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히브리서(07-02)


멜기세덱 반차를 쫓는 예수님

히브리서 7장 11-22절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새로운 날들이 시작됩니다. 이 새로운 날들이 두려움이 아니라 기대감이 되길 바랍니다. 인생의 길을 걸어가다 보면 새로운 하루가 걱정이 되고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새로운 하루는 기대감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래를 알 순 없지만, 미래를 주간하시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동행하여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레위 지파 제사장을 통해 온전함에 이룰 수 있었다면, 새로운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유다 지파로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새로운 제사장으로 오셨고, 생명의 능력을 따라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 제사장직의 필요성(11-14)

이목구비(耳目口鼻)보다 뚜렷한 마네킹보다 웃음 짓는 사람들의 얼굴이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능력으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진정한 제사장직을 행하신 것을 말씀하십니다.

11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12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13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11-14)

본문은 이제 왜 아론의 반차가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와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제사장 제도의 두 방향을 언급했습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의 후손 중 레위 지파로 이어지는 제사장 제도이고, 다른 하나는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시적으로 레위 지파에서 제사장을 세워 속죄를 위한 제사 직무를 수행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율법에 규정하시고 절차를 따라 모든 과정이 이뤄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사를 통해서 백성들이 구원받기에는 너무 불충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본래부터 더 완벽한 방법을 염두 해두고 계셨습니다. 때가 되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과 ‘제사 제도’도 과거의 방법으로 주신 것입니다.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이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율법과 제사 제도는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의미하고 있었지만, 그 주인공인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은 갈등하고 예수님을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율법’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제사 제도’도 세상의 모든 죄를 단번에 해결하실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예표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제사 제도들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으로 행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으로는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은 늘 변해야 하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세례 요한의 아버지였던 제사장 사가랴도 반차에 따라서 연중에 한 부분은 성소에 들어가서 성소의 일을 섬겼다고 말합니다. 아론의 반차는 24반차로 1반차 마다 2주씩 1년에 계속 24번 사이클이 돌아가면서 성소에서 직무를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레위 지파 제사장들의 한계성을 극복하시기 위하여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신 진정한 의미의 대제사장을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당시에 유대인들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이 생각했던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 대제사장은 아론의 일상적인 반차가 아니라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영원한 대제사장의 역할을 하려 오신 것입니다. 성전에 진짜 주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율법학자들이 진정한 성전에 주인이 등장했는데, 성전을 지키던 그 사람들이 성전의 주인을 오히려 거부합니다. 본문에서 설명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15-19)

 

15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6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17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8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19(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찌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15-19)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않고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온전케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온전케 하신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제는 원형이고 표상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해야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과거의 집착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율법에 의지하지 않고 ‘불멸의 생명의 능력’으로 제사장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직의 자격이 없는 유다 지파 가운데서 예수님을 세우시고 레위제사장 반차가 아닌 멜기세덱 반차를 따라서 대제사장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새 언약입니다. 우리는 예수 대제사장을 힘입어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익숙하지 않는 모습으로 찾아오셔도 영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환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식을 통해서 일하시지만,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도 일하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분입니다.

 

더 좋은 언약의 보증(20-22)

성도들이 신앙의 핍박을 만나면 ‘세상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갈 것인가?’라는 갈등하는 분이 있습니다. 두 번째 부분에서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계속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머무를 것인가에 갈등 사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히브리서 기자가 권면합니다. 이 둘 중에 더 좋은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복음 안에 머무는 것이다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20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22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20-22)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신뢰할 만한 보증인을 만나는 것보다 복된 일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속이기 위해 보증을 서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정작 보증을 서 줄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보증 설 의욕도 있고, 능력 잇고, 무엇보다 ‘통하는’ 보증인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맹세로 세우신 보증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인간 제사장들은 아무도 맹세로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맹세로 세움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맹세로 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인이십니다. 곧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로 ‘통하는’ 보증인을 가진 셈입니다. 맹세로 세우신 보증인을 의지하고 나아오는 우리를 하나님은 절대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사장이 되신다는 사실은 시편 110편을 인용합니다. 시편 110편은 집중적으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나오는 있습니다. 다윗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 4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 110:1,4)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위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다윗이 그리스도를 내 주라고 지칭했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있겠느냐?’(마 22:45)고 매우 어려운 질문하셨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아무런 대답을 못합니다. 그들은 이 땅에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는 시간을 초월하신 분입니다. 메시아는 영원의 세계에 계신 분입니다. 그 영원의 세계에 계신 분이 시간 세계에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의미합니다.

본문에 21절 하반 절에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라는 말씀도 시편 110편 4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제사장이 되겠다.’고 하신 것은 약속뿐만 아니라 맹세까지도 하셨습니다. 사실 인간들은 자신이 약속한 것조차 지키지 못합니다. ‘약속하고 맹세한다.’하지만 못 지킵니다. 수많은 부부들이 결혼하고 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배우자에게 ‘결혼을 속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속았다.’고 하지만 본인도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합니다. 인간 안에는 그 만큼 죄가 많고 인간의 마음은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약속을 하지만 그 약속에 맹세까지 하지만 그것을 완전하게 지킬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면, 우리의 기도를 받아주시고 우리의 인생 가운데 언제나 든든히 보호해 주십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22)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세우신 구원의 보증이시며, 과거 언약들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완전한 제사로 하나님께 담대히 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제사로 우리들의 죄가 사함을 입었습니다.

제사는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어린양의 피를 뿌려서 나가야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완성시키신 분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간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능력이 아닐 수 없고, 놀라운 회복과 축복에 약속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고 있습니다. 당신의 신앙생활이 과거로 돌아가지 마시길 바랍니다. 과거로 돌아가면 십자가의 은혜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당신의 신앙이 시작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지금도 걸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천국 문에 들어가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지하여 들어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어 주신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당신의 생각을 허물고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이 세워 둔 고집과 편견을 깨뜨리게 하시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순종하며 받들이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 십자가에서 단번에, 온전히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온전한 은혜의 통로가 되어 주신 주님의 사랑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제가 고민하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답이 주님 안에 있음을 알기에 오늘도 주님을 제 삶의 주권자로 모셔 드립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