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20-04)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받은 아합
열왕기상 20장 35-43절
1940년대 많은 성도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투옥되었고, 목숨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당시 삼척에 끝까지 신사참배를 하지 않았던 최인규 권사가 있었습니다. 경찰서장은 그에게 똥지게를 지우고 “나는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 최인규다”라는 글을 가슴에 달고 거리로 끌고 다녔습니다. 그의 온 몸에는 이미 모진 고문 자국이 피얼룩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친구 한 사람이 경찰서장을 찾아가 부탁했습니다. “나는 최인규의 친구 자국성이오, 내 친구는 본래 정신이상자라 헛소리를 잘하오. 그러니 그를 풀어주시오”. 이 말을 들은 경찰서장은 오히려 “미친 것은 최인규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오. 예수를 믿으려면 최인규처럼 믿으시오. 신념을 가지고 말이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핍박하는 사람에게 적당한 눈속임으로 나의 편안을 찾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믿으려면 최인규처럼 믿어야 참된 믿음입니다.
본문에는 하나님의 긍휼함을 받고,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이스라엘의 왕이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심으로 말미암아 강한 아람왕 벧하닷의 침공을 두 번이나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생각해 자신의 생각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이 교만한 이스라엘 왕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책해 나가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선지자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35-37)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믿음은 이에 대해 순종을 선택할 것인가 거부를 선택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우리는 마음의 태도를 점검해야 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승리를 이루신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 평판에 도취하여 오만한 아람 왕을 살려 보낸 아합 왕에게 하나님꼐서는 생명의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35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친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 36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37그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매 그 사람이 그를 치되 상하도록 친지라(35-37)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아합에게 보내어 심판의 소식을 전하기 전에, 선지자의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아합에게 요구한 것이 순종이었음과 불순종의 대가가 죽음임을 알리십니다. 이 선지자는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35)이며, 앞에 등장했던 선지자(13,22,28)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선지자의 무리”는 문자적으로 ‘선지자의 아들들’로 선지자 양성 훈련을 받고 있는 학생들을 가리킵니다. 선지자 학교가 성경에 처음 언급된 것은 사무엘 시대이며, 사무엘이 그곳의 지도자였습니다(삼상 19:20). 현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에는 벧엘(왕하 2:3), 여리고(왕하 2:5), 길갈(왕하 4:38), 에브라임(왕하 5:22) 등에 많은 생도들이 상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본문의 선지자는 여호와의 명을 받아 그의 친구에게 “너는 나를 치라”고 말합니다(35절). 이 명령에는 ‘제발’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어 상대방이 꼭 들어주기를 바라는 요청임을 알립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때리기를 싫어했습니다. 여기서 ‘싫어했다’(35)는 동사는 ‘거절했다’, ‘거부했다’의 뜻이며, 좋고 싫고를 떠나 그가 의지적으로 치는 행동을 거부했음을 나타냅니다. 그가 어떤 이유로 거절했든지 간에 그 결정은 ‘여호와의 말씀’보다 자신의 감정, 생각, 판단, 경험 등을 앞세운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멸하려고 작정한 벤하닷을 아합이 살려준 행동(42,34)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선지자는 때리기를 거부한 친구에게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36)고 선언함으로써 불순종이 그의 죄목임을 확증합니다. 이어서 그가 선지자를 치지(나카) 않았기 때문에 죄에 대한 형벌로 사자가 그를 칠(‘나카’, “죽이리라”, 36)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이 예언 후 그 친구는 선지자의 곁을 떠났고, 예언대로 사자가 그를 발견하여 쳐(나카) 죽였습니다. 이 사람의 죽음은 아합에게 임할 운명을 미리 보여줍니다. 또 이 사건은 여로보암 때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 명령에 불순종하여 사자에게 죽임 당한 일을 상기시킵니다(13:14-26). 이 모든 사건은 불순종의 죄가 엄중하며 그 심판 또한 엄중하고 피할 수 없음을 교훈합니다.
한편 선지자는 또 다른 사람을 찾아 그에게도 자신을 치라고 요구합니다(37). 이 사람은 선지자에게 상처를 입힐 만큼 세게 쳤습니다. 과한 폭력을 쓴 것으로 보아, 어쩌면 앞선 친구의 죽음을 목격했거나 소식을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이후 선지자는 양 눈을 덮개로 가리고 나타나는데(38,41), 이는 변장의 목적도 있지만(38) 두 번째 사람에게 맞아 눈을 다쳤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위 사건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명령이 ‘순종’만을 요구한다는 점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그의 주권적인 계획과 판단 하에 이루어지며, 그 안에는 그의 공의와 인애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 등으로 판단하려는 성향이 있어 때때로 그 명령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거나 명령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에 불복하고 니느웨와 완전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떠납니다(욘 1:1-3).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께 친히 징조를 구하라는 명령을 받은 아하스 왕은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겠다며 징조를 구하지 않습니다(사 7:11-12). 신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부정한 짐승들을 보여주며 잡아먹으라고 세 번이나 명하시지만, 그는 율법에 부정한 짐승 먹는 것을 금하므로 먹지 않겠다고 모두 거절합니다(행 10:10-16). 이들 모두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하는 데에는 자신의 적정한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를 하나님의 명령보다 더 우위에 두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행위는 단순히 하나님 명령에 대한 불순종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효화하는 행동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가라’는 명령에 따라 미지의 땅으로 출발하는 아브라함의 순종(창 12:1-4)이 성도가 실천해야 할 순종의 태도입니다.
