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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22-01)


이스라엘과 아람의 세 번째 전쟁(Ⅰ)

열왕기상 22장 1-14절


참된 제자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주위 사람들의 거짓 충고와 여론과 대세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 대신 성령님께서 말씀 가운데 깨닫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따릅니다.

 

아합은 벤하닷이 길르앗 라못 땅을 돌려주지 않자, 그 땅을 되찾기 위해 전쟁을 계획합니다. 여호사밧은 이 전쟁에 합류 의사를 밝히면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자고 아합에게 제안합니다. 이에 아합은 선지자들을 소집했고, 그들 모두는 그에게 출정을 부추기며,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이들의 일치된 예언에 의구심을 품습니다. 결국 아합은 여호와의 선지자 미가야를 불러오게 합니다.

 

아합과 여호사밧의 동맹(1-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한한 긍휼로 베푸신 소중한 평화를 버리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무모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계획하고 결정하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사람의 도움을 구하고 자신의 형편을 따지기 전에 반드시 성령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뜻을 구한 다음 행동해야 합니다.

1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없이 삼 년을 지냈더라 2셋째 해에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의 왕에게 내려가매 3이스라엘의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길르앗 라못은 본래 우리의 것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어찌 아람의 왕의 손에서 도로 찾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 하고 4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싸우시겠느냐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1-4)

나봇의 포도원 사건(21:1-29)에 이어 다시 이스라엘과 아람 간의 전쟁이 전개됩니다(1-40). 앞서 아람과의 두 차례 전쟁(20:1-34)은 아람이 먼저 이스라엘을 침략했으나, 이번에는 아합이 먼저 아람을 칠 준비를 합니다. 앞의 두 전쟁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승전을 예고하셨고, 그 예고대로 큰 승리를 이뤄주셨습니다. 이번 길르앗 라못 전쟁에서는 아합이 죽게 되며, 이로써 죽음을 예고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됩니다. 1-28절까지는 갈멜 산에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이 참 신을 가리는 경합을 한 것(18:20-40)과 유사하게 미가야와 거짓 선지자들이 출정에 대한 하나님의 참 뜻을 가리는 경합의 진행 과정을 그립니다.

아합은 아람에게서 길르앗 라못을 탈환할 합이 계획을 세웁니다. 길르앗 라못은 요단 동편 길르앗의 한 성읍으로 도피성이며 교통의 요지였습니다(수 21:38). 지난 3년 동안은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없었는데, 아합이 아벡 전투에서 승리한 후 벤하닷과 화친 조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20:34). 그러나 그 조약과 이번 전쟁 사이에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카르카르 전투(주전 853년)가 있었습니다. 당시 아합은 벤하닷 및 열 왕들과 연합하여 시리아 서북부의 카르카르에서 앗수르의 살만에셀 3세(주전 859-824년)에 맞서 싸워 승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전투가 기록된 쿠르크 석비에는 다메섹 왕과 더불어 아합이 가장 막강한 왕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아합은 앞서 아람과의 두 전쟁에서도 크게 승리했고 카르카르 전투에서도 승리했으므로, 이번 길르앗 라못을 탈환하는 일에 큰 자신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합이 잊고 것이 있습니다.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 덕분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번 전쟁에는 유다의 여호사밧(주전 872-848년)도 합류합니다. 그와 아합은 자녀의 정략결혼을 통해(대하 18:1) 적대 관계(14:30; 15:6,32)에서 우호 관계로 전환시켰습니다. 이로써 아람과 앗수르 등을 견제하고 각 나라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 했습니다. 그가 사마리아에 오자 아합은 후히 접대했습니다(대하 18:2). 당시 아합은 길르앗 라못 탈환을 계획했기에, 신하들에게 그 땅이 여전히 아람 왕의 손에 있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고 추궁합니다(3). 아벡 전투에서 패한 벤하닷이 이스라엘에게서 뺏은 모든 성읍을 반환하기로 했으나(20:34) 약속을 어겼고, 이에 아합이 분개했을 것입니다. 영토 탈환에 대해 운을 뗀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동참을 권유합니다. 여호사밧은 자신이 아합과 같고 자신의 백성과 말들도 마찬가지라며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의 적극적이고 호의적인 대답(4)은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모압을 공격하자고 제안했을 때도 나옵니다(왕하 3:7). 그는 여호람 이전에 아하시야와도 동맹을 맺고 교역을 추진합니다(48; 대하 20:35-37). 여호사밧이 이처럼 친이스라엘 정책을 편 것(44)은 군사, 건축, 무역 등(대하 18-20장)에 상승효과를 기대했고, 여러 방면에서 강세를 보였던 오므리 왕조에 대한 호의적 태도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왕이 바알을 섬기는 왕들과 교류하고 돕는 것은 어리석으며, 하나님의 진노를 살 일입니다(대하 19:2).

 

전쟁에 대한 예언(5-9)

자신의 계획을 찬성하고 지지해 주는 종교 자도자와 사람들만 자기 곁에 두고 따라가는 불신앙적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아무리 많은 사람의 의견이 똑같다 해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5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 6이스라엘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 명쯤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그들이 이르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7여호사밧이 이르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8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이르되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이르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9이스라엘의 왕이 한 내시를 불러 이르되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를 속히 오게 하라 하니라(5-9)

여호사밧은 전쟁에 앞서 여호와의 뜻을 알아보자고 아합에게 제안합니다. 전쟁 전에 신의 뜻을 묻는 것은 관습이지만, 여호사밧이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 한 것(5; 왕하 3:11)은 지혜로운 결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 왕이었습니다(대하 17:3; 20:3-4).

