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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08-01)


대제사장으로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히브리서 8장 1-13절


아파트 견본 주택(모델하우스)에 가보신 적이 있습니까? 화장실도 모양만 있지 작동하지 않습니다. 깔끔하고 멋있게 지어졌지만, 그것은 모형일 뿐입니다. 앞으로 지어질 새로운 아파트는 이러한 모양으로 건축될 것입니다 라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지어진 모형입니다. 그것은 겨울에 난방시스템이 없어서 무척 춥습니다. 화장실도 모양만 있기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파트가 다 지어지면 그 모델하우스는 자기 역할을 다했기 때문에 곧 해체됩니다. 마치 레위 지파의 제사장직과 같습니다.

 

율법에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 제도는 하늘에 있는 것의 불완전한 모형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장막을 지을 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것으로, 이것이 완전했다면 새로운 언약을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새로운 언약은 옛 언약의 부족함을 대신하여 완벽한 제사를 주셨습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완전하고 충족스러운 희생이므로 더 이상의 구약적인 제사가 필요 없게 되어졌습니다.

 

하늘 성소에서 섬기는 대제사장(1-2)

교회는 영원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견고하게 섭니다. 교회를 위해 간구하시는 분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이시며,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성소에서 섬기시는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으로 인해 교회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1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1-2)

히브리서 기자는 4장에서부터 지금까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소개해 왔습니다. 7장에서는 예수님을 ‘더 높으신 제사장’, ‘더 좋은 소망’ 그리고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제 이 내용들을 기초하여, 8-10장까지 대제사장으로서 드린 ‘제사’도 아론 계열 제사장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그런 대제사장을 소유하고 있다는 말로 운을 뗍니다(1). 그 다음으로 예수님에 대한 모습을 두 가지로 소개합니다.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은 예수님(1)과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예수님입니다(2). 시간적으로 예수님의 지상 사역 이후 현재 상태를 소개하고 있고, 공간적으로 그가 하늘과 성소와 참 장막에 있다고 밝힙니다. 하늘은 우주라는 물리적 공간이라기보다 사람이 거하는 이 땅과 구별된,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여기는 공간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 보좌에 앉아 계시고, 예수님께서는 그 오른편에 계십니다. 성소는 하나님께서 존재하는 거룩한 곳을 의미합니다.

이 땅에 사람들이 만든 성소 안에 광대한 창조주를 모실 수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상징일 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소와 참 장막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하늘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 성소를 하나님께서 세운 곳으로 묘사한 것에서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하늘 성소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시편 110:4의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라는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은 것은 구약 내용과 동일하고, 하늘 성소에서 섬기는 것은 멜기세덱 계통을 따른 대제사장이란 의미입니다. 현재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를 하늘의 왕이자 영원한 대제사장 삼겠다는 하나님 약속의 온전한 성취를 경험하는 상태입니다.

기자가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신 모습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독자와 관련해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지상 사역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현재 하늘에 있다는 것은 과거 이 땅에서 행한 희생 사역의 결과이며, 그 사역으로 성도는 구원 과정의 시작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저자가 하늘의 예수님을 언급한 것은 거짓 교훈으로 흔들리는 독자에게 복음의 확실성을 상기시켜 진리에서 멀어지지 말라고 권하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의도는 예수님의 현재 상태를 통해 미래 소망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사역을 통해 영광의 위치에 있기에, 성도들도 예수님을 따라 인내로 신앙을 지키면 장차 영원한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성도는 고난에 굴하지 말고 계속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3-13)

예수님께서 다른 어떤 존재와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하신 분임을 확신할 때, 그분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합니까? 가장 탁월하신 분임을 믿습니까? 죽은 뒤에 천국에 가는 것은 당연히 주님께 맡긴다고 하면서 이 땅에서는 안락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주님을 외면하진 않으십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새로운 주제의 시작은 구약의 제사장들과 예수님을 비교해서 설명합니다.

3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4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5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6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7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9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10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12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3-13)

옛 언약과 새 언약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온 마음으로 받고 지키는 백성이 창조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가능해집니다.

(1) 대제사장 사역과 제물(3-4)

기존 대제사장과 대조해 예수님의 사역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그 설명은 10:18까지 이어집니다. 우선, 대제사장 사역과 관련한 세 요소를 소개함으로써 설명의 준거 틀을 제시합니다.

이 부분은 그 첫 번째로서 제물에 대해서입니다. 대제사장은 예물과 제물을 드리기 위해 세움을 받았기에 그 직을 수행하려면 하나님께 드릴 어떤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존 대제사장과 새로운 대제사장 모두에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이 편지를 쓸 당시 이 땅에 존재했다면, 그는 대제사장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미 율법을 따라 예물 드리는 대제사장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만일’의 조건문은 현재 사실과 반대 상황을 설정해 전달하는 형식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이미 하늘에 있기에 이 땅에 존재하지 않으며, 그에게는 이 땅 대제사장들의 제물과 다른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제물은 십자가에서 흘린 자신의 피, 곧 예수님 자신의 생명입니다.

