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10-01)
율법 그림자의 실체이신 그리스도
히브리서 10장 1-10절
어느 실체의 그림자만 보면, 그 실체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 실체에 대해 상상할 수 있고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율법 제사는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의 온전한 속죄를 이룰 때까지 그림자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율법은 장래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율법의 제사는 죄를 기억나게 할뿐 사람들을 온전히 할 수 없어 제사가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오신 그리스도는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없는 율법의 제사를 폐하시고 자기 몸을 단번에 제물로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게 하십니다.
율법과 제사가 그림자인 이유(1-4)
율법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하지만 온전한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것으로 ‘새 언약’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늘 가장 좋은 것으로 예비해 주시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겸손과 감사로, 그리고 진실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제사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1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1-4)
논증의 소재는 앞 9장에서부터 이어지지만, 논조는 더 강해집니다. ‘율법’은 내용상 첫 언약의 속죄 제사를 의미합니다. 율법에 대해 이미 8:5에 나왔던 ‘그림자’가 다시 한번 사용됩니다. 대제사장 예수님의 사역 설명을 1년에 한 번 언약 백성의 죄를 속하는 대속죄일과 연결해서 소개합니다. 이전처럼 기존 대제사장과 대조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내용상 첫 언약의 속죄 제사를 가리킵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항상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성도들을 온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1). ‘온전하게 한다’라는 표현은 죄가 전혀 없는 완전한 상태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율법이나 제사는 그림자일 뿐’이라는 가르침은 곧 ‘제사와 같은 물리적인 행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내면의 정신이 중요하다’라는 뜻은 아닙니다. 점차로 확실해질 것이나 저자는 십자가의 능력에 의지해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 앞에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죄의 결정적 도말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옛 질서 아래에서 해마다 항상 드리는(1) 수없이 많은 희생 제사들은 곧 섬기는 자들을 온전하게 하는 능력이 율법에 없음을 증언해 줍니다.
율법이나 성전의 제사가 그림자일 뿐인 이유는 물리적인 행위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자꾸 반복되기 때문입니다(2). 즉 무엇인가를 완성했다면 그것을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계속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니 불완전하다는 것이지, 그 정신과 의미가 밝혀지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율법에 규정되어 매년 반복하는 제사들은 죄를 없애지 못하고 오히려 죄를 기억하게 합니다. 이렇게 매년 소와 염소의 피로 제사해도 죄를 없애지 못하는 이유 역시 그것이 물리적이기 때문이거나 그 정신을 바로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피가 세상의 죄를 대속할 만한 가치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3-4).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를 위해 죽임당하신 사건은 역사적으로, 물리적으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기에, 신앙은 단지 정신이나 신념의 영역에 제한되지 않고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칩니다.
참된 제사를 위한 몸을 준비하심(5-10)
진정한 마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비단 예배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일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웃을 사랑하며 경건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지는 않은 채 하나님께 형식적인 예배와 헌금만을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5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5-10)
히브리서 기자가 가르치는 ‘진짜 제사’는 정신적인 제사가 아니라 예수님의 몸, 즉 가장 고귀한 몸으로 드려지는 제사였습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인용하는 성경은 시편 40:6-8입니다(5-7). 구약 본문과 내용이 약간 다른 이유는 저자가 70인역에 근거해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6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8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시편 40:6-9)
여하튼 저자는 이 본문을 인용하며 하나님이 율법에 기록하신 제사와 예물, 번제와 속죄제를 불완전한 것으로 여기사 기뻐하지 않으시고(8),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온 한사람을 세우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9). 특히 저자는 하나님께서 ‘한 몸’(5,10)을 예비하셨고, 그리스도께서 그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입었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율법에 규정된 제사를 드리지 않는 이유는 가장 고귀한 제물로 제사가 드려졌기에 더 이상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릴 필요가없기 때문이지, 물리적인 행위보다는 정신적인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그 아들의 ‘몸’을 제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합니다(로마서 12:1). 우리는 생각으로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몸으로 믿습니다.
어디에서나 인터넷을 통해 통신이 가능한 세상을 살면서도 우리가 굳이 한자리에 모이고, 주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기 위해 빵과 포도주를 준비하는 이유도 사실 이 때문입니다. 주님이 단순히 우리의 죄를 사하겠다고 선포하지 않으시고, 굳이 사람이 되셔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신 이유 역시 우리가 몸으로, 모든 삶의 영역에서 거룩한 자들이 되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혹시 신앙의 영역과 삶의 영역을 따로 떼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삶을 주님께 살아 있는 제사로 드리겠다는 결단을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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