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02-01)
슬라미 여인에게 청혼하는 솔로몬
아가서 2장 8-17절
봄이 되면 겨우내 없던 것들이 생겨납니다. 겨우내 감추어진 것들이 지면 위로 숭숭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이 더 맞겠습니다. 없던 용기도, 옅은 신뢰도, 얕은 관계도 쑥쑥 자라나 서로에게 맞닿는 순간에 이릅니다. 붐의 기적을 믿어봅시다. 정체된 사랑에도, 노후된 사랑에도 약속된 봄이 임하도록 말입니다.
본문에서는 두 남녀의 만남 속에 싹튼 사랑이 결혼으로 발전하는 데는 그들의 지속적인 소통과 사랑뿐 아니라 적절한 시기가 요구됩니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 그리워하며, 서로에게 만남을 청합니다. 멀리서 찾아온 남자는 여자에게 사랑의 결실 맺을 시기가 왔음을 설명하며 여자에게 청혼합니다. 여자는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신하며 결혼을 승낙합니다.
남자의 청혼(8-17)
어느덧 겨울비가 그치고 여기저기 봄꽃이 만발하여, 휘파람새가 봄을 지저귀는 계절이 왔습니다. 사랑을 싹틔울 시간입니다. 무딘 감성에, 식은 사랑에 봄을 이식하는 시간이 되도록 합시다. 본문은 겨우내 연인을 만나지 못한 그리움에 여인은 자신을 행해 내달리는 연인을 상상합니다.
8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9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10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1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4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15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16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17내 사랑하는 자야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을지라(8-17)
(1) 여자와 남자의 만남의 기쁨(8-9)
여자를 만나려고 남자가 멀리서 오고 있습니다. 여자는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뿐 아니라 그가 여러 산과 언덕을 거쳐 오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므로 기뻐서 ‘보라!’라고 소리칩니다.
1장에서는 여자가 남자를 만나기 의해 약속 장소를 은밀히 잡아야 했는데, 그때 여자는 그들의 밀회를 위해 새끼 염소를 치는 목동같이 꾸미고 남자와 동료 목자들이 돌보는 양 떼의 발자국을 뒤쫓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그들이 양 떼를 쉬게 할 때를 포착해, 여자도 그들의 장막 곁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기가 데려온 염소를 먹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여자를 향해 오는 남자의 발걸음은 점프를 하듯 빠르게 뜀뛰며 달리는 모습입니다. 보고 싶은 애인을 만날 생각에 남자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을 힘겨워하는 대신 신이 난 모습입니다. 남자의 목소리와 뛰어오는 모습에 여자도 설레어 남자를 거듭 내 사랑하는 자로 부릅니다. 그녀의 눈에 그의 달리는 모습은 노루와 어린 사슴의 뛰는 모습과도 같이 사랑스럽습니다. 가볍고 날렵하게 산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이 동물들처럼 여자를 찾아 달려오는 애인의 발걸음도 가볍고 즐겁습니다. 이 노루와 어린 사슴은 이후에도 여자의 연인을 비유하는 데 짝으로 나옵니다(2:17; 8:14).
어느 틈에 남자가 벌써 여자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문지방을 지나 바로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벽 뒤에 서서 창과 창살 틈으로 여자가 어디에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여자가 목자들의 눈에 띄지 않게 남자를 만나고 싶어 했던 것처럼(1:7), 남자도 다른 이의 주목을 받지 않고 여자를 은밀하게 만나기를 원합니다(2:9)
(2) 남자의 청혼(10-13)
여자를 위해 산을 넘어 달려온 남자는 여자에게 청혼합니다. 이 단락은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말로 구성되었으며, ‘일어나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가라!’라는 남자의 청혼을 암시하는 요청으로 시작되고(10), 끝납니다(13).
‘일어나라, 가라’는 여자의 자발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명령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아가서에서 ‘일어나라, 가라’는 남자의 요청(10,13)은 중간 부분(11-13)을 감싸고 있는데, 중간의 내용은 둘의 사랑이 맺어질 시기가 왔다는 설명입니다. 겨울, 즉 우기가 끝나고, 그들이 사는 땅에 개화의 시기가 왔노라고 남자는 말합니다. 그 증거로 땅에 꽃이 피고 비둘기 노래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며, 무화과나무는 벌써 풋열매를 맺었고 포도나무에도 열매를 맺을 꽃봉오리가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때가 왔다!’는 신호탄이 천지만물에, 날씨와 기온에 수없이 쏘아 올려져, 남녀가 서로의 사랑으로 결실을 맺을 결혼의 적정 시기가 왔음을 알립니다. 남자에게 사랑스럽고 어여쁜 여자는 이 청혼에 기꺼이, 자발적으로 응수할 것입니까?
