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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03-01)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 차이

히브리서 3장 1-6절


등산을 하다 보면 등산로가 있습니다. 정상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그런 경험이 한번 준비되는 길이 아닌 더 빠른 곳으로 가고자 그 길을 벗어나서 한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너무 힘들었고, 자칫하면 길을 잃어버려서 어려움에 처할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우리에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해 주신, 준비하여 주신 그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벗어나서 나간다면 우리에 인생길도 어려움에 처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천사와 비교를 끝낸 후, 구약 대표자인 모세와 예수님과 비교가 이어집니다. 모세도 하나님께 충성한 것으로 영광을 받을 만하지만, 예수님은 더욱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이스라엘 뛰어난 지도자이며 중보자인 모세와의 비교를 통해 우월하신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영광스런 대제사장(1-2)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을 보고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생각과 언어가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반대로 마귀에 지배를 받는 사람은 마귀가 좋아하는 생각을 하고, 마귀 편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예수님께서 가득 차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으로 가득찬 사람들에게 다음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소개합니다.

1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1-2)

독자들 가운데는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사실을 믿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단의 강력한 무기인 죽음을 죽음으로 승리하는 것이었습니다.

(1)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1)

먼저 저자는 성도들을 향해 ‘하늘에 속한 부르심을 함께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라고 부릅니다. 2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형제’로 여겨주심이 일어나 중요한 일인지 힘주어 설파했습니다. ‘거룩한 형제’(2:11)로 부르심은 그리스도의 자비와 임재를 상기시킵니다. 서로에게 형제 되게 하고 그리스도와 형제 되게 하는 속성은 ‘하늘의 부르심’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부르심’, ‘하늘로부터의 부르심’입니다. 하지만, 2:10의 ‘영광’, 그리고 후반부의 중심 아이디어인 ‘천상의 성소’(8:5; 9:23)를 염두에 두면, ‘하늘의 부르심’은 곧 ‘하늘로 향해 나아오라는 부르심’이 됩니다. 이제 저자는 앞서 2:17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으로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 주제를 계속 이어받아 이제 1절에서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그리스도만을 깊이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도리의 창시자이기 때문입니다(12:2). 예수 그리스도는 대속의 사역을 위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사도의 근원이시며, 죄 가운데서 구원하신 영원한 대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 예수님의 자비하심의 측면은 뒤에 가서 집중적으로 부각 되지만(4:15-5:10), 2절에서는 먼저 그의 신실하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성도의 정체성은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자매입니다. 부름 받은 존재임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힘과 지혜로 살지 않습니다. 믿는 도리의 사도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합니다. 자기 힘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염려와 걱정이 가득하지만, 부름 받은 사람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로 언제나 넘칩니다.

(2) 모세와 예수님의 공통점(2)

저자는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모세를 들어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증명합니다. 모세와 예수님을 비교하는 동시에 대조하면서 하나님의 집, 즉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 공동체인 교회와 그 속에 속한 우리의 정체성을 말합니다. 대제사장으로서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셨습니다. 제사장의 자질 가운데 가장 우선적인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 근거를 모세에게서 찾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자기를 세우신 분께 실실하셨습니다. ‘모세가 (신실)한 것과 같이’(2)라는 말씀은 모세 제사장과 예수 제사장 사이에 공통적인 출발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모세를 평가절하해서는 안 됩니다. 저자는 공통점의 기반 위에서 차이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신실함을 갖추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세의 경우, 그의 신실함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셨습니다. 그 민수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7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민수기 12:7)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감당한 부분에서 모세와 같으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자신의 사역을 잘 감당했습니다. 교회는 오직 신실하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함으로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온 집에서 한 것처럼 자신을 세우신 분께 신실하셨습니다.

 

모세와 예수님의 차이점(3-6)

훌륭한 집보다 그런 집을 지은 건축가가 더 귀합니다. 세상은 광대하지만,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럽고 위대하십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는 하나님께 영원히 신실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오직 신실하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함으로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3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3-6)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2장에서 예수님께서 천사보다 위대한 존재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 중에서 비교해보면, 구약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인 모세보다 위대한 존재라고 소개하기 시작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종으로서 신실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지위와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1) 차이점⑴(3-4)

3절은 모세와 예수님의 공통점(신실한 제사장)을 기반으로 삼아 둘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소개합니다. 그 차이는 첫째, ‘집 지은 자’와 ‘집’의 차이입니다. 전자는 창조주인 반면에, 후자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모세의 차이점은 이런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신실한 청지기가 맞지만, 그는 단지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종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참 아들이십니다.

저자는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4)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에 관한 독립적인 진술 같지만, 문맥 속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지위를 가지신 분임을 명백하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모세의 영광을 질적인 차원에서 능가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집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집을 지은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자이신 것입니다. ‘집이 어떤 집이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집안에 누가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집의 가치는 ‘그 안에 누가 사느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어 집니다. 천국이 좋은 이유는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입니다. 천국의 개념은 주님과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누구와 함께 있느냐?’의 개념입니다. 비록 당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지라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그곳이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보다 탁월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친히 섬겨 주셨습니다. 그 탁월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성도의 인생길을 지도해 주십니다. 주님을 깊이 생각하여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를 멀리서 지켜만 보시지 않고, 친히 우리와 동행해 주시는 예수님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모세의 인도 아래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출애굽 당시의 사건을 거울로 삼아 그리스도께 절대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자 중에 불순종하는 자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멋진 집을 보고 칭찬하지만, 그 집을 지어 준 사람이 없다면 그 집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물의 건축가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분은 모든 피조물보다 존귀하신 분입니다. 저 위대한 모세도 피조물일 뿐입니다. 우리 자신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창조자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경배만 받고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민수기 12장 7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 관해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의 섬김을 받은 사람들도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의 섬김을 받는 사람들의 행복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세보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 대제사장의 섬김을 받는 자들입니다.

(2) 차이점⑵(5-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집의 상속자이십니다. 아들로서 집에 대해 신실하셨습니다.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자는 그분과 함께 그 집의 상속자가 됩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이 사실을 바꾸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와 예수님의 비슷한 점은 ‘신실함’이지만, 그들의 차이점은 예수 그리스도는 그 집의 ‘아들’이고, 모세는 ‘사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보좌를 물려받을 분입니다.

성경은 이런 확신 위에 견고한 자가 바로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소유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백성을 맡아 이끄시는 분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구원받은 백성 받게 살아가야 합니다. 즉 세상이 낙심케 해도 참된 소망을 가지고 이겨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소유한 것에 소망을 둡니다. 그러나 성도는 소유한 것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자랑해야 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밧줄이나 쇠줄 등 아무리 튼튼한 줄을 던져 주어도 그가 그 줄을 단단히 잡지 않는다면 급류에서 건짐을 받기 어렵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견고히 붙잡는 행위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는 도리’ 곧 참 고백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며 생명 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모든 것이 이 줄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줄을 견고히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던져 주시는 줄은 가장 견고한 밧줄입니다.

예수님은 참 고백의 밧줄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섬기는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을 그 내용으로 합니다.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실을 깊이 생각하라고 명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를 줍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깊이 생각하면 유혹과 절망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소망과 확신이 따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의 진정한 인도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도우심을 바라며 간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끝까지 섬긴 모세처럼, 당신을 살리신 예수님처럼 충성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천국의 소망을 견고히 붙들고 이 땅에서의 시련들을 이겨 내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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