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예레미야(18-02)

 

 


예레미야 암살 음모와 심판 호소

예레미야 18장 13-23절


사람들은 배은망덕한 자를 동물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비난합니다. 동물도 주인을 알아보며 배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을 배신한다는 것은 세상에서도 손가락질받는 패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바로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십니다.

 

본문은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분노를 막기 위해 유다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경고를 유다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엄중한 경고를 무시하고 완악하게 행동하는 이스라엘의 형태에 여호와께서 절망하십니다. 여호와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잊고 우상숭배에 빠져 명망의 길만 찾아갑니다. 이제 유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유다 배반과 그 결과(13-17)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다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을 떠나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며 죄를 짓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배은망덕한 일입니다. 우리도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는 것을 너무 쉽게 ‘그럴 수도 있지’라면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13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누가 이러한 일을 들었는지 여러 나라 가운데 물어보라 처녀 이스라엘이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도다 14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바위를 떠나겠으며 먼 곳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 15무릇 내 백성은 나를 잊고 허무한 것에게 분향하거니와 이러한 것들은 그들로 그들의 길 곧 그 옛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하게 하여 16그들의 땅으로 두려움과 영원한 웃음 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서 그의 머리를 흔들리라 17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 앞에서 흩어 버리기를 동풍으로 함 같이 할 것이며 그들의 재난의 날에는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13-17)

하나님께서는 레바논 산의 자연현상을 들어 유다 백성들이 저지른 짓이 자연의 이치에도 맞지 않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끔찍한 죄악임을 고발하십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헛된 우상에게 분향했으며, 넓고 좋은 길을 버리고 샛길로 갔습니다. 그러한 일들에 고발합니다.

(1) 고발(13-15a)

다른 민족들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없는 끔찍한 일을 이스라엘은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행했습니다. 악함에 있어 이스라엘에 비교하면 다른 민족들이 초라하게 비칠 정도였습니다. 여호와마저 이스라엘의 ‘심히 가증한 일’에 놀라십니다(13). ‘이러한 일’은 여호와를 잊고 다른 신들을 숭배하는 것을(15a)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의 행태가 얼마나 황당한지를 창조 질서에 속하는 주변 자연현상과의 비교를 통해 고발합니다(14). 레바논 높은 산들의 정상을 덮고 있는 눈이 사라질 수 있겠습니까? 먼 곳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이 마를 수 있겠습니까? 레바논의 만년설이 녹아 사라져버리거나 요단강에 물을 공급하는 헤르몬산의 수원이 고갈되는 일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습니다. 자연도 창조주께서 정한 질서에 순응하여 사는데 이스라엘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백성이라면 그분께 속해 그분을 섬기는 것이 마땅함에도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잊고 우상에게 분향했습니다(15a). 레바논의 만년설도 정상을 떠나면 사라질 수밖에 없음을 알고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요단강도 헤르몬 산의 수원을 벗어나면 마를 수밖에 없음을 알고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생수의 근원’ 되시는 여호와를 버리고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2:13)에 불과한 우상을 따랐습니다. ‘허무한 것’은 원래 ‘아무것도 아닌 것’, ‘실체가 없는 것’, ‘재앙’을 의미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섬기는 자는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2) 우상숭배의 결과(15b-16)

눈이 레바논 정상을 떠나면 녹아 사라지는 것처럼. 요단강이 헤르몬 산의 수원을 떠나면 마르는 것처럼, 여호와를 잊고 헛것을 숭배한 이스라엘도 멸망과 죽임을 당합니다. 이스라엘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버리고 멸망으로 이끄는 길을 선택했습니다(15b). 원래 ‘좁은 길’을 의미하는 ‘곁길’은 배반한 이스라엘의 삶의 태도와 자세를 가리킵니다. 닦지 아니한 길은 어디로 났는지도 모르는 위험스러운 길을 가리킵니다. ‘옛길’에서 순종의 광야 시대를 보기도 하지만(참조, 6:16), 병행하는 ‘그들의 길’은 이스라엘이 예전부터 걸어왔던 길, 곧 여호와께 등을 보인 반역의 길로 이해하게 해줍니다. 이스라엘은 조상 때부터 우상을 숭배하며 악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실족시킨 우상숭배가 더 나아가 이스라엘 땅을 폐허로 만듭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가나안이 귀신과 들짐승이나 사는 황무지로 변해 ‘두려움과 영원한 웃음거리’가 되고,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서 그의 머리를 흔들게 된다’(16). 휘파람을 불고 머리를 흔드는 행위는 일종의 제의적인 방어 의식입니다. 폐허로 남겨진 지역에는 귀신들이 살았기에 그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은 이들의 갑작스런 공격을 피하기 위해 휘파람을 불고 불길한 세력의 영향력을 떨쳐버리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3) 심판의 선고(17)

우상숭배의 결과를 기술한 다음에 여호와께서 직접 재앙을 선포하십니다(17). 요단 동편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겁고 건조한 ‘동풍’이 흙먼지를 흩날려버리듯이 여호와께서 직접 이스라엘을 그들의 적들 앞에서 흩뜨려버리십니다. 이스라엘이 곁길로 가면서 여호와께 등을 보인 것처럼 ‘재난의 날’에 여호와께서도 이스라엘에게 등을 보이시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십니다.

 

예레미야의 네 번째 고백(18-23)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올바른 말을 전하면 귀를 막습니다. 그리고 ‘너 말고도 말씀을 전할 자는 얼마든지 있다’는 태도를 취합니다. 이것이 바로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악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정확히 그러한 심판 받을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께 얼마나 배은망덕한지를 고발합니다.