(3) 여자를 그리워하는 남자(14)
남자는 여자가 보고 싶어, 만나자고 청합니다. 이 장면은 8절부터 이어서 본다면 집에 있는 여자에게 말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고, 떼어서 본다면 다른 시간에 일어난 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높고 위험한 바위틈들 사이, 낭떠러지의 은신처 같은 곳에 있는 비둘기로 묘사합니다. 그런 곳에 비둘기가 머물러 있으면, 비둘기가 스스로 날아 남자에게 오기 전까지는 남자가 비둘기에게 쉽사리 가까이 가기가 어렵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부르며 달려오는 모습을 여자로 보게 했듯이(8-9), 이제 여자도 어서 남자에게 그녀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길 고대합니다(14). 남자의 목소리와 모습에 여자가 흥분하며 설레었듯이(8-9), 남자의 귀에 여자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남자의 눈에 여자의 용모가 아름다워 남자도 흥분하여 설렙니다(14).
(4) 관계를 위협하는 존재들(15)
이 절은 결혼할 예정인 남녀의 관계를 위협하는 존재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 경고의 화자가 누구인지는 확신하지 않으나, ‘꽃봉오리가 맺힌 포도원들’이 13절에도 유사하게 언급(꽃봉오리가 맺힌 포도나무들)되었으므로, 이 경고가 10-13절의 남자의 청혼과 관련되는 경고임을 알 수 있다. 남녀의 관계를 상징하는 포도원에는 꽃봉오리가 맺히고 꽃들이 피었으므로, 그들은 곧 결혼으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포도원을 망가뜨리는 여우들이 도사리고 있으니, 이들은 결혼으로 연합하려는 남녀의 관계를 위협하는 존재들입니다. 이런 방해물은 두고 봐서는 안 되며, 사소한 것이라도 빨리 발견해내어 확실히 제거해야 합니다.
(5) 서로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확증(16-17)
이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여자는 결혼 약속을 확증합니다. 여자는 아가서의 처음부터 줄곧 남자를 사랑하고 있어 그의 사랑을 갈망했으며(1:24), 그와 함께 있고 싶어 만남을 청하며(1:7), 독백으로나 남자에게 직접 그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고(1:23, 16; 2:3), 예루살렘 딸들에게 사랑의 열병을 앓는다고 고백했습니다(2:5).
남자도 여자의 만나자는 제안에 응수하며 호감을 보였고(1:8), 그녀의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선물을 준비할 것이라 말했으며(1:9-10,15; 2:2), 그녀와 몇 차례 전원에서나 집에서나 포도주 집에서 만남의 시간도 가졌고(18:,12-14; 2:4), 또 만나러 왔습니다(2:8-9). 이제 남자의 청혼(2:10-13)으로 여자는 자신을 향한 남자의 사랑이 확고함을 재차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그는 나의 것이고 나는 그의 것이라고 결혼으로 맺어질 두 사람의 관계를 선언함으로써, 결혼 약속을 확증합니다. 여자의 이러한 선언은 둘의 관계를 소유권의 관점에서 표현한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는 서로 자신을 상대에게 기꺼이 주고, 상태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상호 간의 친밀함과 소속됨을 함축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는 쌍방 간에 조약을 맺듯 서로가 결혼이라는 언약 관계에 들어섬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 같은 언약에 대한 선언을 여자의 말에 적용하면, 그녀의 ‘그는 나의 것이고 나는 그의 것이라’란 표현은 ‘그를 내 남편으로 삼고, 나는 그의 아내가 되리라’의 축약된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의 선언에서 흥미로운 것은 여자가 ‘그는 나에게 속하였다’며 자기를 향한 남자의 사랑을 (남자를 향한 자신의 사랑보다 자신감 있게 앞세워 말한 점입니다. 이 선언에서 살짝 변형된 내용이 앞으로 세 차례(5:16; 6:3; 7:10) 더 나오므로, 여자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의 관계를 어떻게 기술하는지 그 변화도 같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한편, 16절 마지막 문장이 ‘남자가 백합화들 가운데에서 양떼를 먹이는구나’는 원문에서 ‘양 떼를’이 나오지 않으므로, ‘먹이는구나’는 ‘먹는구나’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또 여기서 '백합화들은 여자의 몸을 상징하는 은유적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은 전반부와 연결해서 보면, 이제 곧 결혼식을 통해 남자가 여자의 공식적인 남편이 될 것이므로, 남자가 여자와 육체적 관계를 누리게 될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연이어, 여자는 9절에서처럼 17절에서도 남자를 노루와 어린 사슴으로 비유하며 자기에게 어서 와달라고 요청합니다. ‘베데르 산’은 어딘지 알 수 없으나, 여기서는 아마도 여자의 몸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덧붙여, 시간을 나타내는 표현인 ‘날이 숨을 내쉬고 그림자들이 도망가기 전’(직역)은 낮의 뜨거운 열기가 빠지고 뉘엿뉘엿 해가 지는 저녁을 가리킵니다. 여자는 남자가 어서 와서 여자와 친밀한 시간을 보내기를 원합니다. 여자는 최종적으로는 남자와 완전히 한 몸이 될 날을 기다립니다. 그럼에도 2장은 여자의 요청이 성취되었는지 확인해주지 않은 채 끝나 두 연인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함께 고조됩니다.
결혼식에서 결혼서약은 지금까지 혼자 걸어온 시간을 이제부터 끝까지 같이 걷기로 하는 약속입니다. 둘은 서로를 향해 달리고 달렸던 시간을 기억하며, 이제 서로를 위해 지키고 지켜야 할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서로에게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그리하셨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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