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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개론



◎ 기록자

◇ 갈라디아서 저자는 사도 바울입니다.
◇ 내적 증거 : 본 서의 서두에 나오는 바울의 사도권 변증(1:1), 그리고 자신을 1인칭을 사용한 문장 전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 외적 증거 : 로마서나 고린도전후서가 갖고 있는 사상적인 유사점 등이 그의 저작을 뒷받침해 줍니다.


◎ 수신인

◇ 이 서신을 받는 사람들은 ‘갈라디아인들에게’라고 헬라어 제목으로 볼 때, 당연히 수신인은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바울의 1차 전도여행 때 세워진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그리고 더베 등에 있는 교회입니다.


◎ 기록 연대

◇ 갈라디아서의 기록 연대는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제1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수리아 안디옥에 머물 때, 곧 예루살렘 교회(사도행전 15장)가 있기 전인 A.D. 48-49년 사이에 기록되었다고 보고, 또 다른 사람들은 A.D. 51-53년에 수리아 안디옥이나 또는 고린도에서 기록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 갈라디아 지역

◇ 갈라디아는 지금의 터키 중부 지방에 있는 하나의 주(州)였습니다. 지명의 기원은 ‘골사람’(Gauls)을 헬라어로 ‘Galavtai’(갈라디아)로 부른 것에 유래합니다.
◇ 이 지방은 동방과 서방을 연결하는 민족이동의 통로이자 식민 활동의 무대였으며 예로부터 갖가지 문명이 꽃피었습니다. B.C 1680년대에는 이 반도의 고원지대를 중심으로 히타이트 왕국이 일어났으나, B.C 1200년대에 쇠퇴하자 그 대신 프리지아 왕국이 일어났으며, B.C 700년대에는 리디아·카리아 등이 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BC 546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제국이 침입한 후로는, 연안의 그리스 식민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반도 전체가 그 지배에 들어갔습니다. B.C 189년 로마의 무장 만리우스에게 정복 되었으나, 왕국의 존속이 허락되고, 그 후 로마의 유력한 동맹국으로 되었습니다.
◇ 이 주(州)에는 산맥과 넓고 높은 평지들과 호수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아시아의 중앙부를 차지하고 있는 넓은 지역인데, 표고 700-1,000m의 고원지대입니다. 기후는 스텝 또는 사막성 기후이며, 여름이 짧고 겨울은 몹시 춥습니다. 흑해 연안지방은 기온 변화가 적으며, 연간 비가 잦다. 지중해와 에게해 연안은 지중해성 기후이며, 생활하기에 가장 알맞습니다.
◇ 주요산물은 밀·보리·포도·과일·잎담배 등이며, 석탄·크롬·철광석·구리·망간 등 광물자원도 풍부합니다. 주요도시는 앙카라·이즈미르·아다나·부르사 등이 있습니다.


◎ 갈라디아에 존재한 교회

◇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전도로 말미암아 설립된 갈라디아 교회에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함으로 교회가 신앙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울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속히 가서 그들의 문제를 바로 잡아 주기를 원했지만, 사정이 허락되지 않아 긴급하게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사도 바울은 거짓 교리로 인하여 황폐해 가는 갈라디아교회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꼈고, 또한 그들을 속히 돕고자 긴급하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성도들에게 간략하게 문안한 함께 곧 바로 본론적인 말을 시작합니다.


◎ 갈라디아서의 기록 목적

◇ 첫째로 사도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해 자신의 사도직과 자신이 전한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것임을 밝히고자 했다. 갈라디아 교회를 혼란에 빠뜨린 율법주의자들은 바울의 사도직이나 복음을 예수에게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고 왜곡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초반부에서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자신의 사도직을 옹호하고 복음의 신적 기원을 주장했습니다. 그의 사도직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것이며, 그가 전한 복음도 어떤 사람들에게서도 받지 않았음을 강조합니다.
    
◇ 둘째로, 사도 바울은 율법의 의미를 밝히고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의 처지를 분명히 드러냄으로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음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율법의 행위(율법을 지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하는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율법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으로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율법의 행위로는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것만 드러나 율법의 저주를 받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믿을 때 성령을 받은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대신 저주를 받으셨고 그로 인해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이제 믿는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근거해 대신 정죄 받으셨고 저주 받으셨기에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과 상관없는 자입니다. 이에 율법에 의해 정죄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 셋째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유업을 받을 자며 자유자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율법주의를 따를 때 다시 종 노릇하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임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은 아들의 영을 받아 아들의 명분을 얻은 것이다.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유업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그런데 이런 영광스런 신분을 가진 자들이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종노릇하고 있다. 율법주의들이 강요한 할례를 받고,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이런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들여 그들을 따르면서, 전에 눈이라도 빼어주고 싶어할 정도로 사랑했던 바울을 아브라함의 두 아들 예를 든다.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에게서 난 자는 아들이기에 아들과 함께 유업을 얻는 자다. 그러나 종인 하갈에게서 난 자는 종이기에 아들과 함께 유업을 얻지 못하고 쫒겨난다. 이 둘은 각각 율법주의자들과 그리스도인을 비유한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다. 그러므로 자유를 누리며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한다.

