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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03-01)


위의 것을 찾으라

골로새서 3장 1-11절


성도는 빛 가운데 선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성도들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단지 구원만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사람입니다. 자신의 의지가 없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내 뜻과 계획 그리고 바람보다는 하나님 나라와 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마음을 성령으로, 성경의 말씀으로 거룩한 주의 교회를 통해 지침을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독자들이 세례 가운데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설명한 후에 이제 긍정적인 측면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남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받고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죄 아래 속했던 옛 사람이 죽고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새로운 존재로 다시 창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의 것들을 추구하려면 땅에 속한 옛 사람의 생각과 행위를 버리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새롭게 창조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때달아야 합니다.

 

위의 것을 찾으라(1-4)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계신 나라,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를 소중에게 여기며 하나님의 가치들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하고 따르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1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1-4)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시편 110편 1절)는 세상 밖의 존재가 아니라 세상의 통치자입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라’는 것은 예수님이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뜻이요, 땅의 것은 무엇이든 상대화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의 다스림을 망각하면 땅의 것, 돈이나 권력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영생의 소망과도 멀어집니다. 나는 세상에서 부와 명예를 얻을 때보다 주의 통치가 이뤄지는 것을 더 사모하며 기뻐합니까?

⑴ 위의 것을 생각하라(1-2)

사도 바울은 앞에서 육체에 따라 살아가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옛 사람은 죽었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독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하여 하늘에 속한 새로운 존재로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독자들이 살리심을 받았다는 설명은 육체적인 사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위에 것을 생각하라’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정체성에 걸맞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정이나 직장에서 그들이 판단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세상의 논리로, 교회에서는 교회의 논리로 산다고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께 다스리는 곳을 의미하고, 그것은 교회만 온 세상을 의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었으므로, 영적인 측면에서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일은 곧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광한 자기 정체성을 분명하게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복음에 합당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골로새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면 지금 그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후에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이것은 독자들도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속한 존재들이란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들은 마땅히 하늘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고 하늘에 있는 거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독자들이 여전히 과거에 살던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들은 육신의 눈으로 볼 때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행하던 생각과 습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찾고 생각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바울은 독자들에게 의식적으로 자신들이 지금 어디에 속한 자들인지 의식적으로 자신들이 지금 어디에 속한 자들인지 인식하라고 촉구합니다.

그들이 세상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은 육체에 속한 세상 것들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하늘에 속한 자들이라면 하늘의 것들을 추구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⑵ 너희는 하늘에 속한 자들이다(3-4)

사도 바울은 독자들이 하늘에 속한 자들이 한 사실을 다시 강조합니다. 바울은 독자들에게 육신의 눈으로 보지 말고 영적인 눈으로 자신을 돌아보도록 인도합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면 그리스도는 죽었고, 지금 그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안목으로 바라보면 그리스도는 지금 하나님과 함께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에 계십니다. 독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존재라면 그들의 영적인 생명도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지금 육신의 눈으로는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감추어진 것과 같습니다. 그렇더라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을 믿는다면 이 사실도 믿어야 할 것입니다. 독자들은 그들의 영적인 생명이 종말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남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영광 중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자들도 나중에 그렇게 영광 중에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영광 중에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영광 중에 나타날 것에 대한 소망은 지금 이 세상에 죄와 더불어 고난 가운데 투쟁하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소망과 격려가 되는 것입니다.

 

땅에 속한 육신을 죄로부터 떠나라(5-11)

육체의 목숨이 있으면 충분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짐승과 다를 봐가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소통할 때만 영위할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은 하나님 안에만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통해서만 누릴 수 있습니다. (박대영 2:32)

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10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 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5-11)

위의 것을 차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겸손입니다. 성도는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모습을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전에 그 가운데 살 때는 그 가운데서 행했다고 말합니다.

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5-7)

바울은 1절에서 ‘위의 것들을 찾으라’고 했는데, 이제 구체적으로 위의 것들을 찾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설명합니다. 위의 것들을 찾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먼저 땅의 것들을 생각하던 땅의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땅의 지체를 죽이라는 명령은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선언했던 것을 상기시킵니다(골로새서 2:12,13,20;3:3). ‘죽었다’는 사실적인 선언과 ‘죽이라’는 명령이 함께 나타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사역을 통한 것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으로 덧입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새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과거의 죄에 얽매여 있던 습성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배어 있는 죄의 속성을 지체에 비유하여 설명하면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예수께서도 범죄하는 눈을 빼버리고 손을 찍어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5:27-30).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는 것은 은유적인 표현으로 죄에 얽매여 있는 생각이나 행위를 철저하게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죽여야 할 땅에 있는 지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바울은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이라는 다섯 개의 악의 목록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독자들이 회심하기 전 과거 이방인으로 있을 때 행했던 습성들입니다. 이 다섯 개의 목록은 주로 마음의 생각과 관련된 것입니다.

⑵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8-9)

사도 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는 것에 대해서 재차 강조합니다. 이번에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말로 바꾸어 설명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비슷한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설명하는 것은 독자들이 과거에 행하던 죄의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번에도 벗어버려야 할 다섯 개의 악의 목록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분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입에서 나오는 부끄러운 말입니다. 바울은 말과 행위로 나타나는 죄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바울은 특히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속이는 거짓말은 사탄이 인간을 타락시킨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죄 아래 있는 옛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바울은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라고 말합니다. 옛 사람은 존재론적인 문제이고 행위는 실천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벗어버려야 할 것은 단지 어떤 불의한 행위만이 아닙니다. 죄 아래 있는 인간 존재가 그대로 있으면서도 어떤 죄의 행위를 절제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선이고 속이는 것입니다. 바울은 존재론적인 측면과 행위론적인 측면에서 모두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고 명령합니다.

⑶ 새롭게 창조된 자들(10-11)

바울은 우리가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할 당위성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8절에 ‘벗어버리라’는 말은 명령형입니다. 그러나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10새 사람을 입었으니’라는 말은 사실적인 것에 대한 설명입니다. 성도들이 악한 행위를 벗어버려야 할 이유는 이미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새롭게 창조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새 창조는 단지 불의한 행위를 벗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에까지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죄 아래 있던 인간이 스스로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가능했다면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시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창조 되었으므로 우리는 마땅히 땅에 속한 옛 지체의 죄악을 죽이고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의 백성들에게는 신분이나 인종이나 민족에 따라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헬라파나 무헬라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런 차별이 없는 한 하나님의 한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것은 지식의 변화와 공동체의 연합으로 나타납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도 변합니다. 새 사람을 입은 삶은 인종, 지역, 성별의 벽을 허물고 차별하지 않습니다. 차별은 만유를 지으시고, 만유 안에 계시고 만유를 하나되게 하시는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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