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22-03)
이스라엘과 아람의 세 번째 전쟁(III)
열왕기상 22장 29-40절
차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높은 출력을 내는 엔진의 성능보다 멈추어야할 때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의 제동력입니다. 차량이 멈춰서야 할 때 멈추지 못하면 사고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활 속에서도 멈추어야할 때 멈추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멈출 때를 놓친 채 내달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멈추어야할 때 스스로 멈추지 못하면 타인에 의해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멈추어야할 때, 멈추지 못한 것들은 대부분 죄들입니다. 악이 죽음으로만 멈추게 된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강제로 끌어내려지는 인생이 아니라 노을의 속도로 아름답게 드리운 저녁노을과 같기를 바랍니다.
아합에게 불려온 마가야는 그에게 전쟁에 올라가면 여호와께서 죽이기 위한 거짓 예언이라고 말해줍니다. 하지만 시드기야 선지자는 미가야의 예언을 거짓이라고 하면서 때렸습니다. 그리고 아합은 그를 옥에 가두고 죽지 않을 만큼만 물과 떡을 주라고 명령합니다. 결국 아합은 미가야의 경고를 무시하고 아람과 전쟁하기 위해 올라갑니다. 이제 누가 참 선지자인지가 밝혀질 것입니다.
변장하고 전쟁에 올라간 아합(29-30)
사람들은 종종 자신을 과장하기 위해 거짓의 가면을 쓰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감추려고 쓴 가면이 있다면 그 가면을 벗어버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가야 합니다.
29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30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니라(29-30)
북이스라엘 아합은 전쟁에 올라가면 죽을 것이라는 미가야의 선탁을 무시하고 남유다 여호사밧과 함께 아람과 전쟁하기 위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갑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자신이 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말씀까지 합리화 하는 아합은 참 예언자인 미가야에게는 귀를 닫고, 충동의 소리인 시드기야에게는 귀를 열고 반응하고 있습니다.
길르앗 라못은 이스르엘에서 동쪽으로 약 70km 정도 떨어진 요단 동편에 있습니다. 이곳은 왕의 대로와 주요 대간선이 만나는 곳에 전략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20장 34절에서 아람왕은 이스라엘에게서 취한 성읍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였지만, 이곳은 아직 돌려주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아합은 앗수르가 힘이 조금 약해진 틈을 타서 아람과 전쟁하여 이곳을 되찾으려고 한 것입니다.
아합은 전쟁 전에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당히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사밧에게 자신은 변장하고 갈 것이니, 여호사밧은 왕복을 입으라고 합니다. 아합이 변장을 하려는 이유는 미가야의 신탁을 무시하고 전쟁터에 올라왔지만, 마음 한편에 두려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옷을 입고 다른 사람인 것처럼 가장하면 죽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대신 여호사맛에게 왕복을 그대로 입으라고 명령한 것은 여호사밧이 자기 대신 적들의 공격 대상이 되도록 만들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아합은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그 두려움이 자신이 추구할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향한 모습입니다. 아합처럼 신앙의 가면을 쓰고 입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실제 삶에서는 자신의 왕국을 세우고 사는 종교인은 아닙니까? 혹시 자신에게 아합의 가면처럼 여전히 포장되어 있다면 이제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선명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길 바랍니다.
아합만 잡으라고 명령한 아람 왕(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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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아람 왕이 그의 병거의 지휘관 삼십이 명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와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 한지라 32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그들이 이르되 이가 틀림없이 이스라엘의 왕이라 하고 돌이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는지라 33병거의 지휘관들이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님을 보고 쫓기를 그치고 돌이켰더라(31-33)
모든 계획이 아합 왕이 정한 꾀대로 순탄하게 이루어져 간 것처럼 보여 집니다. 이 장면은 아람 군대의 상황으로 아람 왕은 그의 병거 지휘관들 32명에게 특별한 명령을 내립니다. 병거 지휘관들은 아람 군대의 주요 지휘관들로 아람 왕은 그들에게 작은 자나 큰 자와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고 지시합니다.
