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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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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신 예수님

마태복음 914-26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새로운 지도자 한 사람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 이전과 그 이후는 같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한 나라가 무너지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진 것이고, 그 새로운 나라가 제시하는 새로운 법과 문화 그리고 가치가 제시된 것입니다. 이제는 이전 방식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전에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이 이제는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살아가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앞서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잔치를 벌인 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금식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자신이 가져온 하늘나라의 생명을 누리며 기뻐할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옛 시대와 새 시대를 옷과 포도주로 비유하십니다. 새 시대를 옛 시대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런 대조는 이어지는 죽음과 생명의 이야기에서 심화됩니다.

 

바리새인들과의 금식 논쟁(14-17)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시대를 여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성령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율법이나 유대교의 종교 체제로 역동적인 새 시대를 담을 수 없었습니다. 전통만을 고수했다가 정신까지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신에게 익숙한 것만을 고집하면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가로막는 형식뿐인 신앙이 됩니다.

 

14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14-17)

하나님 나라는 새로운 시대를 가져왔습니다. 금식은 유익하지만, 지금은 금식의 시대가 아니라 신랑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실 희락의 시대입니다. 선지자들이 고대하는 그날이 왔기 때문입니다.

 

(1) 요한 제자들의 금식에 관한 질문(14-15)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와서 자산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는지 묻습니다(14). 예수님께서는 금식 자체를 반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 때문에 금식해야 하는지 가르치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하늘나라 사역을 결혼으로 비유하면서 신랑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금식할 이유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이요 잔치이므로(19:6; 5:1; 61:10;62:5; 7:34;16:9;25:10;33:11; 2:1), 예수님의 하늘나라 운동을 결혼에 비유한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신랑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참조 22:1-14;25:1-13).

구약에서 혼인 잔치의 신랑은 하나님이지 메시아가 아니지만(5:1; 54:5-6; 62:4-5; 16:6-8; 2:19),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의 혼인 잔치임을 암시하십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자들은 결혼식 잔치에 초대받은 친구들이나 손님들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자들은 금식하기보다 축하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지금 잔치로 펼쳐지고 있으며, 하나님 아들의 권위를 인정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지금 마련하시는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에는 금식하게 됩니다. 신랑을 빼앗긴다는 표현은 이사야 53:8의 이미지와 연결되며,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수난과 죽음을 암시하십니다. 잔치에서 손님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신랑이 제거됩니다.

 

(2) 옛것과 새것(16-17)

15절은 인생이나 생활의 중심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결혼 이미지에 이어서 16-17절에서 자신이 수행하는 사역의 특성을 언급하십니다. 새 옷 조각은 세탁하지 않아 느슨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헌 옷에 붙인 다음 세탁을 하게 되면 헌 옷이 새 옷감의 당기는 힘을 이기지 못해 찢어지고 맙니다. 새 옷 조각을 붙이는 바람에 옷은 입을 수 없게 됩니다. 이전보다 상황이 악화된 것입니다. 특히 당시의 서민들에게 옷감은 귀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옷감을 붙이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헌 옷은 새 옷감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생 베 조각은 예수님께서 가지고 오신 하늘나라의 복음입니다. 헌 옷은 금식과 제사와 같은 옛 시대의 관습입니다.

새 포도주를 헌 부대에 넣으면 부대가 터집니다(17). 그러면 포도주도 허비하고 부대도 버려야 합니다. 헌 포도주 부대는 새 포도주를 제어하거나 담아낼 수 없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옷 조각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통해 확장하는 하늘나라의 복음입니다. 옛 부대는 유대교의 전통적인 틀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의혹은 토라의 의와 같은 행동 방식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당시의 유대교는 담을 수 없습니다. 둘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하늘나라가 지금 임했기에, 이 나라를 준비하기 위해 수행했던 금식을 지금은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당연히 예수님께서는 개인의 경건 생활의 하나로 금식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신랑이 고난을 받아 땅에서 사라지는 것은 잔치의 의미가 퇴색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잔치를 즐기는 자들을 위해 신랑이 희생당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문은 8:17의 의미처럼 하늘나라의 복음은 메시아의 고난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임을 암시합니다. 잔치의 즐거움을 누리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역설적으로, 제자들은 하늘나라의 감격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을 공유합니다예수님께서는 이어지는 두 비유(16-17)에서 금식으로 특징되는 유대교가 기쁨과 환희로 팽창하는 힘을 가진 예수님의 사역을 담을 수 없음을 의도하십니다. 포도주와 부대 둘 다 보존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께서는 토라 혹은 율법을 버리거나 폐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시고 기대하시는 것을 해석해서 이런 해석에 근거한 순종을 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늘나라의 가치에 합당한 삶 속에 하늘나라의 복음이 담길 수 있습니다. 공동체에 적용해 보면, 새 포도주 부대는 새 포도주에 맞춘 구조, 즉 예수님의 사역에 중심을 둔 공동체의 삶을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완전히 새로운 원칙과 삶으로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제사가 아니라 긍휼을 베풀고, 유대교의 정결법이 아니라 예수님의 환대하는 마음을 배우는 길이 새 옷감과 새 포도주에 적합합니다. 우리 시대에 감격의 복음을 담을 만큼 교회의 언어와 문화가 과연 새 부대 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율법주의, 권위주의, 근본주의 등이 교회 구성원의 인식을 장악하고 있다면 부대는 터지고 말 것입니다.

