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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02-01)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는 복음

골로새서 1장 24절-2장 5절


하나님의 종들의 사역은 예수님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꾼들은 그분이 이 땅에서 시작하셨고 남기고 가신 사역을 마무리하는 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내용은 무엇이며 그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 사역을 감당하는 데 필요한 차원은 어디서 공급받습니까?

 

  • 바울은 먼저 자신이 복음의 일꾼으로 세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그가 전한 복음은 하나님의 비밀인데, 그것은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며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해 얼마나 힘쓰는지 골로새 성도들이 알고 더욱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풍성히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그 믿음 위에 서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의 사역 모습과 현재 상태(24-29)

2000년 전에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오늘날 우리는 이 세상에 성육신을 반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지 않는다면, 성경에 있는 예수님만 만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골로새 성도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4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24-29)

 

사도의 사역은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일입니다. 그 고난을 통해 주를 믿는 만민의 구원과 만물의 회복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성도들에게 나타내는 일입니다. 그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중심에 그리스도가 있고, 그분은 성도들이 소망하는 영광이 되십니다.

 

⑴ 바울의 현재 상태(24)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일꾼’(23)으로 부름받은 사실을 말한 것과 연결해 그 직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됨’으로 바로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수고한 헌신이 “너희”(골로새 교인들)를 위한 것이며, 메시아 고난의 남은 것들을 자기 육체에 채운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는 서신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감옥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골로새 성도들과 모든 성도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 골로새 성도들을 향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를 이해하는 열쇠는 “그(예수)의 몸 곧 교회를 위해서”라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새 언약 백성인 교회를 만드는 과정이었다면, 이후 그의 몸인 교회를 온전하게 유지하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그 과정에서 겪는 고난은 교회를 위한 메시아의 고난을 이어받는 ‘메시아의 남은 고난’입니다. 바울의 괴로움은 바로 이 과정에서 겪는 것이고, 골로새 성도들도 예수님의 몸인 교회의 부분이기에 바울의 고난이 골로새 교인 때문이라는 말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닙니다. 골로새 교인도 바울이 왜 투옥되어 어려움 당하는지를 알고 있는데도 이렇게 말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전달해 이후 권면을 잘 받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2) 바울의 소명(25)

 

바울은 교회의 일꾼 됨을 자신의 소명으로 정의하고 두 가지를 추가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직분을 따라’라는 소명의 기원에 대한 표현입니다. ‘직분’은 ‘오이코노마(οικονομα)’란 말인데, ‘경영’이나 ‘경륜’, ‘사명’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한 경륜에 근거해 자신에게 사명을 주셨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이는 바울의 사역과 관련해 두 가지 의미를 전달합니다. 하나는 ‘왜 고난에도 충성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울 사역의 중요성입니다. 사명, 직분과 관련해 ‘너희를 위해 내게 주신 것’이란 첨가된 말씀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사람의 계획이나 열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구원의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맡기신 것입니다. 그 구원 계획 속에 골로새 성도들이 들어 있기에, 교회를 위한 바울의 일꾼됨은 골로새 성도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골로새 성도들은 바울의 사역을 가벼이 여기거나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거짓 교사의 가르침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둘째 추가 설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을 이룬다는 것은 내용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 사역으로 모든 이에게 말씀이 전해져 가득 차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소명의 목적에 대한 것입니다.

 

(3) 바울의 선포 내용(26-27)

 