아합에게 예고된 하나님의 심판(38-43)
우리는 잠시 작은 승리 앞에서 승리에 도취되어 긴장감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승리가 스스로의 능력처럼 오만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내세울 때는 우쭐하고 하나님께는 우물쭈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인정, 소유권 인정, 그것이 참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자는 절대로 모른척하지 않으십니다.
38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어 변장하고 길 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39왕이 지나갈 때에 그가 소리 질러 왕을 불러 이르되 종이 전장 가운데에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그를 잃어 버리면 네 생명으로 그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40종이 이리 저리 일을 볼 동안에 그가 없어졌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41그가 급히 자기의 눈을 가린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그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줄을 알아본지라 42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43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38-43)
하나님께서는 아합에게 그가 불순종의 심판으로 죽게 될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앞에서 상해를 입은 선지자는 아합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해 길가에서 그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두 눈을 가려 전투에서 부상 당한 병사처럼 위장한 상태라(38), 그의 정체를 은폐할 수 있었습니다(41).
아합이 지나가자 선지자는 그를 소리쳐 불러, 가상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이런 방식은 나단 선지자나 드고아 여인이 다윗에게 할 말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입니다(삼하 12:14; 14:5-18). 선지자는 자신이 전장에서 포로(또는 죄수) 한 명을 지키라는 명을 받았는데, 잠깐 다른 일을 보는 새에 그가 도망가, 이제 자신의 생명을 바치거나 은 1달란트를 물어내야 할 형편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배상이 너무 과하므로 선처하여 줄여달라는 요청입니다. 노예 몸값이 은 30세겔이고(출 21:32), 오므리가 매입한 사마리아 산지 가격이 은 2달란트(16:24)인 점을 고려한다면, 은 1달란트(3,000세겔)는 엄청난 액수입니다. 목숨이나 고액의 몸값은 벤하닷을 살려준 아합의 죄가 그만큼 위중함을 암시합니다.
사정을 들은 아합은 그가 자초한 일이므로 원래 정한 대로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립니다. 이 말에 선지자는 재빨리 눈을 가린 수건을 풀었고, 아합은 이내 그가 선지자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진멸’하기로 작정한 벤하닷을 아합이 풀어줬으므로 아합은 벤하닷의 목숨을 대신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아람 백성의 목숨을 대신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합니다(42). 아합이 벤하닷을 석방한 행동은 하나님께서 진멸하라고 준 기회를 자기의 권한으로 악용한 것이며 방심하여 왕의 책무를 잊은 것입니다. 이 일은 과거 사울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아각 왕을 살려둔 사건과 흡사합니다(삼상 15:9). 사울(과 백성)이 아각 왕을 살려두고 최상의 짐승들을 따로 남긴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없으며 그 말씀의 엄중함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데서 비롯된 행동이었습니다. 사울은 살려둔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 그가 기뻐할 것이라며 자신의 불순종과 죄를 합리화했습니다(삼상 15:15, 21). 그러나 외면의 행실이 내면의 동기와 태도와 부합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에 앞서 그것부터 하나님 앞에 악이고 죄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무찌른 상대방 왕에게 위세를 뽐내고, 백성에게 용맹하고 자비로운 군주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사무엘로부터 하나님의 꾸짖음을 들었을 때에도 백성의 눈치를 보았습니다(삼상 15:30). 아합이 적대국 왕과 조약을 맺은 결정 또한 국제, 정치, 상업 등 상호의존과 유익을 추구한다는 자기 합리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도 상대국이나 이스라엘에게 권위와 자비가 있는 군주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택했습니다. 아합이나 사울은 이스라엘의 대적을 제거하려는 하나님의 결정이 공의이며, 이스라엘을 향한 보호책이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써 사울은 왕권을 빼앗기고(삼상 15:23,26) 나중에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삼상 31장). 아합 또한 이후 아람과의 전쟁 중에 목숨을 잃게 됩니다(22:35). 그의 자손들과 백성마저 아람의 핍박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왕하 13:3). 아합은 벤하닷과의 조약이 자신과 나라에 이득이라고 생각했겠으나 이스라엘과 아람은 결코 화친할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는 생각지 못한 청천벽력 같은 하나님의 심판 예고에 낙심하고 답답한 심정을 갖고 궁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근심하고 답답하여”(43)란 표현은 후회나 죄책감이 아닌 언짢고 화난 상태를 뜻합니다. 이후 나봇의 포도원을 갈취하지 못했을 때에도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21:4). 아합도 죄를 뉘우칠 때는 옷을 찢고 금식하며 스스로 겸비할 줄 아는 자입니다(21:28). 이런 점을 종합하면, 아합은 이번에 자신의 불순종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심각한 죄인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삶에 중독되어 자기만족만을 추구하며 사는 자들에겐 성장도 성찰도 없습니다. 자기 합리화밖에 모는 성인 아잉서 객관적으로 성찰하며 돌이켜 회개하고 변화를 지향하고 율례를 보존하는 어른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성도로 성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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