에 빠지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마귀는 교회의 지도자를 올무에 빠뜨림으로 교회 전체를 타락시키려고 합니다. 마귀의 올무에 빠진 것에 대한 언급은 알렉산더와 후메내오를 상기시키는 것입니다(디모데전서 1:20). 감독은 교회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와 같습니다. 감독에 대한 비방은 교회에 대한 비방과 같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장로들을 세우는 일들이 명예직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풍토는 교회의 직분이 점점 계급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맺습니다. 세상의 비방이 물밀듯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비방들이 칭찬을 받지 못하는 목회자들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감독은 성도들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칭찬과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섬기는 지도자가 세워지는 새로운 흐름을 세워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이런 자격 없는 사람들을 세워지지 않도록 신중하게 검토한 후 영적 지도자를 세워야 합니다. 한마디로 감독은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교회 안이나 밖에서 모두 존경과 칭찬을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감독(장로)는 그리스도를 사람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라 공동체 안팎에서, 가정에서 인정을 받아야 하며, 이 세상의 지배적인 세계관을 거스르며 하나님 나라 백성의 도리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며,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들을 세워가는 길을 일을 감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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