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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07-03)


영원한 중보자이신 예수님

히브리서 7장 23-28절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살아 나오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죄인들이 스스로 죄에서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누군가 구원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생의 길을 인도해 주셔서 평단하고 견고한 길을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평탄하고 견고한 길을 갈 때, 인생에 놀라운 승리와 기쁨을 맛보실 것입니다. 삶의 기초를 예수 그리스도로 주인 삼으시길 바랍니다. 주님께 인생을 기초로 하고 멋있는 인생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본문에서도 멜기세덱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을 말합니다.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온전함에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새로운 제사장을 다시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멜기세덱 반차를 따라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필요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다 지파로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새로운 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옛 언약은 온전함을 구비한 새 언약이 오심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새 언약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영원한 제사장인 그리스도(23-25)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께서 다른 모든 제사장보다 우월하신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레위 계열의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커다란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 제사장들의 약점은 무엇입니까?

23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23-25)

예수님께서는 약속된 새로운 제사장이라는 논증이 계속됩니다. 기존 제사장들은 죽음 때문에 제사장직을 계속 유지할 수 없어서 많은 수가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존재하기에 변함없는 제사장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23-24). 이 표현에는 세 가지 대조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많은 수와 한 명의 대조이고, 둘째는 제사장직의 단절성과 지속성의 대조이며, 셋째는 죽음의 한계와 영원성의 대조입니다. 모든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 요소는 셋째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나가는 방법에는 중보자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 사람들을 선택하여 그 직무를 감당하게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들이 죄가 없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이 필요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는 하나님께 나가는 데는 제사장은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구약 성경에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은 1년에 24단계로 나누어서 직무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성소의 직무를 단계마다 감당하려면 상당히 많은 제사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인 문헌에 의하면 AD70년경에 역사가인 요셉프스의 기록에 의하면,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만 해도 대제사장으로 취임했던 사람이, 83명에 이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 상에서도 보면, 민수기에 첫 인구조사 했을 때, 1세 이상의 레위인들의 숫자가 22,000명에 달랐습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레위 자손으로서 성소의 직무를 따라 다른 사람들의 제사를 도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제악(諸惡)이 있고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23下)라고 직무를 감당하던 제사장들이 한계는 죽음이었습니다. 제사장이 죽고 나면, 또 다른 제사장이 대신해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제사장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영원 중보자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도 시대도 지나가면 변하고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의 본질적인 초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24)라고 합니다. 우리 신앙의 유일한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돌아가실 일이 없었습니다. 또 그 제사장의 직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실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사장의 직분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염소와 송아지 피로 말미암지 않고 자기 피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히 9:12). 그래서 이제는 다른 제물이 필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에서는 변화산 사건에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셨을 때, 예수님의 수제자인 3명이 따라갑니다. 그들은 환상 가운데 그 형체가 변한 것을 봅니다. 베드로가 너무나 감격해서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9:33)라고 감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아무런 대답도 안 하시고, 그 환상을 다 거두신 후에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9:36)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환상도 신비도 세상의 모든 천지 만물도 다 사라지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 변함없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구약에 나온 수많은 제사장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예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에 붙잡아야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인간 제사장이 아니라 예수님 한 분을 붙잡아야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 곁에 항상 계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제사장 직을 맡고 계신 분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사람들의 중보하실 수 있습니다. 중보자로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골 3:1).

영원한 제사장인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 영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 대제사장을 힘입어 항상 현재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예수 대제사장은 자기를 힘입은 모든 사람들을 온전히 구원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대제사장은 우리를 위해 계속적인 간구를 아버지 앞에 드리십니다.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들은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께 기도합니다. 예수님께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면 그 기도의 제목들을 중보자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 고합니다. 그리고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응답을 받아 우리들에게 허락하십니다. 우리들이 자신 있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영원히 살아계시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우리를 위해 중보자가 되신 것입니다.

 

대제사장인 예수의 역할(26-28)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할 수 없는 것을 직접 그리스도와 그의 공로를 통해 제공하셨습니다. 그 일을 감당한 예수님의 역할에 대해, 예수님의 성품에 대해서 다음에는 설명합니다.

26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27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28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26-28)

우리들이 하나님께 행했던 일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공로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들은 그의 거룩함을 본받았습니다. 그분은 결백한 분이십니다. 우리들도 그의 결백한 부분을 본받았습니다. 그 분은 순견한 분입니다. 그의 순결한 부분을 본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시고 유일하신 대제사장이시고 우리들에게 합당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늘에 계신 분이긴 하지만, 이 땅에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우리들의 목마름, 갈증 그리고 눈물을 채워주실 분은 오직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친구가 좋은 점은 항상 나의 약점과 아픔을 함께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친구에게서 얻을 수 없는 아쉬운 점은 자신의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면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주시는 참 친구입니다. 인간 제사장들은 다른 사람의 죄를 지고 하나님께 나갈 때, 먼저 자기 자신의 죄를 깨끗하게 해야 했습니다. 그 자신들이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26)고 소개하비다. 예수님은 거룩하십니다. 악이 없으십니다. 더러움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에 대한 설명이 합당한 설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 가운데 계시면서도 죄인들과 섞이지 아니 하셨습니다. 죄인들 한 가운데 계셨지만, 그 죄인들과는 다르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악인들 안에 계시면서도 죄인들에게 휩쓸려가지 않으셨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지만, 세상의 더러움과 죄악에 휩쓸려가지 않으셨습니다. 죄인들과 섞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죄인들을 살려 내시기 위해 죄인들 한 가운데 계셨습니다.

우리들도 세상에 들어가서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회사나 직장을 처음 들어갈 때는 ‘하나님! 이 직장을 거룩하게 변화시키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하며 시작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지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점점 분위기에 휩쓸려 세상의 즐거움과 물질을 추구하는 분위기에 빠져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잘못된 방법으로 사업하는 분위기에 얼마나 쉽게 휩쓸려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이 학교를 입학해서 ‘이 학교가 거룩해지길 원합니다.’라고 기도하지만, 그 가운데 휩쓸려 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우직 십자가의 복음을 마음에 품고 성령에 충만한 가운데 살아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도 당신이 세상 한 복판에 들어가지만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기 때문에 세상에 휩쓸려가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로 우리 인생에 완벽한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대제사장은 거룩하고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우리를 위해 죄를 대속해 주실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탁월한 대제사장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큰 특권입니다. 하늘보다 높이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모든 아픔을 함께 나누시는 대제사장 친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짊어지시면서 친구가 되어주십니다. 지금 당신의 아픔과 문제들도 지켜보시는 줄 압니다. 힘든 때일수록 예수님을 힘입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가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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