25절에서 말한 하나님 말씀을 비밀로 묘사함으로써 바울의 선포 내용으로 주제를 전환합니다. 그 비밀은 오랫동안 감춰져 있다가 지금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나타난 것으로(26) 영광의 소망 예수 메시아라고 말합니다(27). 바울이 전하는 핵심 내용이 예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골로새 성도들도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고(참고, 5-6), 짧지만 앞에서(15-20) 그 내용을 서술했기에 짧게만 말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표현은 복음과 관련해 몇 가지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복음은 역사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감춰져 있다가 드러났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는데, 여기에는 구약 약속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신실함이 들어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영광의 소망이라고 묘사한 것(27)은 미래도 아우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완성의 핵심입니다. 비밀이 메시아라고 말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셋째, 복음에는 비유대인을 향한 구원 계획도 들어 있습니다. 바울은 감춰져 있던 비밀이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드러났다고 말하고는(26), 곧이어 하나님이 비유대인 안에서도 이 비밀의 영광, 곧 예수를 알리기 원했다고 합니다(27). 유대인과 비유대인 모두가 구원을 경험하는 것이 하나님 뜻인데, 비유대인 골로새 성도들(“너희”) 역시 그분의 의도 속에 들어 있음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4) 바울의 사역 방법과 목적(28-29)

 

27절의 ‘메시아’와 연결해 사역 방법과 목적을 소개합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주신 세상 최대 명령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첫 시작은 메시아 예수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곧이어 두 개의 분사로 다음 과정을 묘사하는데, 하나는 모든 사람을 권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지혜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둘은 선포 이후 교회를 통해 신자의 삶을 세우는 과정입니다.

한편, 사역 목적은 신자를 메시아 안에서 온전하게 세우는 것으로 말합니다(28b). 이 문장은 상당히 짧아서 바울의 전체 사역과 그 안에 있는 세세한 과정을 다 읽어내기 어렵습니다. 단지, 자기 사역에 이런 요소들이 있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애쓴다는 말을 하려는 듯합니다(29).

그럼에도 이 부분은 사역과 관련해 의미 있는 관찰 거리가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사역자로서 성도 삶에 대한 긴 안목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선포해 믿음으로 이끄는, 소위 ‘이신칭의’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시작이며 성도의 삶이라는 다음 단계를 염두에 두고 사역합니다. 또한, 그는 성도의 삶, 곧 신앙의 여정을 마치 어떤 프로그램을 끝내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복음이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구원 과정을 담고 있는 것처럼 믿음으로 그 과정에 참여하게 된 신자의 삶도 긴 안목과 지속성의 관점으로 접근합니다. 둘째, 신자 삶에는 가르침과 교정이 필요합니다. 구원 이전의 삶은 어둠의 영역에서 자기를 중심으로 한 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았다고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세상의 영향력이 있고 죄에 쉽게 굴복하는 육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아래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분의 뜻을 배우고 세상의 더러움을 인식하고 벗어버리는 과정이 요구됩니다. 사역자는 이것을 돕는 자입니다. 셋째, 사역은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어 최선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요소들은 사역 대상자인 신자들에게도 필요한 항목들입니다. 그들 역시 긴 관점으로 자기 삶을 보아야 하고, 바른 가르침으로 세상과 다르게 살되 무엇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정성스럽게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골로새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수고(1-5)

태양을 본 사람은 촛불을 보고 밝다고 감탄하지 않습니다. 태양을 본 사람은 촛불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만물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는 인생 전체를 홀연히 바꾼 사람입니다. 많은 것을 섭렵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더 이상 세상의 지식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1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2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4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5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1-5)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는 바른 하나님 나라와 교회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값진 구원을 주셨는지를 알게 되면, 우리는 자신을 귀하게 여기며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 풍성히 알고 싶어 하고, 그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의 보물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1) 바울의 수고를 알기 원함(1-3)

 

본문 1절에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하고 시작합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대부분 바울의 얼굴을 알지 못합니다. 비록 바울은 그들이 자신을 보지 못했지만,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위해 수고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울의 수고를 알아주길 바랍니다. 칭찬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3년간 사역할 때 신앙 훈련받은 자 중에 이곳 출신인 에바브라, 빌레몬 등이 은혜를 받고 나가서 교회를 세운 곳이 바로 골로새, 라오디디게아, 히에라볼리 교회입니다. ‘왜냐하면’과 ‘너희’를 통해 위에서 말한 바울의 사역과 열심의 이유를 골로새 성도들과 연결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교회를 분리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 차원에서 보면 모든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하나 되길 위해 기도하셨습니다(요 17:22).