반면 아합에게서는 여호와의 뜻을 먼저 묻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매번 전쟁에서 하나님이 먼저 선지자를 보내 승리를 예고하셨고, 전쟁을 지도하셨습니다(20:13-14, 22-25,28). 아합과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대로 승전을 목격한 후 그가 참 하나님임을 깨닫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20:13,28). 그러나 사르밧 여인(17:24)이나 갈멜산의 백성들(18:39)과 달리 그들은 하나님의 전능함을 경험한 후에도 신앙을 고백하거나 악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행하신 여러 기적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돌아오지 않은 것은그들의 완고함을 증명하며,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앞당기기에 합당할 뿐입니다. 아합의 선지자들은 승전을 예언하지만, 여호사밧은 그들의 예언이 미덥지 않습니다. 아합이 여호사밧의 제안에 따라 소집한 선지자는 대략 400명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출정하라고 아합을 북돋우며 “주”가 승리를 주실 것을 예언했습니다(6). 아합은 승리에 대한 예언을 들으니 출정의 명분이 더확고해져 흡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이들 외에 하나님의 뜻을 물을 “여호와의 선지자”가 없냐고 묻습니다(7; 왕하 3:11). 참 선지자 한 명으로도 족한데 무리가 나서서 왕이 기뻐할 예언을 하고 “주”(6절)의 이름으로 예언하는 점 등이 못미더웠을 것입니다. 아합은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가 있으나 좋은 말은 안 하고 나쁜 말만 예언하기에 그를 미워한다고 대답합니다. 여호사밧은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다독이고, 이에 아합은 서둘러 미가야를 데려오라고 명합니다. 이세벨의 선지자 살생 정책(18:4, 13) 속에 미가야 같은 여호와의 선지자가 생존했다는 것은 엘리야나 오바댜가 숨긴 선지자들 외에도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계획 아래 보호하신 자들이 있음을 함축합니다. 그렇다면 400명의 선지자들은 누구입니까? 이들은 ‘여호와의 말씀’(5)을 대언하러 소집됐고, 여호사밧의 떨떠름한 반응 이후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만(11,12,24), 미가야와 같은 무리는 아닙니다. 당시 여호와의 선지자들은 핍박당하고 있었고 아합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대적으로 여겼기에, 여기에 소집될 만한 자들은 우상을 섬기는 선지자들일 것입니다. 갈멜산 대결에 바알 선지자 450명만 언급되었으므로(18:22) 나머지 아세라 선지자들이든지 바알 선지자들과 섞인 무리였을 것입니다. 이들이 왕이 원하는 예언을 하고 부추기는 점(6),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따로 찾은 심(7), 무리 지어 예언행위를 하는 점(10), 예언이 거짓말의 영에 의한 계시라는 점(19-23, 25) 등은 이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는 거짓 선지자임을 알려줍니다.

 

시드기야의 예언(10-12)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말세에 나타날 거짓 선지자를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의 특징은 청중이 듣기 좋아하는 긍정적인 말씀, 축복에 대한 말씀만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여호사밧은 길한 일이든 흉한 일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하는 선지자를 찾으려고 합니다.

10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성문 어귀 광장에서 각기 왕좌에 앉아 있고 모든 선지자가 그들의 앞에서 예언을 하고 있는데 11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자기를 위하여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12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하더라(10-12)

이제 아합과 여호사밧은 성문 입구 광장(또는 타작마당)에 마련된 왕좌에 앉았고, 그 앞에는 선지자들이 승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철 뿔들을 만들어 와, ‘여호와가 이렇게 말씀하신다’로 시작하며, 아합이 뿔들을 가지고 아람을 진멸할 것이라 예언했습니다(11). 철 뿔은 강력한 힘을 상징합니다(신 33:17). 나머지 선지자들도 아합에게 출정하라고 부추기며, 이제는 “주”(6)가 아닌 “여호와”가 승리를 주실 것이라 예언했습니다(12). 6절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올라가소서’의 주체는 아합을 대표로 지칭하는 ‘당신’으로 나옵니다.

 

여호와의 선지자 미가야(13-14)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한다고 해서 축복과 성공에 대한 메시지만 전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전해야 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악한 사람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실한 말씀만을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서야 합니다.

13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신이 일러 이르되 선지자들의 말이 하나 같이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하건대 당신의 말도 그들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 14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13-14)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있는 동안 내시는 미가야를 데리러 갔습니다. 미가야는 당시 성주 아몬과 왕자 요아스의 관할 하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26). 내시는 선지자들이 일치되어 길한 예언을 하니 미가야도 제발 길한 예언을 하라고 종용합니다. 이는 회유이거나 강요일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나 내시는 여호와의 뜻을 찾기보다는 왕을 기쁘게 하거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 뜻을 맞추려 합니다. 내시의 말에 미가야는 ‘여호와가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을 전할 것이라고 답합니다(14). 이는 내시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만을 전하겠다는 각오입니다. 과연 미가야가 전할 여호와의 말씀은 길할지 흉할지 청중의 궁금증이 커져 갑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계획과 욕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거짓 선지자의 메시지를 분별하고 대세 대신 성경적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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