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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04-02)


문안과 축복

골로새서 4장 10-18절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십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혼자 한 것 하나도 없습니다. 항상 누가 곁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참 좋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신세 많이 지고 간신히 해낸 일입니다. 기적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산다는 건 그걸 알고 잘난 척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과 함께 있는 동역자들에 무한 인사를 전합니다. 모두 6명의 동역자들을 소개하는데, 그 중 3명은 유대인이며, 다른 3명은 이방인 출신입니다. 바울은 함께 있는 동력자들의 무한 인사를 전하면서 서신을 마무리합니다. 특별히 바울은 에바브라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그리고 히에라볼리의 교회를 세우고 섬긴 사람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교회에 각각 서신을 보내며 서로 돌려가며 그 서신을 읽으라고 부탁합니다.

 

바울의 동역자들의 문안(10-14)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서 함께 수고하는 동역자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일하는 동역자보다 자신이 잘하는 것이 복음에 함께 동참하는 동역자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힌 처지면서도 함께 사역한 동역자들의 수고에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10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1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이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12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13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14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10-14)

바울의 골로새 교회를 향한 문안 인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바울과 함께 골로새 교회 문안인사를 보내는 6명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 중에서 3명은 유대인 아스다고 마가 유스도이고, 다른 3명은 개종한 헬라인 에바브라 누가 데마입니다.

⑴ 문안인사 :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10-11)

사도 바울과 함께 골로새 교회에 문안인사를 보내는 여섯 명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 중에서 세 명은 유대인(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이며, 다른 세 명은 개종한 헬라인들입니다(에바브라, 누가, 데마). 복음을 위해 바울과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 마가 그리고 유스도를 소개합니다.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 출신입니다.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중에 데살로니가를 방문했을 때, 개종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행 17:1-9). 그는 개종 후 바울의 선교 사역에 동참했는데 바울과 함께 에베소에서 위험에 처하기도 했습니다(행 19:29). 또 바울이 예루살렘과 로마로 여행할 때 동행했으며, 로마에서 바울과 함께 투옥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를 가리켜 ‘나와 함께 갇힌 자’라고 소개합니다. 참된 친구와 동역자는 어려울 때 함께하는 자입니다. 아리스다고는 바울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참된 친구이며 동역자였습니다.

다음 인물은 바나바의 사촌인 ‘마가’입니다. 그는 예루살렘 출신으로서 요한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행 12:12,25). 마가는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을 함께 출발했으나 무슨 연유에서인지 버가에서 도중하차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행 13:13). 나중에 제2차 전도여행에 함께 동참하려고 했지만, 바울은 그를 데려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이 일로 바나바와 크게 싸운 후 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결별하여 각각 따로 전도여행을 떠나게 됩니다(행 15:36-41). 그랬던 마가가 지금 바울과 함께 로마에 있다는 것은 다소 놀라운 일입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바울과 마가는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들었으며 지금은 신실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마가에 대해서 독자들이 이미 받은 명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그가 이르면 특별히 잘 영접하라고 부탁합니다.

‘마가’에 관한 명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바울이 특별히 마가를 잘 영접하라고 부탁한 것은 아마 그가 과거에 성실하지 못했던 일로 인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그를 신뢰하지 않거나 홀대할까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반성하고 그 이후에 심기일전하여 성실하고 헌신된 자로 점점 인정을 받아가고 있는 중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황에서 마가에 대한 자신의 신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가의 한 번의 실수로 인해 영원히 그를 적대감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인정받는 자로 거듭났습니다. ‘유두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지만, 바울은 그를 할례파 즉 유대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세 사람의 유대인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함께 일하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바울 서신에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바울을 핍박하는 자들로 묘사되지만, 이들은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일 뿐만 아니라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는 자들이었습니다.

⑵ 문안 인사 : 에바브라, 누가, 데마(12-14)

바울은 세 명의 유대인 출신 동역자들의 문안 인사를 전한 후 이제 개종한 헬라인 동역자 세 명의 문안 인사를 전합니다.

