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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18-01)


주님의 날을 구별하는 자의 복

예레미야 18장 1-12절


실제로 우리 안에는 두 개의 왕국이 끊임없이 싸웁니다. 옛 사람은 끊임없이 내 임의대로 세상이 원하는방법대로 살고 싶어합니다. 또 다른 하나님의 나라는 여전히 우리 속에서 가장 선하고 아름답고 안전한 길로 이끌어 가려고 하십니다. 이 전쟁 중에 온전한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삶을 복종해서 드리는 것, 우리가 ‘하나님’을 ‘주님’이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을 따라 토기장이의 집으로 갑니다. 토기장이와 진흙의 관계를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관계에 적용해, 여호와의 절대주권을 특히 심판의 관점에서 선포합니다. 진흙이 토기장이 손에 있듯 이스라엘도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멸망을 예고한 민족일지라도 회개하면 그 뜻을 돌이키십니다. 그러나 유다는 멸망의 예언을 듣고도 돌이키지 않습니다.

 

토기장이(1-6)

우리의 인생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모든 일에 그분을 신뢰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손에 우리의 인생을 전적으로 맡기고 그분 앞에 겸손히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집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와 진흙의 비유를 통해 자신과 백성의 관계를 설명하셨습니다.

1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2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시기로 3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4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5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6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1-6)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고 명하셨습니다. 거기에서 말씀을 들려주리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어떤 의문도 품지 않고 곧바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이유를 묻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1) 여호와의 실행 명령(1-2)

3-4절에서 예언자가 관찰자로 등장하기에 때로는 이상이나 비유로도 이해하지만, 여기서는 변형된 형태의 표적 행위로 간주합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말씀을 기다리도록 명령하십니다(2). 물을 많이 사용하는 토기 공장은 물을 구하기가 비교적 용이 했던 예루살렘 성 남쪽이나 남동쪽의 골짜기에 모여 있었을 것입니다(참조 19:2).

(2) 예언자의 이행(3-4)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간 예레미야는 녹로에서 일하는 토기장이를 지켜본 것입니다(3). 한 손으로는 녹로를 돌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릇의 모양을 빗기에 처음 생각대로 잘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토기장이는 마음에 드는 그릇이 나올 때까지 작업을 되풀이했습니다(4). 관찰의 초점이 토기장이와 진흙의 관계 맞춰집니다. 토기장이는 자기 눈에 드는 대로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진흙은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재료로, 토기장이의 생각에 따라 이런저런 그릇으로 만들어집니다.

(3) 여호와의 해석(5-6)

약속된 말씀이 토기장이의 작업을 지켜보는 예언자에게 주어집니다(5). 여호와께서 예레미야가 관찰한 내용을 신학적 비유로 해석해 주십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6)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자기 마음에 드는 대로 그릇을 만들 듯이 여호와 께서도 이스라엘에게 똑같이 하실 수 있습니다. 만들다가 잘못되면 토기장이가 진흙을 다시 이겨 다른 그릇을 만들듯이 여호와께서도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거나, 더 나아가 버리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분 백성이기는 하지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진흙이 토기장이를 위해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도 다르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선택이 이스라엘에게 구속사적 권리를 부여해주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백성으로 남을 때만 그분의 선택은 의무와 책임으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무리 귀한 베 띠라도 썩어서 쓸 수 없게 되면 버려질 수밖에 없습니다(참조. 13:1-11).

 

여호와의 주권과 민족들(7-10)

모든 일이 고정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구원을 포함한 모든 것이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기로 작정하셨더라도 어느 민족이나 국가든지 악에서 돌이켜 진심으로 회개하면 그 뜻을 돌이키십니다. 그러므로 임박한 심판을 눈앞에 둔 유다 백성이 해야 할 일은 죄에서 돌이켜 철저히 회개하는 것입니다. 진흙은 토기장이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7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8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9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10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7-10)

하나님께서는 엄한 심판자가 아니십니다. 당신의 백성을 심판하기로 하셨다가도 그들이 악에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가두시는 분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궁극적으로 당신께 돌아와 참 생명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1) 회개한 민족의 구원(7-8)

심판에 초점을 맞춰 이스라엘에 적용했던 여호와의 절대주권이 내용적으로는 구원과 심판으로, 공간적으로는 민족들에게로 범위를 넓혀 보편적 가르침으로 주어집니다. 이스라엘의 구원과 심판을 결정하시는 여호와는 마찬가지로 민족들의 심판과 구원을 결정하시는 분입니다. 여호와는 당신 결정에 따라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기도’ 하시고(7),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고 심기도’ 하십니다(9).