(2) 대제사장의 사역할 장소(5)

대제사장과 관련한 두 번째 요소는 사역 장소입니다. 모든 제사장은 사역할 성소가 있지만, 특별히 대제사장은 성소 안쪽 휘장을 지나 가장 거룩한 장소에서 사역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기존 대제사장들이 섬기는 장소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완전한 장소가 아닙니다. 단지 그분의 임재를 상징하는 모형과 그림자일 뿐이며 실체는 따로 있습니다. 옛 언약을 맺을 당시 모세가 만든 장막 성전도 하늘의 완전한 모습을 뽄 떠 만든 것입니다(출 25:9,40). 장막 성전은 하나님의 주도권으로 세워진 것이지만, 그분이 온전히 거하는 곳이 아니기에 기존 대제사장들 사역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전의 제사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장 거룩한 하늘 성소에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백성을 위한 속죄 사역을 완수했고, 이제는 하늘에서 중보의 대제사장 사역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3) 새로운 언약에 대한 설명(6-13)

대제사장과 관련한 세 번째 요소는 언약입니다. 언약은 하나님과 사람이 특별한 관계를 맺는 일종의 계약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창 15:17-21; 17:1-14)는 한 개인에 대한 것이기에 하나님과 직접 언약을 맺었지만, 이스라엘은 집단이기에 인간 중개자가 필요했습니다. 모세는 대제사장이 아니었지만, 하나님 편에서의 중개자로 시내산에서 하나님과의 언약 체결을 주관했습니다(출 24:1-11). 이후 대제사장들은 옛 언약 체계 안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연결해 지성소에서 속죄 사역을 드림으로써 죄 사함을 받고 언약 관계 안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고 죄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언약 백성의 삶을 규율하는 율법,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핵심 원리를 따라 사는 삶을 거절하고 자기 자신을 창조주 삼아 반역하며 살았습니다(9). 언약 관계를 깨는 백성들의 죄에 대해서는 대제사장 사역으로도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언약은 피, 곧 생명으로 계약한 것이기에(출 24:8) 그 관계를 지킬 법적 의무가 있고, 어느 한쪽이 그 관계를 깨면 다른 쪽이 관계를 깬 쪽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언약 백성이 먼저 관계를 깼기에 하나님은 당연히 심판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했고, 편지를 쓰는 당시까지도 이민족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옛 언약은 비난받을 것이 없지 않습니다(7). 언약 자체는 흠결이 없습니다. 다만 옛 언약은 처음부터 인간의 죄에 대한 최종 해결책이 아니었습니다.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함은 심판 과정에서도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을 사랑하고 그 관계를 신실하게 지키시며 관계를 깬 언약 백성은 심판하십니다. 심판 중에도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새 언약을 약속하십니다(9-12; 렘 31:31-34). 새 언약은 옛 언약처럼 ‘하나님-백성’의 관계를 공유하지만, 구별된 특징들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법, 곧 율법을 마음에 기록하겠다고 합니다. 옛 언약에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돌판’이라는 외부에 기록했지만, 새 언약에서는 사람 마음에 새겨 언약 백성이 내면에서부터 하나님 뜻을 지키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친밀히 알게 될 것입니다. 다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자고 말하지 않을 정도로 언약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3) 죄 사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옛 언약을 깬 자들을 심판하지만, 그들에게 죄사함의 과정을 허락해 회복의 기회를 주겠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사역으로 실현되었습니다. 그는 십자가와 부활로 사람들 죄에 대한 완전한 해결의 문을 열었고(롬 4:25), 자신의 피를 새 언약의 피로 삼아(눅 22:20) 죄 용서받은 자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요 14:6) ‘하나님-백성’을 넘어 ‘아버지-자녀’의 위치를 얻게 했습니다(요 1:12; 롬 8:15). 더 나아가 성령을 보냄으로 내면에서 하나님과의 연합을 가능케 하고(요 14:20; 요일 3:24) 하나님의 뜻을 지키게 돕습니다(요 16:13). 그렇기에 새 언약은 옛 언약의 한계를 뛰어넘는 더 좋은 것이며(13),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 사역을 통해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새 언약이 체결될 수 있도록 중재한 연결자입니다(6). 지금까지 언급한 대제사장과 관련한 세 요소, 곧 제물과 사역 장소와 새 언약 성취는 이후 9-10장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는 더 나은 언약적 친교를 선물해줍니다. 하나님과 풍성히 교제하며 동행하는 것은 속죄의 목표이자 이유입니다. 죄 사함 자체만을 기뻐하는 데 머물지 말고, 더 나은 의를 이루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충만한 교제의 능력으로 어렵고 힘든 현실을 들애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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