​◇ 넷째로,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믿음으로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에 대해서 밝히고자 한다.
할례를 받는 등 율법주의에 조금이라도 연관되면 그것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다. 율법주의와 복음을 따르는 삶은 절대로 섞일 수 없다. 하나를 취하면 전체를 취하는 것이며, 다른 것을 배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의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은 어떤 삶인가? 그것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는 삶이다. 믿음을 따라 살 때 사랑으로 역사함으로 거룩한 삶을 성취한다.
복음을 알고 믿어 의롭다함을 얻고 성령으로 살아가는 삶은 절대로 딴 길로 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갈라디아 교회에 나타난 혼란은 어떤 자들이 들어와 일으킨 혼란이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기 때문에, 거짓교리가 조금이라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계해야한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은 곧 성령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성령을 따라 행하면 사랑이라는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할 수 있다. 왜냐면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고 성령의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 죽음에 참여할 때 육체의 정욕과 탐심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다. 이미 육체를 죽인 자니 성취된 것을 일상에서 실현하며 살아가야 한다. 즉 날마다 정욕과 탐심을 못 박아야한다. 성령으로 생명을 얻은 자는 성령으로 날마다 살아가야 한다.

​◇ 다섯째로,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삶이 영생을 거둠을 밝히고자 한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삶을 살아야한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 그렇기에 성령을 따라 행하여 성령의 열매를 거두려고 해야한다.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복음 안에 서는 것이며, 율법주의가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함께 짐을 져야한다. 범죄한 자를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 잡고 항상 자신을 살펴 경계해야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각각 자기가 져야 할 짐을 져야한다. 또한 말씀을 배우고 가르침 받기를 좋아해야 한다. 말씀을 배우는 자는 가르치는 자를 존경하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야 한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아야한다. 때가 이르면 거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든지 기회가 있을 때 선을 행함으로 성령을 위하여 심어야 한다. 물론 이때 믿음의 가정에게 우선 선을 베풀어야 함은 물론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해야 한다. 육체를 자랑하는 것은 헛되며 어떤 것도 창조할 수 없기에 무능하다. 오직 복음만이 새생명을 갖게한다. 오직 복음만이 평강과 긍휼을 얻게 한다. 바울은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 이것은 바울이 참된 진리인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증거다. 결국 우리 모두에게 은혜가 필요하다.


◎ 갈라디아서의 구조

​◇ 본서는 내용 면에서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될 수 있다.
(1) 사도 바울은 그의 사도 자격을 변호·논증한다(1:11-2:21). 바울의 사도 자격 문제는 유대주의자들이 분명히 문제 삼았던 것이다. 그는 이에 대응하여 다음과 같은 점들을 열거하여 사도 자격을 변호한다.
① 하나님께서 그를 직접 부르신 점(1:11-24)
②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 그의 복음이 인정받은 점(2:1-10)
③ 베드로의 위선을 바울이 책망한 점(2:11-21)

(2) 사도 바울은 복음과 유대주의적 이단 사이의 실질적인 차이점을 지적하며, 후자를 강력히 논박한다(3:1-5:12). 만일 아브라함의 자녀이고 그의 약속들에 참여한 자라고 한다면 구원을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니라, 믿음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바울은 지적한다. 그리고 그는 율법의 참 의의와, 믿는 자는 율법으로 부터 자유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3) 사도 바울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방종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5:13-6:8).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자유의 생활을 상세히 논의하며, 육체의 일과 대조시킨다.

 

개요

1:1-10 서 론
   1:1-5   문안  
   1:6-10  시작하는 말

1:11-6:10 본 론
   1:11-2:21  사도로서의 변호
   1:11-12  복음의 출처
   1:13-24  바울의 개인적인 간증
      1:13-17  바울의 개종
       1:18-24  성도의 생활
   2:1-21   바울의 사역의 변호
       2:1-5    예루살렘 공회
       2:6-10   바울과 사도들
       2:11-14  베드로의 외식
       2:15-21  이신득의
   3:1-4:31  바울의 복음 변호
       3:1-5    믿음과 행위의 논제
       3:6-4:7  교리적인 문제
       3:6-9    아브라함의 자녀들
       3:10-14  율법의 저주
       3:15-18  아브라함의 씨
       3:19-22  율법과 언약
       3:23-29  아브라함과 후사들
       4:1-7    하나님의 후사들
       4:8-31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권면
          4:8-11   율법으로의 다시 돌아감에 권면
          4:12-20  개인적인 관계의 권면
          4:21-31  우화로서의 권면
  5:1-6:10  거룩한 삶으로서의 부르심
      5:1     전환
      5:2-12  은혜에서 떨어짐에 대한 경고 
      5:13-26 성령 안에서의 삶
      5:13-18  참 자유는 방종이 아님
      5:19-21  육체의 일
      5:22-26  성령의 열매
      6:1-10   실천적인 가르침들
         6:1-5    서로 짐을 지기
         6:6-10   지혜로운 돈 사용

 6:11-18  결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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