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05-01)
결혼 후에 위기가 찾아온 부부
아가서 5장 2-16절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온도 차를 볼 수 있습니다. 밤공기와 방 공기뿐 아니라, 다급한 신랑의 외침과 더딘 신분의 움직임, 문구멍을 열어보려는 손놀림과 몰약을 바르는 손길... 서로를 기다리는 마음은 같은데 다가가는 속도는 어긋나 있습니다.
부부 간의 관계에 예기치 않은 위기가 닥쳤을 때는 부부에게 분별력 있는 행동이 요구됩니다. 아내를 찾아온 남편은 아내가 잠깐 꾸물대는 동안 떠나버렸습니다. 아내는 그 뒤를 쫓아 도성을 헤매나 그를 만나지 못합니다. 그래도 아내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남편을 찾으며, 그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다시 상기시킵니다.
결혼 후 찾아온 위기와 관계 회복(2-16)
사랑으로 결혼했지만, 부부간에 위기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사소한 것에서 오해가 있을 수 있고, 큰 싸움이 되어 어려움에 부닥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은 위기 속에서도 단단해집니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지만,예전만큼 여인은 남편의 구애에 대한 반응이 즉각적이지 못했습니다.
2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3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4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 5일어나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 6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7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졌도다 8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9여자들 가운데에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10내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많은 사람 가운데에 뛰어나구나 11머리는 순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구나 12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우유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 13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언덕과도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지는구나 14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 듯하구나 15다리는 순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 생김새는 레바논 같으며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 16입은 심히 달콤하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딸들아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로다(2-16)
종종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린 후에, 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나 사랑한 것을 미루었던 것이 후회되는 때도 있습니다. 사랑은 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있는 것을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가 항상 기다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1) 결혼 후 찾아온 위기(2-7)
결혼 후 뜻하지 않게 위기가 이 부부를 찾아왔습니다. 아가 5:2에서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는 새로운 시간, 새로운 장소, 새로운 장면이 연출됩니다. 1절과 2절 사이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습니까? 2-7절의 내용으로 봐서 신혼 시절이 어느 정도 끝난 후로 추정됩니다.
지금 침상에 누워 있는 아내는 완전히 잠들지 못하고 정신이 깨어 있습니다. 이때 남편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연애 시절에 여자는 자기를 만나러 산을 달려오는 남자를 보고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2:8)라고 외치며 흥분되고 설렌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늦은 밤에 두드리며 달콤한 호칭으로 아내를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에 ‘웃옷도 벗고 발도 다 씻고 지금 이렇게 누워 있는데, 다시 일어나 옷을 걸치고 방바닥에 발을 디뎌야 하나?’(3)하는 생각이 앞서 잠시 머뭇거립니다. 잠자려다 방해를 받았으므로 여자에게 귀찮은 마음이 스치는 것은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반응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애정이 다 식어 남편의 밤늦은 방문을 원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반사적으로 머뭇거린 아내의 행동은 남편에 대한 애정이 예전과 같지는 않음을 보여줍니다.
아내가 지체하는 순간에도 남편은 구멍으로 손을 뻗칩니다. 이 모습을 보자 이내 아내의 몸이 바로 반응합니다. 그녀의 내장이 소란을 피웠고, 그녀가 일어나 문을 열어주려 할 때 손에서는 남편에 대한 사랑이 몰약이 흘러내리듯 솟아났습니다(5).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은 이처럼 여전했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정작 문을 열었을 때, 남편은 벌써 몸을 돌려 가버린 후였습니다. 아내는 눈앞에 벌어진 일이 믿기지 않아, 자신을 원망합니다(6). 재빨리 그를 찾았으나 그를 발견할 수 없었고, 불러보아도 대답이 없었습니다(6). 아내는 남편을 찾아 헤매는 동안, 결혼 전에 그녀가 상사병에 걸려 꿈에서 그를 찾았던 때를 기억했을 수 있습니다(3:14). 그때도 공포에 질렸지만, 그것은 꿈이었으니까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공포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문을 바로 열어줬더라면’하는 자신에 대한 후회, ‘조금만 더 기다리지’하는 남편에 대한 원망도 있었겠지만, 남편이 현재 옆에 없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남편을 찾지 못하고 영영 잃어버리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오는 두려움과 공포가 여자에게 더 크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이런 여자를 성안을 순찰하던 경비대들이 발견했습니다. 앞서 3:3에서도 여자는 꿈에서 남자를 찾아 헤매다가 파수꾼들을 만났습니다. 그때는 여자가 그들에게 남자를 봤냐고 물어볼 순간도 있었고 그들과 헤어져 자기 길을 계속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실에서는 여자가 자신이 왜 으슥한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지 그들에게 변명할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파수꾼들은 그녀를 때려 멍들게 했으며, 두르고 있던 옷마저 빼앗았습니다. 홀로 밤(또는 새벽녘)에 혼비백산해서 거리를 돌아다니는 여자의 모습은 파수꾼들 눈에 정신 나간 여자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벽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이 자들은 성 안에 사는 주민인 이 여자를 지켜주지 않았습니다.
(2) 관계 회복을 위한 아내의 노력(8-9)
편한 밤을 맞이하려 했던 아내는 한순간에 남편을 잃고 파수꾼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신세가 되었지만, 남편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히 남편을 찾고 안 찾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편과의 관계에 상처가 난 지금, 그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그 상처는 점점 심해질 것이 자명합니다.