골로새 교회의 어려움은 두 가지였습니다. 교회 외부로 오는 어려움은 황제숭배 사상이었습니다. 로마의 황제는 많은 곳을 점령하고 자신을 신격화했습니다. 세상에 어떤 신보다 자신이 능력 있는 신이다고 주장하고 섬기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황제가 더 높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수치와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2)라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어려움 중에서 믿음을 지키니, 바울은 큰 위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문제로는, 바울은 교회 안에 성도들이 거짓 철학과 잘못된 신앙의 태도를 이야기합니다. 이 두 가지 어려움 때문에, 그들을 향해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라고 권합니다. 어려운 세상에서 이기는 힘은 사랑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우리가 묶인 바 됨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고, 우리의 현실을 견디며 인내함을 통해서 더 큰 영광 상급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이 자기 지식을 자랑하면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지식을 배우고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지금까지 자신의 삶 자체가 이 거친 정치와 잘못된 신앙 생활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본인도 어려움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과 위로는 누가 할 수 있습니까? 그 고난과 그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겪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대신하여 돌아가신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4:15)라고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을 다 이해가고 동감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구원에 이르는 참된 지혜요 지식임을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그는 유대인으로 유대교 지식을 연구했으며, 유대인의 엘리트로 많은 철학 공부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자기가 가진 지식이 최고 여기고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려 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 구원에 필요한 지식과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풍족한 은혜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참된 지혜요 지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것이 감추어져 있습니다(3).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세상의 헛된 복음의 진리 위에 굳건하게 서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과 고통을 예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고난과 어려움 속에 있을 때, 우리의 시선이 땅을 보면 안 됩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고난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에 많은 옷들을 입고 있습니다. 고난이라는 자극이 와야 그 옷을 벗습니다.

고난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깨닫기 하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가 필요합니까? 바울은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3)라고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고 설명하셨습니다. 고난 속에서 사람들에게 필요하는 것은 사람의 위로의 말이 아니라 진리 대신 그리스도입니다. 그 고난을 주는 원인과 그 사람들 그 상황에 대한 진리 되신 예수님의 판단과 하나님의 통치가 있어야만, 우리는 고난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2) 교회가 속지 않는 길(4-5)

 

바울이 자신의 일꾼 됨을 자세하게 말한 두 번째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골로새 교회를 향하여 힘을 주고 더 믿음 속에 흔들리지 않기를 복을 빌고 있습니다. 1-3절은 적극적인 이유라며, 4-5절은 소극적인 이유에 해당합니다. 바울은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5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4-5)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우리 믿음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채우시고 돌보시고 보호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것으로 너희 마음을 흔들리거나 속지 말라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이 당시에 잘못된 신앙이 너무나 큰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영적인 갈등으로 시간만 낭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엉터리 교훈에 속지 않기를 바란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고난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전파한다고 했습니다(1:24-29). 이런 설명이 골로새 교회에 깨달음과 자극이 되어 그들이 엉터리 교사의 말을 거부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교묘한 말로 골로새 주변 교회들을 속였습니다. 이들은 그들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문제의 사람들이 교묘한 말로 성도를 속이지만, 바울의 가르침과 역할을 제대로 이해한 성도는 현혹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구구절절한 표현으로 바울이 얼마나 골로새 교회의 온전한 모습을 바라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참된 복음은 창조자요 통치자여 구원자이신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소망을 갖는 성도들의 기도, 이것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사도 바울 자신은 비록 감옥에 갇혀 있을지라도, 자기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함으로, 골로새 교회를 비롯한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를 세우려고 했던 것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 자의 하나님이신 것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함으로, 그 수고를 통해서 누군가의 인생이 살아나고 새롭게 된다면, 그것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 통로로 쓰임 받기 위해 살아 계신 자의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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