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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11-0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선진들

히브리서 11장 1-12절


사람들과 관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서로 믿음이 없으면 모든 인간관계가 형성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신뢰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때, 우리 생활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고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손바닥 뒤집듯이 배반하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신뢰하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믿음의 사람 중에 이와 같은 믿음으로 자신의 신앙 여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명단’이라고도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신실한 사람들의 행적을 기록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아는 것도 믿음 때문입니다. 아벨, 에녹, 노아는 믿음의 본을 보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이들의 믿음에 대해 증거 하십니다.
 

믿음의 정의(1-2)

‘믿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는 것은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인정한다’라는 뜻이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이라면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인정함으로 출발점이 되어집니다. ‘믿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본문처럼 명쾌하게 대답해주는 부분이 없습니다. 믿음의 정의를 살펴보겠습니다.
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2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1-2)
지금까지 1-10장까지 이론적인 설명이라면, 11-13장은 성도로서 걸맞은 모습에 대한 권면입니다. 거룩한 삶이 없는 기독교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 강조할 뿐,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복종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은 선택 상황처럼 취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거짓 복음이며 값싼 구원입니다.
믿음에 대한 설명은 간결함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먼저 문장을 시작은 정의하는 개념을 정의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3-40절까지 ‘믿음’에 관한 상세한 논의를 전개하기에 앞서 ‘믿음’의 핵심 특성을 정의 양식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본문은 2절이지만, 11장에 전체의 도입부에서 ‘믿음’을 칭송하는 찬사로서, 11장 전체를 읽어나가는 데 활용될 기본 틈을 제공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1절은 통해 앞서 10:38에서 인용된 하박국 2:4를 인용하면서, 곧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는 선언이 실체 삶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1a)
구원의 미래 완성에 참여하기 위해 믿음의 인내를 권면한 히브리서 기자는 구원의 여러 경우를 모본으로 제시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확증입니다(1).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정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믿음에 대해 말하기를 ‘믿음의 소망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정의합니다. ‘바라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이 실체가 되게 하는 것이 능력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도,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믿음 안에서는 실상이 됩니다. 그것이 보이지 않지만, 믿음 안에서는 증거가 됩니다. 그것이 믿음의 특징이요 그것이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설명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언제나 소망과 함께 동행합니다. 믿음은 소망을 통해서 구체화 됩니다. 소망은 믿음이 있을 때 그것이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망이 없는 믿음은 공하한 것이 됩니다. 사람의 야망과 꿈으로 그치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믿음은 소망으로부터 시작되고 그 소망이 믿음을 통해서 믿음을 만날 때, 온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그분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부정적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증명할 수 없다고 주장 합니다. 그러나 만약 증명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연구의 대상이 되실 뿐이지 믿음의 대상이 되실 수 없습니다.
본문은 믿음의 특징을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을 서취시킵니다. 여기서 ‘바라는 것’이란 우리의 막연한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말합니다. 둘째,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우리가 그것을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왜 믿음이 기적을 일으킵니까? 그것은 우리의 상상 속에 있던 것들이 현실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선배들도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자주 쉽게 넘어지고 환경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언제나 영적 거인이여서 조금에 흔들림도 없고, 어떤 시험 앞에서도 굳건히 서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들도 어려움을 만나면 휘청거렸을 것입니다. 낙담하고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는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증거를 맛보았습니다.
성경은 그곳을 기록했고, 오늘 우리는 그 말씀 앞에 서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현실들이 비록 들어나 있지 않고, 원하는 대로 되어 있지 않다할지라도 실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믿음의 선진들 가운데는 일하는 그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믿음의 원리는 꿈꾸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믿음은 소망을 통해 구체화 된다고 그랬습니다. 소망을 가지게 되면, 장채 되어질 일들에 대해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구체적인 상상력을 가지고 그리기 시작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서 현실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믿음이라는 큰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주님의 꿈꾸고 소망하기만 하면 그 일들이 현실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한 걸음씩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3-7)

믿음은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본문은 반복적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해서 언급합니다. 하나님이나 그분의 말씀이나 약속이 모두 보이지 않지만 믿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축복을 누립니다.
3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4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5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7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3-7)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으로 증거를 얻었던 많은 신앙인이 나옵니다. 본문은 그분들 가운데 세 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영적 믿음의 세 사람을 살펴보겠습니다.
(1) 창조를 믿음(3)
놀랍게도 믿음의 선진들의 대열 중 맨 앞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믿음의 출발은 천지창조 사건에서 출발합니다. 천지창조 사건은 한 개인의 ‘믿음으로’ 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그것을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말씀이 임할 때 무형의 세계에서 유형의 세계로 바뀌었습니다. 믿음의 기능은 말씀의 기능을 합니다. 앞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는 것이 없는 무형입니다. 믿음이 가해질 때, 이 무형이 유형이 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특징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믿습니다. 이 세계의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강점입니다. 이 사실이 믿음의 능력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며 이루어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저 상상력에 산물이라 여길 수 있는 산물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취할 때, 이것들이 유형의 세계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2) 아벨의 사례(4)
첫 번째는 아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기뻐하시는 예배는 제물의 종류가 아니며, 아벨의 성품이 가인보다 나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믿음의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입니다. 우리는 매번 하나님께 예배로 나갑니다. 이 예배들을 통해서 어떻게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믿음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3) 에녹의 사례(5-6)
두 번째는 에녹입니다. 에녹은 특별한 기적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에서 그의 삶의 행적에서 능력을 행했거나 죽은 사람을 살렸다는 내용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을 설명한 아주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한 자(He walked with GOD)”이란 단어입니다. 그는 대단한 기적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닌데, 그는 늘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에눅은 하나님께 드림을 받을 때 365세였습니다. 1년은 365일입니다. 이처럼 365일 주님과 동행할 때, 믿음으로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4) 노아의 사례(7)
세 번째 사람은 노아입니다. 노아는 이전에 한 번도 비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홍수가 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그리고 비로 세상을 멸망시킨다고 하셨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예언했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120년간 수많은 조롱과 핍박 중에도 방주를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노아의 믿음의 여정이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말씀을 결론처럼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6) 첫 번째는 ‘그가 계신 것과’ 살아계시고 역사하신 하나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는 우리들에게 상주시길 기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벌주시길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상주시기를 기뻐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시고 우리들의 수고를 다 기억하시고 우리가 행복하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작운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태산을 옮길 만큼, 우리의 믿음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 앞에 작은 믿음이지만 믿음으로 나가시길 바랍니다.


믿음의 열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매일매일 주와 동행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예배를 드리고 믿음으로 예배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눈앞에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도 믿음으로 순종하시면, 믿음으로 동행하는 성도들이 될 때, 하나님께 칭찬 받는 성도들이 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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