18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책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 하나이다 19여호와여 나를 돌아보사 나와 더불어 다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옵소서 20어찌 악으로 선을 갚으리이까마는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구덩이를 팠나이다 내가 주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려 하고 주의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하여 유익한 말을 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21그러하온즉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 주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넘기시며 그들의 아내들은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며 그 장정은 죽음을 당하며 그 청년은 전장에서 칼을 맞게 하시며 22주께서 군대로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게 하사 그들의 집에서 부르짖음이 들리게 하옵소서 이는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구덩이를 팠고 내 발을 빠뜨리려고 올무를 놓았음이니이다 23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옵시며 그들의 죄를 주의 목전에서 지우지 마시고 그들을 주 앞에 넘어지게 하시되 주께서 노하시는 때에 이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하니라(18-23)

예레미야는 하나님 앞에서 유다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예레미야를 비난하며 죽이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입니다. 이에 분노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자신을 죽이려는 원수들을 벌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1) 탄식의 배경(18)

네 번째 고백은 적들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책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18). 적들은 이스라엘의 신학적 전통에 의지하여 예레미야에 맞서고,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밉니다. ‘꾀’와 11절의 ‘계책’과 12절의 ‘계획’은 모두 명사 ‘마하샤바’의 번역입니다. 자신의 계획대로 살아가는(12) 자들이 여호와의 계획을 선포하는(11) 예언자를 제거할 계획을 꾸밉니다(18). ‘혀로 그를 치고’는 아마도 말로 싸우자는 말 같은데 구체적인 의미는 불분명합니다.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는 사회적 고립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예레미야의 존재를 철저히 무시하고 그를 하나님의 예언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2) 결백 주장(19-20)

적들에 에워싸여 고립된 예레미야는 공의로우신 재판관 여호와를 찾아갑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적들의 고발을 듣고 판단해주시길 간구합니다(19). ‘돌아보사’와 18절의 ‘주의하지’는 ‘귀를 기울여 듣다’를 의미하는 동사 ‘카샵’의 다른 번역입니다. 예레미야의 적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자고 말합니다. 예레미야를 조롱하며 그의 말을 무시하려 합니다. 반면에 예레미야는 적들에 맞서 여호와께서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호소합니다. 예레미야를 대적하는 자들이 곧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들임을 시사합니다. 예레미야는 먼저 적들의 배은망덕을 고발합니다(20a). 저들은 선을 악으로 갚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냥꾼이 구덩이를 파놓고 짐승이 빠지길 기다리듯이 저들은 예레미야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적들은 또한 여호와를 증인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무죄를 주장합니다(20b). 예레미야가 자신들의 멸망을 바란다는 저들의 주장이 거짓임은 누구보다도 여호와께서 잘 알고 계십니다.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에 심판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분노를 돌리기 위해 중보의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참조. 7:16; 11:14; 14:11; 15:1). 예레미야를 대적하는 자들은 아마도 그의 심판 선언이 재앙을 바라는 그의 악한 마음을 반영한다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설혹 여호와께서 심판을 결정하셨을지라도 이를 연기시키거나 취소시키기 위해 노력했어야 하는데, 속으로 멸망을 원했기에 그렇게 하지 않다고 예레미야를 고발했던 것 같습니다.

(3) 복수 간구(21-23)

자신의 무죄를 변호한 후에 예레미야는 적들에게 철저하게 보복해주시길 간구합니다.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 주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넘기시며 그들의 아내들은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며 그 장정은 죽음을 당하며 그 청년은 전장에서 칼을 맞게 하시며 주께서 군대로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게 하사 그들의 집에서 부르짖음이 들리게 하옵소서”(21-22a). 예레미야는 선을 악으로 갚는 자들과 그의 가족이 모두 기근과 칼과 죽음(전염병)에 넘겨지기를 간구합니다. 또한 남자들은 모두 죽고 여자들만 살아남기를, 곧 대적의 완전한 멸망을 간구합니다. 피상적으로 보면 사적 복수의 간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예레미야가 선포한 심판 메시지의 반복입니다. 다시 말해, 예레미야는 자신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선포한 심판이 그대로 이뤄지길 간구한 것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심판은 일차적으로는 여호와를 배반한 자들을 징계하는 사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한 참된 예언자임을 확인해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냥꾼의 표상을 사용해 적들의 음모를 고발한(22b) 예레미야는 다시금 최고 재판관이신 여호와께 적들에 대한 보복을 호소합니다(23). 여호와는 적들의 계략을 속속들이 아시기에 박해당하는 자를 구해주시고, 또 박해하는 자를 심판하십니다. 적들의 악과 죄를 용서하지 마시고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넘어지게 해달라는 간구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공의의 집행을 요청하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공의는 의인의 구원과 악인의 멸망을 통해 그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주께서 노하시는 때’에 예레미야의 적들은 심판받을 것입니다. 여호와 심판의 성취가 곧 예레미야가 간구하는 보복입니다.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음모에 대하여 하나님께 탄식했습니다. 이제 백성의 중보자였던 예레미야가 백성에 대한 저주를 서슴치 않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 자신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그 백성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음을 암시해줍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시도하는 그들에게서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의 이 같은 의문에 찬 기도는 유대 백성에 대한 개인적인 보복 감정이 아니라 그 땅에 공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불의가 패하고 하나님의 공의가 승리하기를 기도하는 자가 되길 바랍니다.


구독과 공감 ♡ 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