 

살리시고 고치시는 예수님(18-26)

새로운 시대는 율법에서 은혜로 변하여 역사가 일어납니다. 율법적으로 보면 죽은 사람을 만지는 것과 피를 흘리고 있는 여인을 만지지는 부정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것들을 초월하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을 살리셨습니다.

 

18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23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18-26)

본 단락은 두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마가복음에서는 죽은 소녀 이야기 속에 혈루증 여인의 치유 사건이 샌드위치처럼 포함되어 있으므로(5:21-43), 한 묶음으로 읽도록 의도된 것입니다. 두 이야기는 혈루증 여인과 한 관리의 믿음을 강조합니다.

 

(1) 한 관리의 믿음이 있는 간구(18)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한 관리가 와서 무릎을 꿇고 방금 죽은 자기 딸을 살려 달라고 도움을 간청합니다. 관리의 부탁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랐습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도움을 호소하는 사람의 간구에 즉시 응답하시는 분임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그 관리를 따라가셨습니다.

 

(2) 혈루증 여인의 믿음(19-22)

예수님의 일행이 이동하는 중에 혈루증 앓는 여인이 몰래 예수님의 옷깃을 만졌습니다. 환자는 피를 12년 동안 흘러 늘 생명의 위험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15:25-30). 제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격리된다는 점에서 이 여자는 8장에 나병환자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마태는 열두 해를 문장의 앞에 배치함으로써 여인의 고통스러운 상태를 강조합니다. 여자는 수치스러운 문제인데도 구원받기 위해 예수님께 왔고(1:21),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믿음의 행위로 보시고 그녀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 여인에게 안심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그 여인을 이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의 믿음이 구원하였다고 격려하셨고, 즉시로 여자는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회-종교적으로 격리된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그 여인을 딸이라고 부르심으로써 육체와 정신적인 부분까지 함께 치유하셨습니다.

 

(3) 관리의 딸을 살리신 예수님(23-26)

예수님께서는 12년 된 혈루증 여인을 치유해주시고, 한 관리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이미 관리의 딸은 죽어 장례식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집안에는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 피리 부는 자들과 소란스럽게 곡하는 무리를 보셨습니다. 당시에는 장례식에서 피리를 불고 곡하는 사람을 두는 것은 일반적인 풍습이었습니다(참고. 48:36; 5:38; 요세푸스 유대전쟁사 3.9.5). 이 사람들이 피리를 불고 큰 소리로 곡하고 있는 장면은 소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확증합니다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집에 도착해서 집 안에서 장례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나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소녀를 보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소녀의 손을 잡았을 때 소녀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신 모습은 도움이 간절한 사람을 위해 예수님께서 얼마만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도와주는지 보여줍니다본문은 의도적으로 보다 소녀의 손을 잡아주는 예수님의 동작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수님의 손은 그의 능력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손길은 약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보호해주겠다는 의지, 환대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손 외에 구원의 방편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처럼 손을 붙잡아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험한 인생을 견딜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손을 잡아 살려내신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의 존재 목적은 예수님처럼 약하고 아픈 사람의 손을 붙잡아 주는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약하고 힘든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손을 사용해서 힘없이 주저앉은 사람이 일어서게 돕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딸을 살려달라고 소녀의 아버지의 요청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함께 가서 죽은 소녀를 살리십니다. 사람들이 죽은 소녀를 위해 애곡하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아이를 깨우듯이 소녀를 일으켰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심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상황 속에서도 생명을 불어넣어 살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자신의 어떠한 사항이 소망 없고 희망 없어 보입니까? 예수님을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 믿음으로 나아갈 때 다시 살아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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