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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15-01)


유다 왕 아비얌

열왕기상 151-8


학창시절에 받았던 성적표가 생각이 나십니까? 그 성적표는 1년 동안 우리가 시험을 치렀던 점수도 기록이 되었지만, 1년 동안 학교생활을 어떻게 보냈는지 선생님께서 우리의 생활 태도를 평가해 주신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 살펴보면, ‘두뇌가 총명하지만 조금 선만합니다’, 또는 명랑하고 정직합니다. 계속해서 기대되는 삶입니다등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있는데, 여러분이 받으신 성적표에는 어떤 표현들이 있었습니까?

 

다윗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남유다의 왕이 된 아비암은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하고, 르호보암을 따라 죄를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사를 세워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의 후손으로 왕위를 잇게 하고,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할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의 긍휼과 은혜로 다윗의 순종을 높이 인정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유다 왕 아비얌(1-8)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적표를 주신다면 우리는 어떤 하나님의 평가가 내려지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평가를 반드시 내리신다 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다면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의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아비얌에 대한 인생의 성적표에는 그가 죄를 지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왕 열여덟째 해에 아비얌이 유다 왕이 되고 2예루살렘에서 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요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3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4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 5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6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사는 날 동안 전쟁이 있었더니 7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으니라 아비얌의 남은 사적과 그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8아비얌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니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1-8)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은 아버지의 악행과 아세라 상을 만든 어머니 마아가의 우상숭배를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다윗의 온전한 신앙 전통이 솔로몬과 르호보암을 거치면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1) 아비의 통치 도입부(1-2)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아비야, 주전 913-910)은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제18년에 유다의 제2대 왕으로 등극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3년 동안 통치했습니다. 이처럼 분열왕국 각 왕의 통치 도입부에는 통치기간만 아니라 상대국 왕의 통치 연도를 제시하여, 당대 왕들을 비교 대조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런 구체적 정보는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함께 역사적 신빙성 또한 강화합니다. 아비얌의 어머니는 아비살롬(압살롬)의 딸인 마아가로 소개됩니다(2). 아비얌은 모친덕에 르호보암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왕위에 오른 것으로 나타납니다. 르호보암은 18명의 아내와 60명의 첩을 두었고, 그들로부터 아들 28명과 딸 60명을 얻었습니다. 그는 처첩 중에서 마아가를 가장 사랑했기에, 아비얌을 후계자로 세워 왕으로 삼을 계획을 했습니다(대하 11:21-22). 또한 그의 왕권의 안전을 보장하고 불필요한 견제를 막기 위해, 다른 아들들은 많은 아내와 양식을 주어, 유다와 베냐민의 견고한 성읍에 흩어져 살게 했습니다. 한편 아비얌의 어머니 마아가는, 결론부터 말하면, 압살롬의 딸이 아니라 손녀입니다. 히브리어의 가족 관련 단어가 확장된 의미로 사용되는 점을 이해하면 쉽게 해결됩니다. 예를 들어, ‘이라는 단어는 만 아니라 손녀증손녀등 여자 자손을 뜻할 수 있습니다. 압살롬에게는 다말이라는 딸 하나만 있었으므로(삼하 14:27), 마아가는 그의 딸이 될 수 없습니다. 대신 역대하 13:2에서 마아가를 미가야로 부르며,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임을 알립니다. 이를 참작하면, 마아가는 압살롬의 딸 다말과 기브아 사람 우리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미야'(대하 13:2)라는 이름은 마아가의 오기이거나 다른 표기로 유추됩니다.

(2) 아비암의 통치와 평가(3-6)

