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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12-03)


위대하고 위엄한 그리스도의 복음

히브리서 12장 18-29절


기독교는 율법과 복음으로 두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율법과 복음,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진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율법을 필요 없는 것으로 여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율법으로 끝나면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곳에 복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율법과 복음은 어떤 관계입니까? 율법은 미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완성케 한 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완성인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함께,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본문은 그 내용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주어질 때 이스라엘은 무서워 떨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른 곳은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복종해야 합니다. 율법이 주어질 때는 땅만 진동했지만 이제는 하늘도 진동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위대성(18-24)

보수계열의 교회들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배를 드리면서 거룩함이 무거운 기운이 감도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웃거나 드럼을 두드리면서 박수친다는 것을 용납 못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묵상할 때, 하나님에 대한 경외 앞에서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한 부분입니다.

18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만한 불 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19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21그 보이는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22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24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18-24)

율법과 복음은 모두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지만 들의 기능은 매우 다릅니다. 율법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죄인으로 세워 놓기에 우리는 심판을 두려워하며 떨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를 죄 씻음 받은 의인으로 하나님께 인도하기 때문에 우리는 환영받고 하나님 앞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의 시내산(18-21)

먼저 시내산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건은 출애굽기 19장의 사건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광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그 시내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임재하실 때, 하나님께서 불붙은 산에 강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받을 때, 그것은 두려움과 놀라움이었습니다. 우레와 번개 그리고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렸습니다. 산에서 연기가 옹기점같이 피어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했습니다. 그 산에 들어가는 자는 누구든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위엄 앞에 그들을 두려워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어떻게 대면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함의 역사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히 눈을 들어 쳐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 조차도 두렵고 떨린다고 말합니다. “그 보이는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21) 모세 조차도 하나님의 위엄과 경외 앞에 두렵고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원치 않는다 할 정도로 그들은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 시내 산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모습입니다. 옛 언약인 율법 아래 있었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천상의 도착한 그리스도인(22-24)

반면에 복음을 통한 천상의 시온에 도착한 그리스도인의 신분과 상태를 설명합니다. 그들은 새 언약과 피로 완전하게 된 의인이기 때문에 환영 받고 기뻐하는 공동체입니다. 복음이 율법보다 위대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또 이것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움 속에서 우리를 한 단계 더 나가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나가게 하시는 바로 시온산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22절 말씀부터 “그러나”로 시작하면서 모든 분위기가 반전이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는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시내산’이 아니라 ‘시온산’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가 이른 곳’ 곧 ‘너희가 서 있어야 한 곳’은 시온산이라는 것입니다. 그 시온산은 바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과정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직 미완성입니다. 율법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뛰어넘어서, 시내산을 통과해서, 우리가 서야할 곳은 가나안, 시온산 그리고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그곳에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설 수 있습니다.

그 시온산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24)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중보가 되어서 설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던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은혜 시대를 살아가고 은혜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그는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의 고백은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고 하나님을 두려워한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과해서

 

복음의 위엄성(25-29)

복음이 율법보다 위대한 것만큼 복음은 더 위엄한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더 큰 심판과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입니다. 은혜의 배경이 되는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25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26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28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29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25-29)

인간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가 시내 산에서는 땅을 진동시켰지만, 복음에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는 하늘과 땅을 모두 진동시킬 만큼 두려운 것입니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거역하는 자들은 더 큰 죄를 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약속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변치 않는 천상의 나라를 약속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아래 있는 자들은 율법 아래 있던 자들보다 온전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율법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지만, 복음은 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스르는 모습이라고 느낄 때 즉시 회개하고 돌이킵니다. 혹시 당신에게 주신 복음의 명령을 등한시하지 않습니까?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다고 노래합니다(시 125:1). 하늘의 영광을 바라며 당신에게 주신 주님의 명령을 따라, 복음을 따라 경건하게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이웃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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