바울은 특별히 ‘에바브라’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그를 가리켜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란 특별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명칭은 평소에 바울 자신의 사도직 직분을 강조하면서 사용했던 표현입니다. 그런데 ‘에바브라’에게 그러한 표현을 적용한다는 것은 그를 얼마나 신뢰하고 인정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골로새서 1장 7절에서는 에바브라를 ‘함께 종 된 자’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 표현은 두기고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골 1:7;4:7). 바울은 독자들에게 에바브라가 그들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는지 알리고 있습니다. 그는 기도 가운데 너희를 위해서 항상 애쓰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애쓰다’는 고통 가운데 투쟁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에바브라’는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직면해 있는 골로새 교회의 상황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1장 9절에서 독자들에게 관한 소식을 들은 날부터 계속해서 기도해 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에바브라는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바울에게 전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쉬지 않고 고향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내용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깨닫고 확신 가운데 거하게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의 이단적 가르침에 대해서 얼마나 심각하게 염려하고 있었는지 보여주고 증거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뿐만 아니라 라오디게아와 히에라폴리스 교회를 위해서도 많은 수고를 했다는 것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증거한다는 것은 에바브라의 수고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의 가르침이 바울이 전했던 복음과 일치한다는 것을 보증하고 확인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의심하지 말고 에바브라의 가르침을 듣고 따라야 합니다.

‘누가’와 ‘데마’의 문안 인사도 전합니다. ‘누가’는 사랑받는 의사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누가가 바울의 의였다고 주장하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었습니다. 데마에 대해서도 별로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0절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말합니다. 한때 바울을 도왔던 동역자들이 그가 노쇠하고 병들었을 때 버리고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부탁과 마지막 인사(15-18)

누구나 고난이나 고통의 상황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의 극심한 고난을 함께 감당해야 한다면, 그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긴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천륜이라고 하는 부모와 자녀의 관도 고난 앞에서는 깨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15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6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17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18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15-18)

하나님을 믿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처음 믿을 때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때로는 환란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주님을 붙드는 것이 중요하지만, 신앙생활에서도 모든 성도와 오래 함께 협력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서로 함께함으로 귀한 동역자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⑴ 바울의 부탁(15-17)

바울은 동역자들의 문안 인사를 전한 후 이제 자신의 간단한 문안인사와 부탁의 말을 전합니다.

바울은 특히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눕바라는 여인과 그녀의 가정 교회에 문안인사를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눕바(Νυμφα)’라는 여인은 자신의 집을 가정교회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가정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지 교회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바울은 골로새와 라오디게아에 각각의 서신을 따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는 성도들에게 라오디게아 교회와 서신을 서로 돌려 읽으라고 특별히 부탁합니다. 각각의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은 서로 달랐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 두 교회가 그 편지를 서로 교환하여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특히 아킵보의 이름은 거론하고 있습니다. 아킵보는 빌레몬서에서 바울과 함께 군사된 자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킵보는 빌레몬 가족의 일원이었습니다. 아마 빌레몬과 압비아의 아들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킵보가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잘 감당하라고 부탁하는데 그 직분이 무엇인지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독자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⑵ 끝인사(18)

바울은 마지막으로 이 서신이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친필로 서명하여 확증합니다. 바울이 골로새서를 누군가에게 대필하게 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자신의 친필로 문안 인사를 첨가함으로 이 서신이 다른 사람에 의해 조작된 것이 아니라 바울 자신의 서신이라는 사실을 보증합니다.

바울은 ‘내가 매여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달라’고 부탁하면서 그의 서신을 끝맺습니다. 아마 이것은 독자들에게 바울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달라는 부탁일 것입니다. 서신은 축복으로 마무리됩니다.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연약함을 주님 안에서 용납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는 동역자들이 곁에 있는 사람, 용서하고 관용하며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역자들과 함께 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됩니다. 모든 성도들이 이런 일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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