아비얌의 통치 내용에는 그가 악한 왕이었다는 평가만 나옵니다. 왕에 대한 평가는 열왕기의 특징으로, 분열왕국 각 왕의 통치 도입부에 이어서 언급됩니다. 평가 내용은 각 왕이 여호와의 눈에 선한 왕 또는 악한 왕이었는지에 대한 판정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제정한 왕의 규례(17:14-20)를 기초로 하여, 각 왕이 언약 백성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로서 임무를 다했는지를 최종 진단합니다. 슬프게도, 유다 왕 8명을 제외하고는 양국의 나머지 30여 명의 왕들은 모두 악한 왕으로 평가됩니다. 이와 같은 왕들의 악과 불순종은 역사 속에 반복되면서 각 왕국의 멸망으로 연결됩니다. 이런 구성은 왕들의 불순종이 백성들의 죄와 함께 양국의 몰락을 가져온 필연적 원인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이 같은 기록은 열왕기의 청중인 포로기 백성에게 나라를 잃은 고통스러운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순종의 삶을 살도록 유도합니다. 한편 본문의 아비얌에 대한 평가는 구체적으로 부친 르호보암과 조부 다윗의 삶에 비추어 조명됩니다. 먼저 아비얌의 악은 그가 부친이 저지른 모든 죄를 행한 데서 나타났습니다(3). ‘죄를 행했다는 말은 죄 안에서 걸었다', 아비얌이 앞서간 부친의 발자취를 따라 죄의 삶을 지속했음을 묘사합니다. 르호보암의 통치 첫 3년은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의 힘을 입어 다윗과 솔로몬의 길을 따랐습니다(대하 11:17). 그러나 나라가 강성해지자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우상숭배로 돌아섰으며, 유다 전역에 우상숭배가 퍼지도록 방치했습니다(14:22-24;대하 12:1,14). 아비얌도 부친처럼 행했으므로 자신만 아니라 백성까지 죄로 이끌었을 것입니다. 다윗과 관련해서, 아비얌은 마음이 다윗처럼 여호와와 온전함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온전함’(샬렘, 3)은 화목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뜻합니다. 아비얌이 받은 지적은 솔로몬이 우상숭배로 인해 책망받았던 내용으로(11:4), 마음 및 하나님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은 명령에 부합하는 행동만 아니라 마음의 헌신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아비얌의 불순종에도 하나님은 다윗을 위해 왕조를 지속시키심으로 그의 은혜를 나타내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다윗 왕조 후손의 지속성은 다윗 앞에 항상허락된 등불로 비유되었습니다. 등불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미 선언하신 것으로(11:36), 하나님이 이를 신실하게 이행하고 계심을 증명합니다. 이 약속의 근본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다윗과 맺은 언약에 있습니다(삼하 7). 열왕기 저자는 이 언약에 암시된 하나님의 은혜에 덧붙여, 다윗의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킵니다. 다윗은 솔로몬 때부터 다윗 왕조가 끝날 때까지 선한 왕의 표본이 됩니다. 그의 정직과 순종의 삶은 여호와의 말씀을 기준 삼았기에 칭찬받습니다. 말씀에 헌신했기에 다른 왕들처럼 우상에게 돌이키지 않고, 하나님만 향하여 그와 온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도 헷 사람 우리아(우리야)의 일(삼하 11-12)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습니다(5). 그의 죄는 밧세바와의 간음과 우리아를 살해한 일로 나타났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정욕을 위해, 또 죄를 덮기 위해 죄 없는 부부를 희생시켰습니다. 게다가이 과정에서 요압이나 신하 등 무고한 자들을 자신의 범죄에 가담시켰습니다. 이 모든 죄악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긴 것이며, 여호와의 눈에 악이었습니다(삼하12:9). 다만 다윗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즉각 회개했습니다(삼하 12:13). 이후 하나님의 심판(삼하 12:10-12)을 견뎌냈고, 다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부분이 바로 솔로몬이나 여로보암을 포함한 여러 왕들(11:9-13; 14:7-11)과 달랐던 점입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그나마 우리아의 일을 제외하고는 평생 하나님의 명령에서 돌아서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5). 왕들과 백성들 그리고 독자들은 이러한 다윗의 회개와 재헌신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그의 회개와 재헌신을 용납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 왕조가 존속되는 것은 오직 그의 긍휼과 은혜 아래에서입니다.

(3) 아비암의 통치 종결부(7-8)

아비얌의 통치 종결부는 르호보암의 종결부와 거의 유사합니다. 그의 행적이 역대 지략에 기록되어 보존된 것 외에, 아비얌도 르호보암처럼 여로보암과 국경을 두고 전쟁을 벌였습니다(7; 14:30). 분열왕국 시작 후 양국은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충돌했습니다. 특히 당시는 각 왕국의 초기이므로 상대국에게 백성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지역을 통제하고 자신의 왕국을 견고히 세우려는 목적이 우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12:21, 26-28; 15:16-22; 대하 15:9). 역대기는 아비얌의 통치 기록에 여로보암과의 전쟁을 주된 사건으로 기술하면서, 악한 왕으로 평가한 열왕기와 달리,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승전한 데 초점을 맞춥니다(대하 13:15,18). 이처럼 열왕기와 역대기에 나오는 왕의 평가는 서로 상충하기도 합니다. 이는 르호보암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왕기와 역대기 둘 다 시삭의 침입을 공통적으로 기록했으나, 열왕기는 그 침입을 죄에 대한 징벌로만 묘사했고, 역대기는 여기에 그의 회개와 하나님의 응답까지 포함시켰습니다. 이런 상충된 내용은 열왕기와 역대기 저자들이 이용한 참고자료들이 서로 다른 데서 기인했을 수도 있습니다(7;대하 13:22). 그러나 무엇보다 저자들의 관점과 강조하려는 의도가 다른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가 목표로 한 1차 독자/청중은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역대기의 청중은 포로 귀환자의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열왕기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정당성을 제시하면서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반면 역대기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기초로 하여 성전과 예배를 중심으로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두 책 모두 다윗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신 하나님의 은혜를 부각합니다.


부모가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혼합종교에 열중하는 동안, 아들은 그 문화를 비판하거나 극복할 만한 신앙의 힘을 전혀 기르지 못했습니다. 부모의 신실함에 자식이, 선배 신앙인들의 신실함에 후배들이, 우리의 신실함에 이 사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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