아람 왕은 전쟁에서 지휘관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병사들이나 지휘관들 몇 명을 죽이고 잡는 것보다는 왕을 잡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확실하게 승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특히 왕이 이끄는 전투에서는 왕이 죽으면, 부대는 그대로 흩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람 왕의 명령은 미가야가 아합에게 했던 예언과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람 왕을 통해 아합을 죽이려는 계획을 실행하고 계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작전 명령에 지휘관들이 왕복을 입고 있는 여호사밧을 보고,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확신하고 그에게로 돌아서서 싸우려고 달려왔습니다. 여호사밧은 큰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여기서 ‘부르짖다’라고 번역한 동사는 일반적으로 위험이나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여호와께 도움을 요청하며 부르짖을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몰라지 여호와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여호와를 잘 섬겼고 여호와 보시기에 선한 왕이었습니다.
이렇게 여호사밧이 큰소리로 부르짖을 때, 병거의 지휘관들은 자신들이 쫓고 있던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 아합이 아닌 것을 확인한 후 추격을 멈추고 돌아섭니다. 여호사밧은 자신의 부르짖음으로 인해 죽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역대하 18장 31절에서는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가게 하신지라’라고 말하면서, 여호와의 도움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여호사밧 왕은 여호와의 도움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우연한 화살에 맞아 죽은 아합(34-36)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은 계산하지 않는 우연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환경을 의지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가 운명을 결정지었습니다.
34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내가 전쟁터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35이 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에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36해가 질 녁에 진중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어 이르되 각기 성읍으로 또는 각기 본향으로 가라 하더라(34-36)
아합의 잔꾀처럼 이루어져 간 것 같았지만, 돌발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도움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반면에, 아합은 우연히 어떤 사람이 아합을 맞힐 의도 없이 쏜 화살에 맞습니다. 그것도 가슴 갑옷 솔기 사이에 맞았습니다. 아람 왕의 칼을 위장한 가면으로 피한 아합은 무명의 병사가 쏜 화살에 맞고 맙니다. 무심히 당기고 쏜 화살이 아합 왕의 갑옷 중에도 가슴막이의 아주 조금 여백이 있는 이음새 사이를 뚫고 들어간 것입니다. 여기서 화자는 ‘의도하지 않게’, ‘갑옷 솔기 사이에 맞는다’라는 표현하는데, 이것은 거의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이렇게 아합이 기적에 가까운 확률로 화살을 맞았다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가리킵니다.
아합 왕은 적장의 시선은 피했지만 심파나의 화살을 겨누고 있는 하나님의 시선은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정교한 갑옷도, 현장에 처세술도 하나님의 시선을 막지 못합니다.
미가야를 통해 들은 여호와의 신탁을 피하려고 왕복을 입지 않았고, 대신 유다 왕을 미끼로 세웠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갑옷까지 꼼꼼하게 입었지만, 여호와께서 날릴 화살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아합이 왕이고 갖은 책략을 갖고 있어도, 세상의 왕이신 여호와의 눈은 피할 수 없었고, 여호와의 지혜를 능가할 수 없었습니다. 아합은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여호와의 손과 눈을 피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였고, 그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전장의 한복판에서 아합의 최후를 알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앞에서 미가야가 예언한 내용이 성취된 것입니다(열왕기상 22:17). 화살을 맞은 아합은 병거를 모는 자에게 자신이 화살을 맞았으니 빨리 전쟁터에서 벗어나라고 명령합니다. 그는 치료를 받기 위해 급히 전장을 벗어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합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점점 치열해져 그의 병거는 아람 군대 앞에서 마저 오도 가도 못하다가, 저녁 무렵에 결국 아합은 병거 바닥에 많은 피를 흘리고 죽게 됩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무참히 패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아합의 마지막 모습은 참혹합니다. 죽음을 피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매우 고통스럽게 하루 종일 피를 흘리고 죽었습니다. 아합 왕이 죽고 저녁 무렵이 되자 각자 집으로 가라는 소리가 울려 펴졌습니다. 아합의 죽음이 확인된 후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입니다. 결국 아합은 미가야가 예언한 것처럼 전쟁터에서 죽었고, 미가야가 참 선지자였다는 것이 분명하게 증명되었습니다.