지금은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슬퍼하여 주저앉거나, 남편에게든 파수꾼들에게든 그 책임을 뒤집어씌울 핑곗거리를 찾거나, 누가 더 억울한지를 헤아릴 때가 아니다. 문제를 먼저 자신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어쨌든 아내 자신이 그녀를 찾아온 남편을 바로 맞이하지 못했고, 지금 일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대책을 마련하고 이 일을 수습해야 합니다. 지금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그 관계가 이번 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예루살렘 딸에게 남편을 만나거든 자신이 그를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전할 것을 맹세하라고 요구합니다. 여자는 결혼하기 전에도 남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기진했었다(2:5).
예루살렘 딸들은 그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내에겐 여전히 남편이 ‘자랑하는 자’입니다. 예루살렘 딸들이 이 사실을 남편에게 전한다면, 그는 아내가 결혼 전이나 지금이나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받을 것이며, 남편의 상처 받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질 것입니다.
3장의 꿈에서 남편을 잃었을 때는 여자 혼자 나가서 찾으리라 결심했지만(3:2), 지금 현실에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까지 청하여 남편을 찾는 데 주력합니다(5:8), 이 같은 분별력과 현명한 판단, 실천은 상처난 관계를 치유하는 데 아주 적절한 시작점이 됩니다. 한편, 예루살렘 딸들은 여자에게 그녀의 남편이 다른 사람보다 어떤 점이 낫냐고 묻습니다(9). 이때 그녀들은 여자를 ‘여자들 가운데에 어여쁜 자’로 부르는데, 이 호칭은 여자에게 지난날 남편과의 연애 시절에 대한 추억을 소환합니다(1:8-9).
(3) 남편의 매력에 대한 아내의 칭송(10-16)
예루살렘 딸들의 질문(9)은 아내로 하여금 남편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확신하고 표현할 기회를 열어줍니다. 이 단락은 아가서에서 여자가 남자에 대해 말하는 가장 길고 구체적인 칭송입니다. 아가서 전체에서는 여자의 말이 남자의 말보다 더 많고, 그 행동이 주도적이며, 여자의 시각에서 자신과 남자를 바라보는 내용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서로의 육체에 대한 아름다움을 찬양하는데 있어서는 여자의 분량이 훨씬 적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여자의 남자에 대한 긴 찬양은 여기 한 번이지만, 남자는 이미 한 번 첫날밤에 긴 찬양을 했고(4:1-15), 앞으로도 두 차례 긴 찬양(6:4-9; 7:14)을 더하게 됩니다. 또한, 남자는 여자를 앞에 두고 직접 찬양하는 반면에, 여자는 예루살렘 딸들에게 간접적인 찬양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은 여자의 거침없고 대담한 말과 행동에 대조하여 여자의 수줍은 면을 나타내는 것인지 아니면 여자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부각시키는 의도인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시작한(10) 후 머리에서 다리까지 남편의 신체를 찬양하고(11-15), 다시 전체적인 모습으로 돌아와 그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고 결론 내립니다(16). 덧붙여 여자는 이 남편이 그녀의 사랑하는 자, 그녀의 친구임을 밝힘(16)으로써 예루살렘 딸들에게 남편의 특별함을 전합니다. 여기서 남자에 대한 여자의 칭찬 표현은 시각, 후각, 미각을 자극하는 말로 가득합니다. 가장 먼저 아내를 사로잡은 남편의 매력은 그의 눈부시고 혈색 좋은 생김새입니다. 다른 사람들 가운데 당연히 돋보이니, 여자가 연애 시절에 그를 숲속의 나무들 가운데 출중하게 튀는 사과나무로 칭한 것은 적절합니다(2:3). 순금으로 비유한 남편의 머리는 그의 고귀함과 가치를 표현합니다. 남편의 머리채는 열매 송이 같고 까마귀같이 검으며, 눈은 우유로 목욕한 비둘기가 마치 물 위에 안착한 것 같이 잘 박혀 있습니다. 남편의 뺨과 입술은 온갖 귀한 향품과 꽃으로 비유됩니다. 특히, 남자가 여자의 뺨을 벌어진 석류로 비유하여 그 붉음을 강조했다면(4:3), 여자는 남자의 뺨에서 나는 향기와 뺨의 형태를 강조합니다(5:13). 남편의 손, 배, 다리는 황옥, 상아, 청옥, 순금, 대리석 등 진귀한 보석으로 만들어진 재료에 비유되어, 남자의 다부진 몸과 고귀함을 표현합니다. 남편은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주목을 받는 자입니다.
마지막으로 여자가 남편의 달콤한 입천장을 언급하는 것은 1:2에서 남자의 입맞춤을 열망하던 여자를 상기시킵니다. 이처럼 아내에게는 남편의 전체가 다 사랑스럽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는’으로 시작하여 남편을 칭찬한 여자는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자요 내 친구라’라고 말하며 칭찬을 끝냅니다. 여기에는 새로운 발견이 있었습니다. 그가 그녀의 친구와 같은 존재도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혼은 현실입니다. 어떤 헌신도 가능했던 신혼 때와 달리 작은 헌신도 버거워질 때가 오기 마련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마음의 자물쇠를 풀어야 합니다. 서로 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노력할 때 결혼 서약은 구속이 아닌 아름다운 결속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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