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히브리서(10-04)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일들

히브리서 10장 32-39절


천성을 향해 나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영적 거장이라 하는 사람들도 영적 침체기는 찾아옵니다. ‘영적 슬럼프(slump)’라고 부르는 영적 침체는 아무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때로는 신앙이 영적 성장을 통해 엄청난 은혜와 사랑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지치고 낙담하고 영적으로 후퇴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신앙은 결코 계단처럼 한 길로 쭉 성장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주저앉아다가 다시 일어서기도 합니다. 영적 슬럼프를 겪거나 주변에 영적 침체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본문 말씀은 아름다운 교훈과 지침을 제공합니다. 말씀으로 나가 우리의 영적 회복을 원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귀기우리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도 여러 가지 힘든 상황들이 있었지만 고난을 견뎠습니다. 우리에게 인내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입니다. 잠시 잠깐 후면 다시 오실 이가 지체하지 않고 오실 것입니다.

 

과거의 믿음을 기억(32-34)

당신은 과거에 되돌아가고 싶은 시기가 언제입니까? 누구나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돌아가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칠고 험한 광야 길을 걷던 때를 소망해야 합니다. 성도의 삶은 끊임없는 고난으로 점철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고난의 길을 기억하며 그 길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이 없이는 영광도 없기 때문입니다.

32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33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34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32-34)

6:9에서 그랬듯 설교자는 회중을 두려워 떠는 채로 돌려보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엄중한 경고와 함께 푸근한 격려가 따라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6장과 어조가 다릅니다. 단지 칭찬이 아니라 지난 날 회중이 몸소 겪었던 고통스러운 경험을 떠올리면서 비장한 각오를 다지도록 합니다. 과거를 ‘기억하라’고 설교자는 명령합니다(32). 이 기억은 회중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적인 과거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이전 세대 선배들이 겪었던 공동체의 과거에 관한 것입니다. ‘집단적 기억’(collective memory)은 어떤 면에서 신앙공동체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모든 개인이 겪지 않았더라도 한 몸에 붙은 지체의 경험이 모든 지체에게, 오고 오는 후대에게까지 나누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자가 그리는 히브리서 회중의 기억은 사실 아프고 어둡습니다. 그들은 ‘공공연한 모욕과 환난’을 당하기도 했고 그런 형편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도 했습니다(33). ‘감옥에 갇힌 이들’과 함께 아파하기 위해 그들은 분명 영치금과 의복과 음식을 가지고 자주 방문했을 것입니다. 그런 섬김에 필요한 재정을 자발적으로 내주었고, 어떤 때는 억울하게 재산을 빼앗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34). 하지만 그때의 그 아픔은 반드시 지워질 것입니다.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넘치는 복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마 5:3-12; 19:29). 마지막 당부 ‘여러분은 그 확신을 내던지지 마십시오’(35)는 새로운 당부라기보다는 이제까지 여러 차례 했던 권면의 확인입니다(2:1; 3:12-14, 18; 4:2,11; 6:11-12).

 

인내하라(35-39)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을 따라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세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핍박과 조롱이 있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인내해야 합니다. 새로운 힘을 얻어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35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36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35-39)

‘약속된 것’을 바라는 희망 위에서 ‘인내’라고 말하면서 설교자는 다시 한 번 종말 신앙으로 현재 신앙을 북돋웁니다(36). 하나님께서 오실 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본 모습을 규정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 결론을 확증하기 위해 설교자는 다시 한 번 성경을 읽습니다. 한 구절이 아니고 두 책에서 뽑아낸 두 구절인데, 그것을 마치 한 구절인 양 이어 붙입니다. 이사야 26:20(‘조금만 더 있으면’)과 하박국 2:3-4이 바로 그 두 구절인데, 두 구절 모두 ‘파루시아’(임재)의 임박성을 생생하게 그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오실 것입니다. 또 우리의 예상을 뒤엎고 ‘곧’ 오실 것입니다. 확실성으로부터 임박성이 배어 나옵니다. 분명코 오실 것이기 때문에 곧 오시리라고 기대하며 두려워합니다.

그분을 맞이하는 우리의 준비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까? 예언자 하박국은 아마 위기에 처한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해 하나님의 묵시를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해서 언약 백성이 왜 바벨론과 같은 이방 민족에게 압제당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종말, 즉 심판의 때가 속히 임할 거라고 전제하시면서 악인과 의인을 대조하십니다. 악인은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므로 형벌에 처해 지지만 의인은 ‘그의 믿음’, 즉 신실함과 삶의 열매로 인해서 죽지 않고 ‘살 것이다.’

히브리서 설교자는 칠십인역을 있는 그대로 따오지 않고 중요한 변화를 주었습니다. 본래 하박국 본문에서 끝에 있던 38a절 문장을 앞으로 가져오고 본래 앞에 있던 38b절 문장을 뒤로 미룸으로써 ‘믿음’의 사건, 즉 회심을 전제하고 그 후에 다가올 배교의 위험을 ‘물러남’이라는 말로 경고합니다. 믿음은 단지 ‘어떤 사실을 참이라고 인식하고 받아들임’에 그치지 않습니다. 다른 인격적 대상을 향한 참되고 정성스러운 태도, 관계, 행실을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또한 하박국의 ‘의인은 나의 믿음으로 살 것이다’를 히브리서 설교자는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바꾸어 말합니다. 하박국의 원 문맥에서 의인의 생명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의존합니다. 히브리서 설교자는 강조점을 신자 자신의 신실하심으로 옮깁니다. 결론은 명확합니다: 생명을 얻는 신앙은 ‘뒤로 물러나지 않음’입니다(39). 누가 그런 믿음을 지녔습니까? 이제 우리는 물러남 없는 신실함을 보여준 신앙의 선배들, 조상들의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우리 주변에 믿음의 길을 함께 왔다가 점점 믿음의 길에서 멀어지고 있는 분들은 없습니까? 그 분들 손을 붙잡고 이끌어 오시길 바랍니다. 은혜를 맛보고 떠나는 자들에게 더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약속을 신실히 지키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모이기를 힘쓰고, 죄와 타협하지 않고 지금 당하는 시험을 이기도록 합시다. 다시 믿음 가운데 서서 함께 의의 나라를 경험하고 주님이 예비하신 풍성한 축복을 함께 누리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