오늘날 광야를 살아가는 많은 성도들의 삶 속에서 가면을 쓰고 진리를 왜곡하는 삶을 살면서도 멈추지 않습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자기만의 성을 쌓는 일에 몰두하며 계속 진격하고 있습니다. 누가 과연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진격하는 사람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합처럼 시퍼런 칼끝이 심장에 파고 들어와야만 욕망의 경주를 멈출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 전에 하나님의 진검의 말씀 앞에 나가야 합니다.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기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신실한 말씀 앞에 내보여야 합니다.
죽음의 공식(37-40)
하나님 없이 죄와 함께 쌓여 가는 재물과 지위와 명성은 다 헛될 뿐입니다. 삶을 통해 순종한 말씀의 흔적들이 인생의 요약이 되게 해야 합니다. 아합의 죽음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실지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37왕이 이미 죽으매 그의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러 왕을 사마리아에 장사하니라 38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더라 39아합의 남은 행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건축한 상아궁과 그가 건축한 모든 성읍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40아합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37-40)
전쟁터에서 죽은 아합의 시체를 그의 부하들이 사마리아까지 메고 와서 사마리아에 안장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봇 사건으로 인해 아합의 가문에 심판을 내리셨을 때, 아합이 회개하여 아합 때에 내리시기로 한 징벌을 미뤄주셨습니다. 그래서 아합은 사마리아에 안장할 수 있었습니다.
전에 아합은 자신의 탐욕 때문에 순전한 사람 라봇의 포도원을 빼앗고 그를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개들이 라봇의 핥은 못에서 아합의 시체의 피도 핥을 것이라고 예언이 있었습니다. 다만 열왕기상 21장 19절에서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던 곳에서 네 피를 핥았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아합에게 내린 심판을 이제 시작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후에 아합의 아들 요람은 예후에 의해 나봇이 죽은 곳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아합을 통해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됨을 보여줍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결론을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38)고 맺습니다.
아합의 업적을 이야기하면서 특별히 그가 건축한 상아궁을 말하고 있는데, 당시에는 상아로 만든 가구 장식과 널판을 벽에 붙여서 만들었습니다. 상아는 주로 아람에서 수입하였습니다. 아합이 사마리아에 상아로 만든 호화로운 궁전을 만들었다는 것은,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백향목 궁을 만든 것과 비교됩니다. 이것은 아합이 다스렸던 왕국이 매우 부유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의 백향목 궁을 만드는 것도 솔로몬이 매우 큰 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합은 바알 숭배를 수단으로 부와 영화를 얻었고, 그 결과물이 호화로운 상아 궁입니다. 아마도 아합의 가장 큰 업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열왕기 기자는 솔로몬과는 다르게 그의 상아궁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한마디만 언급하고 넘어갑니다. 아합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합의 긴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아합은 북이스라엘 왕들 중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것은 그의 아내 이세벨이 시돈 사람으로 이스라엘 땅에서 여호와 신앙을 없애고 바알 숭배를 퍼뜨렸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여호와 신앙을 없애려는 시도에 대해 여호와께서는 엘리야를 비롯한 여러 선자지들을 보내시고 큰 권능을 보여주시며, 아합과 이스라엘에게 여호와께 돌아올 기회를 여러 번 주셨지만, 결국 아합은 이런 기회를 모두 버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가장 악하다고 평가 받던 시대에 가장 강한 선지자와 많은 선지자를 보내신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표현입니다.
진실 대신 믿고자 했던 거짓은 아합을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역시 거짓으로 위장한 차림으로 맞게 되었습니다. 실체를 가리고 위장해도 하나님의 화살은 피할 수 없습니다. 아합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를 제시하셨습니다. 성도들이 잘못된 길을 가는 발을 멈추어 세우는 것이 말씀이어야지, 치명상을 입히는 화살이 되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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