(2) 불순종한 민족의 징계(9-10)

그분의 통치권은 이스라엘의 울타리에 한정하지 않고 온 세상에 미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민족들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민족들이 섬기는 우상들은 헛것이기에 이들의 운명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절대주권자로 땅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만이 이들의 멸망과 구원을 결정하십니다. 물론 그분의 의지와 결정은 벗겨낼 수 없는 운명의 굴레는 아닙니다. 그분은 한번 결정이 내려지면 모든 것을 그 결정에 내맡기시고 냉정하게 눈을 감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 의지와 구원 의지는 민족들의 반응에도 개방적입니다.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8),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10). 이스라엘의 회개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민족들의 회개에도 마찬가지로 응답하십니다. 이들이 죄에서 떠나 돌이키면 그분은 이들에게 내리기로 결정한 재앙에 대해 마음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구원이 무조건적이지 않은 것처럼 민족들의 구원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들이 그분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이들에게 베풀고자 하셨던 복에 대해 마음을 바꾸십니다. 여호와는 사람을 권력으로 강제하지 않으시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있도록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의지에 일치하여 자기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십니다. 여호와의 의지와 목소리에 순종하느냐 또는 불순종하느냐에 따라 민족들의 구원과 심판이 결정된다는 본문의 말씀은 이론적·보편적 가르침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민족들에게 여호와의 뜻과 결정이 계시된 것을 전제하는 본문에서 민족들의 구원과 심판에 관한 미래적 전망을 읽어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원래적 의도는 아닙니다. 현재 문맥에서 본문은 구속사적 특권을 주장하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구별하셨음이 분명하지만, 선택 신학, 언약 신학, 성전 신학, 또는 다윗 왕조 신학과 같은 신학적 전통이 면죄부처럼 작용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로지 여호와께 순종하느냐 또는 불순종하느냐가 구원과 심판을 판단하는 결정적 요소입니다. 절대주권자이신 여호와께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은 악을 행하는 이방민족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입니다.

 

구원 가능성의 상실(11-12)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자신이 원하는 그릇을 만들듯이 하나님 또한 각 사람에 대해 그분의 선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토기장이가 그릇이 원하는 모양으로 나오지 않을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다른 그릇으로 만들듯이, 하나님 또한 그분의 백성을 향해 절대 주권을 갖고 계시며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사랑과 인내와 자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11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 12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11-1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복을 주기로 계획하셨다가도 그들이 죄악의 길로 가면 복을 가두십니다. 복을 주신다 해도 그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할 것을, 오히려 그 복이 저주가 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든 우리에게 복을 주실 준비가 되어 있는 분입니다.

(1) 회개를 요청하시는 여호와(11)

문맥의 순서에 따라 읽으면, 민족들의 구원과 심판에 관한 가르침이 유다와 예루살렘에 적용됩니다. 하나님 백성이 민족들이나 나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됩니다. 이스라엘이라 해서 다르게 취급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결정적이지, 종교적 전통은 이차적입니다. 여호와는 회개 요청이 이스라엘에 의해 거절될 것을 예레미야에게 미리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거절하는 이스라엘(12)

그러나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12) 하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재앙을 내리며’와 ‘토기장이’는 동사 ‘야차르’의 현재분사로 형태가 똑같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듯이 여호와께서 당신 계책에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릴 재앙을 만드십니다. 물론 그분의 심판은 7-10절이 말하고 있듯이 운명적이지 않습니다. 심판은 불순종에 대한 여호와의 징벌이기에, 이들이 악에서 돌이켜 행실을 바르게 하면 그분은 이들에게 내리기로 한 재앙을 거두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간절하고도 긴급한 회개 요청은 이들의 완악한 마음에 아무런 반향도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심판 의지를 단호하게 무시하고 오직 자기 계획을 따릅니다. 이들의 자기파멸적 행태가 구원 가능성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든 것입니다. 회개하고 재앙을 피하라는 경고를 거절한 이스라엘에게 멸망 이외에 다른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의 문맥에서 이 단락은 1-6절이 주장하는 여호와의 절대주권에서 그분의 임의성 또는 변덕스러움을 보는 자들에게 주는 답변입니다. 어느 날 여호와께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선포하신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베푸시던 여호와께서 변덕이 심해 심판자가 되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 번 시도해도 그릇으로 잘 만들어지지 않는 진흙을 토기장이가 내버리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심판 의지를 알려주고 회개를 요청하셨지만, 이스라엘이 끝까지 돌아오길 거절하고 제 길을 갔기 때문에 재앙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경우에도 멸망의 원인을 여호와에게서 찾거나 그 책임을 여호와께 돌릴 수 없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관자라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토기장이가 흙을 마음대로 다루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만들 듯이, 하나님께서도 온 세계를 자신의 뜻대로 통치하며 주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주님 앞에 우리의 뜻대로 자기 주장할 것이 아니라 주의 뜻대로 살기로 결단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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